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취업 축하받지만…곧 해고될 시한부 같습니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8. 오후 5:02 최종수정 2021.10.28. 오후 6:10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끝

에필로그 - 어느 공기업 사원의 말하지 못한 비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이 스마트폰으로 업무 지시를 기다리는 모습을 대역배우를 통해 재연했다. 최재원 사진작가

20대 이정우(가명) 씨는 지난 여름 누구나 알 만한 공기업에 합격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오히려 우울감에 젖어 있다. “부럽다. 그런 안정적인 공기업 들어가서.” 주변의 축하에 애써 웃어 보이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곧 잘리게 될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전과자가 되게 생겼으니까요.”

그에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친구, 직장 동료는 물론 가족들마저 모르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어요. 커서 공직생활을 할 거라고 기대했죠. 하지만 한순간 범죄자가 됐어요.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가능하더라고요.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씨는 직업군인으로 입대해 4년을 복무했다. 사회에 나가 공적 영역에서 근무하고 싶단 포부를 품었다. 지난해 말 군복을 벗고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틈틈이 공기업에도 원서를 넣었다. 구직은 만만치 않았다. 합격도 기약은 없었다. 모아뒀던 생활비가 빠르게 줄어들자 아르바이트(알바)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올해 봄 알바천국 채용공고를 훑다가 수납직원을 구한다는 ‘태은대부’라는 곳의 공고를 봤다. 채용 담당자는 “고객들에게 대출을 알선해주는 회사다. 당신의 업무는 고객들을 만나 수수료를 받아오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대부업체라 경계심은 들었지만 검색해보니 서울 양천구에 그런 상호의 회사가 존재했다. 알바천국에 적힌 회사 주소와 같았다.

일을 하기로 했다. 근무 첫날, 영등포역으로 나와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거기서 6시간을 기다린 끝에 경기도의 한 도시로 이동하란 업무가 떨어졌다. 거기서 고객 한 명을 만나 대금(800만원)을 받았고 회사에서 알려준 대로 은행 ATM으로 무통장 입금했다. 그리고 일을 더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당으로 20만원을 받았다.

“첫날 퇴근하려는데 추가 건을 진행할 수 있겠냐더라고요.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거절했습니다. 내적갈등을 했어요. 큰돈이 오간다는 점이 부담스러웠고 실제 일하는 시간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서 차라리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당일치기 알바는 이후 기억에서 잊혔다. 하지만 한 달 뒤 족쇄가 돼 돌아왔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가담했다”며 출석하라고 했다.

“조사받으면서 수사관님이 죄명을 ‘사기죄’로 적는 걸 보는데 허망했어요. 어린 나이지만 직업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는데 사기라니….”

권해원 디자이너

이씨는 헤럴드경제가 ‘인간 대포통장’ 기획 보도를 준비하며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이다.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다. 심부름꾼으로 쓰이고, 꼬리 자르기를 당했다. 보이스피싱임을 알지 못했다고 항변해도 재판에 넘겨지면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징역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연재기사에 나온 분들 보면 그저 안쓰러워요. 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 상황이 절망적이에요. 저는 하루 알바로 끝냈지만 길게 할 수도 있었어요. 어쩌면 그분들처럼 될 수도 있었겠죠.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한 명의 피해자만 남긴 이씨는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취재팀이 만난 피의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최대한 빨리 체포되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다. 피해자와 피해금이 많다면 형량은 더 높아진다. 형사처벌 전력이 전혀 없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은 ‘강력처벌’을 내세운다.

피해자가 한 명이고 피해액이 비교적 적다. 이씨는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 피해자와 합의할 계획이다. 재판부의 선처를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엔 ‘언제라도 전과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웅크리고 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취업, 연애 걱정을 늘어놓으며 속상해하지만 공감이 안 된다. 검찰은 이씨의 사건을 ‘보완 수사’를 요구하며 경찰로 다시 내려보낸 상태다.

“공기업에 합격했는데 한동안 아무한테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했어요. 동료들의 자신감과 씩씩함을 보면 부럽습니다. 집행유예라도 받게 되는 날엔 해고될 시한부처럼 느껴져요. ‘알고 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일당 10~20만원 벌자고 꿈과 희망을 버리는 선택을 누가 하겠어요.”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박로명 dodo@heraldcorp.com, 박준규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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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구인’ 현수막, 길거리에 대놓고 걸렸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7. 오후 5:03 최종수정 2021.10.27. 오후 5:47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③

거미줄처럼 퍼진 ‘미끼 구인광고’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노상에 걸려 있던 현수막.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문구가 적혔지만 실제론 보이스피싱 단순 가담자를 물색하는 허위 정보다. [독자 강철수(가명) 씨 제공]

지난 7일 천안 서북구 성정동을 지나던 강철수(가명·27) 씨는 눈을 의심했다. ‘서류 대행·관공서 민원대행·채권대행 아르바이트 초보자 환영’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대로변에 버젓이 걸려 있었던 것. 직감적으로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모집하는 위장 광고라고 느꼈다. 그는 알바를 구하다가 현금수금책으로 엮여 재판을 앞둔 상황이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강씨는 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연락했다. ‘이준호 팀장’이란 사람은 “부실 채권을 매입하는 대행 전문업체”라며 “금융감독원에 소송이 걸려 제1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려운 고객들이 방문을 요청하면 찾아가는 업무”라며 복잡한 단어를 섞어가며 소개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를 만나 현금을 수거할 심부름꾼을 모집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그는 곧장 천안 내 경찰서 3곳에 전화를 걸어 제보했으나 “우리 관할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구청에 민원을 접수하자 하루 만에 현수막은 철거됐다. 강씨는 “며칠 동안 합법적인 구인 공고라고 여겨 연락한 사람들이 꼼짝없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을 것을 생각하니 착잡하다”고 했다.

대면 편취 보이스피싱이 지금 이 순간도 기승을 부리지만 ‘미끼’ 알바 모집공고가 여전히 일상에서 활개 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문자·현수막·생활정보지까지 구직자를 유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이미 침투했다. ‘채권 대행’ ‘법률사무소 외근직’ ‘부동산경매 업무’ 등 그럴듯한 회사를 앞세워 취업이 절박한 구직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독자 강철수 씨가 불법 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하니 자신을 채용(인사) 담당자라고 소개한 이가 업무를 설명하는 내용. 대출, 상환 등 금융에 관해 잘 모르는 구직자일수록 속기 쉽다.

김장범 변호사는 “현금수거책 대다수는 ‘고액 알바’를 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자신이 제공한 노동의 대가로 보수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검·경에선) 비교적 수당이 높다는 이유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것’이라고 간주한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모집 수법은 갈수록 감시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구직자들이 범행에 엮이는 통로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공개적으로 올라온 알바 공고였다.

그러나 구인·구직 사업자들이 ‘채권 추심’ ‘수금 알바’ 등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를 검수해 차단하기 시작하자 수법을 바꿨다. 구직자가 지원서를 제출하길 기다리는 대신, 구직자가 사전에 등록해둔 ‘공개 이력서’를 보고 문자나 메신저로 연락해 포섭한다. 이렇게 하면 구인·구직 사이트의 눈을 피할 수 있다.

실제로 네이버 ‘보이스피싱 피의자 정보공유 카페’에는 구인·구직 사이트 공개 이력서를 통해 일을 시작해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다는 글들이 매일 새로 게재된다. ‘백화점 사무보조’ ‘여행업체 외근직’ ‘법무법인 사무직’ ‘대환대출 업무’ ‘부동산 외근직’ 등 미끼로 제시한 업무도 가지각색이다. 회사의 상호와 주소는 물론 사업자등록번호까지 허위로 기재하거나 도용하는 방법으로 치밀하게 접근하기 때문에 구직자로선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네이버 밴드 등 SNS도 단속이 느슨한 까닭에 구직자를 끌어들이는 창구가 된다.

[123RF]

사업자들도 이런 논란을 모르는 건 아니다. ‘보이스피싱 현금전달책 알바’에 주의하라는 공지를 올리고 인공지능(AI)기술을 바탕으로 보이스피싱 광고 키워드를 검수하고 있다. 그런데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수법을 파악해 걸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알바천국 관계자는 “기업 회원으로 등록한 회사만 구직자의 오픈 이력서를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사업자등록번호, 실제 영업 여부, 채용담당자 연락처 등 요구해 인증한다”며 “그러나 민간기업으로서 (보피 조직이) 사업자등록번호를 도용해 악용하는 것까지 수사할 권한은 없어 더 확실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미끼 공고가 활개 치는 다른 대형 사업자인 알바몬은 취재팀이 입장을 물었으나 반응하지 않았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인터뷰]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3부]

① 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8.8%가 ‘빨간줄’

② [인터뷰] “정부가 보이스피싱 전과자를 양성하는 겁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박준규 nyang@heraldcorp.com, 박로명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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