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취업 축하받지만…곧 해고될 시한부 같습니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8. 오후 5:02 최종수정 2021.10.28. 오후 6:10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끝

에필로그 - 어느 공기업 사원의 말하지 못한 비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이 스마트폰으로 업무 지시를 기다리는 모습을 대역배우를 통해 재연했다. 최재원 사진작가

20대 이정우(가명) 씨는 지난 여름 누구나 알 만한 공기업에 합격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오히려 우울감에 젖어 있다. “부럽다. 그런 안정적인 공기업 들어가서.” 주변의 축하에 애써 웃어 보이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곧 잘리게 될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전과자가 되게 생겼으니까요.”

그에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친구, 직장 동료는 물론 가족들마저 모르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어요. 커서 공직생활을 할 거라고 기대했죠. 하지만 한순간 범죄자가 됐어요.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가능하더라고요.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씨는 직업군인으로 입대해 4년을 복무했다. 사회에 나가 공적 영역에서 근무하고 싶단 포부를 품었다. 지난해 말 군복을 벗고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틈틈이 공기업에도 원서를 넣었다. 구직은 만만치 않았다. 합격도 기약은 없었다. 모아뒀던 생활비가 빠르게 줄어들자 아르바이트(알바)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올해 봄 알바천국 채용공고를 훑다가 수납직원을 구한다는 ‘태은대부’라는 곳의 공고를 봤다. 채용 담당자는 “고객들에게 대출을 알선해주는 회사다. 당신의 업무는 고객들을 만나 수수료를 받아오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대부업체라 경계심은 들었지만 검색해보니 서울 양천구에 그런 상호의 회사가 존재했다. 알바천국에 적힌 회사 주소와 같았다.

일을 하기로 했다. 근무 첫날, 영등포역으로 나와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거기서 6시간을 기다린 끝에 경기도의 한 도시로 이동하란 업무가 떨어졌다. 거기서 고객 한 명을 만나 대금(800만원)을 받았고 회사에서 알려준 대로 은행 ATM으로 무통장 입금했다. 그리고 일을 더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당으로 20만원을 받았다.

“첫날 퇴근하려는데 추가 건을 진행할 수 있겠냐더라고요.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거절했습니다. 내적갈등을 했어요. 큰돈이 오간다는 점이 부담스러웠고 실제 일하는 시간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서 차라리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당일치기 알바는 이후 기억에서 잊혔다. 하지만 한 달 뒤 족쇄가 돼 돌아왔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가담했다”며 출석하라고 했다.

“조사받으면서 수사관님이 죄명을 ‘사기죄’로 적는 걸 보는데 허망했어요. 어린 나이지만 직업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는데 사기라니….”

권해원 디자이너

이씨는 헤럴드경제가 ‘인간 대포통장’ 기획 보도를 준비하며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이다.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다. 심부름꾼으로 쓰이고, 꼬리 자르기를 당했다. 보이스피싱임을 알지 못했다고 항변해도 재판에 넘겨지면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징역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연재기사에 나온 분들 보면 그저 안쓰러워요. 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 상황이 절망적이에요. 저는 하루 알바로 끝냈지만 길게 할 수도 있었어요. 어쩌면 그분들처럼 될 수도 있었겠죠.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한 명의 피해자만 남긴 이씨는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취재팀이 만난 피의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최대한 빨리 체포되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다. 피해자와 피해금이 많다면 형량은 더 높아진다. 형사처벌 전력이 전혀 없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은 ‘강력처벌’을 내세운다.

피해자가 한 명이고 피해액이 비교적 적다. 이씨는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 피해자와 합의할 계획이다. 재판부의 선처를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엔 ‘언제라도 전과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웅크리고 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취업, 연애 걱정을 늘어놓으며 속상해하지만 공감이 안 된다. 검찰은 이씨의 사건을 ‘보완 수사’를 요구하며 경찰로 다시 내려보낸 상태다.

“공기업에 합격했는데 한동안 아무한테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했어요. 동료들의 자신감과 씩씩함을 보면 부럽습니다. 집행유예라도 받게 되는 날엔 해고될 시한부처럼 느껴져요. ‘알고 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일당 10~20만원 벌자고 꿈과 희망을 버리는 선택을 누가 하겠어요.”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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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구인’ 현수막, 길거리에 대놓고 걸렸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7. 오후 5:03 최종수정 2021.10.27. 오후 5:47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③

거미줄처럼 퍼진 ‘미끼 구인광고’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노상에 걸려 있던 현수막.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문구가 적혔지만 실제론 보이스피싱 단순 가담자를 물색하는 허위 정보다. [독자 강철수(가명) 씨 제공]

지난 7일 천안 서북구 성정동을 지나던 강철수(가명·27) 씨는 눈을 의심했다. ‘서류 대행·관공서 민원대행·채권대행 아르바이트 초보자 환영’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대로변에 버젓이 걸려 있었던 것. 직감적으로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모집하는 위장 광고라고 느꼈다. 그는 알바를 구하다가 현금수금책으로 엮여 재판을 앞둔 상황이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강씨는 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연락했다. ‘이준호 팀장’이란 사람은 “부실 채권을 매입하는 대행 전문업체”라며 “금융감독원에 소송이 걸려 제1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려운 고객들이 방문을 요청하면 찾아가는 업무”라며 복잡한 단어를 섞어가며 소개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를 만나 현금을 수거할 심부름꾼을 모집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그는 곧장 천안 내 경찰서 3곳에 전화를 걸어 제보했으나 “우리 관할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구청에 민원을 접수하자 하루 만에 현수막은 철거됐다. 강씨는 “며칠 동안 합법적인 구인 공고라고 여겨 연락한 사람들이 꼼짝없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을 것을 생각하니 착잡하다”고 했다.

대면 편취 보이스피싱이 지금 이 순간도 기승을 부리지만 ‘미끼’ 알바 모집공고가 여전히 일상에서 활개 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문자·현수막·생활정보지까지 구직자를 유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이미 침투했다. ‘채권 대행’ ‘법률사무소 외근직’ ‘부동산경매 업무’ 등 그럴듯한 회사를 앞세워 취업이 절박한 구직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독자 강철수 씨가 불법 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하니 자신을 채용(인사) 담당자라고 소개한 이가 업무를 설명하는 내용. 대출, 상환 등 금융에 관해 잘 모르는 구직자일수록 속기 쉽다.

김장범 변호사는 “현금수거책 대다수는 ‘고액 알바’를 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자신이 제공한 노동의 대가로 보수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검·경에선) 비교적 수당이 높다는 이유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것’이라고 간주한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모집 수법은 갈수록 감시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구직자들이 범행에 엮이는 통로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공개적으로 올라온 알바 공고였다.

그러나 구인·구직 사업자들이 ‘채권 추심’ ‘수금 알바’ 등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를 검수해 차단하기 시작하자 수법을 바꿨다. 구직자가 지원서를 제출하길 기다리는 대신, 구직자가 사전에 등록해둔 ‘공개 이력서’를 보고 문자나 메신저로 연락해 포섭한다. 이렇게 하면 구인·구직 사이트의 눈을 피할 수 있다.

실제로 네이버 ‘보이스피싱 피의자 정보공유 카페’에는 구인·구직 사이트 공개 이력서를 통해 일을 시작해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다는 글들이 매일 새로 게재된다. ‘백화점 사무보조’ ‘여행업체 외근직’ ‘법무법인 사무직’ ‘대환대출 업무’ ‘부동산 외근직’ 등 미끼로 제시한 업무도 가지각색이다. 회사의 상호와 주소는 물론 사업자등록번호까지 허위로 기재하거나 도용하는 방법으로 치밀하게 접근하기 때문에 구직자로선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네이버 밴드 등 SNS도 단속이 느슨한 까닭에 구직자를 끌어들이는 창구가 된다.

[123RF]

사업자들도 이런 논란을 모르는 건 아니다. ‘보이스피싱 현금전달책 알바’에 주의하라는 공지를 올리고 인공지능(AI)기술을 바탕으로 보이스피싱 광고 키워드를 검수하고 있다. 그런데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수법을 파악해 걸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알바천국 관계자는 “기업 회원으로 등록한 회사만 구직자의 오픈 이력서를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사업자등록번호, 실제 영업 여부, 채용담당자 연락처 등 요구해 인증한다”며 “그러나 민간기업으로서 (보피 조직이) 사업자등록번호를 도용해 악용하는 것까지 수사할 권한은 없어 더 확실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미끼 공고가 활개 치는 다른 대형 사업자인 알바몬은 취재팀이 입장을 물었으나 반응하지 않았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인터뷰]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3부]

① 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8.8%가 ‘빨간줄’

② [인터뷰] “정부가 보이스피싱 전과자를 양성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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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보이스피싱 전과자를 양성하는 겁니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6. 오후 6:02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 ②

이병찬 파트너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인터뷰

이병찬 변호사. 그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붙잡힌 일반인들을 강하게 처벌하는 형사정책적 기조를 두고 “국가가 범죄자를 양산한다”고 말했다. 최재원 사진작가

보이스피싱 단순 조력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여 다수의 국내 송금·인출책 범죄에 대한 경각심 강화

2020년 6월 관계부처 합동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방안’ 中

조직의 총책에 대하여는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고 단순 가담자에 대하여도 중형 구형

2021년 7월 대검찰청 보도자료 中



정부와 수사기관의 보이스피싱 기조를 한 줄 요약하면 이렇다. ‘가담 정도를 막론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서 경각심을 높인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판을 짜고, 점조직을 운영하며 피해자를 낚는 총책이야 잡기만 한다면 강력한 처벌이 당연하다.

다만 감쪽 같은 가짜 알바공고에 속아 범죄에 이용된 이들도 있다. 헤럴드경제가 3부에 걸쳐 소개한 ‘인간 대포통장’(현금수거책)들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법조인, 법학자 가운데엔 “일회용 도구로 쓰이는 수거책, 전달책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건 주범 억제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병찬 변호사는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는 내는 이다. “국가가 범죄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이 변호사를 만나 그 근거를 들어봤다.

“시쳇말로 ‘어그로’를 끄려는 게 아닙니다. 의뢰인을 만나고 재판에 들어가 보면 진실로 느껴지는 감정이에요. 수거책들이 잡혀서 처벌받아도 보이스피싱 일당은 관심도 없어요. 하지만 피해자가 생겼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죠. 돈도 받아낼 사람이 필요하고요. 그러니 다들 여기만 목을 조르는 겁니다.”

취재팀이 2020년 하반기~2021년 상반기 선고된 1심 판결문 252건을 분석했더니 70.0%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77%는 1년 이상~3년 미만의 실형이었다.

[123rf]

이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막겠다고 일반인을 잡아 실형 주는 게 보이지 않는 사회적 문제”라며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데 무고한 일반인이 너무 많이 엮인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면 아무리 10~20만원 준다고 할 일반인이 얼마나 되겠는가”고 말했다.

검찰은 현금수거책을 대개 사기,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한다. 이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수거책에게 ‘미필적 고의’ 법리를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확정적 고의가 ‘범죄임을 명확히 알면서 이를 용인’한 것이라면 미필적 고의는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을 내심 알면서도 용인’했다는 법리다.

우리 형법은 고의가 없으면 과실로 본다. 과실이 인정되면 처벌한다. 다만 국내 법에선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과실치상·과실치사)만 과실로 처벌할 수 있다. 남을 돈을 가로챈 일반 사기범죄에선 과실로 처벌할 근거가 없다. 때문에 ‘고의는 없었음’을 증명하면 무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사기범죄는 이야기가 다르다. 검찰은 “피고가 미필적으로 보이스피싱을 인지했다”는 논리로 기소한다. 법원은 ▷취업 과정 ▷업무 방식 ▷보수 수준 등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검찰의 주장을 인정한다.

“(미필적으로나마) 고의가 있었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겁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보이스피싱에 관여하던 사람들이나 조직적으로 대포통장을 모집했던 이들은 그야말로 확정적 고의가 있어서 처벌받았다면 지금은 그런 사람은 1%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대부분 미필적 고의죠.”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병찬 변호사. 최재원 사진작가

이 변호사는 2018년 처음 보이스피싱 사건을 맡았다. 의뢰인은 인천에선 쌀국수가게를 하던 자영업자였다. 영업이 어려우니 단기 알바를 찾다가 코인 구매대행을 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방조로 기소됐다. 수사에 배석하면서 보이스피싱이 수사기관과 사법부에서 다뤄지는 생리를 알았다.

“‘알바를 준 이들이 보이스피싱 일당임을 (의뢰인이) 알았는지 몰랐는지가 관건’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수사관들은 자꾸 ‘뭔가 이상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어요. 나중에 판결을 보니 그 질문에 ‘이상하긴 했었다’고 말하면 처벌이 되더라고요.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면 알아봤어야 했다는 거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이 조사를 안 하거나 제대로 못 알아봅니다. 그러면 미필적 고의가 적용되는 겁니다.”

이 변호사가 모든 현금수거책의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확실히 알아보지 않고 부주의하게 일자리를 받아들인 책임은 있다.

“검색이라도 해보면 될 텐데 그걸 안 한 실수는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바로 징역 몇 년을 사는 건 과해요. (범죄) 예방적 효과는 집행유예만 줘도 일반인들에겐 충분합니다. 범죄에 대한 결과적 책임이든, 예방적 목적이든 실형 살게 하는 건 책임주의 원칙에 어긋합니다. 더불어 ‘이런 알바도 보이스피싱이다’라는 메시지를 널리 알리는 것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3부]

① 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8.8%가 ‘빨간줄’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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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9.2%가 ‘빨간줄’ [인간 대포통장]

신문6면 TOP 기사입력 2021.10.26. 오전 10:12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 ①

법원 판결문 252건 들여다 보니

최재원 사진작가

‘대면편취’ 유형의 보이스피싱이 폭발적으로 늘자 재판정에 서는 이들도 많아졌다. 검찰에선 “요새 구속수사받는 피의자 절반 이상이 현금 수거책”이란 말이 나온다. 이들 대다수는 수사기관, 법정에서 보이스피싱이라곤 전혀 인지 못했다고 항변하지만 처벌을 피하지 못한다.

경찰과 검찰은 ‘단순 가담자도 강하게 처벌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를 두고 최종 가담자를 무겁게 처벌한다고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진 않는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헤럴드경제는 대면편취에 연루된 현금 수거책 피의자들이 법원에서 사법처분되는 양상을 확인했다. 이들 가운데엔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범죄에 조력하고 꼬리 자르기를 당한 시민들이 끼어 있다. 누구나 부지불식중에 엮일 수 있는 일이기에 처벌 경향을 짚어보는 건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전국 법원에서 선고된 1심 판결문 총 252건을 분석했다.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활용해 ‘현금수거책’과 ‘보이스피싱’이란 키워드가 포함된 판결문 350여개를 1차로 수집했다. 이후 복수의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 내용이 대면편취 유형에 해당하는 252개를 추렸다.

판결문에는 모두 257명의 피고인이 등장했다. 피고인 한 명이 평균 4.78명의 피해자를 만났고, 1억203만원의 피해금을 수거했다.

권해원 디자이너

80%의 죄명이 ‘사기’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연루된다면 대개 사기 혹은 사기방조 혐의가 적용된다. 분석한 252개 판결문 가운데 200건(79.4%)이 사기였다. 사기로 기소했다는 것은 피고를 보이스피싱 범행의 ‘공범’으로 판단한단 얘기다. 공범은 넓은 의미에서 공동정범, 교사범, 간접정범 등으로 나뉘는데 보이스피싱 수거책들은 대개 공동정범으로 간주됐다. 죄목이 사기방조인 판결문은 48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권 지검의 한 검사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 사건 전체에서의 맥락을 본다”며 “전체적인 보이스피싱의 규모를 인식하고 그 행위의 일환으로 가담한다는 증거가 있다면 사기 공범으로 다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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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혐의를 적용한 검찰의 기소장에는 ‘피고가 범행을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공모했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경찰과 검찰은 보이스피싱을 ‘조직적 사기’로 다룬다. 단순사기보다 구형 수준이 높다. 판사가 참고하는 대법원 양형기준에도 조직적 사기의 기본형량은 일반사기보다 1년~1년6개월 더 길다.

이원일 변호사는 “사기냐 사기방조냐 분류 기준은 있다. 피의자가 충분히 (범죄를) 인식하고 가담했다고 하면 사기, 기능적인 행위가 없었다고 하면 사기방조인데 그 차이가 상당히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사기로 기소한 사건을 이따금 재판부가 사기방조로 낮추기도 한다. 범죄를 인식하고 가담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단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런 사건은 전체의 1.6%에 불과했다.

무죄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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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개 판결문에 등장한 피고 257명 가운데 무죄는 단 2명, 벌금형은 1명이었다. 징역형이 180건(70.0%)으로 가장 많고 집행유예는 72건(28.8%)이었다. 붙잡혀서 재판에 넘겨진다면 어떻게든 범죄기록(전과)이 남는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 가운데 ▷‘1년 이상 2년 미만’ 72건(40%) ▷‘2년 이상 3년미만’ 67건(37.22%)으로 1~3년 사이가 전체의 80%에 달한다. ‘1년 미만’은 12.22%, ‘3년 이상’ 징역은 10.55%였다.

피고 가운데 141명은 형사처벌 이력이 없는 초범이었다. 이 가운데 89명은 징역형을 받았고 나머지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초범인 점은 판사가 양형 과정에서 감안하는 주요 감경요소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의 경우 피해자 수가 많고 피해금액이 크다면 초범 메리트를 기대하긴 힘들다. 피해금액이 비슷한 사건이라면 피고가 피해자들과 합의를 봤는지에 따라 징역-집유가 갈리는 양상을 보였다.

[123rf]

박현근 변호사는 “초범인데다가 피해금액이 적으면 재판부는 선처해준다. (합의를 통해) 피해자의 피해금액이 회복된다면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거의 실형”이라고 말했다.

징역 살 가능성이 높다는 건 현금 수거책으로 엮인 이들이 좌절하는 대목이다. 범죄를 기획하고 허위로 일자리를 제공한 범죄의 몸통은 몸을 사리고 있단 점도 억울해 한다.

김장범 변호사는 “대개 부주의했던 건 있다. 잘못한 건 맞지만 그게 사기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준인가는 의문”이라며 “하지만 보이스피싱이 심각하고 가만 놔두면 문제가 커지기에 밑에 있는 사람이라도 처벌하고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게 현재 사법시스템 실무의 모습”이라고 했다.

대부분 미필적 고의

판결문에서 등장하는 '미필적 고의'

처벌하려면 법리적 근거가 필요하다. 취재팀이 살핀 판결문에선 ‘미필적 고의’ 법리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본인 행위로 인해 범죄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인식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받아들였다’는 논리다.

반대로 ‘확정적 고의’는 보이스피싱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가담한 것이다. 분석한 판결문 가운데 확정적 고의가 적시된 건 1개 뿐이었다. 확정적 고의가 명시되진 않았으나, 과거 다른 보이스피싱 범행에 연루돼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피고는 11명(재범)이었다. 이병찬 변호사는 “동종전과가 있다면 확정적 고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죄처분을 받은 대부분의 피고에겐 미필적 고의가 적용된 셈이다. 법조인들은 재판부가 보이스피싱 사건에선 유독 미필적 고의를 광범위하게 해석한다고 지적했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미필적 고의는 ‘이게 혹시 나쁜일은 아닌가’라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특정성이 있어야 한다”며 “나쁜일은 불법 채권추심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다수의 법원에서 ‘보이스피싱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생각했다’고 간주해 판결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 이형주 변호사(법무법인 율성)는 비슷한 논리의 무난한 판결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유죄 판결문에서 과거 판례를 언급하는데 그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 위한 편리한 도구”라면서 “(피고가) 보이스피싱임을 미리 인식했다라는 서술은 논리적을 비약이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김희량·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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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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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인간 대포통장]

입력 2021. 10. 22. 09:34 수정 2021. 10. 22. 12:34 댓글 0

 

인간 대포통장 〈2부 - 범죄자 낙인 〉 ②

홍순민 서울광진경찰서 강력팀장 인터뷰

홍순민 서울광진서 강력팀장. 최재원 사진작가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현금수거책’이란 역할이 생긴 건 2017년 무렵이다. 이들은 미리 속여둔 피해자를 직접 만나서 돈을 받는다. 그리고 무통장 송금을 한다. 이른바 ‘대면 편취’ 유형이다.

한 형사의 눈에 이들은 사기범죄에 가담한 범죄자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잡히면 구속해 실형을 살게 하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잡아도 끝이 없었다. 2018년, 2019년이 지나도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급증했다.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저도 구인공고를 보고 일을 시작했다가 속았어요.”

피의자들의 진술과 정황이 대개 비슷했다. ‘구인공고를 보고 아르바이트를 구했을 뿐인데 그게 보이스피싱인지 꿈에도 몰랐다’는 주장. 어쩌면 현금수거책들도 ‘취업 사기’에 속은 이들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수사할수록 이런 심증이 굳어졌고 직접 연구에 매달려 논문까지 발표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홍순민(40) 서울광진경찰서 강력팀장(경감)의 이야기다. 10년 가까이 보이스피싱을 수사해온 그는 현역 형사 가운데 처음으로 현금수거책에 관한 연구논문을 썼다. 지난달 서울 광진서에서 홍 팀장을 만났다.

“‘보이스피싱 일 할 사람 구합니다’ 하면 누가 지원을 하겠어요. 그러니 정상적인 회사인 것처럼 꾸며 구인 공고를 올려요. ‘현금 수금업무’ ‘은행 외근 알바’ 같은 문구로 올라와요. 저도 형사가 아니었다면 속을 수 있겠다 싶었죠. 검찰이나 법원에선 ‘미리 보이스피싱인 걸 의심했어야 한다’고 하는데 일반인들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구조를 알 리가 없잖아요.”

권해원 디자이너

홍 팀장은 현금수거책을 보이스피싱 말단 조직원으로 쉽게 간주하는 시각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직접 수사한 현금수거책들은 학생·주부 등 평범한 사람이었다”며 “하나같이 재정적 여유가 없는 구직자들로, 교묘한 취업 사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이 사람들은 조직원이 아니다’라고 백날 주장하기보다 정식으로 연구해 논문을 쓰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범죄학 석사과정을 거치며 지난해 두 차례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3월 교신저자로 참여한 ‘보이스피싱 범죄 전달책 특성에 관한 연구’에선 현금수거책의 인구사회학적 배경을 분석했다. 그가 경찰 내부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현금수거책의 73.5%가 청년(19~39세)이었으며 85.7%가 무직자였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67.3%), 구직 사이트(20.9%) 등을 통해 일을 구했다가 범행에 연루됐다.

이이서 ‘보이스피싱 범죄 전달책의 특성에 관한 질적 연구’라는 논문을 썼다. 여기선 현금수거책의 피해자적 특성에 주목했다. 경찰에 붙잡힌 뒤 재판에서 사법처리를 받은 6명의 사례자를 심층 인터뷰 했다. 홍 팀장은 “해외 ‘근거이론’을 바탕으로 질문지를 구성해 수사자료와 교차 검증한 결과, 이들은 사기 가해자 특성은 없고 피해자의 특성이 발견됐다”고 했다.

“이 사람들이 완전히 무고하다는 것은 아니에요. 형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긴 했지만 과연 구속수사해 중범죄자 수준으로 징역형을 선고해 처벌하는 게 맞느냐는 거죠. 현금수거책은 보통 사기죄나 사기방조죄로 처벌돼요. 그럼 사기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특성이 강해야 하는데 제가 직접 연구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홍순민 서울광진경찰서 강력팀장이 헤럴드경제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재원 사진작가

홍 팀장은 논문에서 무고한 시민이 현금수거책으로 이용당하는 걸 막으려면 ▷공익광고 ▷구인광고 적격성 검증 ▷보이스피싱 구인광고 신고포상제 등이 필요하다고 썼다. 그저 강력한 처벌만으로는 현금수거책이 등장하는 사건을 줄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해마다 현금수거책으로 검거돼 징역형을 사는 사람들이 수천명입니다. 정부가 보이스피싱 범죄 가담 방지에 관한 대대적인 홍보를 해야 현금수거책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알바 잘못했다가 징역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야 합니다.”

그가 논문을 냈지만 경찰조직이나 학계에서 달라진 건 없었다. 지극히 ‘소수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주류적 입장이기에 반응이 전혀 없었다”며 “일부 수사관이나 법조인 입장에선 기분 나쁠 수 있는 논문이라는 걸 예상하고도 썼다”고 했다.

하지만 현금수거책 피의자들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취약한 상태라면 누구나 엮일 수 있기에 홍 팀장의 주장은 귀 기울일 만하다.

“비대면 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이 두 가지를 확실히 경계하세요. 대면 면접 없이 하는 알바는 없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든, 신분증이든 전화기로 찍어서 카톡으로 전달하라고 하는 알바도 없습니다. 제출하려면 직접 만나서 제대로 된 회사인지 확인부터 해야 해요. 쉽게 가족 인적 사항을 통신매체로 넘기는 건 지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단독]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④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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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3. 오후 5:02 최종수정 2021.10.23. 오후 9:16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2부 - 범죄자 낙인 〉 ④
자영업자에서 보이스피싱 피의자로…박동진(40)씨 이야기
이미지는 기사 본문과 무관합니다 [연합]

“박동진 씨, 보이스피싱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출근길 지하철역. 불쑥 나타난 경찰들이 순식간에 주위를 에워쌌다. ‘미란다 원칙’을 빠르게 읊조리곤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한 달간 했던 아르바이트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역할이었다고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해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까지 보냈는데…. 혹여나 주소를 보고 가족에게 찾아가 해코지라도 할까 겁이 났다. 이제야 안 것이지만, 기우였다. 그들에게 우리는 잡히면 버려지는 ‘병정’이었을 뿐이니까.

작년 겨울은 유독 찼다. 경기도 한 소도시에 있는 카페는 삶의 터전이었다. 하루 14시간씩, 13년을 일궈왔다. 코로나19에도 굳건히 버텼건만 정부가 연말에 발표한 집합금지 조치는 모든 것을 바꿨다. 잘 될 땐 하루 80만원이었던 매출이 0원이 됐다. 상가 2층에 위치한 까닭에 테이크아웃 손님도 없었다. 어린 딸을 둔 외벌이 가장으로서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12월 한 달. 집합금지가 풀릴 때까지 딱 한 달만 가게를 닫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자고 마음을 먹었다.

코로나가 확산될 시기었기에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재 운송 알바. 1종 보통 운전면허 소유자 가능.’ 일용직 공고가 올라오는 네이버 밴드에서 구직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러나 막상 인사 담당자와 연락하니 “이미 알바생을 구해 마감됐다”며 “거래처 수금 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한데 해보겠냐”며 제안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자재 운송 알바는 미끼였지만 그땐 재고 따질 여력이 없었다. 당장 가게 월세가 밀릴 위기였다.

장 실장이라는 사람은 자기회사가 저축은행과 거래하는 추심업체라며 “악성 채권을 싸게 사들여 시세차익을 남기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왜 고객과 계좌이체로 거래하지 않냐”고 묻자 “세금을 감면하기 위한 방법이며 절대 불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순진하게 믿어버렸다. 합격 통보를 받곤 개인 신상 정보가 담긴 서류 여러 장과 셀카를 보냈다. 정 실장은 “금전을 다루는 업무기에 보안 차원에서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지는 기사 본문과 무관합니다 [연합]

장 실장은 매일 고객과 만날 장소를 일러줬다. 한 달 동안 수도권에서 만났던 고객은 10명 남짓. 약속 장소에서 나가면 항상 회사 관계자와 통화 중이던 고객들은 전화기를 건넸고, “박동진입니다”라고 확인하면 “빨리 일을 처리하고 복귀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가볍게 목례만 할 뿐, 한 번도 고객과 말을 섞지 못했다. 여러 번 만난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그저 단골이라고 여겼다. 전달받은 현금은 지시대로 회사 계좌로 무통장 입금했다.

주로 수도권에서 일했으나 간혹 지방 출장도 있었다. 장 실장은 “세금 때문에 교통비는 현금으로 결제하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경찰의 추적을 피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매번 현금 쓰기가 불편해 개인카드로 택시를 결제하고 KTX 탑승권을 끊었다. 콜택시 회사에 전화해 택시를 부르기도 했다. 경찰은 이 흔적을 따라와 체포했다. 장 실장은 잠적했다.

모두가 그랬다. 보이스피싱 총책은 중국에 몸을 숨기고 짜인 각본으로 병정만 부리면 된다고. 그 병정은 돈이 궁한 취준생, 실직자, 자영업자라고. 허탈했다. 멍청하게 속지 않았더라면…. 피해자들에게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괜한 코로나 탓을 해봤지만 무력감과 죄책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하루하루를 좀먹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살이 빠졌다.

피해금은 수억원. 합의금부터 마련해야 했다. 카페를 폐업해 집기를 팔았다. 한 단골손님이 “인생 카페였는데 왜 문을 닫냐”고 물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합의금을 벌기 위해 궂은 일을 시작했다. 집도 팔 생각이었다. 피해자들에겐 죄인, 가족에겐 보금자리조차 지키지 못한 가장이었다. 죽음으로만 속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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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곳에 죽을 자리를 봐뒀다. 아내와, 엄마, 장인, 장모에게 유서를 남겼다. 어린 딸에겐 차마 쓰지 못했다. 죽음에도 돈이 필요했다. 가장 값싼 방법을 택해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날 밤, 잠든 딸 앞에 무릎을 꿇고 홀로 빌었다. 아빠가 미안하다고…. 이 사실을 안 아내는 “저 핏덩이 두고 죽으면 평생 죄짓는 거야”라며 가슴을 쳤다.

하루 24알의 정신과 약을 먹으며 버텼다. 죽기를 단념 한 건 우연히 마주한 풍경 때문이었다. 비 오는 날 한 우산을 쥐고 나란히 걸어가는 부녀를 보며 먼 훗날 딸과의 미래를 떠올렸다. 과거에 붙잡혀 있지 말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어떻게든 합의금을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주기로 했다. 꽃 한 송이를 사서 죽음을 기도했던 자리에 놓곤 스스로에게 명복을 빌었다.

일부터 구했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새벽 2시에 퇴근한다. 주간엔 제조업 회사에서, 야간엔 물류센터에서 하루를 보낸다. 집에 도착하면 씻은 후에 새벽 4시까지 판사에게 보낼 자필 반성문을 쓴다. 변호사는 “그래봐야 소용없다”고 한다. 그래도 쓴다. 수면 시간은 4시간 남짓. 쉼 없이 도는 하루지만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곧 재판을 앞두고 있다. 반년이 지나서야 피해자 모두에게 합의금을 전달할 수 있었다. 몇 달 간 모은 월급에 신용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장인은 평생 일군 재산의 일부를 선뜻 건넸다. 그저 미안하고 고마웠다. 변호사는 “전원 합의해도 실형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일반인도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되는 순간 강력하게 처벌받는다고 했다.

“아빠, 요즘 무슨 일 있지?”

7살 딸은 요즘 묻는다. 그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면 “내가 나중에 커서 이해할 수 있을 때 말해줘”라고 어른처럼 말한다. 언제 이렇게 눈치가 빨라진 것인지….

“아빠 곧 미국 출장간다.”

혹시 몰라 딸에게 말했다. 아이는 그 말을 믿어준 것 같다.

“아빠, 맨날 전화 할 거지?”

그래도 아이가 반문한다.

“그건 어려울지도 몰라.”

마지못해 대답한다. 어쩌면, 몇 년 뒤에나 볼 수 있을지도 몰라.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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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인간 대포통장]

입력 2021. 10. 22. 17:31 댓글 35

 

인간 대포통장 〈2부 - 범죄자 낙인 〉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102명 설문조사

보이스피싱 피해자와 수거책이 만나서 돈을 건네받는 장면을 재연배우를 통해 연출했다. 최재원 사진작가

보이스피싱 피의자로 연루된 이들의 절반 이상이 이른바 ‘관계자본’이 취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기관에 붙잡히더라도 가족 외에 마땅히 도움을 구할 곳이 없어서 홀로 대응하거나 온라인 공간에 의지한 이들도 10명 중 4명이었다.

헤럴드경제는 이들의 개인적, 사회적 배경과 정서적 영향을 파악하고자 네이버 카페 ‘보이스피싱 피의자’ 회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8월24일~9월3일)를 벌였다. 104명이 참여했고 중복응답(2명)을 제외한 102명(사건 당사자 91명·가족 11명)의 응답값을 분석했다. 설문조사 분석 과정에서는 장동호 남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과)가 도움을 주었다.

대출 혹은 일자리가 필요해서

응답자 가운데 38명(37.3%)은 일자리를 찾았던 이유로 ‘일을 하고 있었으나 소득 부족했음’을 이유로 들었다. 추가 일거리를 찾다가 소위 가짜 구인정보를 접한 것이다. 응답자의 22.5%는 ‘기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고 답했다. 8.8%는 ‘정규직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임시직을 물색했다고 했다.

이들이 접한 구인정보는 누구나 알만한 구인구직 플랫폼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네이버 밴드·카페,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같은 SNS 채널에서도 평범한 일자리로 포장된 ‘가짜정보’가 널려 있다.

응답자들이 피의자가 된 주된 배경은 대포통장 제공(44.1%)과 현금 수금책(31.4%)이었다.

대포통장(계좌정보 제공)은 여러 경로로 촉발된다. 대개는 대출을 빙자한 사기다. 금융사 명의를 내세워 ‘신용대출 가능’ 문자를 뿌린 뒤 걸려든 이에게 “적용금리를 낮추려면 신용점수를 높여야 한다. 계좌정보를 알려달라”고 구실을 대 체크카드나 통장비밀번호 등을 제공하는 식이다. 계좌정보를 넘기고 그게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면 통장 소유자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는다.

현금 수금책은 채권추심, 부동산경매업체 보조 등의 정상업무로 알고 일을 시작했으나 결과적으로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돈을 수거해 전달핞 역할을 한 경우다. 대부분 사기,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다.

빈약한 사회관계

설문에 응한 피의자들에게선 빈약한 ‘관계자본’도 공통점으로 발견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가족 외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56.9%(58명)가 “없다”고 했다.

이는 여러가지를 시사한다. 생활비 등이 절실한 상황에서 가족의 조력이나 제도권 대출을 이용할 수 없다면 일수 같은 사채에 손을 대기 쉽다. 또한 허위 구직정보에 적힌 ‘고수익 알바’, ‘단기 업무’, ‘일당 지급’ 같은 문구에도 취약해질 수 있다.

장동호 교수는 “재무적 의사결정은 통상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면서 “청년일수록 고립된 이들이 많고 그러면서 혼자 (위험한) 의사결정하는 사례가 많아진다”고 말했다.

응답자의 45.1%(46명)은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뒤 직계가족이나 친인척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했다고 답했다. 17.6%는 온라인(SNS 게시판, 채팅 등)에 도움을 구했다고 했고, 14.7%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다”고 답했다.

▷‘친구·선후배’(7.8%) ▷변호사(7.8%) ▷현재 또는 과거 직장동료(1.0%) 등에게 SOS를 쳤다는 응답은 10%에 못 미쳤다.

사회적으로 가라앉는 사람들

보이스피싱 피의자로 엮인 뒤 사회적 관계에 변화가 있었습니까?”라는 설문 문항에 응답자 41.2%(42명)가 ‘매우 축소됐다’고 답했다. 취재팀은 ‘코로나19가 퍼진 이후로 사회적 관계가 변화했는가’도 물었다. 이 질문에 매우 축소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35.5%로 첫 번째 질문보다 낮았다.

응답자들은 자괴감과 죄책감, 두려움 등이 뒤섞인 감정을 호소했다. ‘피의자=범죄자’라는 사회적 인식에 좌절했다. 하지만 억울함을 드러내긴 쉽지 않다. 수천만원을 잃은 엄연한 피해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 가담자도 엄벌한다’는 현재의 형사정책적 기조에서는 일단 피의자로 입건되면 처벌을 피하긴 어렵다. 때문에 기존의 사회적 관계마저 단절하는 양상을 보인다.

정승환 고려대 법무대학원장은 “낙인찍혀서 사회관계 속에서 부적응한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응답자의 34.3%는 주변에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지 못했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주관식)엔 “(사람들에게) 범죄자로 여겨질까 걱정됐다”, “너무 부끄럽고 사회의 범죄자란 꼬리표를 달게 됐다”, “가족과 일부 지인에겐 얘기했지만 다른 이들은 범죄자란 선입견 가질까봐 말 못했다” 등이라고 적었다.

취재팀이 심층인터뷰 한 피의자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호소했다. 때문에 설문조사 말미에는 불안장애 평가 척도(GAD-7)와 우울증 선별검사 척도(PHQ-9)을 담아 응답자들에게 자가평가를 요청했다.

GAD-7은 7개 질문을 주고 응답별로 점수를 다르게 매겨 총점(0~21점)을 매긴다. 이번 설문에선 응답자 가운데 78.42%가 10점 이상의 불안증상을 겪은 것으로 평가됐다. 총점이 10점 이상이면 불안증상이 주의가 필요한 과도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PHQ-9 역시 총점이 10점을 넘기면 치료를 고려할 수준으로 판단한다. 이 평가에선 76.47%가 10점 이상이었다. 응답자의 22.54%는 최고점인 27점을 기록했다.

장 교수는 “보이스피싱 행동책에 엮인 이후 사회적 관계가 크게 축소된 청년들일수록 그렇지 않은 청년들에 비해 특히 불안감과 우울감이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④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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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0. 오후 5:02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2부 - 범죄자 낙인 〉 ①

지난달 최윤서 씨가 취재팀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재원 사진작가

‘저 죽을 테니까 사건 종결시켜 주세요.’

지난해 4월 어느 날 최윤서(31·가명) 씨는 경찰 수사관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고 사라졌다. 그날 경찰서 2곳에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혐의로 조사받은 이후였다. 집(울산)으로 내려가는 대신 수원에 있는 선배의 집으로 향했다. 만취하도록 소주병을 비우고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었다.

문자를 받은 수사관은 신병 확보에 나섰다. 수원 관할 경찰들이 그의 소재를 찾아냈다.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정서 상태가 위기 수준이라고 판단한 경찰은 정신건강센터 상담사까지 호출했다. 아들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잡혔다는 소식은 울산에도 알려졌다. 어머니와 이모가 차로 4시간 반 거리를 단숨에 달려왔다.

취재팀은 지난달 울산에서 최씨를 만났다. 취업준비 과정에서 보이스피싱에 연루됐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미래 계획이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연루된 배경과 검거 이후 경험한 충격, 심리 변화 등을 자세히 들려줬다.

익명의 제안

은행 ATM. 최재원 사진작가

최씨는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다. 2019년 늦깎이 졸업을 하고 제약회사 품질관리 직군 일자리를 찾았다. 면접에서 5번 떨어질 정도로 취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울산에서 제약회사 공장이 밀집한 경기도 화성까지 면접을 보러 가면 교통비, 식비로 20~30만원이 깨졌다. 통장 잔액은 속절없이 줄어들었다. 그는 어려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 없었다. 울산 현대차 하청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쓸 돈을 모았다. 그러다가 돈이 급해 사채(일수)를 100만원 빌린 적도 있다.

그는 지난해 1월 한 온라인게임을 시작했다. 그에겐 휴식이자 잠깐의 도피처였다. 거기서 ‘김 형’을 만난 건 게임을 시작하고 두 달쯤 지나서였다. 어쩌다 들어간 길드(온라인게임 사용자들의 모임)에서 만난 그는 “대부업체에서 일한다. 무슨 일 하느냐”고 말을 걸었다. “취업준비 중”이라고 하자 며칠 뒤 솔깃한 제안을 했다. “회사가 ‘파인대부’라는 곳인데 인터넷 검색하면 나와. 내가 거기서 인사권이 있는데 비정규직으로 3개월 일하다가 정규직 전환 조건으로 일해보겠어?”

일수대출을 써본 최씨는 채권 추심업무로만 여겼다. ‘김 형’은 월급 300만원, 두 달에 한 번 상여금도 나온다고 했다.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대면 면접을 하기로 했으나 “우리 직원이 코로나 확진이 됐다. 다른 직원들은 자가격리 중이니 일단 인턴으로 몇 건 진행하다가 정규직 채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악몽의 시작

최씨는 현재 변호인의 배려로 법률사무소에서 법률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변호사 덕분에 은둔생활을 관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재원 사진작가

‘인턴 신분’으로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고객 4명을 만났다. 회사 담당자가 일러준 약속장소에 나가면 고객들은 늘 전화통화 중이었다. “파인대부의 OOO입니다” 하고 인사하면 그들은 통화 중인 전화기를 건넸다. 수화기 속 직원은 “OOO 씨 맞죠? 회수금은 계좌로 입금해주시고요, 다시 고객님 바꿔주세요”라고 했다. 그러고선 돈봉투를 건네받고 은행 ATM에서 무통장 입금을 했다. 모두 4200만원이었다.

경찰에 가서야 그게 ‘보이스피싱’임을 알았다. 피해자를 직접 만나는 ‘대면 편취’라는 방식이었다. 일자리를 제안한 ‘김 형’이란 자는 조직원이었다. 처음 수사를 담당한 경찰서의 형사는 “왜 서울까지 와서 사고를 치느냐. (보이스피싱인지) 모를 수가 없다”며 윽박질렀다. “(몸통은) 잡을 인력도 잡을 능력도 없다”는 말까지 듣자 멘털이 무너졌다.

최씨는 수원에서의 소동 이후 어머니 손에 이끌려 2주간 폐쇄 병동에 입원했다. 그는 이 시기를 다시 떠올리길 힘들어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였고 수차례 극단적인 생각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의 변호를 맡은 이원일 변호사는 병원에서 의뢰인을 면접했을 때를 회상했다. 이 변호사는 “(정신병원에 있다고 하니) 편견을 가지고 만났는데 실제론 공손하고 예의 있더라. 이렇게 될 사람이 아닌데, (보이스피싱에) 연루되니 스트레스가 그만큼 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최씨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그를 보이스피싱 ‘공동 정범’으로 판단했다. 4건의 범행은 따로 수사가 이뤄졌고 재판도 1건은 서울에서, 나머지 3건은 울산에서 따로 진행됐다. 이 변호사는 줄기차게 무죄를 주장하는 변론을 폈다.

과거와 단절하기

지난 4월 선고된 최씨의 1심 판결문. 현금수거책으로 가담했단 이유로 함께 기소된 다른 피고인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두 사람은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지만 같은 피해자를 만나서 돈을 받았고 경찰에 붙잡혔다.

“피고인 최윤서는 무죄.”

지난 4월 중순 서울 동부지법에서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판사가 주문을 읽자 최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법원 복도에서 한 시간을 울었다. “‘무죄’는 생각도 안 했어요. 심리적으로 잔뜩 웅크린 채로 갔기 때문에 감정이 더 복받쳤습니다.”

판사는 판결문에 “제출된 증거만으론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에 고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적었다.

‘김 형’이라는 사람이 요구한 취업서류(신분증 사본, 가족관계증명서 등)를 모두 건넨 점, 주변에 “취직했다”며 자랑하는 메신저 내용 등에 주목했다. 합의금을 마련해 건넨 것도 참작됐다.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은 “누가 봐도 평범한 직장인 같았다. 피고(최씨)가 취업 사기를 당해 돈을 받아갔다는 걸 믿을 수 있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무죄가 한 번 나왔다고 끝은 아니다. 모든 사법 절차를 언제 마칠지 모른다. 울산지법에서 진행되는 다른 재판에선 지난달 최씨에게 징역 10월이 선고됐다. 무죄가 나온 동부지법 재판은 2심(항소심)으로 넘겨졌다. 항소심 재판부의 선고는 다음달로 예정됐다. 무죄가 뒤집힐 수도 있다.

대학 시절 학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하던 최씨는 사건이 터지고 꼬박 1년을 은둔자로 살고 있다. ‘그 일’에 대해서는 가족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20년지기 친구와의 관계도 끊었다. 하루 두 번 약봉지와 씨름을 한다.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 수면제 따위를 12알 삼킨다. 그는 “딱히 약 부작용은 없는데 끊으면 불안 증상이 심해지고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정서 상태는 최악에선 벗어났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갉아먹지 않도록 애쓴다.

“처음 입건됐을 땐 ‘평범한 제약회사 직장인이란 소박한 꿈, 미래가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이미 저질러진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일을 했던) 그 시간대를 조각내서 통째로 드러내는 거예요. 제 시간을 버리지 말아야죠.”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수백~수천만원의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102명의 보이스피싱 공범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15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범죄자로 연루되기까지의 배경, 어떻게 일했고 붙잡혔는지를 파악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헤럴드경제의 ‘인간 대포통장’ 기획은 3부에 걸쳐 보도됩니다.

[프롤로그]

[단독]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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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nyang@heraldcorp.com, 박로명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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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19. 오후 3:25 최종수정 2021.10.19. 오후 4:26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1부 - 만들어진 공범〉 ④
58년생 정씨, 교도소에 들어가다
정일훈 씨가 채용담당자와 나눈 대화. 그럴싸하게 만든 사업자등록증까지 제시하고 있다.

정일훈(63·남) 씨는 7년을 울산의 조선소에서 협력업체 소속 ‘보온공’으로 일했다. 집채만 한 배 속에 씨줄 날줄로 퍼진 배관에 보온재를 붙이는 노동이었다. 선박을 기어다니다시피 하면서 보온재를 덮는 건 고역이다. 그래도 일감은 풍부했고 꾸준히 소득이 들어왔다. 몇 년 전 불어닥친 조선업 불황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호시절은 끝났다. 하청업체를 나와 일용직으로 보온공 일을 이어갔지만 일거리가 부족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화물차 운전, 인체실험, 쿠팡 배송…. 그는 눈여겨본 구직 공고 목록을 작성했다. 거기엔 ‘SBI솔루션’도 적혀 있다. 생활정보지 ‘교차로’에서 유심히 봐둔 업체명이었다.

SBI솔루션의 채용담당자는 정씨와 연락하면서 “채권 추심업무”라고 소개했다. 사채를 끌어와서 하는 불법적인 일은 아닌지, 제3자가 돈을 받아 입금하는 이유는 뭔지 등을 정씨가 꼼꼼히 물었더니 “고객들이 이미 신용불량이 돼서 통장 압류되고 현금으로 할 수밖에 없다. 고려신용정보에서 위탁받은 회사”라고 설명했다. 동래세무서장 직인이 찍힌 사업자등록증까지 보여줬다.

그것은 취업의 허울을 쓴 범죄 심부름꾼 모집 광고였다. 그는 경찰에 붙잡혔고 검찰로부터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한 공동 정범’이라는 취지로 기소(사기 혐의)됐다. 1심 재판부는 공소 사실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정씨는 지난해 9월 진주교도소에 미결수로 수감됐다. 피고 측은 “형이 너무 과하다”고, 검사 측은 “형이 약하다”고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정씨의 변호인은 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정씨와 같은 중장년층들이 보이스피싱에 연루돼 붙잡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확보한 서울지방경찰청의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검거보고서 분석자료를 보면, 2020년 4월~2021년 3월에 붙잡힌 피의자 578명(서울지방경찰청 관내) 가운데 40대 이상 가담자는 240명(41.6%)으로 집계됐다. 이 시기는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이보다 앞선 시기엔 40대 이상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 2018년 2월~2020년 3월에 검거된 현금수거책 559명을 연령대로 분류했을 때 40대 이상 피의자는 15%에 그쳤다. 현금수거책으로 가담했다는 이유로 붙잡힌 사람 10명 중 7명은 20~30대였다. 2~3년 전만 해도 보이스피싱 심부름꾼 노릇은 비교적 젊은 층에서 많이 했다면, 2020년 2분기가 지나면서 연루되는 이들의 연령대가 높아졌다.

[권해원 디자이너]

검거보고서를 분석한 홍순민 서울광진경찰서 강력팀장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알바) 광고를 엄청 때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수입이 엄청나게 줄어들고 수입이 불규칙한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라며 “‘쉬운 일이다. 수금하는 일이다. 일당은 최저 시급보다 많이 쳐주겠다’는 내용으로 현혹한 결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이든, 청년층이든 보이스피싱 행동책으로 엮이는 배경은 ‘취업’이다. 당장 일자리가 절박한 이들이 보이스피싱 일당이 쳐둔 거미줄에 걸린다. 다만 20~30대가 취업정보를 알바몬, 알바천국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구인구직 플랫폼에서 찾았다면,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교차로, 벼룩시장 같은 생활정보지를 통해 취업정보를 접한다.

지면 형태의 생활정보지에 실린 구직광고 가운데 보이스피싱 관련 허위 공고로 의심되는 사례들.

보이스피싱 수금책을 모집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광고들은 대개 ‘단기/장기 배달 알바모집’ ‘단순배송 구함’ 따위의 제목을 달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슨 업무를 담당할 것인지는 대체로 명시하지 않는다. ‘초보 환영’ ‘나이 무관’ ‘일급 지급’ 등의 문구로 일단 유인한 뒤 유선이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구체적인 업무를 설명하며 포섭하는 구조다.

이원일 변호사(법무법인 하진)는 “생활정보지 한 부를 펼치면 보이스피싱으로 의심되는 광고가 8, 9개쯤 된다”며 “교차로 같은 익히 알려진 매체에 불법적인 광고가 실리리라곤 생각지도 못하는 맹점이 있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수백~수천만원의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102명의 보이스피싱 공범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15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범죄자로 연루되기까지의 배경, 어떻게 일했고 붙잡혔는지를 파악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헤럴드경제의 ‘인간 대포통장’ 기획은 3부에 걸쳐 보도됩니다.

[프롤로그]

[단독]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박준규 nyang@heraldcorp.com, 박로명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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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18. 오후 5:32 최종수정 2021.10.18. 오후 7:37 기사원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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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대포통장 〈1부 - 만들어진 공범〉 ③
허연정(53·가명) 씨, 보이스피싱 피의자 김진석(22·가명) 母의 기억


허연정(53·가명) 씨와 8~9월 2차례에 걸쳐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금수거책으로 기소된 보이스피싱 피의자 된 김진석(가명) 씨의 어머니다. [사진=박준규 기자]

“엄마, 알바 잡았어!”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며 안방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며칠 전 군 입대를 앞두고 게임만 하는 아들이 답답해 “군대 가기 전에 사회 경험이라도 쌓으라”며 윽박질렀던 터였다.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하늘의 별 따기”라며 입을 비쭉거렸다. 작년 초만 해도 코로나 확산 초기였기에 구직사이트에 올라오는 공고는 지게차 운전, 냉동창고 작업 등이 전부인지라 선택지가 없었다.

아들이 구했다는 일은 “대금을 회수하는 대부업체 사무직”이라고 했다. 대부업이라니…. 영화 속 깡패가 떠올라 아들의 등짝을 후려치곤 “그런 거 하다 칼빵 맞는다”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들은 “세상에 편한 일이 어디있냐”며 맞받았다. 며칠 후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면서 새벽부터 일을 나갔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로부터 2주 후. 아들이 목걸이를 건넸다. “엄마 생일선물로 금붙이 사줘”라며 장난삼아 던진 말을 기억한 것이었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녀석, 알바비 얼마나 된다고….’ 아들은 찔리는 듯 “사실 호기심에 대부업체 일을 시작했다”고 실토했다. 이번에도 “미쳤냐”며 소리쳤다. 목걸이는 환불시켰다. “일주일 내로 그만두겠다”는 아들의 약속을 받고서야 놓아주었다.

유난히 아들 걱정이 많았다. 여리고 상처가 많은 아이였다. 살집이 있고 눈이 작아서 별명이 ‘100㎏ 아메바’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겉돌더니 친구들의 표적이 됐다. 체육시간에 자리를 비우면 교복이 없어졌다. 머리에 돌을 맞기도 했다. 맞고 들어오는 아들을 볼 때마다 말도 못 할 정도로 괴로웠다. 아이를 대안학교로 전학 보낸 후에도 신경 쓰였다. 그래서 버릇처럼 딸에게 “엄마 죽으면 오빠가 사기당하지 않게 잘 챙겨줘라”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된 것 같다.

[사진=박준규 기자]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전락…아들은 ‘도구’ 였다


올해 초였다. 겨우 전셋집 계약을 마친 뒤 들뜬 기분으로 학창 시절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늦은 밤 전화벨이 울렸다. “○○경찰서인데요, 아드님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습니다”라고 했다. “선생님 잘못 거신 거 아녜요?”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경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해 전화를 탁 끊었다. 이상하게 불안감이 밀려왔다. 걸려온 번호를 검색해 보니 경찰서가 틀림없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다음 달 새벽같이 경찰서로 향했다. 유치장 너머 아들은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애지중지하던 고양이가 죽어도 울지 않던 아이였다. “정말 몰랐어. 몰랐어. 미안해” 아들이 바닥을 보며 웅얼거렸다. 묻고 싶은 건 많은데 가시덤불이 들어찬 듯 목이 메었다. “뭔가 잘못된 거야…. 엄마가 꺼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은 단순 채권추심 업무로만 알았지만 사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로부터 피해금을 수거해 무통장 송금하는 일이었다. [최재원 사진작가]

경찰은 아들이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이라고 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본 구직 사이트에는 ‘대부업체 채권추심팀의 수금 업무’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상호와 도장이 찍힌 서류도 확인했다. 그들은 “부실채권을 회수하는 일”이라며 “고객을 만나 현금을 받고 지정된 계좌로 입금하면 된다”고 했다. 고액을 다루는 일이기에 신분증·주민등록초본 등도 보내라고 했다. 의례적인 취업 절차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들을 전국으로 보냈다. 약속 장소에 가면 고객들이 먼저 아들을 알아보곤 현금다발을 손에 쥐여줬다. 고객들은 그들의 지시에 따라 전화를 하며 한순간도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아들과 말 섞을 틈조차 없었다. 아들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신용보증협력서·대출금상환확인서 등 미리 받은 서류를 건넸다. 일종의 ‘영수증’이었다. 그러곤 은행 ATM으로 이동해 무통장 입금을 했다. 현금이 구겨져 입금이 잘 되지 않으면 직접 은행 직원에게 문의해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들은 “꾸물거리면 고객들의 이자가 늘어난다”며 아들을 재촉했다. 하루에 두 탕, 세 탕도 뛰었다. 처음엔 일급, 나중엔 수수료를 수당으로 받았다. 1월 초부터 열흘 사이에 10명이 넘는 고객을 만났다. 아들은 정상적인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했기에 곳곳에 자취를 남겼다. 자신의 카드로 여러 번 택시 비용을 결제하고, 코로나 명부에 실명과 번호를 남겼다. 범죄라고 생각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현금수거책으로 보이스피싱 피의자 된 아들 김진석 씨. 그는 현재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박준규 기자]

피의자란 이름을 한 피해자


아들이 붙잡힌 건 강원도의 한 은행이었다. 받은 돈을 무통장 입금하고 있었다. 마침 출금하러 온 경찰이 이상하게 여겨 “혹시 보이스피싱 피해자냐”고 물었다. 아들은 “대금업체 수금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다”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 자리에서 영문도 모른 채 긴급 체포됐다. 지역 신문에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라는 기사가 났다. 회사와 상사의 이름. 영수증으로 건넸던 서류. 모든 것이 위조된 가짜였다. 피해금액 수억 원을 전달받은 보이스피싱 총책은 이미 잠적한 뒤였다.

경찰은 아들이 보이스피싱 공범이라고 했다. 아들도 가짜 취업 정보에 속아서 당한 거라고 해도 듣질 않았다. 다행히 구속되진 않았다. 인터넷을 뒤지니 아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취준생·직장인·자영업자…. 생계 전선에 뛰어든 평범한 사람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 재판에 올랐다. 보이스피싱 총책은 중국에 있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 같은 피의자들은 총책이 가로챈 피해 금액을 합의금으로 물어주고도 실형을 산다고 했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아들을 붙잡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빌었다. ‘일을 하라고 보채지만 않았어도….’ 아들의 앞길을 망쳤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어 수면제를 여러 알 삼키기까지 했다. 극단적인 선택만 두 번. 한 달 사이 12kg가 빠져 앙상해졌다. 잘 들리지도 않고, 또렷이 보이지도 않았다. 갑자기 공황발작이 와서 36시간 동안 고장 난 경운기처럼 온몸을 떨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딸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방문을 걸어 잠갔다.

[123RF]

“엄마 나 감방 갈게 더 이상 노력하지 마. 그러면 되잖아.”

아들은 그만 포기하자고 한다. 하루 종일 식물인간처럼 침대 위에서 숨만 쉰다. 정신과를 찾은 아들은 우울증, 공황장애, 성격신경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루에 약을 수 알 삼키지만 살아있는 악몽은 끝날 줄 모른다. 복학 후 대기업에 취직하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버렸다. 이따금 “교도소에 5년씩 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릴까”라고 하다가도 “마음을 비웠다”며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있다. “교도소 갔다 와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다독이지만 마음에 없는 소리다.

아들은 11월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다. 검찰은 아들을 8개 혐의로 기소했다. 사기·공문서위조·사문서위조·위조공문서행사·위조사문서행사. 참담했다. 갓난아이 때부터 애지중지 키웠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앞길이 창창했던 아들이 한순간에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렸다. 순백 같은 아이를 걸레짝처럼 닳도록 쓰고 쓰레기통에 버린 것만 같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수백~수천 만원의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 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단 죄를 묻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102명의 보이스피싱 공범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15명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범죄자로 연루되기까지의 배경, 어떻게 일했고 붙잡혔는지를 파악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 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 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헤럴드경제의 ‘인간 대포통장’ 기획은 3부에 걸쳐 보도됩니다.

[프롤로그]

[단독]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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