"선 넘은 검찰에 촛불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주현 입력 2019.10.28. 07:16 수정 2019.10.28. 07:36

      

 

 

[조국, 그 이후] ① 촛불이 던지는 질문/심층좌담
'나는 왜 서초동집회에 갔나'
'나는 왜 서초동에 가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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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엔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이게 나라냐? 박근혜로는 더이상 안 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도 비슷했다. 하지만 조국사태는 이들을 갈라놓았다. 생각이 다르거나 무관심한 가족과 지인 앞에선 분란을 우려해 아예 입을 닫기도 했다.

지난 22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뒤 석달 가까이 이어진 ‘조국 정국’에 대해 토론하는 ‘표적집단 심층좌담’(FGD)이 열렸다. 광화문, 서초동, 여의도에 모인 시위대 수와 소셜미디어(SNS)로 분출된 말폭탄의 격함, 그리고 여론조사 수치로 드러나지 않은 민심을 포착하기 위해 <한겨레>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함께 마련한 자리였다. 그동안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할 말을 못했다는 20~50대 남녀 참석자 6명은 말문이 트이기 무섭게 꼭꼭 담아둔 생각들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표적집단심층좌담에 참석한 이들의 가명은 2016년과 2019년 광장 집회 경험의 유무에 따라 표시했다. △탄핵 촉구 광화문 집회에 나갔고 이번에 서초동에 간 사람은 ‘광서’ △광화문 집회에 갔으나 이번엔 안 나간 이는 ‘광무’ △두번 모두 집회에 나가지 않은 경우엔 ‘무무’로 표기하면서 뒤에 성별을 구분해 표시(남·여)했다. 토론은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의 사회로 진행했다.

조국 의혹보다 검찰이 더 문제

노무현 대통령 죽음 이르게 했던

그때처럼 분노·기시감 들어

조국은 개혁을 위한 수단일뿐

수단 실패해도 검찰개혁 이뤄야

누구보다 광무남(54)의 고뇌가 깊어 보였다. 그는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진보정당에 힘 실어주려고” 심상정을 찍는 전략투표를 했고, “앞으로 정권이 자유한국당으로 넘어가선 절대 안 된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조국 사태를 지켜보며 느낀 감정을 한마디로 정리해달라고 하자 그는 “당황”이라고 답했다.

“조국을 우리가 좀 따라갈 만한 모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애 학교 잘 보내려고 온갖 ‘빽’을 동원하는 사람이었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그가 장관을 계속하겠다는 것도 당황스러웠고,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2017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를 찍었지만 이제 그에 대한 기대감은 전혀 없다는 무무남(55)은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예전엔 지역갈등이 사실상 전부였는데 이젠 세대갈등이 굉장히 심각하다. 정치적으로 편이 갈려도 이 정도까지 벌어질 줄은 몰랐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더 오른쪽으로, 왼쪽에 있는 사람은 더 왼쪽으로 가버렸다”고 짚었다.

광무여(25)는 조국 사태로 느낀 감정을 “기시감”이라고 표현했다. “이전에 숱하게 일어난 고위급 인사들의 가족 비리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학교 친구들도 ‘그놈이 그놈이지’란 냉소 속에 무관심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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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에 가장 ‘뜨거운 마음’으로 나간 것은 광서남(54)이었다. 그의 감정은 “분노”였다. “나도 기시감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검찰이 선을 넘었다. 언론도 광적인 상황이었다. 나가서 제동을 걸지 않으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두명은 조국 개인에 대해선 양가감정을 느꼈으나 개혁이라는 ‘큰 틀’에 동의했다. 광서남(42)은 “‘조국 의혹’이 쏟아지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초반엔 관련 뉴스를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려고 했다. 갈수록 여론이 양극화되다가 결국 조 전 장관이 일도 해보지 못하고 사퇴해서 슬펐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광서남(29)은 감정이 너무 복잡해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들다고 했다. “‘거봐라, 똑같은 놈들이야’라며 웃는 아버지에게도 당했고, 정의가 중요하다는 내 신념에도 배반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서초동에 갔다. 조국은 개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단은 실패해도, 검찰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은 다른 문제

‘검찰, 괴물같은 존재’ 동의하나

‘룰의 페어함 깨뜨린 사람을

왜 우리가 지켜야 하는지 의문

‘그놈이 그놈’ 냉소와 무관심도

서초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검찰청 앞에 모인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은 “어떻게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이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광무남(54)은 “학교 다닐 때 데모하다 끌려가보기도 해서 검찰에 기본적인 거부감이 있다. 검찰이 괴물 같은 존재라는 데 동의하고 우리 역사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조국 역시 검찰개혁만큼 중요한 정의, 평등, 공정이란 촛불의 가치를 훼손했다. 서초동에 가서 검찰개혁과 조국수호를 동시에 외치면 조국 수사에 대한 압력과 방해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무무남(55)은 “조국이 불법을 저질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페이스북 같은 데서 스스로 지키지 못할 얘기를 너무 많이 했다. ‘룰의 페어함’을 깨뜨린 게 맞는데 왜 그런 사람을 지켜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조국수호가 왜 검찰개혁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초동에서 촛불을 들었던 이들끼리도 미묘하게 엇갈렸다. 광서남(54)은 조국에 대한 비난이 과도함을 지적했다. “조국이 실정법을 어겼다면 그에 대해 책임지면 된다. 하지만 ‘생각보다 깨끗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분노하는 거라면 이해가 안 간다. 진보라고 하면, 얼마나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지, 그렇다면 과연 법무부 장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나머지 두 사람은 ‘정치적 의무감’에 서초동에 나간 쪽에 가까웠다. 광서남(42)은 “이번 사태로 촛불정부의 힘이 사그라들까봐 아직 촛불이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나갔고, 또 다른 광서남(29)은 “서초동보다 태극기 숫자가 더 많아지면 검찰개혁이나 문재인 정권에 힘이 안 실릴까봐 걱정이 돼서” 집회에 나갔다고 했다.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공정성’

장관이 검사에게 전화한 건 직권남용

검찰의 인권침해가 가장 불공정

상위권 대학 주축 ‘조국 반대집회’

지방 캠퍼스 학생들은 배제 ‘모순’

조국 사태가 던진 또 하나의 화두인 ‘공정성’에 대해 물었다. 다양한 답변이 돌아왔다. 무무남(55)은 조 전 장관 딸이 받은 장학금을 거론하면서 “돈도 많은 사람이 없는 애들 돈 몇십만원 주는 것까지 빼앗아 먹느냐며 분노하는 지인들이 많았다”고 했다. 광무남(54)이 “자택 압수수색 하던 날 조국이 장관으로서 검사한테 전화한 것은 불공정의 극치이자 직권남용”이라고 꼬집은 반면, 광서남(54)은 “나는 부인이 너무 많이 아프면 장관 이전에 남편으로서 전화할 수 있다고 본다. 애꿎은 부인 때려잡는 게 검찰 특수부가 할 일이냐. 검찰의 인권침해가 가장 불공정하다”고 맞섰다.

광서남(42)은 “회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놓고 공정성 논란이 있다. 우리 세대는 ‘사회 약자를 우리가 품어야 한다’고 하는데, 후배들은 ‘시험 안 보고 정규직 되는 게 맞느냐’고 한다. 요즘엔 공정성이 무엇인지 매우 혼란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취업을 준비 중인 광무여(25)는 “모두들 자신의 불공정함은 인정하지 않는 게 가장 불공정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는 “학부모들은 ‘나는 조국처럼 애들한테 못 해주는데’라면서 불공정하다고 느끼고, 한달에 몇백만원씩 들여 의학전문대학원 준비하는 친구들은 학벌 문제에 예민해한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다니는 아이들은 ‘나는 정당하게 대학 왔는데 조국 딸은 ‘빽’ 써서 왔으니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이번에 대학생들이 주최한 조국 반대 집회엔 서울대·연대·고대 등 10여개 상위권 대학이 주축이 됐고 같은 학교이면서도 지방 캠퍼스 학생들은 배제했다. 얼마나 모순적이냐. 공정함이란 의제 자체가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분열·갈등으로 후유증 몸살

사회 전체가 디도스공격 당한 듯

“정당 다 마음에 안 들어” 불신

20대 정치적 무관심·냉소 우려

‘여당 실책 인정해야’ 지적도 조국 사태를 거치며 생긴 분열과 갈등, 상처의 후유증에 대해선 모두가 우려를 표시했다. 광무여(25)는 “몇달 동안 언론과 정당이 온통 조국 문제에만 매몰되면서 민생·경제가 올스톱됐다. 이제 좀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회 전체가 디도스 공격을 당한 것 같다’는 표현도 여기서 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20대가 이번 사태로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나나 친구들이나 이번 정권에 기대하는 게 컸는데 이젠 분위기가 바뀌었다. ‘우리가 지금 정부 걱정 할 때냐, 우리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자’는 식이다. 젊은층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기 전에 여당은 실책을 인정해야 한다.”

광무남(54)은 “안희정이란 차기 대선 주자가 ‘미투’로 진보의 얼굴에 먹칠을 했을 때도 논란이 있었지만, 이렇게 진보진영이 쪼개지진 않았다. ‘진영 논리가 왜 문제가 되죠?’라는 한 진보 인사의 공개적 궤변도 큰 충격이었다”고 토로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보내는 참석자들도 ‘지지 철회’까지 나아간 상태는 아니었다. 광서남(42)은 “실책인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아픔 뒤의 성숙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무무남(55)은 “대통령 본인의 문제인지, 참모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남은 임기 동안 잘해나가야 한다. 대통령이 고집을 좀 꺾어야 한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품고 좀 같이 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광무남(54)은 “회사를 운영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회사 수익이 줄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책이라고 해서 지지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로 다 죽어가던 보수파가 살아나는 계기와 명분을 제공한 것은 큰 실망이다. 앞으로 대통령은 무리하거나 욕심내서 새로운 개혁과제를 해나가겠다는 생각보다 국민 마음을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서남(54)은 “그래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에 견줘 시민들의 권리가 존중되고 있지 않나? 기회의 균등 문제 등 우리 앞에 놓인 난제를 대통령이 잘 풀어갈 수 있도록 20대도 86세대도 다 나서서 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서남(29)은 “문재인이라는 개인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개혁으로 가는 방향에서 그가 맞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은 상당했다. 광무남(55)은 “어느 정당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앞으로 총선에서 어딜 찍어야 할지 참 고민스럽다”고 했고, 광서남(29)은 “조국에 대해선 얘기할 수 있지만, 솔직히 민주당이나 이런 데 지지한다고 얘기하는 거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광무남(54)은 “조국 임명을 강행하는 데 찬동했던 민주당 지도부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내로남불’을 말하지만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정의당에 대해서도 “조국 사태와 관련해 자기들의 가치에 맞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지 못했다. 선거법 처리라는 이해관계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해선 안 됐다”며 실망감을 토로했다.

진행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정리 이주현 최하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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