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고무대야에 과자봉지까지..1500년전 가야 무덤에서 보이는 도굴의 흔적

창녕|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2019.11.29. 06:02 수정 2019.11.29. 11:37

               

[경향신문]

창녕 교동 송현동 고분군 중 39호분애서 눈에 띈 빨간 고무대야와 고무버킷…. 발굴단은 이뿐이 아니라 빵 봉지까지 수습했다고 전했다. 1960~70년대 도굴의 흔적일 가능성이 짙다. 창녕|이기환 선임기자

‘빨간 고무대야와 고무버킷, 그리고 삼립빵 봉지까지….’ 28일 경남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내에서 도굴의 화를 입지않은 63호분 덮개돌 개방행사를 현장취재하던 기자의 눈을 찌푸리게 한 장면이 있었다.

제비뽑기로 TV 기자들을 위한 공개가 시작돼 신문기자들은 차례를 기다리던 차에 63호분 위에 조성된 39호분 발굴성과를 양숙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으로부터 듣고 있었다. 5세기 후반 무덤으로 보이는 39호분은 교동·송현동 고분 250여기 중 세번째로 규모가 큰 무덤이다, 450~500년 사이 가야연맹의 소국 중 하나인 비화가야를 다스린 39호분의 주인공은 약 50년 가량 먼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뻘 조상의 무덤 위에 자신의 무덤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덕분에 밑에 있던 63호분은 교동·송현동 고분군 중 유일하게 도굴 피해를 입지 않았다. 무덤 밑에 또 다른 무덤이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한창 설명을 들으면서 39호분 사진을 찍고 있던 기자의 눈에 명색이 언론공개행사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장면이 잡혔다. 길이 6.9m 너비 1.6m, 깊이 1.7m 규모인 무덤방에 흙이 덮여 있고, 토기류가 일부 보였는데, 아 글쎄 안쪽에 빨간 고무버킷(속칭 바케쓰)이 버젓이 드러나 있는게 아닌가. 버킷에는 줄이 달려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무덤 입구 쪽에는 역시 흙이 묻은 빨간 고무대야가 보였다. 기자는 내심 ‘조사원들이 발굴하다가 놓고 올라온 물품이겠거니’ 하고 ‘그래도 뒷정리는 제대로 하고 공개해야지 저게 뭐냐’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양숙자 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의 설명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저 빨간 고무대야와 고무버킷은 도굴범이 놓고 간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해서 물어보니 “대야와 버킷 뿐 아니라 흙묻은 빵 봉지까지 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굴범이 놓고 갔다? 그렇다면 도굴범은 저 커다란 빨간 고무대야와 버킷으로 흙을 파고 유물을 실어날랐으며, 심지어 무덤방에서 유유히 빵까지 먹었다는 것이 아닌가.

39호분에 뚫린 도굴구덩이. 8개의 덮개돌로 밀봉했지만 옆에서 뚫은 도굴구덩이는 피할 수 없었다.|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박종익 연구소장은 “발견된 대야와 버킷, 빵 봉지 등으로 미루어 1960~70년대 도굴범의 소행이 아닐까 추정된다”면서 “수습한 흙묻은 빵 봉지를 파악해보면 어느 회사의 어느 때 제품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숙자 실장은 “잘못 세척했다가는 봉지의 포장 디자인과 글씨가 지워질 수 있어 조심히 다룰 것”이라고 덧붙였다.

39호분 현장에서 발견된 삼립빵 봉지. 과거 도굴의 흔적으로 보인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하지만 무덤방의 양상으로 보아 도굴이 몇차례 자행됐는지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39호분에서는 두 개의 도굴 구덩이가 확인됐다. 양숙자 실장은 “2개의 도굴 구덩이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크다”면서 “그러나 두차례 도굴로 생긴 구덩이인지, 혹은 도굴범이 한차례 구멍을 뚫었다가 실패한 뒤 다른 새로운 구덩이를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한 개의 도굴 구덩이는 무덤방 옆을 두른 1.5m, 두께 10㎝의 판석에 막힌 흔적이 보였다. 반면 다른 도굴구덩이는 판석과 판석 사이를 뚫고 무덤방과 통한 모습이었다.

사실 창녕을 비롯한 고령·함안·김해·성주·선산 등 영남지방은 일제강점기부터 무단발굴과 도굴의 무대였다.

일제관학자들은 ‘가야지역에 고대 일본의 식민지라는 임나일본부가 존재했다’고 믿고 1900년대 초부터 그 증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됐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은 369~562년 사이 야마토(大和) 정권이 백제, 가야, 신라를 정복하고 한반도 남부지역에 임나일본부라는 관청을 세워 200여년간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일제는 그렇게 대대적으로 발굴해간 가야유물들을 일본으로 반출해갔다. ‘임나일본부 증거를 잡기 위해서’ 였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915년 7월24일자 보도를 보자.

“남조선은 내궁가(內宮家·209년 일본이 신라정벌 후 설치했다는 관청)를 둔 곳이고, 조정의 직할지가 되어 일본의 영토가 된 일이 있다. 한국병합은 임나일본부의 부활이니~동국동문화(同國同文化)라는 사상이 있으면….”

하지만 일제 관학자들은 ‘임나일본부’의 증거를 끝내 찾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도쿄대(東京大)의 명을 받고 가야지역 발굴에 나선 구로이타 가쯔미(黑板勝美)는 이렇게 토로했다.

“막상 임나일본부라고 해도 연구해보면 조선풍이다. 조사결과 함안·김해는 모두 임나일본부 소재지라고 추정할만 하나, 그 자취는 이미 사라져서 찾을 방법이 없다는 게 유감이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야쓰이 세이이치(谷井濟一)가 발굴을 맡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야쓰이는 창녕·교동 고분군 중에서도 규모가 큰 7호분과 89호분 발굴에서 출토된 유물을 대거 일본으로 빼돌렸다. 7호분에서만 700여점의 유물을 가져갔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역시 임나일본부와의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의 마구잡이식 발굴과 유물반출의 결과는 처참했다. 임나일본부와의 관계를 입증하지 못한 일제는 ‘용도폐기’된 가야고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결국 창녕의 교동·송현동 고분 역시 도굴꾼의 소굴이 됐다. 물론 일제에게만 화살을 돌릴 수 없다. 해방 이후에도 이와 같은 문화유산의 방치가 이어졌고, 결국 기자가 1500년전 비화가야 지배자의 무덤에서 빨간 고무대야와 고무버킷, 빵 봉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창녕|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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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슬-펭수, 방송사 경계를 허물다[SS예능]

홍승한 입력 2019.11.29. 06:23
               

 

[스포츠서울 홍승한기자]트로트 신인가수 유산슬과 크리에이터 펭수가 종횡무진 맹활약을 하고 있다.

유산슬은 MBC 예능 ‘놀면 뭐하니?’통해 탄생한 유재석의 프로젝트형 캐릭터다. 유재석은 김태호 PD와 함께 트로트 가수에 도전, 지난 16일에는 더블 타이틀 ‘합정역 5번 출구’, ‘사랑의 재개발’을 정식 발표했고 14일 tbs ‘배칠수·박희진의 9595쇼’, WBS 원음방송 ‘조은형의 가요세상’ 등 라디오에 이어 지난 18일 KBS ‘아침마당’까지 진출했다.

EBS 인기 캐릭터 펭수는 현재 신드롬급 인기를 구사하고 있다. ‘자이언트 펭 TV’의 주인공인 펭수는 ‘2030의 뽀로로’로 불리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V2’와 SBS ‘정글의 법칙 in 순다열도’ KBS ‘연예가 중계’ 그리고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했고 다양한 라디오는 물론 유명 유튜브 채널과 협업도 이뤄지고 있다. 또 현재에도 다양한 러브콜이 쏟아지며 섭외 경쟁이 뜨겁다.
이런 크로스오버와 채널의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이 가능한 것은 과거에 비해 방송사가 보다 유연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정된 지상파 채널이 큰 영향력을 가졌다면 이제는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의 성장으로 그 문턱이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채널에 대한 충성도 역시 많이 약해졌고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 사용자가 증가면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 자체의 중요성이 커졌다.

자연스럽게 각 방송사 역시 타 채널의 인기 캐릭터를 사용을 꺼려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콘텐츠를 가치를 높이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 유산슬과 펭수 역시 이를 통해 확장성을 가지며 양쪽 모두 시너지를 내는 상황이다.

물론 여전히 타 방송사 인기 캐릭터를 섭외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지닌 제작진도 존재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프로그램에서는 유사한 프로그램 출연을 암묵적으로 막는 경우도 존재하다. 그리고 유산슬과 펭수는 다양한 협업은 국민 MC 유재석이기에 가능했고 펭수가 EBS 출신인데다 유튜브 스타로 인식됐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이 수 없이 쏟아지는 현실 속다양한 플랫폼 과 뉴미디어를 통해 콘텐츠 소비하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의 영향력이 점차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인기와 팬덤을 가진 캐릭터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hongsfilm@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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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북미회담 자제 요청' 논란..與 "사실이라면 참담"조은지 입력 2019.11.27. 18:45

"비건 만나 총선 前 북미 정상회담 않게끔 요청"
"7월 존 볼턴 방한 때도 비슷한 요청"..추가 제보
與 "사실인지 의심스러워..답답함 넘어 참담해"

[앵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주 방위비 분담금 협상차 미국에 갔을 때,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등에게 내년 4월 총선 전에 북미 정상회담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미국 측에서도 긍정적으로 화답했다며 말했지만, 제1야당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조은지 기자!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 어떻게 확인된 겁니까?

[기자]

오늘 오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했던 발언인데, YTN이 복수의 참석 의원에게 확인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지난 20일 방미 기간에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만나 내년 4월 전에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않게끔 요청했다고 의원들에게 보고했습니다.

비건 대표가 미국도 내년 4월 한국 총선을 알고 있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도 했다는데요.

다른 한국당 의원은 나 원내대표가 지난 7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했을 때도 비슷한 요청을 했다고 YTN에 밝혔습니다.

한국당 의원들은 나 원내대표가 황교안 대표가 단식에 돌입하던 날 미국으로 떠나면서 당내 비판이 제기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의원총회에서 방미 성과를 과시한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선거를 위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정상회담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한국당 안팎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YTN의 보도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사실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믿기 힘든 말이라면서, 사실이라면 답답함을 넘어 참담하다고 했습니다.

당의 입장에서야 총선이 중요하겠지만, 국가와 국민적 차원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협상이 훨씬 중요하다면서, 총선과 북미 정상회담을 연결하는 것은 일의 경중을 이해하지 못하는 몰상식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바른미래당 강신업 대변인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한 자리에서 방문 목적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면서, 더구나 미국이 지난해 지방선거 전날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선거를 염두에 두고 열렸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나경원 원내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북미 정상회담 자체를 열지 말라고 한 게 아니라, 지난해 지방선거 때도 선거 전날에 회담이 열렸던 것처럼 총선 직전에 열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지금까지 국회에서 YTN 조은지[zone4@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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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납자와의 추격전'..진화하는 기상천외한 체납 징수 현장

입력 2019.11.27. 08:01 수정 2019.11.27. 08:18

                          
      
골프장서 '굿샷' 외치던 체납자들 차 번호판 떼이고 세금 내
고가 오디오 세트·LP판·악기..수천만원 이상 명품도 압류
고액 체납자 집에서 나온 귀금속 (서울=연합뉴스) 경기도 남양주시가 지방세 고액 체납자의 집을 수색해 명품시계와 황금열쇠, 골드바, 오만원권 100장 등을 압류했다고 지난 11월 11일 밝혔다. [남양주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국종합=연합뉴스) 밀린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체납자의 재산 은닉 수법이 날이 갈수록 기상천외해지고 있지만 이를 찾아내는 체납 징수원들의 역량도 못지않게 진화하고 있다.

재산을 빼돌리려는 체납자와 이를 찾아내는 체납 징수원들의 숨바꼭질은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체납자 자택에서, 심지어는 골프장에서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18∼20일 인천 11개 골프장에서 특별단속을 실시한 결과, 세금 체납 차량 38대(체납액 2천700만원)를 적발했다.

체납 차량 11대의 번호판은 현장에서 떼 영치하고, 나머지 27대의 차주들에게는 지방세 체납 사실을 휴대전화 문자로 전송해 조속한 납부를 당부했다.

단속 중에는 "골프장까지 와서 단속을 하느냐"고 항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한 골퍼는 번호판이 영치되자 골프장에서 즉시 체납액 197만원을 모바일 이체로 납부하기도 했다.

체납ㆍ대포차 합동 단속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지난 9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초IC 부근에서서울지방경찰청 과태료징수팀과 서울시 38세금조사과 직원들이 체납ㆍ대포차 합동 단속을 벌이고 있다. 체납자와의 추격전

명함 1장에서 단서를 얻어 끈질긴 수색 끝에 수천만원의 세금을 받아낸 사례도 있다.

경기도 광역체납팀은 올해 4월 체납액 징수를 위해 한 전원주택을 찾았다가 골목길에 세워진 외제차를 발견했다.

승용차를 살피던 중 운전대 앞에 놓인 명함 1장이 징수팀원들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체납자 아내의 명함이었다.

체납자 부부는 연락을 받고 왔지만 차 열쇠가 없다고 버텼다. 징수팀이 "열쇠공을 부르면 비용을 차주가 부담해야 한다"고 압박하자 부부는 그제야 마지 못해 차 문을 열어줬다.

차 안을 살펴봤지만 별다른 물품을 발견하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트렁크를 살펴보던 중 스페어타이어 보관 공간에서 보자기를 발견했다.

보자기를 열어보자 뜻밖에 금반지·금시계·금팔찌 등 귀금속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징수팀은 결국 이들 보석을 공매하고 부족한 나머지는 분납 약속을 받아내며, 9년간 밀려 있던 체납액 2천800만원을 정리했다.

기타 하나로 6천만원의 세금을 받아낸 사례도 있다.

경기도 징수팀은 작년 체납자 명의의 골프장 내 타운하우스에서 가택 수색을 했지만, 거실에 가득 쌓인 내장재 쓰레기 더미를 보고 실망했다. 주택 외관을 보고 잔뜩 기대했지만, 내부에는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없었다.

그러나 실망하며 방을 둘러보던 중 기타 가방이 눈에 띄었다. 바로 옆 1만7천 달러짜리 보증서를 확인하고는 명품 악기임을 감지하고 바로 압류를 단행했다.

결국 체납자는 명품 기타가 음악을 하는 아들 것이라고 실토하고 "세금을 낼 테니 기타를 잘 보관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광역징수팀은 기타를 시청 대여금고에 보관하다가 세금 완납 사실을 확인하고 주인에게 돌려줬다.

이밖에 가택 수색 중 학원에 가야 한다며 집을 나서던 체납자의 고교생 바지 주머니에서 현금 3천500만원을 발견하는 등 밀린 세금을 받을 기회는 뜻밖의 상황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체납 차량 번호판 떼는 공무원 (대전=연합뉴스) 지난 4월 9일 대전 서구 서부소방서 인근에서 서구청 공무원들이 체납 차량 번호판을 떼고 있다. 서구는 체납액 일제 정리를 위해 매주 한 차례 대대적인 번호판 영치 작업에 나서고 있다[대전 서구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귀금속이 없어도 명품 오디오와 고전 LP판을 압류해 체납 세금을 받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도 남양주시는 최근 2억5천만원의 지방세를 체납한 남성의 집을 수색했지만 귀금속 등 돈이 될 물건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집에 있던 오디오 세트가 2억원, LP판 2천470장이 2천610만원(이상 구매가 기준) 상당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들 물품을 압류해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공매를 의뢰했다.

공매 결과 오디오 세트는 3천651만원에, LP판은 795만원에 각각 낙찰돼 체납 세금 일부를 징수할 수 있었다.

집이 아니어도 재산을 빼돌리는 공간은 다수 존재한다.

부산시 징수특별기동팀은 최근 지방소득세 2억원을 체납한 A씨가 시중 은행에 대여금고를 보유한 사실을 확인, 대여금고를 강제로 열어 현금 5천만원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해 압류했다.

기동팀은 A씨 명의 재산이 없어 세금 징수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A씨가 대여금고를 사용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끝에 체납액을 받아냈다.

체납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세금 납부를 미루며 완강하게 버티다가도 체납징수팀이 가택수색을 시행하면 1시간 안에 고액의 체납액을 '간단하게' 납부하기도 한다.

춘천의 한 체납자는 1천400만원의 지방세 납부를 미루다가 강원도 징수팀이 집에 들이닥치자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전액 납부했다.

원주의 한 체납자도 1천200만원의 지방세를 내지 않다가 가택 수색팀이 집에 찾아오자 30분 안에 체납액을 완납했다.

쫓고 쫓기는 체납징수 현장이 전국 곳곳에서 쉴 틈 없이 전개되고 있지만, 지방세 체납액은 여전히 수조원대에 이른다.

행정안전부의 '2018 지방자치단체 재정분석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세체납액은 2015년 4조2천억원, 2016년 4조1천억원, 2017년 4조8천억원, 2018년 4조5천억원(불납결손액 포함) 등 수년간 4조원을 초과하고 있다.

행안부와 각 지자체가 지난 20일에는 지방세 고액·상습 체납자 9천67명(체납액 4천764억원)의 명단을 공개하는 등 체납 세금 징수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시행해도 체납액은 쉽사리 감소하지 않고 있다.

전국 시·도는 지방재정 건전성 강화와 조세 정의 실현을 위해 고액 체납자 관리 강화, 체납자 빅데이터 추적 관리, 체납액 책임징수제 등 강도 높은 대책을 시행하며 체납 징수율을 높일 방침이다.

최경주 인천시 납세협력담당관은 "자진 납세 분위기를 확산하고 조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체납 차량 번호판 영치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성실납부 문화를 정착 시켜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종구 고성식 오수희 장영은 김도윤 홍창진 변우열 임보연 김경태 장덕종 양영석 기자)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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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판결 내린 판사 여상규

김성수 입력 2019.11.26. 18:54

               
[주장] 재심에서 무죄 받은 어부 김정인, 그를 사형에 처한 현 국회 법사위원장

[오마이뉴스 김성수 기자]

 1981년 1월 20일자 <동아일보> 기사 "안전기획부 발표 고정간첩 3개강15명 검거"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지난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어부들은 간첩으로 만들기 좋은 '재료'였다. 어부들은 약삭빠른 도시인들에 비해 자기방어 능력이 약했고, 바다를 통해 표류 등으로 북한을 쉽게 넘나들 수 있어서였다. 그래서 군사정권은 긴장이나 위기가 필요할 때 수시로 간첩 사건을 발표해서 국면 전환용으로 써먹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죄 없는 어부와 가족들은 '간첩'으로 만들어져 군사정권 연장을 위한 손쉬운 소모품이 되었다. 김정인, 한화자, 석달윤씨 등도 전두환 정권이 써먹은 그 소모품 중 하나였다.
 
1980년 전남 진도군의 한 작은 섬마을에서 어부 김정인은 처 한화자와 어장을 운영했고, 그의 외척 석달윤도 한 동네에서 어부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 8월 무더운 한 여름날 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 비극의 날벼락이 덮치기 시작했다. 중앙정보부(아래 중정) 요원들은 이 시골어촌에 '간첩' 박양민의 조카 김정인(41)과 그의 처 한화자(39), 동생 김정수(37), 모친 박두례(62), 외척 석달윤(46), 이모 박공심(41), 박양민의 동창 장제영(52) 등이 '진도가족간첩단'이라며 강제 연행해 갔다.
 
중정 요원들은 이 어부 가족들을 1980년 8월 21일부터 9월 30일까지 36일에서 50일 동안 불법 감금하며 매타작과 모진 고문을 가했다. 그리고 결국 김정인 등으로부터 '자백'을 받았고 총 7~8회에 걸쳐 중정 지하실에서 진술서와 조서를 받아냈다. 김정인은 나중에 서울지법 공판에서 "(중정과) 검찰에서 자백한 것은 또 고문이 있을까봐 허위 자백하였다"고 진술했다.
 
"내가 모든 것 뒤집어쓰고 갈 터이니 가족은 제발 살려 달라"
 
당시 김정인의 처 한화자는 "손목이 뒤로 묶인 채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는 고문을 당했고, 각목을 뒷무릎에 끼우고 꿇어 앉히게 하는 고문을 당했고, 구두로 구타 당하는 고문을 당했다", "샤워장 같은 곳에 저를 세워 두고 옆방에서 남편이 고문받으면서 지르는 비명소리를 듣게 하면서 협박했다", "하루는 나를 남편 김정인이 있는 옆방으로 데리고 갔는데, 문틈으로 남편 얼굴이 보였다. 중정 직원이 샤워기를 틀어 내 얼굴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질식할 것 같아 비명을 질렀다. 이를 본 남편 김정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중정 직원에게 애원하기를 '내가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갈 터이니 우리 가족은 제발 살려 달라, 내 처는 나한테 시집온 죄밖에 없다'고 하면서 애원을 했다. 나도 울고 남편도 울었다"라고 훗날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서 진술했다.
 
또 처 한화자가 중정에서 물고문을 받아 까무러칠 때 남편 김정인은 "마누라는 죄가 없으니 나만 죽이시오"라고 울부짖었다. "당신과 자식들만 살 수 있으면 나는 100번이라도 누명 쓸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김정인·한화자 부부는 5남매를 키우고 있었고 큰아들이 17살, 막내딸이 3살이었다.
 
한화자는 또 진실위에서 "남편은 가족을 사랑하는 우직한 남편이었다. 남편 김정인은 간첩 활동을 한 것이 전혀 없고 오로지 고기를 많이 잡아 처자식 먹여 살리는데 급급한 착한 사람이었다. 이 일로 우리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으며, 더 이상 진도에서 살지 못하고 목포에서 숨어 살았다. 나도 중정에 끌려가 약 2개월간 불법감금 상태에서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라고 진술했다.

한화자는 '간첩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에 시어머니와 5남매를 데리고 고향 땅을 떠났다. 그는 목포에서 식모살이, 공장 야간작업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남편의 누명을 벗기려면 자식들을 가르쳐야 했다"고 훗날 법정에서 진술했다.
 
"중정에서 모진 고문...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허위자백"
 
김정인의 외척 석달윤은 1980년 8월 중정으로 "연행된 첫날 양손에 수갑을 채우고 손과 발을 묶은 뒤 몽둥이를 끼워 책상 사이에 매달리게 한 뒤 물고문을 하였다. 혐의사실을 부인하자 200~300와트 밝기의 전구를 눈앞에 켜놓고 전구를 계속해서 쳐다보게 하였다. 전구를 계속해서 쳐다보니 정신이 빙빙 돌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밤새도록 추궁을 하면서 이틀 동안 한숨도 못 자게 하였다. 25일부터는 담뱃불로 무릎 아래에서 발목 위까지 지져대기, 송곳으로 허벅지 찌르기 등 고문을 했다. 그러다 수사관들이 전선을 연결시키는 모습을 보고 전기고문을 당하면 정말 죽을 것 같아 모든 것을 시인하겠다고 하였다. 그다음 날부터 자필진술서를 매일 오전과 오후에 한 벌씩 써내고 한 자라도 틀리면 사정없이 몽둥이세례를 받았다"고 훗날 진실위에서 진술했다.
 
석달윤은 서울지법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중정에서 47일간 조사를 받는 동안 고문 등이 심해 거짓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0년 10월 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까지 불법 구금 상태에서 잠 안재우기, 성기에 볼펜심 쑤셔 넣기 등 갖가지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외에도 석달윤은 "중정 조사관 6명(2인 3조)에게 47일간 조사받으면서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허위자백하였고, 검찰조사 시 중정 진술과 다른 진술을 할 경우 검찰청 15층에 올라가 더 무서운 고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협박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또 당시 "검사에게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혐의 사실을 부인했으나 꾸중만 들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 석달윤은 "(남파간첩이라는) 박양민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중정에서 고문으로 인해 허위자백한 것이고, 검찰에서 고문에 의해 허위자백하였다고 주장했으나 검사가 일축해 버렸다"고 주장했다. 또 석달윤은 "중정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 결국 전기고문까지 하려고 하여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에 박양민을 한 차례 만났다고 허위자백했는데 이후 8차례나 만난 것으로 되어버렸다"고 진술했다.
 
상고이유서에서도 석달윤은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주장을 반복하면서, "중정 151호실에서 2주일, 138호실에서 3주일, 153호실에서 2주일 동안 감금되어 고문을 당했고, 다른 피고인보다 10일 늦게 연행되어 47일 동안 조사받았다"고 진술했다.
 
김정인의 동생 김정수는 "1980년 8월 중순경 김정인과 함께 연행되어 5~6일 동안 중정 수사관 김○○, 한○○, 김○○ 등에게 잠 안 재우기, 구타 등의 고문을 당하여 형님인 김정인이 이북에 갔다 왔다고 허위 진술했다"고 훗날 진실위에서 주장했다.
 
박영민의 동창 장제영은 1980년 12월 15일 서울지방법원 2차공판에서 1980년 8월 당시 "중정에서 56일 동안 조사를 받고 전에 앓던 정신분열증이 도질까 두려워 허위자백을 했다"고 진술했다. 또 1981년 5월 6일 서울고등법원 1차 공판에서 장제영은 당시 "중정에서 56일간 조사 받은 후 석달윤 등의 증인이 될 것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가 검찰에서 이를 부인하자 재구속 되었다"고 진술했다.
 
위와 같은 고문 끝에 1980년 9월 30일 중정은 김정인, 석달윤, 김정인의 이모 박공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1980년 10월 6일 서울구치소에 이들을 수감했다. 그리도 다음날인 1980년 10월 7일 서울지검에 김정인, 석달윤, 박공심, 장제영, 김정인의 모친 박두례, 동생 김정수, 처 한화자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서울지검은 중정의 의견서를 바탕으로 김정인과 석달윤 등에 대해 1980년 10월 8일부터 17일까지 총 4~5회에 걸쳐 조서를 작성했다.

"못난 소인을 한번 살려주세요"
 
당시 전주교도소 교도관 구○○은 "1981년 당시 전주교도소 보안과에서 수감자들의 상담과 계호업무를 주로 담당하였는데, 석달윤을 불러 상담을 해보면 의자에 바로 앉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어 제가 석달윤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중정에서 수사를 받으면서 고문을 당하여 허리를 잘 쓰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석달윤을 부축하여 약 10여 회 이상 허리치료를 위해 교도소 내 의무과에 데리고 간 적이 있고, 다른 직원도 수십 차례 석달윤을 부축하여 교도소 내 의무과로 데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당시 분위기상 신분장에 상담사실을 기재할 수 없었다"고 훗날 진실위에서 진술했다.
 
당시 전주교도소 교도관 박○는 "석달윤은 전주교도소 입소 당시부터 허리를 잘 쓰지 못하여 내가 석달윤을 부축하여 교도소 내 의무과로 약 10여 차례 이상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당시 석달윤에게 왜 허리가 아프냐고 물어보면 중정에서 조사받으면서 고문을 당한 후유증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역시 진실위에서 진술했다.
 
이렇게 고문에 의한 '간첩 자백'이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보이는 상황이었음에도 1981년 1월 30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 결과 판사는 김정인에게 사형, 석달윤에게 무기징역, 박공심에게 징역 1년 6월과 자격정지 1년 6월, 장제영에게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당시 이런 믿을 수 없는 판결을 내린 판사는 바로 여상규다. 여상규는 지금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자 국회 법사위 위원장으로 제2기 진실위 활동 재개에 제동을 걸고 있다
 
한편, 김정인 등은 위 1심판결에 대해 불복, 항소했다. 그러나 1981년 6월 4일 서울고법은 이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김정인의 이모 박공심은 상소를 포기해 2심판결이 확정되었고 김정인, 석달윤, 장제영 등은 불복해 상고했다. 그러나 1982년 5월 25일 대법원은 이들의 상고를 기각해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김정인의 (맞춤법이 틀린) 2차 재심청구서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것을 가지고 채고형까지는 너무나 가하지 않읍니까. 넓으신 마음으로 이 못난 소인을 한번 살려주세요. 판사님 형법에 의한 벌만 주싶시요. 판사님…. 1984년 11월 15일 피고인 김정인" 

조작간첩사건으로 포상받고 진급한 중정수사관  

1985년 10월 31일,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는', '10월의 마지막 날', 47세 5남매의 가장이자 한화자의 남편 어부 김정인은 간첩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사형집행 당하기 전 자신의 두 눈을 기증한 김정인의 시신은 붉은 피로 뒤덮인 채 주검이 되어 한화자의 눈앞에 누워 있었다.

한화자는 당시 싸늘한 주검이 된 남편 김정인에게 "새 옷을 장만할 돈이 없어 시신을 그대로 묻었다"며 훗날 재심 법정에서 눈물을 쏟으며 이야기했다. 다정한 남편 김정인이 품고 있던 가족사진에는 '하느님,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도록 지켜주십시오'라는 기도 글이 적혀 있었다. 김정인의 기도 글 덕분이었는지 한화자는 남편 사후 식모살이, 공장야근 등 각종 막일을 하며 5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한편 석달윤 및 장제영에 대하여는 상고를 기각해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여상규 판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석달윤은 1998년 8월 15일, 17년 반의 감옥살이 끝에 가석방으로 출소했고, 박공심 및 장제영은 각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김정인, 한화자, 석달윤 등을 중정 지하실에서 무지막지하게 고문 수사한 일부 중정 수사관들은 이들이 사형 당하고 몇십 년 감옥살이하는 동안에 오히려 국가유공자로 포상을 받았고 진급했다.
 
그리고 약 8년이 흐른 2006년 1월 20일, 위 사건에 대해 한화자, 석달윤, 박공심, 장제영 등은 진실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 후인 2007년 6월 26일 진실위는 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결정'을 하며 "국가는 위법한 확정판결에 대하여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열린 재심에서 한화자, 석달윤 등은 사건 발생 2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서 2010년 10월 16일 억울하게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고인이 된 김정인은 부인 한화자가 신청한 재심에서 3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례적으로 A4 용지 2장 분량의 '판결을 맺는 말'을 덧붙였다.
 
"법원이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무고한 생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닌가 회한을 떨칠 수 없습니다. 본 재판부 법관들은 과거 잘못된 역사가 남긴 가슴 아픈 교훈을 깊이 되새기며, 이 사건과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각오를 새롭게 하겠습니다. 이 판결로 인해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의 넋이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우리의 '과거사'는 단순히 과거의 문제 아닌 현재의 문제
 
 여상규 국회 법사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안건을 의결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80년 당시 죄 없는 어부 김정인에게 사형판결, 석달윤에게 무기징역 선고 등을 한 여상규는 지금껏 피해자들에게 사죄나 위로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 2018년 1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여상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SBS 제작진이 "1심 판결로 한 분의 삶이 망가졌다, 책임은 느끼지 못하나?"라고 전화로 묻자 뜻밖에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답한다.

"웃기고 앉아 있네, 이 양반 정말."

그리고 여상규는 전화를 확 끊었다.
 
방송이 나간 후 여상규와 한때 같은 당에 몸담았던 바른정당의 권성주 대변인조차 "1980년대 불법 구금과 고문 속에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냈던 당시 판사(여상규)가 그 책임을 묻는 기자에게 '웃기고 앉아 있네'라며 대화를 끊던 모습은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억울하게 인생을 망친 피해자에게 사과와 위로의 한마디를 할 수 없는 것인가.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제1야당"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김정인 등 피해자들은 1980년 여상규가 판사로 있던 법정에서 장기간의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자백한 것이며 간첩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증인들도 중정에서 고문에 의해 허위진술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여상규는 이러한 고문 피해자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중정에서의 '자백'을 근거로 증거재판주의에 위반해 피해자 김정인에게 사형, 석달윤에게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한 위법을 저질렀다. 그리고 아직도 피해자들에게 미안해 하기는커녕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막중한 국회 법사위 위원장 노릇을 하고 있으니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는 '미래를 보고 살아야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과거사'가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는 데 있다.

지금 2기 진실위 활동 재개를 위한 '과거사법'이 국회 법사위에서 발목 잡혀 있고, 법사위 위원장은 바로 자유한국당의 여상규씨다. 여상규는 또한 지금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에서 '반헌법행위 집중검토대상자'로 지목되어 있는 인사다. 과거 인권침해사건의 가해자들이 많은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과거사법'이 불편한 것인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를 위해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준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한홍구 교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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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결혼 후 출신국서 또 결혼..법원 "귀화 취소 마땅"

입력 2019.11.26. 06:47 수정 2019.11.26. 07:35

               
"일부일처제, 대한민국의 중요한 법질서..중요한 귀화 거부 사유"
재판 선고(PG) [제작 최자윤]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한국인과 결혼해 귀화한 외국인이 출신국에서 추가로 사실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귀화를 취소하는 것이 적법하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김정중 부장판사)는 A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귀화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슬람권 국가 출신인 A씨는 2004년 한국인 B씨와 결혼했고, 2014년 한국 정부로부터 귀화를 허가받았다.

그런데 A씨는 그 사이인 2009년 자신의 출신국에서 해당 국적자 C씨와 또 결혼해 딸까지 얻었다. 이슬람권에서는 법적으로 일부다처제가 인정된다.

이런 A씨의 상황은 귀화 후 B씨와 이혼한 다음에야 드러났다.

A씨는 출신국에 살던 C씨와 딸을 한국에 입국시키려 했다.

이를 의심스럽게 여긴 당국은 조사를 벌인 결과 '부정한 방법으로 귀화 허가를 받았다'며 이를 취소했다.

이에 A씨는 귀화 취소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A씨는 중요한 근거로 자신이 출신국에서 C씨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법적으로는 한국의 민법이 금지하는 '중혼'을 한 것이 아니고, 귀화 조사 과정에서 낸 호적부 등도 위·변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B씨와도 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헌법이 규정한 규범과 중혼을 금지한 민법 규정을 보면, 일부일처제는 대한민국의 주요한 법질서"라며 "나중에 한 결혼이 사실혼이라고 해도 법무부가 당사자에 대한 귀화 허가 여부에 관한 재량권 행사에서 중요하게 고려될 사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무부는 귀화를 신청한 사람이 대한민국의 법질서와 제도를 존중하고 준수할 자인지 살펴 귀화를 거부하거나 취소할 재량권이 있다"며 "따라서 A씨가 중혼적 사실혼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귀화 허가를 거부할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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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죽어도 안 보겠다'던 동영상 속 그 남자, 김학의 맞다"

구자창 기자 입력 2019.11.26. 04:05

                          
      
"오피스텔 사진·별장 동영상 모두 피고인이라 봄이 상당하다"

법원이 “‘원주 별장 동영상’ 속 남성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김 전 차관은 비록 1심에서 범죄 사실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사회적 이슈가 됐던 성접대 의혹은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김 전 차관은 최후진술 당시 “(별장에) 아무리 안 갔다고 해도 간 것으로 돼 있다”며 오열했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정계선)의 김 전 차관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2007년 11월 13일에 촬영된 이른바 ‘역삼동 오피스텔’ 사진에 대해 “사진의 남성은 피고인이라 봄이 상당하고, 다른 가능성은 지극히 합리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은 사건의 발단이 됐던 2007년 12월 21일자 ‘별장 동영상’ 속 인물에 대해서도 “김 전 차관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지난 22일 선고공판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판결문 속 주석을 통해 판단 근거를 자세히 밝혔다.

김 전 차관 측은 지난달 29일 결심에서 가르마 방향이 자신과 반대라는 이유 등으로 오피스텔 사진 속 남성은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사진을 찍은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사진 속 여성의 성상납 진술, 김 전 차관의 얼굴형과 이목구비, 안경 모양 등을 종합해 “사진 속 인물은 김 전 차관”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구식 휴대전화 기기로 찍어 사진이 반전될 수 없다는 주장은 “촬영이나 저장, 다른 저장매체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반전될 수 있다”며 일축했다.

재판부는 특히 지난 4월 4일 검찰이 윤씨의 5촌 조카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한 CD에 주목했다. 오피스텔 사진과 별장 동영상이 모두 여기서 나왔다. 2012~2013년 검경 수사에선 찾지 못했던 것들이다. CD 속 동영상은 김 전 차관의 이름을 영문 조합한 파일명(khak 등)으로 저장돼 있었다. 재판부는 이를 통해 “동영상의 인물과 사진파일의 인물은 같은 인물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김 전 차관은 검찰 재수사 과정에서 문제의 동영상 보기를 끝내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변호인들이 변론 준비를 위해 동영상 자료를 제시해도 ‘죽어도 안 보겠다’는 태도였다고 한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동영상과 정말 무관했다면 안 볼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차관은 재판 과정에서 평일 낮 시간대 성접대를 받았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검찰 포렌식 결과 별장 동영상의 촬영시점은 2007년 12월 21일 금요일 오후 1시6분이었다. 김 전 차관은 경기도 용인의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장급)으로 근무하던 때라 그 시각에 강원도 원주에 있을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그해 12월 19일 대선 이틀 뒤였다는 점도 내세웠다. 정권교체 직후라 근무태도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르마 위치’가 문제됐던 오피스텔 사진에 대해서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검찰은 사진의 촬영시점을 2007년 11월 13일 오후 9시57분으로 특정했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은 이날 임채진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직후 회식을 한 뒤 늦게 귀가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운전기사는 “서울 압구정 자택에 내려준 게 오후 9시~9시30분 정도”라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운행일지가 정확히 기재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촬영시각에 역삼동 오피스텔에 있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 전 차관은 검찰이 뇌물수수로 본 신용카드 사용액 상당부분에 대해 연유를 모른다고 했다. 일부 내역에 대해선 ‘스폰서’로 지목된 사업가 최모씨가 쓴 게 포함돼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최씨는 밴드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차남)씨의 부친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차관은 재판에서 춘천지검장 시절인 2008년 최씨가 “춘천에 있는 기무부대장을 보게 해달라”고 해서 만나게 해준 사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씨의 장남이 기무부대장 당번병으로 군생활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차관 측은 “항소심에서 관련 사실 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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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밉다"..구하라 사망에 동료들 애도→연예계 행사취소[종합]

김준석 입력 2019.11.25. 06:50

               

[스포츠조선닷컴 김준석 기자] 가수 구하라의 사망 소식에 동료 연예인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고(故) 구하라 측은 루머와 추측성 보도 자제를 당부했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구하라는 이날 오후 6시께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순진 구하라를 발견했고 "정확한 사망 경위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고 구하라 측은 이날 오후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됐다"라며, "현재 구하라님 유족 외 지인들의 심리적 충격과 불안감이 크다. 이에 매체 관계자 분들과 팬들의 조문을 비롯해 루머 및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이어 "갑작스러운 비보를 전해드리게 돼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며, 다시 한 번 조문 자제에 대해서는 송구스러움을 전한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이어 많은 동료들이 구하라 사망소식에 애도를 표했다.

이날 가수 하리수는 자신의 SNS에 구하라의 포털사이트 프로필 검색창을 캡처한 사진과 함께 "안타깝게도 정말 너무 슬프다. 하늘에선 행복하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로 구하라를 애도했다.

룰라 출신 채리나도 자신의 SNS에 "정말 너무 슬프다. 진짜 너무 미치도록 슬프다. 너무 어여쁜 후배를 또 떠나 보냈다. 슬프다. 괴롭다. 힘들다"라는 글을 남겼다. 또 가수 겸 연기자 김소이도 SNS를 통해 "편히 쉬렴 하라.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이 아름다운 영혼들이 더 이상 떠날 이유가 없다"라는 글을 남기며 구하라를 추모했다.

딘딘 역시 자신의 SNS에 "하라야 내가 점점 주목받기 시작할 때 넌 날 걱정해주면서 힘들면 연락하라고 했었는데. 넌 참 아름다고 빛났어"라는 글과 함께 구하라가 환하게 미소짓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이어서 그는 "근데 내가 아무 것도 해준 게 없고 아무 도움이 못돼서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어야 하는데 정말 미안해.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진짜 세상이 미운데 꼭 행복하기를 바랄게 그 곳에서는. 미안해. 고마워"라고 고인을 추억했다.

가수 가희는 이날 밤 인스타그램에 "오늘 또 해가 졌네….. 휴….. 우리 아이들 도 지켜야 하지만 우리 아이돌 들도 지켜야 해… 누군가 널 위해서 항상 기도 한다는걸… 잊지마…. RIP…."이라는 글로 추모했다.

허지웅은 "망했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을 오늘 밤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말해주고 싶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필요 이상으로 건강합니다. 그러니까 저를 응원하지 말아주세요. 대신 주변에 한줌 디딜 곳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을 청년들을 돌봐주세요. 끝이 아니라고 전해주세요. 구하라 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안무가 마리는 "언니가 하라 너무 사랑해. 미안해. 보고 얘기하고 싶은데.. 언니가 너무 마음이 아파 답답해. 하라야. 오늘 첫 끼 먹은 거 찍어서 보내주기로 했잖아. 왜 카톡 안 했어. 아니 언니가 먼저 할 걸 그랬어. 언니가 자꾸 전화하고 자꾸 물어볼걸. 자꾸 계속 찾아가고 곁에 있을걸. 살 거라고 했잖아. 언니가 너무 아파. 얼마나 힘들었어. 착하고 수더분한 우리 하라가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푹 자자 이제. 편하게 푹 쉬어. 언니가 정말 고마워.. 언니 힘들 때 위로가 되어줘서. 너가 힘들 때 언니도 간혹 위로되는 사람이었길 바래. 그렇게 기억하고 잠들어줘. 잘 가. 사랑해 꼭 편하게 있어"라며 애통해했다.

기리보이는 "친구지만 선배처럼 연락해서 무언갈 물어보면 자꾸 뭘 도와주려고 하고 뭘 자꾸 해주려고 했던 따뜻한 사람. 얼마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통화했는데 갑자기 이래서 너무 당황스럽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짜"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허지웅은 "저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필요 이상으로 건강합니다. 그러니까 저를 응원하지 말아주세요"라며 "대신 주변에 한 줌 디딜 곳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을 청년들을 돌봐주세요. 끝이 아니라고 꼭 전해주세요. 구하라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전했다.

그 외에도 연예인들도 공식 행사 일정을 취소하며 구하라를 추모했다.

이날 KBS2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측은 "25일 오전 11시로 예정되어 있었던 제작발표회가 취소됐다. 안타까운 비보에 애도를 함께하는 마음으로 부득이하게 제작발표회를 취소하게 되었으니 부디 양해 부탁 드린다"고 밝혔다.

'정해인의 걸어보고서'는 KBS1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재탄생 시킨 프로그램이다. 걸어서 여행하고 기록하는 '걷큐멘터리'를 표방했으며, 특히 배우 정해인이 데뷔 후 첫 단독 예능에 도전해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24일 구하라의 비보가 전해지며 제작발표회를 취소하게 됐다.

한편 구하라는 2008년 카라로 데뷔한 후 '프리티 컬(Pretty Girl)' '허니(Honey)' '미스터' '스텝' '루팡' 등 많은 히트곡을 내며 네티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후 일본에 진출한 카라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본에서도 톱 걸그룹 자리에 올랐다.

이후 카라가 사실상 해체한 후 구하라는 솔로 가수와 배우로 활약하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앨범을 내고 활동했다.

narusi@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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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韓 지소미아 종료 정지에 "아무런 양보 안했다"<아사히>

입력 2019.11.24. 11:08 수정 2019.11.24. 11:14

               
日, '외교전서 승리' 국내 선전전..무토 前대사 "강경정책 효과"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정지한 것에 대해 일본이 자신들의 외교 성과라고 강조하는 자국 내 선전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협정 종료 정지와 관련해 측근들에게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24일 한일 지소미아 종료 정지 직후 아베 총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미국이 상당히 강해서 한국이 포기했다는 이야기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지소미아 효력 유지' 언급하는 아베 일본 총리 (도쿄 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도쿄 공관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한국의 지소미아 효력 유지 발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jsmoon@yna.co.kr

신문은 "미국이 지소미아 유지를 한국에 강하게 요구했으며 일본도 이런 미국을 지원했다"며 "미국이 일본에게 협정 종료를 피하기 위한 대응을 하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아사히는 일본이 수면하에서 미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의회에 대해서도 물밑 작업을 해 미국 상원이 21일 협정의 중성을 재확인하는 내용의 결의를 가결했다며 "워싱턴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한국 측을) 옥죄었다"는 총리 관저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와 언론들은 지소미아 종료 정지를 아베 정권의 외교 성과로 치켜세우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협정 종료가 7시간 남았던 지난 22일 오후 5시에 한국이 협정 종료 통고의 효력을 정지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아베 총리가 "제대로 된 판단이다"라고 담담히 말했다며 한국 정부로부터 이와 관련한 외교 문서가 한일 양측이 기자회견을 연 오후 6시 조금 전에 일본 정부에 도착했다고 설명했다.

마이니치의 보도는 한국이 양보를 했고 일본은 이를 받아들였다는 식으로 보도하며 한일 양측의 협상 결과가 일본에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혐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전 주한 일본대사의 발언을 게재하며 아베 정권의 외교 성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무토 전 대사는 신문에 "문재인 정권이 지소미아 종료를 피한 것은 일본의 의연한 태도 앞에 종래의 주장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며 "(일본의) 강경한 대한국 정책이 효과를 봤다. 한일 관계에서 한국이 (주장을) 굽힌 것은 거의 없어서 좋은 전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소동'(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종료 정지)은 한미 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며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가 심해질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소미아 종료 정지' 1면 머리기사로 전한 일본 신문들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23일 일본 주요 조간신문들의 1면 지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정지 소식을 머리기사로 다뤘다. 2019.11.23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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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3법 통과되면 나에겐 무슨 일이?

입력 2019.11.24. 11:18

                

[한겨레21] 가명 처리돼 통신사가 포털사에 제공… 박근혜 정부 가이드라인이 입법화돼

8월29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개인정보보호법 개악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제공

데이터 3법이 가을 정기국회에서 핵심 법안의 하나로 떠올랐다. 정확히 얘기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개인정보’와 관련된 세 법의 개정안이다. 데이터 3법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법의 골자는 개인정보를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산업 발전이 명분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연일 데이터 3법의 시급한 통과를 강조한다. 정부·여당이 하는 일에는 모두 반대할 것 같은 자유한국당도 데이터 3법에 찬성한다니 본회의 통과는 시간문제인 듯싶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는 오래전부터 이 법에 반대해왔다. 정보인권을 침해하는 ‘개인정보보호 포기법’이라고 비판한다. 이 법이 통과되면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가명 처리’돼 안전하다?

데이터 3법의 가장 큰 문제는, 신상품 개발 같은 기업의 영리적 목적을 위해 개인정보를 ‘내’ 동의도 없이 애초에 수집한 목적 외로 활용하거나, 심지어 다른 기업에 제공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을 식별하는 정보를 삭제하거나 암호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가명 처리’를 한다면 말이다.

예를 들어 통신사는 나에 대한 기본 정보뿐만 아니라 월평균 통화 시간이나 통화 빈도, 납부 요금, 연체 여부와 연체 액수, 보유 단말기 종류 등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데이터 3법에 따르면, 포털사가 서비스 개발 목적으로 통신사의 고객 정보를 요청할 때, 통신사가 고객 정보를 가명 처리해 포털사에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런데 통신사가 포털사에 무료로 제공할 리는 없다. 당연히 포털사의 고객 정보를 제공받거나 일정한 대가를 받고 판매할 것이다. 통신사가 포털사에만 제공하겠는가. 당연히 금융, 유통, 보건의료 영역의 다른 기업에 팔려고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 기업의 고객 정보가 다른 기업에 판매, 공유된다.

정부는 가명 처리를 했으니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명 정보는 통계값 같은 익명 정보와는 다르다.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개인을 재식별할 수 있다. 자동차번호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반인은 자동차번호를 갖고 소유주가 누군지 알 수 없겠지만, 자동차번호와 연계된 다른 개인정보를 보유한 도로교통공단이나 경찰은 소유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특정 개인을 재식별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가명 정보는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개인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개인정보이며, 이는 유럽연합도 한국 정부도 인정하는 바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우리는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약국에 내고 약을 받아간다. 약국에서는 처방 내역, 약국 정보, 처방 일시 등의 정보를 약학정보원이 제공한 프로그램을 통해 입력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가 우리도 모르게 빅데이터 업체인 IMS헬스에 팔려나갔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전국의 약국과 병원에서 4399만 명의 의료정보 약 47억 건이 판매됐다. 약학정보원과 IMS헬스는 주민등록번호를 암호화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이 사건과 관련된 민형사 소송이 진행 중인데, 데이터 3법이 통과되면 이런 개인정보 판매가 합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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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고객 정보 보유한 기업이 결합정보 받아

이뿐만이 아니다. 데이터 3법은 전문기관이 서로 다른 기업들의 고객 정보를 결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는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통해 하려고 했던 바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전문기관을 통해 20개 대기업의 고객 정보 3억4천만여 건을 고객 동의 없이 결합해주었다.

예를 들어 한화생명보험의 고객 정보, 거래 정보, 신용정보 등 21개 항목과 SK텔레콤의 고객 정보, 거래 정보, 신용정보 21개 항목 등 총 42개 항목을 결합해, 양사 공통가입 고객 218만5596명의 개인정보가 결합됐다. SK텔레콤의 고객 정보는 한화생명으로, 한화생명의 고객 정보는 SK텔레콤으로 공유됐다. 물론 양사는 고객 정보를 비식별 처리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원래의 고객 정보를 보유한 양사가 과연 결합된 고객 정보를 재식별할 수 없을지 의문이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공공기관을 통해 기업들의 고객 정보를 결합해주는 사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것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입법화하려 한다.

이미 한국 사회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번호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개인정보를 결합할 수 있어 그 피해가 더욱 커진다. 개인정보의 유출과 남용이 가져올 피해는 다양한 수준에서 나타날 수 있다. 우리를 귀찮게 하는 스팸 전자우편과 전화부터 큰 금전 피해를 야기하는 보이스피싱까지, 모두 어디에선가 유출된 내 개인정보를 활용한 것이다. 숨기고 싶은 민감한 질병 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고, 이런 정보가 보험이나 고용에서 불이익을 야기할 수도 있다. 나의 명예나 지위에 해를 끼칠 수도 있고 법적 분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국민 신뢰가 우선

기업들의 개인정보 보호 수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다. 그런데 데이터 3법처럼 서로 다른 기업 사이에 개인정보를 판매·공유·결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개인정보의 유출과 남용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는 빅데이터 기술과 산업의 발전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보인권을 침해하는 산업의 발전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빅데이터 산업의 발전은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오히려 개인정보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 발전할 수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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