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2시 21분쯤 경북 구미시 인동동 빌라에 경찰·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49.5㎡(약 15평) 남짓한 집안에서 악취가 훅하고 밀려왔다. 방 안에는 숨진 유모(23)씨 사체가 이불에 덮여있었다.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가 심한 상태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얼마 전부터 빌라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가 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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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는 사흘 전에 이미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는 유씨와 빌라에서 같이 살던 4명의 또래여성이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친구 소개 등으로 구미 빌라에 하나 둘씩 합류하는 식으로 모여 살았다. 이들이 모여 살았던 곳은 구미시 인동동의 신축빌라였다. 월세는 30만원으로 이 비용은 공장에 취직해서 고정수입이 있었던 이모(24)씨가 주로 냈다고 한다. 이 모씨는 여성들 중 ‘맏언니’로 대접받았다.

“(숨진) 유씨는 인천 출신인데, 인터넷으로 여고생인 조모(16)씨를 알게 됐고 절친한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구미에 살기로 하면서 하나 둘씩 주변 사람들을 불러 들였어요. 그렇게 5명이 15평짜리 집에서 함께 살았던 거예요.” 숨진 유씨의 지인 얘기다.
집단폭행은 지난 22일 오후 8시부터 시작된 것으로 조사됐다. ‘공동체’ 맏언니 이씨가 “집안 꼴이 이게 뭐야. 청소 안 하냐”며 주먹으로 유씨 머리를 가격한 것이다. 그는 철제 조립식 옷걸이 봉을 꺼내와 유씨가 쓰러질 때까지 때렸다. “설거지는 왜 안 했어.” 이씨를 시작으로 빌라에 모여 살던 4명이 집단으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말과 행동이 굼뜨다는 이유로 유씨를 상습적으로 때렸다. 집단 폭행은 지난 5월부터 본격화 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사소한 시비를 걸며 발로 (유씨의) 배를 걷어차거나, 머리를 때리는 식의 구타가 반복됐습니다. 조립식 옷걸이 봉을 꺼내서 때리는 일도 지속적으로 이뤄진 걸로 보입니다. 이런 집단구타가 적어도 2개월 정도 계속 됐습니다.” 경찰 관계자 얘기다.

키 150cm, 몸무게 40kg 안팎의 작은 체구를 가진 유씨는 집단폭행을 당할 때마다 몸져 누웠다. 마지막으로 집단폭행 당한 이후에도 누워서 끙끙 앓았다고 한다. 그 사이 누구도 유씨를 돌봐주거나,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집단폭행이 있고 이틀 뒤인 24일 새벽, 유씨는 누운 상태 그대로 숨졌다. 동거인 4명은 유씨가 아무런 인기척도 내지 않자, 그제야 숨진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동거인 가운데 일부는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이들은 유씨의 시신 위에 이불을 덮어 놓은 채로 충청지역으로 도주했다.

도주 사흘 째인 27일. 집단폭행 일당 가운데 하나가 모친에게 범행을 실토했고, 모친의 설득으로 이들은 이날 오후 9시쯤 대전 동부경찰서에 자수했다. 주범 격인 이씨는 경찰조사에서 “유씨가 돈을 빌려간 뒤 갚지 않아서 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씨가 숨진 유씨에게 언제 얼마를 빌려줬는지 등의 구체적인 정황이나 증거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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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집단폭행에 가담한 동거인 4명을 구속하는 한편, 숨진 유씨 시신에 대한 부검도 실시했다. 낮 최고기온이 37~38도를 넘나드는 날씨 속에서 시신은 심하게 훼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시신의 부패 정도가 심해, 사망원인을 규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습적인 집단폭행에 시달리던 유씨는 누구에게도 고발하지 않았다. 폭행 당한 뒤에도 오히려 먼저 말을 붙이면서 ‘동거인’들의 환심을 사려 했다고 한다. “보통 집단폭행을 지속적으로 당하면 가족이나 주변에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유씨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고인에게 15평 빌라 안은 ‘공동체’던 겁니다. 유씨는 공동체에서 쫓겨날까봐, 좋아하는 사람에게 버림 받을까 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경찰은 이 여성들이 심리적으로 강한 유대를 갖게 된 사정을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