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다음 널 사랑한다"던 목사, 10대 신도 '그루밍 성폭력' 의혹

입력 2018.11.05. 16:36 수정 2018.11.06. 08:36

경제·가정 상황 등 취약한 피해자 심리적 의존 노려 성폭력
"비슷한 피해를 본 신도들 26명 정도로 파악된다"

[한겨레]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ㅅ교회의 청년부 목사였던 김아무개(35)씨.

인천의 한 교회 목사가 여러 명의 10대 학생 신도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용해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그루밍(grooming) 성폭력은 가해자가 취약한 점이 있는 피해자와 친분을 쌓은 뒤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행위를 뜻한다.

5일 피해자 쪽의 설명을 종합하면,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ㅅ교회의 청년부 목사였던 김아무개(35)씨는 전도사 시절인 2010년께부터 올해 초까지 교회에 다니는 10대와 20대 여성 신도 20여명을 대상으로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피해자 중에는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10년부터 8년 동안 해당 목사와 연인 관계인 줄 알고 여러 차례 성관계를 맺은 피해자도 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해당 목사와 성관계를 맺은 피해자도 있다고 한다. 현재 피해자들의 나이는 20~24살이다.

피해자 쪽에서 이날 배포한 자료를 보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김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ㄱ씨는 “(김씨가) ’부모 다음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성관계까지 맺는 등) 일이 반복됐지만 (김씨가) 나를 이해해주고 신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계속 혼란스러웠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정혜민 목사는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일부 피해자들이 확인한 바로는 비슷한 피해를 본 이가 26명 정도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김씨의 행위가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력”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피해자들은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가 이혼하는 등 물질적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김디모데 목사는 “가정형편이 어렵고 부모의 이혼 등으로 아픔과 상처가 있는 신도들에게 김씨가 오빠처럼, 아빠처럼 다가가 눈물 흘리며 기도해주고 용돈도 주고 그랬다고 한다”며 “아이들이 힘든 상태에서 목사가 다가오니 피해자들은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씨는 일부 피해자들에게 ‘사랑한다’, ‘너와 결혼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특히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 역시 김씨가 다른 신도들과도 동시에 연인 관계를 빙자해 성관계를 맺었다는 점을 알게 되고, 자신들의 피해 상황에 대한 상담 등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그루밍 성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과 상담을 진행했던 정혜민 목사는 “피해자들은 저와 상담을 하면서 ‘그루밍 성폭력’이라는 말을 알게 됐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피해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김씨와 그 아버지인 ㅅ교회 김아무개 담임목사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 △김씨가 영구적으로 목사직을 내려놓을 것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어느 쪽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와 김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11월 피해자 쪽 정혜민 목사 등을 만나 ‘성중독 치료 이수’, ‘교회 사역 중단’ 등의 각서를 썼으나, 이후에도 사역 행위를 계속했다. 정 목사는 “김씨가 이후에도 청년들을 대상으로 성경 공부를 시키거나 아버지인 김 목사 부재 시 새벽 예배 설교를 한 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아버지가 피해자와 피해자를 돕는 목사들을 ‘이단’으로 매도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씨의 아버지 김 목사는 장로교 합동총회의 이단 사이비대책위원장을 지낸 교단 중진 목사다. 김디모데 목사는 “문제를 제기한 목사에 대해 ‘이단’이라고 말을 퍼뜨렸으며, 피해 신도들에게 ‘교회 무너뜨리려는 이단 세력’이라고 하며 외압을 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사건이 <뉴스앤조이> 등에 보도된 뒤인 지난달 15일 장로회 합동 인천서노회에서 만장일치로 해당 교단에서 목회 활동을 할 수 없는 제명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제명 처분의 경우 아예 목회 활동을 하지 못하는 면직 처분과 달리 다른 교단에서는 목회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인천서노회 관계자는 “이런 정도의 불미스러운 일을 행한 목사를 노회 회원으로 받아줄 수 없기 때문에 제명 처분을 했다”며 “그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크게 사회에 이슈가 안 되었고, 우리 교단을 넘어서까지 목회 활동을 못하게 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면직이 아니라) 제명 처분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김 목사가 면직되지 못하게 노회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에 대해선 “김 목사의 영향력은 없다. 우리 노회에선 오히려 노회를 떠나고 이민 가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겨레>는 김씨 쪽의 해명을 듣기 위해 아버지 김 목사에게 여러 차례 반론을 요청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씨는 현재 필리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민정 박윤경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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