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살인 14건 내가 진범.. 당시 왜 나를 못잡았는지 이해 안가"

수원=이경진 기자 입력 2020.11.03. 03:00 댓글 981개


34년만에 모습 드러낸 연쇄살인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가 2일 출석한 경기 수원지방법원 501호 법정. 이춘재가 피고인이 아닌 증인 신분이어서 사진 촬영이 불허돼 휴대전화에 이춘재의 고교 졸업사진을 띄운 채 법정을 촬영했다. 실제로 본 이춘재의 눈매는 이 사진과 흡사했다(왼쪽 사진). 이춘재가 저지른 8번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복역하고 재심을 청구한 윤성여 씨도 이날 재판에 출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일 오후 1시 반 수원지법 501호 법정에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57)가 들어섰다. 이춘재가 23세였던 1986년 경기 화성시에서 처음 살인을 저지른 지 34년 만이다. 청록색 수의를 입고 증인석에 선 이춘재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는 그의 고교 졸업사진과 흡사했다. 이날 이춘재는 자신의 8번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복역했던 윤성여 씨(53)가 청구한 재심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그가 저지른 14건의 연쇄살인은 모두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하다.

○ “불나방처럼 본능에 끌려 범행”

“증인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맞습니까?”(윤 씨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

“네, 맞습니다.”(이춘재)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박정제)의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이춘재는 1989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경기 화성과 충북 청주에서 모두 14건의 살인과 34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를 저지른 사실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이춘재는 박 변호사가 1988년 ‘8번째 사건’ 관련 경찰 재수사 과정에서 직접 그린 범행 장소 약도 등을 제시하며 당시 상황을 묻자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당시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양말을 벗어 손에 끼고 범행을 했습니다. 피해자의 속옷은 벗긴 뒤 범행 뒤처리에 사용하고 사망한 피해자에게 새로운 속옷을 입히고 나왔습니다.”

이춘재는 “목을 조르는 위치가 비슷해 항상 같은 곳을 누르게 된다”며 손을 들고 목을 조르는 방식을 시연하기도 했다. 이춘재는 피해자들을 스타킹으로 결박하고 속옷 등으로 재갈을 물린 이유에 대해 “결박은 반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재갈은 소리 지르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일 뿐”이라며 “피해자의 머리에 속옷을 뒤집어씌운 것은 나를 못 보게 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 중 9세, 13세 여성이 포함된 점 등을 지적하며 이춘재에게 연쇄살인을 저지른 동기가 무엇인지를 여러 번 물었다. 그때마다 이춘재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멈추면 강간이 되고 진행되면 살인이 되는 것”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어떤 계획이나 생각을 갖고 한 것이 아닙니다. 불을 찾아가는 불나방처럼 본능에 끌려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그런 행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춘재는 이어 “(범행 후) 후회를 하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또 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찰나의 생각일 뿐이었다”고 했다. 당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고통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 “당시 경찰 보여주기식 수사”

이날 재판에서 이춘재는 범행 당시 경찰 수사의 허술함에 대해서도 상세히 증언했다.

“검문을 받다가 파출소까지 불려간 적이 있었지만 용의선상에는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들킬 만한 계기가 몇 번 있었는데 (나를 왜 못 잡았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이춘재는 파출소에 갔을 당시 피해자의 것으로 기억되는 시계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경찰에 “길에서 주웠다”고 말하자 바로 풀어줬다고 했다. 또 “수사가 제대로 진행됐다면 (나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경찰이 수백 명씩 왔다 갔다 했지만 ‘보여주기식’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경찰이 지난해 자신이 수감돼있던 부산교도소로 찾아왔을 때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시 이춘재는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살인한 혐의로 기소돼 무기수로 복역 중이었다. 그는 박 변호사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여성 프로파일러에게 손을 한번 만져봐도 되냐고 물었던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손이 예뻐 보였다. 손이 예쁜 여자가 좋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춘재는 재판 말미에 “저의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반성하고 있고, 그런 마음에서 자백했다. 하루속히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본인이 저지른 수많은 범행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했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을 지켜본 윤 씨는 “이춘재가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해준 것은 고맙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며 “다만 그가 진실을 말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원=이경진 lkj@donga.com·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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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의 성채' 한남더힐, 600가구 전수조사 해보니..

 

박주희 입력 2020.11.02. 04:30 수정 2020.11.02. 08:27 댓글 615

 

전 가구 가격변동·소유주 전수 분석
재벌가 기업대표 연예인 이름 즐비
최고가 77억.. 5년새 123% 급등도
'지분 쪼개고 2년 후 증여' 절세 수단
2030 명의 11%.. '부의 세습' 모습도

실거래가 기준으로 5년 연속 전국 최고가 아파트인 서울 용산구 한남더힐 전경. 재벌가, 대기업 간부, 전직 고위 관료, 유명 연예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어 '대한민국 상위 1%' 주거지로 꼽힌다. 배우한 기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전 예약은 하신 건가요?”

지난 9월 18일 서울 용산구의 고급아파트단지인 한남더힐 후문 앞에 차량을 정차하자 유니폼을 입은 경비원이 기자에게 방문 목적을 물었다. 한남더힐 안내를 맡은 A씨가 약속이 돼있다고 알리자, 경비원이 차량을 통과시켜줬다. A씨는 “한남더힐은 정문과 후문뿐 아니라, 산책로로 이어진 모든 출입문을 성곽을 지키듯 꼼꼼하게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출입문을 통과해 단지 내로 들어서자, 동과 동 사이의 거리가 다른 아파트에 비해 꽤 멀었다. 한남더힐은 대지면적 3만 4,000여평에 32개동(최고 12층ㆍ전용면적 57~243㎡)이 들어서 있으며, 가구 수도 600가구로 적은 편이다. 비슷한 대지면적의 일반아파트에는 통상 50여개동ㆍ2,000여 가구가 들어서는 것과 비교하면 밀집도가 상당히 낮다.

기자는 이날 100평형대(전용면적 242㎡) 아파트 내부를 둘러봤다. 복층 구조인 이 아파트는 출입문이 1.5층에 위치해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신발장과 수납장 크기는 30평형대 아파트의 2~3배에 달했다. 바닥과 벽면은 모두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계단을 반층 내려가 복도에 서자 오른쪽에 거실과 주방이 보였다. 주방 주위를 둘러보다 또 다른 현관문이 발견됐는데, 이 문은 다용도실로 이어져 있었다. 이는 가사도우미가 거주자가 이용하는 현관문을 오가지 않고 곧바로 주방으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문이었다.

거실 2개 면은 통유리를 통해 커다란 테라스와 연결됐는데, 이 테라스만 약 20평으로, 거실과 침실(마스터룸)을 잇고 있었다. 침실은 거실과 마찬가지로 2개 면이 테라스와 맞닿아 있어 탁 트여 있었다. 긴 복도 양 옆으론 욕실과 파우더룸이 위치했고, 이를 지나치자 다시 서재방이 나왔다. 서재방 입구 반대쪽에 또 다시 유리문이 나왔는데, 이는 이 집에 딸린 작은 정원을 오갈 수 있는 출입문이었다. 침실 3.5개와 욕실 4개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78억원에 매물로 나와있다.

아파트 내부를 둘러본 뒤 커뮤니티센터로 이동했다. 센터 출입문 앞에는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인 마크 퀸의 ‘욕망의 고고학’이라는 조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단지 내에는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 3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이날 커뮤니티센터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센터 내부에는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스크린골프장 등이 갖춰져 있다. A씨는 "한남더힐은 보안과 시설, 예술품 전시 등 모든 면에서 최고급을 지향하는 만큼 주택가격이 비싼 것은 당연하다”며 "애초부터 '상위 1%'를 겨냥해 지어진 만큼 서민들의 입주조건이나 접근성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지를 빠져나와 한남대로를 건너다보니 전지현, 배용준, 빅뱅 지드래곤 등이 거주하고 있다는 나인원한남이 보였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600m를 걸어 내려가면 고급주택의 대명사인 유엔빌리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매봉산으로 둘러싸인 한남더힐과 그 일대는 그야말로 거대한 성곽과 같았다. 한남동 골목에서 종종 눈에 띄는 생활맥주 체인점과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재계ㆍ연예인들의 보금자리

이날 기자가 둘러본 한남더힐은 안락함과 편리성이 모두 보장되는 아파트였다. ‘대한민국 상위 1%의 보금자리’라는 말이 실감됐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올해 5~9월 한남더힐 600가구의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한 결과 재계인사와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33㎡ 아파트를 보유 중이고, 정성이 이노션 고문,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이사도 같은 면적의 아파트를 소유했다. 이 밖에도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등 재벌 총수일가 20여 가구가 한남더힐에 둥지를 틀었다.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자수성가한 기업인들도 한남더힐에 터를 잡았다.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대기업 임원 출신들 중에도 한남더힐을 거주지로 삼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고동진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두 채(233㎡)를 구매해 한 채는 미래에셋대우에 신탁했고, 다른 한 채는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전세를 줬다. 김종중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1팀장(사장), 김명수 삼성물산 사장,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등 전·현직 ‘삼성맨’ 9명도 한남더힐에 입주했다. 이 외에도 김창근 전 SK이노베이션 의장, 김성수 카카오M대표(전 CJ E&M 대표) 등도 이곳에 터를 잡았다.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장병완 전 국회의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이 한남더힐에 입주해 있다. 삼성비자금 특검으로 활동했던 조준웅 변호사도 아들 조원호씨와 함께 233㎡ 아파트를 공동 소유 중이다.

연예인 중에는 가수 이승철, 배우 안성기, 김태희, 소지섭, 한효주, 이요원, 추자현, 개그맨 이영자 등이 거주했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등을 연출한 김태호 MBC PD, 드라마 '도깨비' '파리의 연인' 등을 쓴 김은숙 작가도 이들과 이웃주민이다. 특히 김태희 남편인 가수 비(정지훈)는 다른 동에 세입자로 들어가 있어, 부부가 등기상으로 한남더힐에 두 채의 아파트에 입주했다.


5년째 실거래가 1위… 올해 매매가 1~3위

이처럼 유명인사들이 잇따라 한남더힐에 터를 잡자 홍보효과까지 생겨났다. 이는 ‘한국 최고가 아파트’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남더힐은 현 정부 들어 발표된 23차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최고가 매매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4일 전용면적 243㎡가 77억5,000만원에 매매돼 종전 최고가(올해 기준)였던 같은 단지 내 240㎡ 매매가 73억원(4월)을 경신했다. 이는 올해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평균 실거래가인 8억4,400만원의 9배가 넘는 가격이다. 한남더힐은 또 지난 9월 기준 올해 최고가 매매 주택 1∼3위를 휩쓸었고, 상위 30위 내에는 17채나 포함됐다.

고가 거래는 특정 시기에 국한된 흐름이 아니다. 한남더힐은 2015년부터 매년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 1위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단지 내에 12채만 존재하는 242㎡ 펜트하우스가 84억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특정 평형대로만 인기가 쏠리는 것도 아니다. 이 아파트의 모든 평형은 정부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꾸준히 매매가격이 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작은 평수인 57~59㎡의 매매가는 2016년 10억~13억원이었다가, 올해 6월에는 22억3,000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5년 새 71~123%가 상승한 것이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감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평균 실거래가 상승률은 58.2%였는데 이를 크게 웃돈 수치다. 한남더힐에서 가장 많은 가구 수(261가구)를 차지하는 233~235㎡ 아파트는 2016년 40억~45억원이었다가, 올해 8월 56억원에 매매돼 최대 40%의 상승률을 보였다.


부의 대물림 수단 활용되기도

초고가 아파트인 만큼 한남더힐은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총 600가구 가운데 부모로부터 증여를 받았거나 부모ㆍ자녀 또는 친인척 관계로 추정되는 이들이 공동소유 중인 아파트는 36가구로 확인됐다. 여기에 최초 아파트 구매 시 부모와 자녀 공동명의였다가 이후 부모의 지분 전체가 자녀에게 넘어간 사례도 있어, 자녀가 물려받은 가구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206㎡ 크기의 한 아파트는 2016년 부모와 자녀가 5대 5비율로 구매했다가, 올해 4월 부모의 모든 지분이 자녀에게 넘어갔다.

20대나 30대(1981~2000년생) 소유주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전체 가구의 10.8%에 해당하는 65가구에 20, 30대들이 단독 또는 공동소유주로 이름을 올렸다. 인원수로만 따지면 가구 수보다 많은 83명(20대 9명ㆍ30대 74명)이 한남더힐 아파트의 젊은 주인들이다. 소유주와 가구 수 사이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가족 또는 형제 등이 한 가구를 공동소유하고 있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 가장 어린 소유주는 만 20세인 2000년생이었다. 물론 이들 중 자수성가한 사례도 있겠지만, 10%가 넘는 수치만 보면 한남더힐 소유주들 사이에 어느 정도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중은행의 한 자산관리 전문가는 “2030 가구가 한남더힐과 같은 초고가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것은, 근로소득만으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전재범 강원대 교양교육원 부동산전공 교수는 “지금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향후 한남더힐 소유주의 자녀들이 성년이 되면 증여를 통해 더 많은 공동명의 가구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더힐 차량 출입로에 차단기가 내려가 있다. 한남더힐은 정문과 후문뿐 아니라 산책로로 이어지는 모든 출입구를 경비원들이 꼼꼼히 관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일반인은 잘 모르는 '절세 공식'

증여과정에선 세금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각종 전문지식이 동원됐다. 예를 들어 206㎡ 크기의 한 아파트는 2015년 부모와 자녀가 지분 3대 7 비율로 구매했다가, 2년 후 부모의 모든 지분이 자녀에게 넘어갔는데, ‘지분 쪼개기’와 ‘2년 후 증여’로 인해 줄어든 세금만해도 상당하다. 우선 지분 쪼개기를 통해 증여세율이 달라졌다. 이 아파트는 매매 당시 38억원에 거래됐는데 이 경우 증여세는 원래 30억원 초과분(이 경우 8억원에 해당)에 대해선 최고 세율인 50%가 적용돼야 했다. 그런데 공동소유자인 자녀는 지분을 70%(26억6,000만원)만 받았기 때문에 증여세율이 40%만 적용됐다.

이 가구는 또 다른 절세효과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핵심은 ‘2년 후 증여’다. 증여부동산의 가격(증여가액)을 평가할 때는 시세(매매가)를 기준으로 하는 게 원칙이지만, 2년이 지나면 공시지가를 증여세 산정의 기준으로 삼는다. 우병탁 신한금융그룹 부동산자문센터 팀장은 “예를 들어 3개월 전에 산 부동산을 2개월 만에 증여하면 매매가격이 곧 증여가액이 되지만, 2년 1일이 지나는 시점부터는 매매가를 그대로 증여가액으로 보기 애매하다고 판단한다”며 “이 때문에 그때부터는 공시지가 또는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증여가액을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통상 공시지가가 일반 거래가의 6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이 가구는 지분을 쪼개서 2년 후 증여를 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절세효과를 본 것이다.

이 같은 절세공식(?)을 따른 가구 수는 올해 9월까지 총 9가구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정책위원인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방법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합법적인 선에서 최대한의 절세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부유층과 세무상담을 많이 해 본 한 세무사는 “이런 절세법은 일반 시민들은 잘 생각해 내지 못하는 방법으로, 세법 등 전문지식을 접하기 쉬운 부유층일수록 ‘재산 지키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이인서 인턴기자 wooril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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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초등생에 10일간 1억3000만원 결제 유도..'도 넘은 BJ앱'

김현종 입력 2020.11.02. 01:00 수정 2020.11.02. 08:28 댓글 1578

 

온라인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 '하쿠나라이브' 메인 이미지. 하쿠나라이브의 모회사는 하이퍼커넥트로, 누적 이용객이 1,000만명에 달한다. 하쿠나라이브 제공

"초등학생 딸아이가 10일 만에 약 1억3,000만원을 결제하는 동안 어떤 통제 장치도 없었어요. 그러면서 환불도 안된다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1일 만난 서울 은평구 주민 김모(46)씨는 지난 8월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김씨의 딸 김모(11)양이 온라인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 '하쿠나라이브'에 8월 3일부터 12일까지 약 1억3,000만원을 결제한 사실을 알고 난 뒤 지옥 같은 시간이나 다름 없었다고 했다.

문제의 앱은 14세 이상 가입자라면 별다른 제약 없이 방송을 할 수 있는 온라인 개인 방송 플랫폼으로, '아프리카TV' 등과 유사한 구조다. 김양은 시각장애(반맹 판정)와 뇌병변장애(중증2급)를 갖고 있는 어머니 남모(48)씨의 휴대폰으로 앱을 사용했다. 가입에 사용한 계정은 SNS에서 임의로 만든 것으로, 15세로 설정돼있다. 다른 SNS 계정을 통해 로그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11세인 김양이 앱을 사용하는 데 어떤 지장도 없었다. 돈은 남씨의 휴대폰과 연동돼있던 남씨 통장에서 빠져나갔는데, 지난달 전셋집 이사를 위해 모아둔 보증금이었다. 피해 금액 중 상당액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고, 김양은 사건의 충격으로 학교 상담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A씨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하쿠나라이브 방송 실황 사진. A씨로 보이는 남성이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여성 시청자와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A씨 SNS 캡처


35세 호스트가 미성년자를 “회장님” 대우

김양이 처음 소셜 앱을 알게 된 건 지난해 8월이다. 온라인 광고를 통해서 접했지만 초기엔 앱을 자주 이용하진 않았다. 그러나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를 못 가게 되고, 집에있는 남씨가 스스로 거동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앱에 빠져들게 됐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양을 사로잡은 건 35세로 알려진 호스트 A씨(닉네임 '원빈')와 그의 팀이었다. 이 앱에선 개인 방송을 하는 호스트들이 5명까지 뭉쳐 하나의 '팀'을 꾸릴 수 있는데, 이들은 후원금을 공유하고 함께 방송을 하는 경제공동체가 된다. A씨가 팀장을 맡은 팀은 당시 앱에서 영향력이 가장 컸다. 김씨는 "A씨의 팀은 앱 내에서 아이돌에 버금가는 선망을 받았다"며 "이들이 후원금을 내는 다른 미성년자들과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딸 아이도 '함께 하고싶다'는 열망에 휩싸이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쿠나라이브에서 운영되는 팀의 사진. A씨의 팀과는 관련 없다. A씨는 현재 팀이름을 바꿔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쿠나라이브 제공

A씨의 팀은 시청자들의 선망을 이용해 더 많은 후원금을 내도록 길들이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호스트 중 가장 많이 후원한 사람들을 순서대로 '회장님' '부회장님' '사장님'으로 불러 우대했고, 가장 많은 후원금을 낸 사람이 원하는 게임을 방송에서 하는 경매를 열기도 했다. 또 후원금을 많이 낸 사람들만 따로 카카오톡 대화방이나, 앱 내의 '프라이빗방'(비밀번호를 설정한 비밀방)에 초대하기도 했다. 실제 김양이 1억 4,000만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내자 A씨는 김양을 "회장님 되겠다"며 추켜세웠고, 팀원들도 김양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물론 A씨도, A씨의 팀원들도 김양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관련기사: 미성년자 성착취 정황까지…BJ앱서 무슨 일이)

김씨가 지난 8월 13일 하쿠나라이브 측으로부터 받은 환불 거부 답변. 김씨는 전날 이 앱에 미성년자 자녀가 1억3,000여만원을 결제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며 환불을 요구했지만 업체로부터 '정책에 의해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짧은 답변만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내부 정책은 그 자체로 약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하쿠나라이브 제공


후원금 공유하는 사업자, 환불은 나몰라라

당장 전세금이 날아가 길바닥에 나앉게 된 김씨는 8월 12일부터 하쿠나라이브 측에 환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쿠나라이브 측은 자사 정책을 이유로 “환불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플랫폼 기업으로서 호스트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환불을 진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해명했다. 하쿠나라이브는 시청자가 보낸 후원금의 절반 가까이를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정보통신사업자를 규제하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김씨가 환불을 요구할 법규 자체가 없다. 방통위 관계자는 "아이가 자기 휴대폰을 사용했으면 그렇게 많은 금액을 결제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어머니가 아이에게 휴대폰을 준 것이므로 단지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후원금을 받은 호스트 35명을 접촉해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 약속을 받아내야 했다. 그러나 김씨의 호소에도 A씨는 환불에 응하지 않아 약 4,63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이에 A씨는 지난 9월 25일 하쿠나라이브를 상대로 컨텐츠분쟁조정위원회의 분쟁조정을 신청까지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유사한 피해가 확산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앱 과금과 관련한 미성년자 환불 관련 사건 접수는 최근 4년 사이 3,600건에 달한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한 올해는 9월 말 기준 1,587건으로 지난해 전체(813건)의 2배에 달한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가 스스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상황에서 과금을 유도하고, 심지어 미성년자의 계정에도 어떤 제재가 없었던 점에서 결코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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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시간]㊽ 정경심 1년 재판, 끝까지 '표창장 공방'..法 "전문가가 웃을지도"

최유경 입력 2020.11.02. 07:01 댓글 1859개



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호인, 2019.12.31.)

지난해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법정에 당도했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법원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 "해보니 된다" vs "해봐도 안 된다"…초유의 '표창장 반대 시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정경심 교수에 대한 33번째 공판을 열었습니다. 지난번 재판이 '검찰의 시간'이었다면, 정 교수 측 서증조사가 진행된 이 날은 '변호인의 시간'이었는데요.

검찰이 서증조사에서 프린터와 상장 용지를 직접 들고 와 '동양대 표창장'을 제작하는 시연을 보였던 만큼, 변호인도 오전 시간에는 표창장 의혹을 반박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해보니까 쉽게 된다"는 검찰 말에, "열심히 해봐도 영 안 된다"는 주장으로 맞선 셈이죠.

우선 문제가 된 건 '글자의 농도'입니다. 검찰이 한글 서식 파일에 직인을 오려 붙여 만든 표창장은, 맨눈으로 봐도 실제 서울대·부산대에 제출된 조민 씨의 표창장과는 차이가 있다고 변호인은 주장했습니다. 검찰이 만든 표창장은 상장 본문 부분이 더 진한데, 실제로 입시에 제출된 표창장은 하단의 최성해 총장 이름 부분이 더 진한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표창장 완성본이 담긴 PDF 파일은 어떨까요? 변호인은 이 파일을 그대로 동양대 상장 용지에 인쇄할 경우, 상단의 상장 일련번호와 동양대 마크가 겹치고 하단의 은박 부분과 총장 이름 부분이 겹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양식이 완전히 망가져, 제출할 수 없는 표창장이 되어버린다는 거죠.

이 밖에도 총장직인 jpg 파일의 품질값이 검찰 주장과 다르고, 상장 양식 하단의 노란 줄을 지우는 문제가 남는다는 등의 설명도 이어갔습니다.

결국 정 교수 PC에서 발견된 상장 서식 '한글 파일'을 수정해서 인쇄해도, 표창장 완성본이 담긴 'PDF 파일'을 그대로 뽑아도 검찰이 주장한 것처럼 표창장을 위조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변호인의 주장입니다. 완벽한 표창장을 위해선 정 교수가 무려 '10단계'를 거쳐야 한다며 이를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했습니다.


■ '나노 분석'에 '포렌식 위조' 주장…재판부 "진짜 전문가가 웃을 수도"

변호인의 이른바 '나노 분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웬만한 컴퓨터 전문가 못지 않게 탄탄한 준비를 해온 변호인단은 'MAC 주소', '고정 IP·유동 IP', 'RSS 피드', 'DHCP 서버' 등 일반인에게 생소한 개념까지 제시하며 결론적으로 정 교수의 PC 사용내역을 분석한 대검찰청의 포렌식 보고서가 위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IP 대역을 분석해도 검찰이 주장한 2013년 6월 '위조데이'에 정 교수 컴퓨터가 서울 방배동 자택에 있었던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든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자동으로 실행되는 프로그램을 마치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연결했을 때 실행되는 동기화 프로그램인 것처럼 포렌식보고서에 기술해 정 교수에게 치명적인 증거를 들이댔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변호인은 포렌식보고서를 두고 "객관적으로 과학과 기술을 다루는 전문 감정인의 진술서가 아니라 정 교수에 대한 '유죄 심증'을 토대로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포렌식보고서 작성자에게 '허위공문서작성죄'를 적용해 책임을 물을지도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강하게 반발했고, 변호인을 향해 "기억력이 떨어지는 모양인데", "문해력이 좀 떨어지는 거 아니냐"는 등 격한 표현을 썼습니다. 재판부가 나서서 그런 표현은 삼가달라며 주의를 줬지만 언쟁은 계속됐고, 변호인 역시 "이런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검사님이 맞느냐"며 맞받아쳤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재판부, 결국 촌철살인 같은 한 마디를 꺼냈습니다. "진짜 전문가들이 보고 웃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양측 모두 전문가의 인증을 받은 정확한 '확인서'를 2주 안에 내달라고 했습니다. 대검찰청 소속 직원이나 동양대 교수 같은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객관적인 제3자여야 한다고도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 정 교수 측 김칠준 변호사는 기자를 만나 "변호인단의 조지훈 변호사가 컴퓨터에 관한 한 가장 확실한 전문가이고 대가"라며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세월호 사건 때도 포렌식을 가지고 무수히 싸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검찰이 과연 전문가 의견을 낼 수 있을까, 전문가라는 이름을 걸고 검찰 측 의견을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저희는 못할 거라 본다"고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 '無에서 有'가 아닌 '주관적 평가'…사법적 판단 가능할까?

이렇게 표창장 공방은 일단락되고, 다시 조민 씨의 '7대 스펙'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난 공판에서 검찰은 정 교수가 딸의 입시를 위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것이라며, 단순한 과장이나 부풀리기 수준이 아니라고 강조했었죠.

그런데 이날 변호인은 180도 다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이 사건은 '정량평가'를 위조하거나 아예 없는 사실을 새로 꾸며낸 게 아니라, 주관적인 '정성평가'의 영역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진위의 잣대를 들이밀고 사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정량적으로 평가되는 성적을 위조하였다거나 허위로 제출한 사안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 사건은 평가자의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정성평가가 허위라는 점을 전제로 합니다. 1년 가까이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이 사건의 변호인에겐 이런 주관적 평가가 진위판단의 대상이 되기는 하는지, 평가자의 주관에 사법적 평가가 가능한 것인지 여전히 근본적 의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이 변호인의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 정경심 교수 측 박재형 변호사 서증조사 中


검찰은 그동안 조 씨의 ▲동양대 총장 표창장, ▲동양대 보조연구원 경력, ▲서울대 인턴 경력, ▲KIST 인턴 경력, ▲공주대 인턴 경력, ▲단국대 인턴 경력, ▲부산 호텔 인턴 경력을 두고 '7대 허위스펙'이라 불러왔는데, 변호인은 이 모든 경력에 조 씨가 어느 정도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설령 평가자가 그 활동을 일부 과장하거나 후하게 봐줬다고 해도, 이걸 두고 '위법'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거죠.

특히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서 조 씨가 내세운 '핵심 스펙'은 검찰이 짚은 7대 경력이 아니라, 의사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높은 '의료 봉사' 경력이었다고 거듭 설명했습니다. 서울대 의전원의 경우, 공소사실과 관련된 조 씨의 증빙서류를 다 지워도 35개 가운데 26개가 남는다고 덧붙였습니다.

■ 작성자 'CHO'의 비밀…'영어 에세이 첨삭' 누가 했나?

정 교수 측은 이날 서증조사 직전 70여 개의 증거를 새로 제출했는데요. 검찰은 재판이 거의 끝날 무렵, 그것도 이미 '검찰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 전혀 못 보던 증거를 무더기로 낸 건 매우 부적절하다며 반발했습니다. 결국 재판 말미에 약 20분간 추가 증거에 대한 의견을 밝힐 기회를 얻었죠.

이때 논쟁거리가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작성자 'CHO'입니다. 정 교수 측은 동양대 인문학 영재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의 영어 에세이 첨삭 파일의 속성을 보면 작성자가 'CHO'(조)로 돼있는 점을 들어, 딸 조민 씨가 튜터로서 자신의 노트북을 이용해 직접 첨삭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동양대 표창장의 근거가 되는 활동이란 거죠.


하지만 검찰은 단순히 이 사실만으로 첨삭 파일을 조 씨가 작성했다고 볼 순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가족 공용 노트북'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란 건데요. 해당 PC에서 발견된 조국 전 장관의 이력서나 통합진보당 관련 PPT 등 조 전 장관이 작성한 게 분명해 보이는 문건들도 작성자가 'CHO'로 돼 있다는 겁니다. 또 정 교수의 사용자 계정으로 보이는 'USER'가 작성했더라도 이를 다시 'CHO' 계정의 컴퓨터에 저장하면, 곧바로 작성자가 CHO로 바뀐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은 "가족 공용 노트북 같은데, 이건 아마 조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 당일 김경록 PB가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정 교수가 쓰고 있던 것을 목격한 그 노트북으로 보인다"며 "조민 씨가 튜터 활동을 안 했다는 검사의 공소 사실을 조금도 탄핵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교수 측 김칠준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CHO' 작성자는 조국 전 장관일 수도 있고 조민 씨일 수도 있고 정 교수일 수도 있다"며 "'이럴 수도 있지 않으냐'라고 하는 것은 검사가 할 말이 아니고 '그럼에도 명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검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 시작부터 잘못된 '위법 수집 증거'…판 흔드는 뇌관 될까?

이날 변호인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대해서도 비중을 두고 언급했습니다. 서증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적법한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요. 지난 7월 법률신문에 기고된 글을 인용하며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이 무시되거나 희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죠.

"실체적 진실 발견은 사법절차에서 유일한 가치도 아니고 지고의 가치도 아니다. 내면적 양심의 절대적 자유, 사적 자치와 자기 책임의 원리, 청문권과 변론권, 자기부죄 금지와 진술거부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다른 가치가 엄연히 존재하고, 이들 가치와 실체적 진실 발견이 충돌할 때 후자는 양보해야 한다. [...] 그러나 법원이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다른 가치를 희생하는 순간, 당사자는 절차의 주체가 아니라 진실 발견의 객체로 전락하고, 당사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여러 장치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 실체적 진실이 절차 너머에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적법절차 내에서만 진실이다." 
- 2020.07.20. 법률신문 오피니언 <실체적 진실> 인용


주로 지적된 건 동양대에서 정 교수 PC를 임의제출 방식으로 확보한 점, 그리고 정 교수 공소사실과 무관한 별건 혐의가 적시된 압수수색 영장으로 정 교수 동생의 WFM 실물증권과 정 교수 지인들의 계좌거래내역 등을 확보한 부분입니다. 일부 압수수색 영장에는 정 교수가 피의자로 명시조차 되지 않았다고 변호인은 강조했습니다.

우선 '표창장 위조 의혹'의 중요 증거가 발견된 PC가 위법 수집 증거로 인정된다면, 검찰의 혐의 입증에 큰 차질이 빚어지겠죠. 또 별건 압수수색 영장으로 확보된 부당한 증거라는 점이 받아들여진다면, 관련 참고인·증인들의 진술도 위법 수집 증거에 근거한 '2차 증거'로 증거능력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과연 재판부가 어디까지를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인정할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 마지막 재판 방청은 '추첨'…정경심도 입장 밝힌다

이렇게 1년간 이어져 온 정 교수에 대한 1심 재판은, 11월 5일 34번째 공판을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재판부는 마지막 재판과 선고 날에는 방청권을 '추첨' 방식으로 나눠주기로 했는데요. 직접 재판을 보고 싶으신 분은 재판 전날 오후 2시부터 3시 사이에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1층 청심홀에 방문해 응모하면 됩니다. 일반인에겐 본 법정과 중계 법정을 합쳐 45자리가 배정됐습니다.

오는 5일 결심 공판에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진 검찰의 최종 변론과 구형 의견을, 오후 3시 반부턴 변호인의 최종 변론과 정 교수의 최후 진술을 듣게 됩니다. 피고인 신문 절차가 생략된 탓에, 정 교수가 직접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자리가 되겠죠. 검찰이 정 교수에 대해 어떤 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할지도 관심사입니다. [법원의 시간]도 마지막까지 재판 내용을 꼼꼼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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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많이 썼는데 환급액 '0원' 왜그런가요?

 

박기락 기자 입력 2020.11.01. 06:00 댓글 404

 

[연말정산 팁]신용카드 공제 총급여액 25% 이상 써야 받아
국세청, '절세전략' 미리보기 제공

© News1 DB

(세종=뉴스1) 박기락 기자 = #직장동료인 A씨와 B씨는 올 들어 각각 월 200만원씩 연간 2400만원을 신용카드로 사용했다. 연말정산을 통해 B씨는 33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았지만 A씨의 소득공제액은 '0'원 이었다. 왜 그런걸까.

이는 두 사람의 총금여액 격차 때문이다. A씨는 1억원의 연봉을, B씨는 연 4000만원을 총금여액으로 받는다. A씨의 신용카드 사용액 '2400만원'은 공제 기준인 총금여액의 25%에 미치지 못한 반면 B씨는 연봉의 절반 이상을 신용카드로 사용한 결과다.

여기에 B씨는 지난해 기준대로라면 소득공제금액이 210만원이지만 정부가 올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소비진작 정책으로 신용카드의 소득공제율과 한도를 올리면서 소득공제 최대한도액에 해당하는 330만원을 적용받는 이득까지 누릴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국세청 연말정산 미리보기 서비스를 실시하고 1~9월까지 신용카드 등 사용내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정부가 이처럼 신용카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연말까지 어떤 방식으로 얼마를 지출해야 소득공제를 유리하게 받을 수 있을지 개인의 판단을 돕겠다는 의도에서다.

올해는 정부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높여 잡았다. 이전까지 15%에 고정됐던 신용카드 공제액은 정부 방침에 따라 월별로 30~80%까지 늘었다. 최대 한도도 지난해 300만원에서 330만원(총급여 7000만원이하)으로 상향했다.

총급여 기준별로 보면 7000만원 이하는 300만원에서 330만원으로 공제 한도액이 30만원 늘었으며 7000만~1억2000만원은 250만원에서 280만원으로 증가했다. 1억2000만원 초과 고소득자의 카드 소득공제 한도액도 200만원에서 230만원으로 늘었다.

그럼에도 신용카드 공제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앞서 A씨와 같이 사용금액이 최저한도인 총급여액의 25%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또는 신용카드 공제를 받지 않아도 다른 항목의 공제금액으로 결정세액이 없는 경우다. 이처럼 결정세액이 없는 경우 사용금액이 아무리 많더라도 신용카드 공제를 받을 수 없다.

이에 국세청 연말정산 미리보기 서비스에서는 올해 총급여 예상액과 부양가족 정보를 이용해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액을 계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금액으로 줄어드는 세액(결정세액 감소)을 2019년 귀속 근로소득지급명세서의 공제금액을 활용해 미리 계산할 수 있도록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미리보기 서비스를 이용하면) 9월까지의 신용카드 등 사용내역이 사전에 제공돼 추가 사용(예정)금액을 입력하면 예상세액을 미리 계산할 수 있다"며 "신용카드 사용금액을 미리 확인해 본인에게 맞는 절세전략을 세우길 바란다"고 밝혔다.

kirock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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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조종사 양성 이후 65년만에 최초 여군 헬기조종사 탄생

 

최소망 기자 입력 2020.11.01. 09:43 수정 2020.11.01. 10:05 댓글 262

 

해병대 여군 최초로 헬기조종사로 임무를 수행하는_조상아 대위가 해병대1사단 제1항공대대 마린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해병대 사령부 제공)© 뉴스1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해병대가 조종사를 양성하기 시작한 1955년 이후 65년만에 최초의 여군 헬기 조종사를 배출했다.

1일 해병대사령부에 따르면 해병대 최초 여군 헬기 조종사 조상아 대위(27·학군 62기)는 지난 10월 23일 교육과정 수료 이후 현재 1사단 1항공대대에 배치돼 마린온(MUH-1) 조종사로서 임무수행에 요구되는 추가 교육을 이수한 이후 본격적으로 작전임무에 투입된다.

조 대위는 평소 해병대의 강인한 '무적해병' 정신과 해병대 특유의 '전우애'에 대한 동경심을 계기로 2017년 임관해 해병대 장교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조 대위는 고등학교 때부터 항공기 조종사의 꿈을 갖고 임관 후 포항 1사단에서 병기탄약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상륙훈련에 참가하면서 항공전력이 상륙군 임무 수행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매력을 느껴왔던 것이 올해 항공장교로 지원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항공장교로 선발된 이후 조 대위는 해군 6전단 609교육훈련전대에서 기본과정과 고등과정으로 구성된 약 9개월의 조종사 양성과정을 마치고 조종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교육과정에서는 이·착륙, 제자리비행 등 약 80여 시간의 비행훈련과 함께 비행원리, 항공관제, 항공기상 등 조종사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지식을 전문 교관들로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다.

조 대위는 "생소한 항공용어와 연일 강도 높게 진행되는 이론교육 및 비행훈련이 다소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돼 해병대 최고의 헬기 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육과정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의 길을 걷고 있는 딸에 대한 걱정보다 늘 응원해주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면서 "해병대 최초 여군 헬기 조종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부여되는 어떠한 임무라도 완수할 수 있도록 요구되는 역량을 갖춘 해병대 조종사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해병대는 항공단 창설을 위해 매년 조종사를 비롯해 정비사·관제사 등을 양성하고 있으며 항공단을 통해 입체고속상륙작전이 가능한 공지기동 해병대를 건설해 나갈 계획이다.

somangcho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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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온다면서 왜 여기와 있어"..'최대 7000명 암매장' 골령골 가보니

박동해 기자 입력 2020.11.01. 08:31 댓글 659개


최소 1800명에서 7000명 매장..한국전쟁 당시 최대 학살지
유해발굴에도 신원 특정 어려워..사업 지속할 기관 만들어야

지난 30일 대전 골령골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지 발굴현장에서 발견된 희생자의 유해(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공)© 뉴스1

(대전=뉴스1) 박동해 기자 = "휴가를 마치고 가시면서 나한티 손을 흔든 거시 엊그제 같흔디 벌써 70년이 되야쓰"

1948년 10월 여덞살 딸은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는 아버지를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금방 돌아온다"고 이야기했던 아버지는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72년이 흐른 지금 딸은 여든살 할매가 됐다. "온다믄서 왜 안 오고 여와 있어. 딸이 왔는데 왜 대답을 모대. "70여년이 흐른 지금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박귀덕씨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귀덕씨의 아버지 고(故) 박정환씨 당시 여수 14연대 소속 헌병이었다. 여순사건이 발발한 날 광주의 집에 외출 중이었던 정환씨는 복귀 중 광주시내에서 경찰에게 연행됐다. 재판을 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러다 곧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전쟁 초기 한국 군·경은 후퇴를 하면서 대전형무소에 복역 중인 재소자 상당수를 대전 산내골령골로 끌고 가 학살했다.

집단으로 학살된 사람들 속에 정환씨도 있었다. 귀덕씨는 아버지의 재판 기록을 확인하려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문서는 남아있지 않았다. 가족들은 정환씨가 여순사건과 관련된 14연대 소속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끌려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30일 방문한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에서는 25일째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발굴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작업은 오전 8시30분부터 시작됐다. 앞서 4일간의 발굴 휴식 기간 동안 노출된 유골들이 햇빛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덮어두었던 천막을 걷어내자 지난 발굴과정에서 발견된 유골들이 드러났다. 얽히고설킨 채 흙 속에 파묻힌 뼈들의 모습은 마치 나무뿌리 같았다. 겹겹이 쌓인 뼈들은 이곳이 집단적인 학살 현장이었음을 방증했다.

발굴작업을 맡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단원들은 묵묵히 70년간 쌓여온 세월을 훑어 내려갔다. 발굴은 흙과의 전쟁이었다 호미로 파낸 흙은 쓰레받이로 퍼 올려 고무 양동이에 담아내는데 파 올린 흙이 다시 산처럼 쌓였다. 발굴단의 호미와 솔이 지나간 자리에는 곧 부서진 뼈조각부터 시작해 허벅지 뼈, 두개골 등이 모습을 나타냈다. 학살 당시 사용된 M1, 카빈 소총의 탄피도 발견됐다.

30일 대전 골령골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지 발굴현장에서 유골과 함께 단추, 탄피 등이 발견됐다.(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공) © 뉴스1

한국전쟁 당시의 각종 문헌에 따르면 대전 골령골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0년 6월28일부터 7월17일까지 최소 1800여명에서 최대 70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이 사실이라면 골령골은 한국전쟁 최대의 민간인 학살지다.

학살 대상자들은 대전형무소에 수감되 있던 재소자와 예비 검속된 보도연맹원들이었다. 이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살해됐다.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출범하자 유족들이 진실규명을 신청해 조사가 이뤄졌고 골령골에서 한국전쟁 직후 정부와 국군이 남하하던 1950년 6월말부터 7월초까지 대전형무소 재소자들에 대한 3차례에 학살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한국전쟁 중 대전형무소에서는 열악한 환경과 식량·의약품 부족, 고문 등으로 사망하는 재소자가 속출했다. 특히 1.4 후퇴 시기 제11사단이 대전에서 후퇴하면서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 받은 대전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166명이 골령골에서 학살됐다. 사형수들 중에는 억울한 누명으로 사형판결을 받아 향후 재심으로 무죄를 인정받은 이들도 있었다.

진화위는 진상규명을 위해 2007년 6월25일부터 9월22일까지 약 70일에 걸쳐 골령골에 대한 유해발굴을 실시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유해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토지소유주와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굴이 추진되지 못했고 일부 유해매장 추정 장소에서 34구의 유해만 발굴할 수 있었다 .

2009년 진화위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유해발굴과 안장을 위한 건의'를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했지만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유해발굴은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2014년부터 민간차원의 발굴작업을 진행했다.

2015년 2월 대전 골령골에 대한 민간 차원의 시범 발굴 작업이 개시돼 20여구의 유해가 출토됐다. 하지만 당시 발굴은 3.5m*5m의 한정된 장소에서 10여일 정도 진행된 시범발굴로 확장 발굴이 이뤄지지 못했다. 발굴단은 아쉬운 마음만 담기고 흙을 다시 덮어야 했다.

다행히 정부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시설' 조성 부지로 대전 산내 골령골을 선정하면서 이곳의 유해발굴이 올해부터 재개됐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2월부터 약 400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토지매입에 나섰으며 9월25일부터 대전 동구청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공동주최로 발굴 작업이 재개됐다. 현재까지 약 한달여 동안의 발굴 기간 동안 80여구의 유골이 확인됐다.

다만, 발굴을 마친다고 해도 신원을 특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는 형무소 재소자들이라 신원을 특정할 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마저도 유해가 뒤엉킨 채 발굴돼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30일 박선주 충북대학교 명예교수(오른쪽)가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를 조사하고 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공)© 뉴스1

피해 유족들의 DNA를 등록해 유전자 대조 방식을 쓴다면 작은 유해라도 가족을 찾을 수 있지만 비용과 시간의 한계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 억울한 죽음이었더라도 '좌익활동을 했다'는 꼬리표에 일부 유족들이 유해를 찾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신원을 특정하는 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대전 골령골에서도 유족이 유해를 특정해 수습한 건은 1건도 없었다.

공동조사단에 참여한 안경호 49통일재단사무국장은 "이번 발굴의 가장 첫번째 목적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라며 "시민들이 스스로 발굴작업에 참여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인식하는 인권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굴 현장을 찾았던 전숙자 대전산내사건 희생자유족회장은 "이렇게 (발굴 현장을) 열어보니까 몇년 전에 구제역 사건 때 구덩이를 파고 (돼지들을) 들이붓는 것 같이 사람들을 넣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 너무 비참해서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라면서도 이제라도 발굴이 재개되는 것에 대해 "하늘이 열린 것 같이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공동조사단은 오는 위령시설의 공사가 시작되는 2021년까지 발굴을 계속할 예정이다. 지난 5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12월쯤 2기 진화위가 출범할 예정이다. 진화위 활동 재개로 민간인 학살지 유해발굴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법안에 유해발굴을 명시하지 않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동조사단 단장을 맡은 박선주 충북대학교 명예교수는 "2기 법에 유해발굴이라는 것이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아 법이 미비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향후 유해 발굴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되는 조직의 설치와 인원·예산의 투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박 교수는 "1기 진화위 때 168개 지역의 유해 매장 추정지가 나왔고 집단 학살지역 분명하다는 곳이 30여 지역인데 그중에 11곳 밖에 발굴을 못 했다"라며 "그 160여개 지역도 조사를 다 해봐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체계화된 조작과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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