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피해 500년만의 폭우 탓..이상기후 대비 소하천 치수를

최우리 입력 2020.08.11. 05:06 수정 2020.08.11. 07:26 댓글 49

댐 수위 급박하게 올라가 경고등
불시에 최대치 방류해 피해 커져
"기후변화 심해지면 이상기후 잦아
저류지 더 만들고, 소하천 정비 지속"

10일 경남 창녕군 이방면 장천배수장 인근 낙동강 둑에서 응급 복구 작업이 시행되고 있다. 이곳은 폭우로 전날 오전에 길이 40여m가 유실됐다. 연합뉴스

사상 최악의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홍수 피해를 입은 지역이 늘어나자, 정치권에서 때아닌 ‘4대강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홍수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4대강 사업을 확대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반면, 더불어민주당 쪽에선 이명박 정부 당시 무리한 보 건설이 물난리를 키웠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섬진강과 낙동강(합천보) 지역의 홍수 피해를 분석 중인 전문가들은 강바닥을 파내고 보를 설치한 4대강식 준설사업은 홍수 예방책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갈수록 폭우 피해 우려가 커지는 만큼, 치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친환경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 섬진강·낙동강 피해 원인은? 이번 논란은 지난 8~9일 홍준표 무소속 의원과 정진석 통합당 의원이 “4대강 사업을 지류와 지천으로 확대했다면 지금의 물난리를 좀 더 방어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불거졌다. 4대강 사업이 이루어진 본류 피해가 크지 않았다며, 현 정부의 4대강 보 개방 조처가 잘못됐다고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섬진강 범람 피해를 본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지 주민들은 ‘섬진강이 4대강 사업에서 빠져 피해가 컸다’는 주장에 손사래를 쳤다. 이들은 “섬진강댐이 8일 아침 6시 반부터 방류를 시작해 10시30분에 방류 가능 최대치인 초당 1700톤을 방류했다. 하류 지역 주민은 의식하지 않은 채 불시에 최대치를 방류해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섬진강 유역의 피해는 설계 기준을 뛰어넘을 만큼의 비가 내린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환경부에 따르면 섬진강 홍수통제소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번 폭우가 500년에 한번 올 만한 폭우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 7~8일 전북 남원에선 429.9㎜가 내렸다. 치수 설비는 100년에 한번 오는 폭우에 대비하도록 설계하는데 이를 뛰어넘은 것이다. 김동진 환경부 수자원정책국장은 “섬진강 1년 강우량이 1200㎜가량인데 단 며칠 사이 40%가 넘는 양의 폭우가 왔다. 누적 강우량이 500년에 한번 올 만한 수준”이라며 “긴박하게 댐 수위가 올라가 방류를 결정했고 주민 대피 조치를 했지만, 하류도 이미 수위가 올라가 있어 범람하거나 제방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권에선 4대강 사업지였던 낙동강 합천보에서 발생한 제방 붕괴가 오히려 4대강 사업이 홍수 예방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하류에 있는 합천보가 물 흐름을 막다 보니 강 수위가 올라가며 주변으로 향하는 압력이 강해져 제방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붕괴 시점의 강 수위가 제방 높이보다 낮아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9일 자신의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큰비가 내릴 때 평소 강물이 자유롭게 흐르던 상황이라면 물의 양이 어느 정도 불어나도 양쪽의 제방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댐으로 강물을 막아 수위를 높여 놓고 있으면 조금만 물의 양이 불어나도 바로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강의 본래 기능 되살려야” 전문가들은 ‘4대강 논란’을 벌이는 대신 치수 능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특히 앞으로 기후변화가 심화하면 이번 홍수 같은 ‘이상기후’가 잦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강의 치수 시설은 200년에 한번 내리는 비를 견디도록 설계돼 있는데, 다른 강들도 설계 기준을 높이려면 정책을 바꾸고 예산을 추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매년 지방하천 정비에 7천억원 이상을 쓰지만, 이를 더 늘려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야당의 주장은) 섬진강도 4대강처럼 전 구간의 강바닥을 팠어야 했다는 것인데 말이 안 된다. 제방을 쌓거나 저류지를 더 만드는 등 여러 치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의 본래 기능을 되살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2006년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서 이미 홍수를 강의 일부로 끌어안자는 개념을 강조했다. 강 주변에 더 많은 홍수터를 만들고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지역은 국가가 아예 땅을 사서 관리하자는 것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때 (단지 강바닥만 더 깊게 하는) 준설로 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경오 한경대 토목안전환경공학과 교수는 “토목공사가 아니라 식수원과 농업용수 등 강물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실제로 하천은 국가하천, 지방하천, 소하천, 세천으로 나눠 10년 주기로 계획을 마련해 정비하도록 돼 있다. 지방하천까지는 국가에서 관리하지만,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소하천은 3만여개에 이르러 예산 문제 등으로 제대로 정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진걸 동신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이후 하천에 예산을 투입하는 게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며 “그러나 (기상이변에 따른 집중호우 피해를 줄이려면) 소하천 위주의 정비를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우리 송인걸 오윤주 최예린 기자 ecowoori@hani.co.kr

블로그 이미지

오사사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정보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