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때 촛불 무력진압 검토했다"

이대희 기자 입력 2018.03.08. 12:45

군인권센터 "탄핵안 기각 시 군 병력 투입 고심"

[이대희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한마디가 제법 회자되었다. "군이 친위 쿠데타를 준비한다."

추 대표는 탄핵 정국이 끝난 지난해 9월에도 박 전 대통령 친위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을 재차 확인했다. 충격적인 내용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제도 자체는 흔들림없이 안착되었다는 사회 분위기는 이 주장을 일종의 해프닝으로 넘기게끔 했다.  그런데, 당시 군의 친위 쿠데타 준비가 사실이었다는 엄청난 주장이 다시 나왔다. 

8일 군인권센터(소장 임태훈)는 긴급 기자회견 자료를 냈다. 지난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때를 전후해 군이 친위 쿠데타를 논의하는 회의를 진행했으며, 탄핵소추안이 기각되면 바로 병력을 투입해 촛불 시민을 무력 진압하는 방안을 고심했다는 것. 

센터는 "구홍모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중장, 현재 육군 참모차장, 육사 40기)이 직접 사령부 회의를 주재해 '소요사태 발생 시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며 "군이 실제 병력 투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군이 쿠데타 논의를 할 수 있었던 까닭에는 위수령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센터는 지적했다. 위수령은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 명령만으로 육군 병력을 동원하는 조치다.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부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제정한 시행령으로, 사실상 계엄령에 가까운 명령이다. 계엄령이 위급한 시기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만 시행되는 데 반해, 위수령은 국회 동의 절차 없이도 발동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헌적 성격을 지닌다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위수령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반대시위,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부정 규탄 시위, 1979년 부마항쟁 시위 진압 당시 발동된 바 있다. 위수령 발동 시 위수사령부 소속 장병은 폭행을 저지르는 자나 폭력이 수반된 소요 사태 진압을 위해 총기 발포가 허용된다. 또 폭행 등 현행범을 영장 없이도 체포할 수 있다. 군이 초법적 권력을 국민에게 휘두를 수 있다는 점에서 쿠데타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센터는 "군은 박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할 시 위수령을 선포해 촛불혁명에 나선 시민을 무력 진압하는 상황을 예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정황 증거의 하나로 탄핵심판 중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이 위수령 폐지를 반대한 사례를 꼽았다. 

이와 관련, 2016년 12월과 지난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국방위원회)은 위수령 폐지 의견을 국방부에 질의했다. 이에 주무부서인 합동참모본부 법무실은 폐지 의견으로 회신 보고를 냈다. 그러나, 한 전 장관이 이를 무마하고 존치 의견으로 검토하게끔 지시했다. 

센터는 "위수령 존치 시도는 국방부 법무관리관 주도 아래에 이뤄졌는데, 당시 법무관리관은 청와대 파견 법무관들과 자주 연락하며 교감했다"며 "위수령 존치는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센터는 군의 친위 쿠데타 시도를 두고 "계엄군이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광주 시민을 학살한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군이 또 부정한 권력에 빌붙어 시민을 총칼로 짓밟을 계획을 세운 것"이라며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란 음모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센터는 "세계사에 유례 없이 평화적으로 불의한 정권을 몰아낸 촛불혁명을 총칼로 짓밟으려 한 민주주의의 적들은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 역사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한 전 장관, 구 참모차장을 위시해 친위 쿠데타에 관련된 군 지휘부, 법무계통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을 내란 음모 혐의로 낱낱이 색출해 엄단"할 것을 촉구했다. 

<프레시안>이 추가 정보 공개를 요청했으나, 센터 관계자는 제보자 신원 보호 등을 위해 자료 이상의 정보를 공개할 예정은 현재 없다고 밝혔다. 

이대희 기자 (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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