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이스피싱 전과자를 양성하는 겁니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6. 오후 6:02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 ②

이병찬 파트너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인터뷰

이병찬 변호사. 그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붙잡힌 일반인들을 강하게 처벌하는 형사정책적 기조를 두고 “국가가 범죄자를 양산한다”고 말했다. 최재원 사진작가

보이스피싱 단순 조력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여 다수의 국내 송금·인출책 범죄에 대한 경각심 강화

2020년 6월 관계부처 합동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방안’ 中

조직의 총책에 대하여는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고 단순 가담자에 대하여도 중형 구형

2021년 7월 대검찰청 보도자료 中



정부와 수사기관의 보이스피싱 기조를 한 줄 요약하면 이렇다. ‘가담 정도를 막론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서 경각심을 높인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판을 짜고, 점조직을 운영하며 피해자를 낚는 총책이야 잡기만 한다면 강력한 처벌이 당연하다.

다만 감쪽 같은 가짜 알바공고에 속아 범죄에 이용된 이들도 있다. 헤럴드경제가 3부에 걸쳐 소개한 ‘인간 대포통장’(현금수거책)들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법조인, 법학자 가운데엔 “일회용 도구로 쓰이는 수거책, 전달책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건 주범 억제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병찬 변호사는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는 내는 이다. “국가가 범죄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이 변호사를 만나 그 근거를 들어봤다.

“시쳇말로 ‘어그로’를 끄려는 게 아닙니다. 의뢰인을 만나고 재판에 들어가 보면 진실로 느껴지는 감정이에요. 수거책들이 잡혀서 처벌받아도 보이스피싱 일당은 관심도 없어요. 하지만 피해자가 생겼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죠. 돈도 받아낼 사람이 필요하고요. 그러니 다들 여기만 목을 조르는 겁니다.”

취재팀이 2020년 하반기~2021년 상반기 선고된 1심 판결문 252건을 분석했더니 70.0%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77%는 1년 이상~3년 미만의 실형이었다.

[123rf]

이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막겠다고 일반인을 잡아 실형 주는 게 보이지 않는 사회적 문제”라며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데 무고한 일반인이 너무 많이 엮인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면 아무리 10~20만원 준다고 할 일반인이 얼마나 되겠는가”고 말했다.

검찰은 현금수거책을 대개 사기,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한다. 이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수거책에게 ‘미필적 고의’ 법리를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확정적 고의가 ‘범죄임을 명확히 알면서 이를 용인’한 것이라면 미필적 고의는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을 내심 알면서도 용인’했다는 법리다.

우리 형법은 고의가 없으면 과실로 본다. 과실이 인정되면 처벌한다. 다만 국내 법에선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과실치상·과실치사)만 과실로 처벌할 수 있다. 남을 돈을 가로챈 일반 사기범죄에선 과실로 처벌할 근거가 없다. 때문에 ‘고의는 없었음’을 증명하면 무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사기범죄는 이야기가 다르다. 검찰은 “피고가 미필적으로 보이스피싱을 인지했다”는 논리로 기소한다. 법원은 ▷취업 과정 ▷업무 방식 ▷보수 수준 등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검찰의 주장을 인정한다.

“(미필적으로나마) 고의가 있었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겁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보이스피싱에 관여하던 사람들이나 조직적으로 대포통장을 모집했던 이들은 그야말로 확정적 고의가 있어서 처벌받았다면 지금은 그런 사람은 1%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대부분 미필적 고의죠.”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병찬 변호사. 최재원 사진작가

이 변호사는 2018년 처음 보이스피싱 사건을 맡았다. 의뢰인은 인천에선 쌀국수가게를 하던 자영업자였다. 영업이 어려우니 단기 알바를 찾다가 코인 구매대행을 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방조로 기소됐다. 수사에 배석하면서 보이스피싱이 수사기관과 사법부에서 다뤄지는 생리를 알았다.

“‘알바를 준 이들이 보이스피싱 일당임을 (의뢰인이) 알았는지 몰랐는지가 관건’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수사관들은 자꾸 ‘뭔가 이상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어요. 나중에 판결을 보니 그 질문에 ‘이상하긴 했었다’고 말하면 처벌이 되더라고요.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면 알아봤어야 했다는 거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이 조사를 안 하거나 제대로 못 알아봅니다. 그러면 미필적 고의가 적용되는 겁니다.”

이 변호사가 모든 현금수거책의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확실히 알아보지 않고 부주의하게 일자리를 받아들인 책임은 있다.

“검색이라도 해보면 될 텐데 그걸 안 한 실수는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바로 징역 몇 년을 사는 건 과해요. (범죄) 예방적 효과는 집행유예만 줘도 일반인들에겐 충분합니다. 범죄에 대한 결과적 책임이든, 예방적 목적이든 실형 살게 하는 건 책임주의 원칙에 어긋합니다. 더불어 ‘이런 알바도 보이스피싱이다’라는 메시지를 널리 알리는 것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3부]

① 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8.8%가 ‘빨간줄’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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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9.2%가 ‘빨간줄’ [인간 대포통장]

신문6면 TOP 기사입력 2021.10.26. 오전 10:12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 ①

법원 판결문 252건 들여다 보니

최재원 사진작가

‘대면편취’ 유형의 보이스피싱이 폭발적으로 늘자 재판정에 서는 이들도 많아졌다. 검찰에선 “요새 구속수사받는 피의자 절반 이상이 현금 수거책”이란 말이 나온다. 이들 대다수는 수사기관, 법정에서 보이스피싱이라곤 전혀 인지 못했다고 항변하지만 처벌을 피하지 못한다.

경찰과 검찰은 ‘단순 가담자도 강하게 처벌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를 두고 최종 가담자를 무겁게 처벌한다고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진 않는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헤럴드경제는 대면편취에 연루된 현금 수거책 피의자들이 법원에서 사법처분되는 양상을 확인했다. 이들 가운데엔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범죄에 조력하고 꼬리 자르기를 당한 시민들이 끼어 있다. 누구나 부지불식중에 엮일 수 있는 일이기에 처벌 경향을 짚어보는 건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전국 법원에서 선고된 1심 판결문 총 252건을 분석했다.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활용해 ‘현금수거책’과 ‘보이스피싱’이란 키워드가 포함된 판결문 350여개를 1차로 수집했다. 이후 복수의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 내용이 대면편취 유형에 해당하는 252개를 추렸다.

판결문에는 모두 257명의 피고인이 등장했다. 피고인 한 명이 평균 4.78명의 피해자를 만났고, 1억203만원의 피해금을 수거했다.

권해원 디자이너

80%의 죄명이 ‘사기’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연루된다면 대개 사기 혹은 사기방조 혐의가 적용된다. 분석한 252개 판결문 가운데 200건(79.4%)이 사기였다. 사기로 기소했다는 것은 피고를 보이스피싱 범행의 ‘공범’으로 판단한단 얘기다. 공범은 넓은 의미에서 공동정범, 교사범, 간접정범 등으로 나뉘는데 보이스피싱 수거책들은 대개 공동정범으로 간주됐다. 죄목이 사기방조인 판결문은 48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권 지검의 한 검사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 사건 전체에서의 맥락을 본다”며 “전체적인 보이스피싱의 규모를 인식하고 그 행위의 일환으로 가담한다는 증거가 있다면 사기 공범으로 다룬다”고 말했다.

권해원 디자이너

사기 혐의를 적용한 검찰의 기소장에는 ‘피고가 범행을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공모했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경찰과 검찰은 보이스피싱을 ‘조직적 사기’로 다룬다. 단순사기보다 구형 수준이 높다. 판사가 참고하는 대법원 양형기준에도 조직적 사기의 기본형량은 일반사기보다 1년~1년6개월 더 길다.

이원일 변호사는 “사기냐 사기방조냐 분류 기준은 있다. 피의자가 충분히 (범죄를) 인식하고 가담했다고 하면 사기, 기능적인 행위가 없었다고 하면 사기방조인데 그 차이가 상당히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사기로 기소한 사건을 이따금 재판부가 사기방조로 낮추기도 한다. 범죄를 인식하고 가담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단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런 사건은 전체의 1.6%에 불과했다.

무죄 0.8%

권해원 디자이너

252개 판결문에 등장한 피고 257명 가운데 무죄는 단 2명, 벌금형은 1명이었다. 징역형이 180건(70.0%)으로 가장 많고 집행유예는 72건(28.8%)이었다. 붙잡혀서 재판에 넘겨진다면 어떻게든 범죄기록(전과)이 남는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 가운데 ▷‘1년 이상 2년 미만’ 72건(40%) ▷‘2년 이상 3년미만’ 67건(37.22%)으로 1~3년 사이가 전체의 80%에 달한다. ‘1년 미만’은 12.22%, ‘3년 이상’ 징역은 10.55%였다.

피고 가운데 141명은 형사처벌 이력이 없는 초범이었다. 이 가운데 89명은 징역형을 받았고 나머지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초범인 점은 판사가 양형 과정에서 감안하는 주요 감경요소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의 경우 피해자 수가 많고 피해금액이 크다면 초범 메리트를 기대하긴 힘들다. 피해금액이 비슷한 사건이라면 피고가 피해자들과 합의를 봤는지에 따라 징역-집유가 갈리는 양상을 보였다.

[123rf]

박현근 변호사는 “초범인데다가 피해금액이 적으면 재판부는 선처해준다. (합의를 통해) 피해자의 피해금액이 회복된다면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거의 실형”이라고 말했다.

징역 살 가능성이 높다는 건 현금 수거책으로 엮인 이들이 좌절하는 대목이다. 범죄를 기획하고 허위로 일자리를 제공한 범죄의 몸통은 몸을 사리고 있단 점도 억울해 한다.

김장범 변호사는 “대개 부주의했던 건 있다. 잘못한 건 맞지만 그게 사기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준인가는 의문”이라며 “하지만 보이스피싱이 심각하고 가만 놔두면 문제가 커지기에 밑에 있는 사람이라도 처벌하고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게 현재 사법시스템 실무의 모습”이라고 했다.

대부분 미필적 고의

판결문에서 등장하는 '미필적 고의'

처벌하려면 법리적 근거가 필요하다. 취재팀이 살핀 판결문에선 ‘미필적 고의’ 법리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본인 행위로 인해 범죄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인식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받아들였다’는 논리다.

반대로 ‘확정적 고의’는 보이스피싱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가담한 것이다. 분석한 판결문 가운데 확정적 고의가 적시된 건 1개 뿐이었다. 확정적 고의가 명시되진 않았으나, 과거 다른 보이스피싱 범행에 연루돼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피고는 11명(재범)이었다. 이병찬 변호사는 “동종전과가 있다면 확정적 고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죄처분을 받은 대부분의 피고에겐 미필적 고의가 적용된 셈이다. 법조인들은 재판부가 보이스피싱 사건에선 유독 미필적 고의를 광범위하게 해석한다고 지적했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미필적 고의는 ‘이게 혹시 나쁜일은 아닌가’라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특정성이 있어야 한다”며 “나쁜일은 불법 채권추심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다수의 법원에서 ‘보이스피싱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생각했다’고 간주해 판결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 이형주 변호사(법무법인 율성)는 비슷한 논리의 무난한 판결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유죄 판결문에서 과거 판례를 언급하는데 그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 위한 편리한 도구”라면서 “(피고가) 보이스피싱임을 미리 인식했다라는 서술은 논리적을 비약이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김희량·유혜정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박준규 nyang@heraldcorp.com, 박로명 dodo@heraldcorp.com, 유혜정 yoohj@heraldcorp.com, 김희량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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