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상의 오지랖] '4선' 나경원은 왜 '초짜' 이수진에 고전할까..상대는 바로 '조국 그림자'

입력 2020.03.24. 08:29 수정 2020.03.24. 09:30
                          
      
초반 여론조사상 나 후보, 이 후보에 밀려 고전 양상
관록의 나경원 보다 정치신예 이수진에 높은 점수들
지명도 보다는 민주당 정당지지율이 높은게 한 이유
하지만 조국 사태 속 나경원 의혹도 여전한 게 배경
나 후보 "조국 비호세력, 내 지역구서 공작정치" 반발
민주당 지지자들 "나경원도 의혹 투성이" 심리 존재
이 후보는 "국회마비 만든 전국 나경원 잡는 게 목표"
4·15 총선에서 여야가 서울 3대 승부처 중 하나로 꼽은 서울 동작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전 판사(왼쪽)와 미래통합당 나경원 의원이 맞붙는다. 이들의 선거운동 모습. [연합]

지난 2006년 국회 출입때 얘기다. 취재차 자주 보는 이가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었다. 나 대변인은 잘 웃는 이였다. 재미있는 말이 화제에 오른다 싶으면 늘 밝은 웃음꽃을 피웠다. 명랑하고 솔직했다. 현안에 대해서 아는대로 말해줬다. 기자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나 대변인은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순진한 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껄끄러운 얘기를 물으면 약간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곤란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2007년 가을께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았을때도 그 순박함을 지녔던 것 같다.

그런 그를 10년도 더 지난후 언론에서 자주 보게 됐다. 그는 지난 2018년 12월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취임했다. 보수정당 최초의 여성 원내대표였다. 10년이란 세월동안 정치적인 거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좀 변한 것 같았다. 언론은 그를 ‘나다르크’라 표현했다. 예전에 그의 언행을 가끔 봐온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었지만, 그의 정치적 행보를 자꾸 들여다보니 그런 별명이 붙을만 했다. 10년간의 공부 끝에 ‘전사’로 탈바꿈한 것 같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강한 전투력을 보여줬다.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빗대 정치권에 일대 파장을 일으켰고, ‘조국 공방’ 정국에선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날렸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선 초강경 벼랑끝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보니 표정은 굳어있엇다. 얼굴엔 늘 결연한 의지가 묻어났다. ‘10년전 내가 알던 나경원이 아닌 것 같다’는 서운함은 있었지만, 사람이야 늘 변하는 법이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사정이 있으면 또 변하기 마련인게 사람 아닌가. 하루아침에 정권을 넘겨주고 계속 허우적거리는 보수정당의 원내사령탑으로 대여 공세를 앞장서는 역할을 해야 하니 독기로 무장할 수 밖에 없었나보다,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민주당 생각은 달라 보였다. 나경원 원내대표 시절, 여당 의원 두명을 같이 만났던 일이 있는데 한 의원의 말은 이랬다. “나대(나경원 원내대표) 때문에 죽겠어요. 계속 반대만 해요. 뭐 하나 타협하질 않아요. 다음 총선에서는 떨어뜨려야 하든지 해야지 원.” 그러더니 말실수라고 여겼는지 황급히 “나대 스타일이 그만큼 강성이라 일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여전사로 여기는 것 같아요”라고 한다. 다른 의원 하나는 “조국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경원도 여러가지 의혹이 있다고 하지 않아요? 정도 껏 해야지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편한 자리에서의 지나가는 말들이었지만, 여당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나경원 평가’ 수위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여당 쪽에선 강경일변도의 나 원내대표가 정말 껄끄러운 모양이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다.

왜 이런 얘기를 꺼낼까. 4·15총선에서 공천을 받아 서울 동작을 출마를 일찌감치 확정한 미래통합당의 나 전 원내대표(이하 후보로 칭함)가 더불어민주당 후보인 이수진 전 판사(이하 후보로 칭함)에 고전하는 분위기다. 이 후보는 나 후보에 비해 늦게 공천이 확정됐고, 지난 16일에야 동작을 출마 선언을 했다. 공당의 원내대표까지 한 나 후보는 ‘4선’의 관록의 정치인이고, 민주당 13호 영입인재인 이 후보는 정치신예나 다름없다. 지명도로만 본다면 나 후보가 이 후보에 비해 월등이 앞선다. 하지만 판세 예측은 다르다.

지난 20일 동아일보가 동작을 유권자를 대상으로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총선 지지 후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후보(47.1%)는 나 후보(35.4%)를 앞섰다. 이 조사는 동작을 거주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502명을 대상(응답률 10.7%·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으로 지난 17~18일 이틀간 실시한 것이다. 또 서울경제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 20~21일 동작을에 거주하는 성인 남녀 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신뢰 수준 95% 표본오차±4.4%)에서도 이 후보(44%) 지지도는 나 후보(34.9%) 보다 우세했다. 여론조사가 100% 맞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16일 출마선언을 한 이 후보가 단 며칠만의 조사에서 관록의 나 후보를 앞선 것은 의외였다는 시각이 많았다.

미래통합당 나경원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지역상생티켓’ 도입 추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일단 이 후보에겐 ‘여당 프리미엄’이 반영된 것으로 확실해 보인다.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동작을 유권자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민주당(38.9%)이 통합당(24.6%) 보다 우세했다. 이 후보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데도 나 후보를 여론조사상 앞선 것은 우세한 정당지지율로 밖엔 해석이 안된다. 서울경제 조사에서 지지 후보와 관계없이 당선 가능성은 나 후보가 높게 나온 것은 같은 맥락이다. 이 조사에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동작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누가 더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유권자의 답에선 나 후보(47%)가 이 후보(37.5%)를 눌렀다. 인지도와 중량감에선 나 후보가 10%포인트 이상 앞선 것이다. 그렇지만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통합당 인기로 인해 나 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게 여론조사상 초반양상인 분위기다.

그렇다고 해도 유권자들에게 거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정치신인이 공당 원내대표까지 역임한 이에 단 며칠만에 지지도가 앞선다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선거는 통상 정당 지지율도 중요하지만, 정치인 이름값도 주요 변수다. 정당 지지율로만 해석할 수 없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다. 궁금증은 취재를 통해 어느정도 해소됐다.

동작을에 살고 있는 지인이 몇명 있는데, 그들에게 이번 총선에 대해 물어봤다. 한 지인은 “능력 면에서나 무게감 면에서나 나 후보가 나아 보여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 다른 지인 역시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또다른 지인 생각은 달랐다. 그는 “나 후보가 원내대표때 한 일은 여당 일에 브레이크 걸은 것 밖에 없다고 본다”며 “구태정치를 보여줬기에 찍지 않겠다”고 했다. 나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는 대체로 보수성향이었고, 나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는 진보성향이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됐다. 그런데 보수 성향의 지인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조국을 싫어하지만, 나경원을 보면서 조국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조국은 분명 잘못했지만 나 후보 역시 자녀 의혹이 있는데 왜 조국만 수사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번 선거에선 나경원을 찍었는데, 이번엔 각종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해명없이 아니라고만 하는 나 후보 같은 사람이 동작을 이끌어선 안된다고 본다”고 했다. 나 후보 역시 조국 만큼 공정에 대한 결점이 있을 것으로 보기에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특히 조국을 옹호했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흑석동 상가 투자 의혹으로 물러난뒤, ‘그렇다면 나경원은 공정한가’라는 물음을 갖고 있는 동작을 유권자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동작을 지역구 의원인데도 ‘현역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고, 정치신예 민주당 후보에 고전하는 나 후보의 현재 모습은 그의 말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정치인 나경원’이 이번 동작을에서 싸우는 상대는 이수진이 아니라 바로 ‘조국 그림자’였던 것이다. 이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하면서 왜 “국정발목을 잡아온 나경원을 잡는 선거”로 규정했는지, 이 출마선언 자리에 서울 광진을에 출마한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이 자리해 응원의 박수를 쳤는지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21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후보가 지난 1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나 후보 측에선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앞서 시민단체인 민생경제연구소 등은 최근 나 후보가 자신의 아들과 딸의 대학입학 과정에 개입했다는 등의 내용으로 그를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 사건을 경찰청에서 배당받아 수사하고 있다고 한 바 있다. 이에 나 후보는 시민단체 고발과 경찰 수사 착수와 관련해 “‘나경원 죽이기’로 ‘조국 분풀이’하는 선거공작 세력에 단호히 맞서 나갈 것”이라고 반발했다. 조국을 앞세워 자신을 선거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음해세력의 노골적인 작전이라는 뜻이다.

사실 나 후보가 코너에 몰릴 것임은 어느정도 짐작했다. 동작을은 이번 총선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서울 서부벨트의 핵심 선거구 중 하나다. 최근 12년간 보수정당이 승리해온 지역이다. 그래서 민주당에선 이번에는 동작을을 탈환하겠다고 잔뜩 별러왔다. 민주당에서 한때 동작을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긴급투입하려고 한 것도 동작을을 반드시 빼앗겠다는 의지의 연장선상으로 풀이됐다. 그러다가 전직 판사인 이 후보를 내세워 ‘판사 대 판사’의 구도로 ‘저격 공천’을 실행한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원내대표때 너무나 강성으로 대여투쟁을 해온 인물을 찍어내겠다는 민주당의 공감대가 이뤄진 곳이 바로 동작을”이라며 “민주당 전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여론조사는 비교적 ‘적극적인 의사 표현층’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위에서 거론한 일부 언론의 후보 지지도 조사는 어디까지나 초반판세 참조용일뿐, 최종 결과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 후보가 초반 열세인 것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경험이 풍부한 정치인이라는 점, 그리고 지명도가 월등히 앞서 있다는 점에서 역전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있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정치인 나경원’의 숙제는 이번 선거에서 설령 이기더라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의 문제’가 조국만이 아닌 본인의 일이라는 것을 새삼 선거판에서 확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으로선 억울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나 후보가 정치를 하는 한 이 문제는 두고두고 거론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 후보가 총선 후에도 보수정당 거물의 위치를 보존하려면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조사를 받고, 이를 통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면죄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나경원? 조국과 뭐가 다르지”하는 일반 시선이 뒤따른다면 그는 영원히 ‘조국 그림자’와 싸워야 하는 숙명의 삶을 살아야할지도 모르겠다. ‘나다르크’는 강렬했지만, 반대급부도 그 이상으로 강했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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