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구미 집단폭행 그후, 죽은 딸이 보낸 '의문의 문자'

전형주 입력 2018.08.04. 06:02 수정 2018.08.04. 09:05

사망 추정 시간보다 6시간이나 지난 시점.. "가해자들 완전 범죄 꿈꾼 듯"
A씨 유족 제공

살갑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늘 딸 안부가 궁금했다. 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에게 ‘잘 지낸다’는 안부를 전했다. 지난달에는 한동안 연락이 뜸했다. 그러다 지난달 24일 오전 8시42분 딸로부터 ‘그동안 바빴다’는 문자가 왔다. 엄마는 그런 딸에게 ‘고맙네 연락줘서. 수고해’라고 답 문자를 보냈다.

엄마는 집에 들르라며 차비를 보냈지만, 딸은 끝내 엄마에게 오지 못했다. 문자를 받은 지 3일 뒤인 지난달 27일 엄마는 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사망 추정시간이 이상했다. 지난달 24일 새벽 2시쯤이었다. 엄마는 그날 오전 8시쯤 딸의 문자를 받았다. 죽은 딸은 어떻게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을까. 엄마는 딸을 죽인 가해자들이 범행을 감추기 위해 숨진 딸의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건은 ‘원룸’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27일 경북 구미 한 원룸에서 장기 등이 부패한 채로 여성 A씨 시신이 발견됐다. 가해자는 4명이었다. 이들은 A씨와 함께사는 룸메이트였다. 2월부터 하나둘씩 합류해 함께 살게 됐다고 한다. A씨를 사망으로 이르게 한 것은 집단 폭행이었다. 경찰조사 결과,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폭행은 “A씨의 말과 행동이 굼뜨다”는 트집으로 시작됐다. A씨 배를 발로 걷어차거나 철제 조립식 옷걸이 봉을 꺼내 때리기도 했다.

A씨는 지난달 24일 새벽 두시쯤 끙끙 앓다 누운 상태 그대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해자들은 A씨가 아무런 인기척을 내지 않자 그제야 숨진 사실을 알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일부는 A씨에게 심폐소생술까지 시도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A씨 시신 위에 이불을 덮어 놓은 채 충청 지역으로 도주했다.

경북 구미 집단폭행 사건 피의자 모습. 사진=뉴시스DB

도주 사흘째인 27일. 집단폭행 일당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의 엄마에게 범행을 실토했고, 엄마의 설득으로 이들은 이날 오후 9시쯤 대전 동부경찰서에 자수했다. 경북 구미경찰서는 지난달 29일 이들을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 상해치사 혐의에서 ‘살인’ 혐의로

경찰 측은 당초 이 사건을 상해치사로 봤다. 이후 범행 경위와 범행 전후 행적 등을 추가 수사한 경찰은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했다. 경찰은 이들이 도구와 차량을 이용해 A씨 시신을 훼손한 뒤 유기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도 추가했다.

상해치사죄와 살인죄를 가르는 기준은 ‘고의성’ 인정 여부다. 사람을 죽이려는 적극적 고의 또는 ‘죽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는 정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야 살인죄가 성립한다. 범죄의 결과로 사람이 죽어도 ‘고의’가 없다면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는다. 살인죄와 상해치사죄는 형량이 다르다.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지만, 상해치사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잔혹한 범행 수법’과 ‘어리고 취약한 피해자’ 등 ‘특별 가중 요소’가 있으면 형량을 50% 가중할 수 있다.

사망한 A씨의 지인 B씨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속적으로, 물건까지 이용해 사람을 폭행하고 숨지게 했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억울하게 죽는 일이 없도록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감금죄는 왜 적용되지 않았죠?”

유족들은 가해자들에게 감금죄가 적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측은 “폭행을 당한 A씨가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신고하지 않았다. 감금 폭행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A씨가 지능이 조금 떨어지고 순해서 사람을 무조건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감금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경찰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B씨는 “A씨는 평소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연락을 상당히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구미에 간 뒤로는 연락이 뜸해졌다. 한번은 집에 온다고 돈을 보내 달라 해서 어머니가 돈을 입금해 줬는데 집에 오지 않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A씨가 구미에서 생활할 당시의 행적에 의문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룸에서 잠시 살았던 다른 지인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A씨에게 심부름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A씨가 도망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A씨 유족 제공

◇ 사건 그후

A씨 엄마는 딸이 숨지고 반나절이나 흐른 24일 오전 8시42분에 딸로부터 문자가 왔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경찰이 밝힌 A씨 사망 추정 시각은 24일 오전 2시다. 사망 추정 시간보다 6시간이 지난 뒤에 A씨가 ‘주말에 연락하겠다’는 식의 문자를 보낸 것이다.

엄마는 “가해자들이 범행을 숨기고 완전범죄를 꿈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집단폭행을 저지른 일당이 딸의 휴대폰으로 내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것 같다”고 말했다.

B씨는 가해자들이 자수하기 전 친구들에게 ‘면회와라’는 SNS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해자 SNS 상황을 종종 봤다. 자수하기 전 ‘면회 와 달라’며 부친 연락처를 남겼다”고 말했다. 이어 “구치소 안에서 면회 온 친구들과 희희낙락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전형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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