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금 1번에 15만원" '꿀알바' 하다가..결국 경찰서로

김성진 기자 입력 2021. 01. 30. 07:00 댓글 219

최민우씨(가명·21)는 지난해 11월 A은행 채권추심단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A은행 관계자는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올린 이력서를 읽었다며 “기업이 대출받은 돈을 회수하는 업무를 맡으면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면접도 없다’는 말에 최씨는 일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무엇보다 건당 15만원의 돈을 준다는 말에 혹했다. 일은 간단했다. A은행 채권추심단은 카톡으로 돈을 받아야 할 사람과 장소를 알려줬다. 최씨가 돈을 받고, 전달하는 완납증명서에는 A은행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믿을 만했다.

최씨는 은행에서 시키는 대로 항상 택시를 타고, 돈을 받으러 다녔다. 돈을 받으면 은행 관계자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개인계좌로 입금했다. 한달 동안 22번, 3억3000만원의 돈을 받아 전달했다. 그 과정에서 최씨는 300만원 이상의 돈을 벌었다.

하지만 달콤했던 ‘고액 알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올해 초 최씨는 경찰에게 출석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A은행은 채권추심단은 사실 보이스피싱조직이었고, 최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수금책과 전달책 역할을 한 것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활동한 셈이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취업시장...'고액 알바' 제안에 넘어가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보이스피싱이 늘면서 수금책으로 이용당하는 사례도 많다. 특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자리가 줄자 ‘고액알바’의 유혹에 더 쉽게 넘어간다. 경찰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실직 등을 겪으면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다가 수금책이 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6290억원으로 전년보다 11%나 늘었다. 범죄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에 연루되는 사람들도 늘어 주의가 필요하다.

평소 배달부로 생계를 유지해 온 20대 이용석씨(가명)도 전달책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11월 집을 이사한 후 대출 이자 압박이 심했는데, 추심 1건당 15만원 준다는 B업체에 연락이 왔다. 이씨는 10여번에 걸쳐 1억2000여만원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전달했다.

수금책으로 경찰에 붙잡히는 피의자들은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항변한다. 이씨의 지인도 “B업체가 홈페이지를 운영한 점, 보통의 아르바이트 채용 과정처럼 등본 등 서류를 제출한 점 때문에 이씨가 범죄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전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생각은 다르다. 보이스피싱 사건을 수사한 일선 경찰관은 "처음엔 모를 수 있으나 수차례 수금과 전달을 반복하다보면 불법적인 일임을 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차례 반복할 경우 고의성 피해갈 수 없어...불법 정황 알았을 때 바로 중단해야

경찰청 /사진=뉴스1

법원의 판단도 냉정하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을 전달한 C씨에 징역 1년 6개월 선고를 확정했다. 2심에서 법원은 △채용·근무 방식의 이례성 △근무조건의 불명확한 약정 △고액의 대가 등으로 봤을 때 C씨가 보이스피싱임을 알고 있었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방조행위가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 역할인 점과 범행으로 취득한 대가의 규모도 적지 않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회복도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해 판결했다”고 했다.

김세라 변호사는 “범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을 외면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해 고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며 “피해자를 직접 속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돈을 전한 행위로 범죄가 완성되기 때문에 수금책도 공범으로 다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가 의심되면 즉시 행동을 멈추고 피해자와 합의해야 앞으로 선고가 유리하다. 김범한 형사전문변호사는 ”택시를 갈아타며 현금으로 내라고 하는 등 범죄가 의심스러운 정황을 외면했다면 사기 공조죄로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다“면서 “피해가 회복되면 집행유예로 형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즉시 수금 행위를 중단하고 피해금액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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