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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16. 오후 4:32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1부 - 만들어진 공범〉 ②
길거리 CCTV에 잡힌 대면편취 장면. 노란색 상의를 입은 여성(현금 수금책 피의자)이 스마트폰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내 한 남성(피해자)이 전화통화를 하면서 여성에게 접근한다. 이후 이 남성은 가방에서 돈봉투를 꺼내 여성에게 건넨 뒤 사라졌다. 이들이 조우한 시간은 12초였다. [경찰청 제공]

보이스피싱 대면편취, 기만의 ‘삼각구조’

#1. 2020년 4월 14

주부 정현옥(61·가명) 씨는 이런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KB국민은행 김이호 과장입니다. 코로나 관련해서 저금리 상품이 새로 나왔습니다. 연 2.2% 금리에 최대 3500만원까지 대환대출 가능 하십니다.”

솔깃한 제안을 정 씨는 덥썩 물었다. 국민은행 직원은 신용조회를 운운하며 문자로 은행 어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겠으니 설치하고 기본정보를 입력하라고 안내했다. 정 씨는 그대로 따라했다.

다시 김이호 과장이 전화를 해왔다. “조회했더니 하나은행에 대출이 있으시네요. 일단 1000만원을 상환해서 신용도를 높여야 우대조건으로 대출 이용 가능 하세요. 저희 직원 보낼테니 상환금 보내시면 저희가 빠르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2. 2020년 4월 16




[Web발신] (광고) 일자리가 없어 고민이신가요? △△△에서 힘든 시기 함께 할 외근직 수습(임시) 직원을 모집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연락주세요.




송지민(35·가명) 씨의 스마트폰에 이런 문자가 찍혔다. 코로나19로 일하던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새 일자리를 찾던 와중이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어머니(60)를 혼자 돌보는 그에겐 새 일자리가 시급했다.

연락하자 ‘김대성 실장’이라고 소개한 이가 “대부업체 대출 건을 처리하는 업무다. 고객님에게 돈 받아서 무통장 입금하면 된다”고 소개했다. 송 씨는 “당사자가 아닌 제가 왜 (입금을) 해줘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우리 고객들이 신불자가 많아서 계좌 이용이 어렵고, 이렇게 무통장 입금을 하면 세금도 안 내기 때문”이라고 김 실장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 5일, 오전 10시~오후 6시 근무하면 일당 10~3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묻는 송 씨에게 김 실장은 “일단 한 달 임시직으로 일해보고 잘 되면 전환 검토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임시직 직원이 됐다.

#3. 2020년 4월 21




서울 XX구 □□길로 가면 고객님 나와 계실거예요. 1000만원 수령하시면 됩니다.




이날 아침 9시. 송지민 씨는 채용된 이후 처음으로 업무를 받았다. 지시대로 이동한 곳은 대형 쇼핑센터 앞이었다. 행인이 많았지만 김 실장이 인상착의를 설명해준 덕에 고객을 어렵지 않게 찾았다. 바로 정현옥 씨였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정 씨도 자신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그가 대뜸 전화기를 건넸다. 상대방은 “송지민 씨 맞죠? 잘 처리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전화기를 돌려주자 정 씨는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쉽게 쓰고, 언제든 버린다
보이스피싱 주류 수법으로 떠오른 대면편취는 총책이 피해자와 피의자를 마치 조종하는 구조로 작동된다. [권해원 디자이너]

송지민 씨의 사례는 지난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대면편취’ 스타일 보이스피싱의 매커니즘을 보여준다. 그는 헤럴드경제가 지난 8~9월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현금 수거책 피의자 14명 가운데 한 명이다. 송 씨를 포함한 8명은 현재 관련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4명은 경찰, 검찰 수사 중. 나머지는 형 집행을 완료한 상태다.

취재팀은 이들이 어떤 식으로 일자리를 접했고 실제로 일을 했는지 정리했다. 그러면서 대면편취 보이스피싱의 작동하는 ‘삼각구조’를 확인했다.

2019년까지 3244건에 그쳤다가, 지난해 들어선 1만5111건으로 폭증한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은 한 축엔 이른바 심부름꾼이 반드시 필요하다. 피해자를 만나서 돈을 받은 뒤 계좌로 입금하는 역할을 해야해서다. 그걸 보이스피싱 조직의 내부사정을 아는 인물에게 맡길 순 없다. 경찰에 붙잡히더라도 조직 본체엔 손상을 주지 않을 ‘도마뱀 꼬리’가 필요하다. 때문에 일반인 수요가 생긴다.

박현근 변호사는 “세상물정 모르는 20대를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무제한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수거책은 말 그대로 쓰다가 쓸모 없어지면 버리는 도구에 그친다. 새 인력은 국내에서 끊임없이 공급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취재팀과 만난 송지민 씨가 자신이 받았던 가짜 구인공고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최재원 사진작가]

누구나 아는 사이트라 믿었는데


취재팀이 만난 14명의 사례자들은 보이스피싱에 연루되기 직전에 공통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 가운데 7명은 알바몬, 알바천국, 벼룩시장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채권 회수’ 혹은 ‘채권 추심’ 아르바이트라는 안내를 보고 구인공고에 접근했다. ‘법률사무소 외근직 아르바이트’, ‘부동산경매업무’ 같은 제목이 달린 구인공고를 보고 엮이게 된 이들도 있다. 최근엔 중개사무소 외근직이라는 허울로 “고객들이 다운계약서를 써서 계약금을 현금으로 받아야 한다”고 구직자를 유인한다.

이 밖에 ▷네이버 밴드(2명) ▷네이버 카페(1명) ▷온라인 구인 광고(3명) ▷온라인 게임(1명) 등을 통해서 일자리 정보를 얻었고 결과적으로 보이스피싱에 연루됐다.

송대인 씨가 취업정보 사이트에서 확인했던 구인공고. '채권회수 업무'는 결과적으로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수금하는 일이었다.

취재팀이 만난 송대인(38·가명) 씨는 지난해 한 지역언론이 운영하는 취업정보 사이트에서 (주)○○파이낸스 명의의 구인공고를 봤다. 거기엔 경매물건조사 또는 채권회수업무를 맡게 된다고 돼 있었다. 송 씨는 인사담당자라는 이와 연락하면서 경매물건조사 업무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그건 당장 일거리가 없어서 일단 채권회수 업무를 해보시라”고 권했다.

송 씨는 “돌이켜 보면 경매물건조사라는 건 미끼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누구나 알고 믿는 사이트에 합법적 알바를 가장해 보이스피싱 전달책을 모집하는 글이 올라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총책’이 조종하는 연극
[권해원 디자이너]

일자리를 미끼로 평범한 시민들을 전달책으로 섭외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다른 한 편에선 피해자를 물색한다. 삼각구조를 완성하는 다른 축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상징적인 사례인 검사, 금융감독원 사칭은 줄었다. 대신 은행, 카드사 등을 빙자해 대출상품을 안내하는 방식이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돈 필요한 사람이 많이지면서 피해자가 늘었다.

이병찬 변호사는 “작년, 올해 벌어진 사건의 90%는 코로나 긴급대출, 저금리 대환대출 등을 운운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현금을 건네받기로 한 사람(수거책)과 피해자는 대면하지만 상황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피의자에게 각기 다른 거짓정보를 주면서 롤(역할)을 부여하는 셈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들이 약속된 장소에서 실제로 만났을 때 불필요한 소통을 하지 않도록 애쓴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은 피해자를 통화로 계속 붙잡고 있는 식이다. “우리 직원이 확실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댄다.

취재팀이 만난 피의자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하자마자 돈이 든 가방을 건네줬어요. 그분은 계속 통화 중이어서 다른 말은 못했어요.”

“담당자가 ‘고객이 통화 중인 상태로 만나기 때문에 인사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대화 할 시간조차 없어요. 피해자는 통화는 하고 있는 상태고 저도 통화 중이죠. 서로 OOO맞으세요? 하고 고개만 끄덕이면 끝이에요.”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수백~수천 만원의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 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단 죄를 묻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102명의 보이스피싱 공범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15명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범죄자로 연루되기까지의 배경, 어떻게 일했고 붙잡혔는지를 파악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 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 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헤럴드경제의 ‘인간 대포통장’ 기획은 15일부터 3부에 걸쳐 보도됩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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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15. 오전 7:02 최종수정 2021.10.15. 오전 10:29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1부 - 만들어진 공범〉 ①
피해자가 건네는 돈봉투를 피의자가 받아서 가방에 넣는 장면. 전형적인 대면편취 유형의 보이스피싱 현장 모습이다. 경찰청으로부터 CCTV 화면을 제공받았다.

보이스피싱은 암(癌)과 닮았다. 암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다가 새로운 돌연변이를 만든다. 그러면 기존 치료제는 약발이 받질 않는다. 암세포는 스멀스멀 퍼져나간다. 암을 ‘진화하는 생명체’라고 부르는 이유다. 보이스피싱이란 사기범죄도 한국에 처음 보고된 이후로 돌연변이를 만들면서 환경에 대응했다. 정부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대응했지만 여전히 살아남은 이유다.

코로나19가 퍼진 2020년엔 보이스피싱 범죄가 또 진화했다. 전염병이 퍼지며 비대면은 일상의 기본양식으로 자리잡았지만 보이스피싱 만큼은 ‘대면’이 대세가 됐다. 피해자를 직접 만난다. 패러다임이 바뀐 셈이다.

그러면서 ‘심부름꾼’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받았다.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이들을 ‘현금 수금책’이라 부른다. 보이스피싱의 수뇌부는 음지로 더 숨어들었다. 수금책 노릇을 한 사람들 가운데엔 평범한 청년들이 대거 섞여 들었다.


보이스피싱 패러다임 시프트...‘대면편취’ 365% 폭증


대면편취(對面騙取). ‘얼굴을 마주한 채로 재물을 빼앗다’는 의미다.

헤럴드경제가 국회 오영환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통해 확보한 경찰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를 통틀어 발생한 보이스피싱 대면편취 사건은 1만5111건. 경찰이 분류하는 8가지 보이스피싱 피해유형 가운데 47.7%를 차지했다. 2019년 발생건수(3244건)와 견주면 365% 늘었다.

전염병 국면이 이어지며 거리두기가 강화된 올해는 더 활개를 치고 있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1만6840건의 대면편취 사건이 보고됐다. 이미 지난해 1년치를 넘어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선 대면편취 범행이 이어지고 있다. 연말에 집계될 통계치는 사상 최고 수준이 확실하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전체 보이스피싱 범죄유형에서 대면편취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권해원 디자이너]

대면편취 유형은 ‘보이스피싱=비대면 사기’라는 등식을 깨뜨린다. 그간 보이스피싱 범죄의 근간은 계좌이체였다. 조직원이 전화로 접근해 검찰청 검사나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뒤 여러 구실을 내세워 피해자가 돈을 송금하게 유도하는 식이다. 이른바 ‘그놈 목소리’만으로 그간은 범죄피해가 성립됐다.

2020년은 이 양상이 완전히 뒤집혀진 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비대면 계좌이체 유형의 발생건은 2019년 3만517건에서 2020년 1만596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대면편취 유형은 3배 가까이 불었다. 보이스피싱 범죄 경향이 뒤집어진 셈이다. 사람이 대포통장(사기금융계좌) 역할을 수행하는 꼴이 됐다.

수사기관은 대포통장 수급문제에서 원인을 찾는다. 블랙마켓(암시장)에서 범죄에 활용할 대포통장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대포통장은 조직이 범죄수익금을 손에 쥐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대포통장 유통조직이 보이스피싱 쪽으론 공급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수사관은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은 명의자 입건하면 입출금 내역이 있는 관련계좌가 모두 동결된다. 금융당국, 금융사들이 강력하게 대응한 결과”라면서 “리스크가 커지다보니 보이스피싱 쪽 공급이 말랐다”고 말했다.

개인 계좌를 사고 파는 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도 신규 대포통장 공급이 어려워진 배경이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도 자체적으로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구축하면서 사기계좌를 예전보다 효과적으로 골라내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와 수거책이 만나는 모습을 대역배우를 통해 재연했다 [최재원 작가]

54%가 2030


현금 수거책, 현금 전달책, 행동책.

피해자를 직접 만나서 돈을 받은 뒤 무통장입금을 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여러 단어들이다. 헤럴드경제는 이 가운데 사법부에서 주로 쓰는 ‘현금 수거책’으로 용어를 통일하기로 했다.

취재팀은 경찰의 협조를 얻어 현금 수거책의 인구통계학적 배경(연령대·직업·가담경로·구속유무)을 살폈다. 서울광진경찰서 홍순민 강력팀장(경감)이 2020년 4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서울 31개 경찰서에서 붙잡은 현금 수거책 578명의 검거보고서를 전수분석해 취재팀에 단독 제공했다.

연령을 보면 20대가 208명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했다. 30대는 103명(17.8%)이었다. 검거된 현금 수거책의 53.8%가 2030세대인 셈이다. 10대도 27명(4.7%) 있었다.

[권해원 디자이너]

일정한 일자리가 없는 이들이 대거 연루됐다. 498명이 검거 당시 ‘무직’ 상태였다. 전체의 86.2%에 달한다. 경찰은 아르바이트 등 임시직에 종사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도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무직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생/학생은 23명(4.0%) ▷회사원 12명(2.1%) ▷자영업 8명(1.4%) ▷일용직 6명(1.0%) ▷유통업 3명(0.5%) 등이 뒤를 이었다.

분석 대상이 된 578명 가운데 97.6%(564명)이 “구인광고를 보고 연루됐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분류하는 구인광고는 온라인 SNS 채널(네이버 밴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과 구인구직플랫폼(알바천국, 알바몬 등)에 게재된 일자리 정보를 뜻한다. 이는 붙잡힌 현금 수거책들이 애초에 보이스피싱 조직을 알고 있거나 관여하던 이들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병찬 법무법인 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말 그대로 이들은 ‘인간 대포통장’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 볼 시간도 없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도 잘 모르는데 경제적으로 취약해서 대출은 안 나오고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수백~수천 만원의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 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단 죄를 묻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102명의 보이스피싱 공범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15명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범죄자로 연루되기까지의 배경, 어떻게 일했고 붙잡혔는지를 파악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 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 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헤럴드경제의 ‘인간 대포통장’ 기획은 3부에 걸쳐 보도됩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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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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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인간 대포통장]

 

입력 2021. 10. 14. 17:33 댓글 2

 

[인간 대포통장 : 공범이 된 청년들] - 프롤로그

권해원 디자이너

“아버님, 저도 여러 번 전화했는데 다원(가명)이가 안 받네요.”

막역한 친구의 전화도 받질 않았다. 아버지 김정길(64·가명) 씨는 이미 수십번 전화를 했던 터였다. 응답 없는 전화. 아들이 사라졌다. 보이스피싱 공범 혐의로 열릴 재판을 열흘쯤 앞둔 올해 2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들이 혼자 살던 경기도 고양의 원룸은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다. ‘얘가 혹시 잘못 생각한 건 아닌가….’ 무서운 생각이 김씨의 머릿속에 번졌다. 아들은 아버지의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2월 말 경상북도 상주의 어느 편의점에서 담배와 딸기우유를 산 기록이 남았다. 상주는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곳이다. 온 가족이 상주를 뒤졌지만 아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3월 11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냈다.

피 말리는 시간들. 4월 말에서야 아들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주에서도 주민이 가장 적은 하북면의 어느 터널 바깥에 방치된 자동차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수습됐다. 이상하게 여긴 등산객이 경찰에 신고했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 향년 39세.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들의) 존재가 없어지니 미치겠더라고요. 스스로 터널을 빠져나와야 했는데 재기하기를 바랐는데….”

김씨는 북받치는 감정을 다스렸다. 선뜩한 기억이 들 때마다 말이 떨렸다. 유일한 아들을 먼저 보낸 충격은 그대로였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김씨는 처음 취재진이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거절했다.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설득했고 9월 초와 이달 초, 2차례에 걸쳐 이야기를 들려줬다.

보이스피싱 수거책

[연합]

아들은 자동차를 무척 좋아했다. 뒤늦게 정비를 배워 정비센터에 자리를 얻었다. 사고차가 입고되면 견적 내고 수리 절차를 밟는 업무를 했다. 그러면서 돈이 모이는 대로 차를 튜닝하는 걸 취미 삼았다.

정비센터에서 10년을 일하면서 결혼하고 아이도 하나 낳았다. 하지만 부부 사이가 나빠지며 2년 만에 갈라섰다. 엄마가 양육권을 가져갔다. 홀몸이 된 아들은 고양에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아버지는 지난해 초부터 아들에게서 “힘들다”는 말이 부쩍 잦아졌다고 기억했다. 소위 갑질하는 손님을 대하는 게 점점 힘에 부친다고 했다. 입 주위가 허는 날이 잦았다. “경험이 10년 됐지만 그런 손님들은 좀처럼 소화를 못 시키는 것 같았어요. 부자끼리 대화도 많이 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는 모양이더라고요.”

“아버지, 아르바이트 찾았어요. 일단 알바 좀 하면서 지낼게요.”

아들은 결국 정비센터를 관뒀다. 여덟 살 손주의 양육비를 대야 했기에 쉴 틈은 없었다. 서둘러 새 일자리를 찾아보겠다더니 알바를 하나 잡았다고 했다. 배송업무라고 얘기했다. 마트 가서 식품 사다가 배달하고 법원에서 서류 받아다가 배송해주는 일이었다.

“며칠 그렇게 하다가 송금하는 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회사에서) 제안을 했더래요. 일감이 많다면서요. 아들이 ‘돈세탁인가’ 의심이 들어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하고 물었대요. 그러니 ‘아무 문제 없다. 문제 생겨도 우리가 책임진다’고 대답했다는 거예요.”

‘CCTV가 천지인데 설마 잘못된 걸 시키겠나.’ 아버지 김씨도 제2금융권에 관계된 업무겠거니 생각했다. “아들도 성인이니까요. 그저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해봐’라고만 했어요.”

부자(父子)의 동행

[게티이미지]

“손님도 요새 별로 없을 텐데 아버지 택시로 같이 다닙시다. 일하면 일당 바로 줘요.”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며 택시 영업이 어렵던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옆자리에 아들을 태우고 고객을 만난다는 장소로 운전했다. 가장 멀리 간 곳은 원주였다. 부자의 동행은 보름쯤 이어졌다. 그리고 이 여정은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15~20일쯤 같이 다닌 것 같아요. 한 번은 같이 나갔는데 1000만원 정도를 받아오더라고요. 자식이 아버지에게 나쁜 일 하자겠어요. 그냥 그렇게 된 거죠.” 그러면서도 김씨는 ‘죄스럽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느 날 형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들이 ‘그 일’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난 때였다.

“OOO라는 곳에서 사람 만나서 돈 받는 손님을 태운 적 있습니까? 김다원이란 사람인데 선생님 택시를 탄 것 같아서요.”

“아…. 제 아들입니다.”

“보이스피싱이에요 그거. 빨리 연락해야 합니다.”

경기도 시흥, 서울 강동·용산 등 각지에서 피해 신고가 잇따랐다. 김다원 씨는 지난해 8월 서울 강동·중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수금이란 건 사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이었다. ‘대면편취’라는 신종 수법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아들은 20여회 피해자를 만났고 피해금은 1억5000만원에 달했다.

피의자 심문조서 기록은 건조했다. 10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기까지의 고민과 좌절, 밥벌이의 어려움 따위는 담기지 않았다. 한동훈 중랑서 형사과장은 “줄곧 자기는 몰랐다고 소명했고 너무 많은 돈이어서 욕심도 좀 났다는 진술도 있다. 기록상 특별한 건 없다”고 말했다.

선량한 30대 청년은 하루아침에 피의자가 됐다. 경찰은 지난해 9월 사기 혐의로 그를 검찰에 송치했다. 그는 한동안 정보를 긁어모으는 데 몰두했다. 알바인 줄만 알았다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몰린 어떤 이가 재판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하기도 했다.

“공판 앞두고 너무 괴로웠던 거예요. 괴로워하다가 다 짊어지고 가겠다고 선택한 거죠. 저하고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고 잊으면서 살고 있어요. 지금 일을 하니까 일하는 시간 동안은 가슴에 묻고 살아갑니다. 혹시 모르고 이런 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경찰이나 어디에 문의해보고 확인해보면 좋겠어요. 그게 최선인 거 같네요.”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수백~수천만원의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 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단 죄를 묻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102명의 보이스피싱 공범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15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범죄자로 연루되기까지의 배경, 어떻게 일했고 붙잡혔는지를 파악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 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 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 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헤럴드경제의 ‘인간 대포통장’ 기획은 15일부터 3부에 걸쳐 보도됩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취재=박준규·박로명·김희량·유혜정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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