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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뉴스]각본·연극부터 자유 질의까지..역대 대통령 신년회견에 담긴 '민주주의'

김형규 기자 입력 2018.01.10. 11:47 수정 2018.01.10. 12:14

[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사를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일자리, 평화, 개헌, 외교안보 등에 대해 25분간 발표했다. 이후 내외신 기자들과 약 한시간 동안 질의응답을 주고 받았다.

문 대통령의 공식 기자회견은 취임 후 두 번째다. 이번에도 기자회견은 정해진 각본없이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기자가 질문하고 대통령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질의응답에 앞서 윤영찬 국민소통 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눈을 마지막으로 맞춘 기자에게 질문권이 부여된다”고 방식을 설명했다. 윤 수석은 “(대통령과 눈이 마주치지 않았는데) 나도 눈 맞췄다 주장하시면 안 된다. 기자분들의 양심을 믿겠다”고 말해 행사장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기자들은 이날 질문 기회를 얻기 위해 양쪽 손을 모두 들거나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쥔 채로 손을 드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윤 수석은 행사가 끝난 후 “새로운 회견 문화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대통령 신년사에는 대통령 특유의 국정 운영 방향, 국민과의 소통 방식 등이 담겨 있다. 질의응답 형식도 사전에 짜맞춘 질문만을 주고 받는 ‘각본’ 회견부터 ‘자유 질의’까지, 다양한 유형이다.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신년회견을 계기로 역대 대통령의 신년사를 돌아봤다.

■ 박정희가 시작한 신년 기자회견

1975년 1월18일 열린 연두 기자회견 장면.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 때마다 2~3시간 동안 단상 앞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신년 기자회견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 처음 시작했다. 당시엔 ‘연두 기자회견’이라고 불렀다. 물론 각본이 있었다. 청와대는 ‘경제정책 포부’ ‘새마을 운동의 성과’ ‘국내외 정세 전망’ ‘공화당 운영 구상’ 등 짜맞춘 질문을 사전에 기자들에게 배당했다. 대통령은 준비한대로 치적을 자랑하고 정권을 홍보하는 답변을 했다.

‘어설픈 연극’이었지만 그래도 이전까지 대통령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말하던 ‘연두교서 발표’에 비하면 한 발 나아간 것이었다. 1974년엔 3시간 넘게 기자회견을 해 최장시간 기자회견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79년 마지막 연두 기자회견 땐 한 기자가 각본에 없는 질문을 했다가 몇달 뒤 청와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술에 취한 박 대통령에게 박치기를 당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72년 1월15일 열린 연두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하고 있다. 기자들은 미리 청와대에서 받은 질문을 그대로 읽었다.

박정희 정권 때 신문들은 매년 1월1일이면 대통령 신년사를 1면 톱기사로 실었다. 신년사 옆에는 대통령이 직접 쓴 신년 휘호가 대통령 동정을 알리는 사진과 함께 실렸다. 신년사는 대개 권위적인 말투로 국민에게 지시를 내리고 복종을 강요하는 내용들이었다. 유신헌법 미화 등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내용도 빠지지 않았다.

1976년 경향신문 1면. 박정희 대통령이 “영애 근혜양”과 함께 청와대에서 찍은 사진이 실렸다. 박 대통령의 왼손에 담배가 들려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모든 국민은 사치와 낭비, 갖가지 부조리를 깨끗이 추방하고 근면과 성실로 사회기강을 바로잡아 근대시민의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하고 이를 생활화해야 하겠다.”(1972년 신년사)

“우리 모두 민족 중흥의 빛나는 새역사를 세워나가는 영예로운 유신의 기수가 될 것을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하자.”(1976년 신년사)

■ 일방적 연설만 한 독재자 전두환

1988년 방송 카메라 앞에서 신년사를 하는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연두 기자회견은 전두환 정권 들어 없어졌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은 기자회견 대신 국회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했다. 국회의사당에 앉아 연설을 들은 의원들은 모두 그가 배지를 달아준 ‘꼭두각시’들이었다. 내용 역시 민주국가의 지도자 연설이라기보다 군대나 학교에서 이뤄지는 상급자의 일장 훈시에 가까웠다.

전두환은 1985년부터 연두 기자회견을 부활시켰고, 하계 기자회견 등 부정기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실상은 열명 남짓한 기자를 모아놓고 한 쇼에 불과했다. 전두환이 이끈 신군부가 앞서 1980년 권력을 잡자마자 64개 언론사를 18개로 ‘강제 통폐합’하고, 언론자유 침해에 항의한 기자들을 대거 해직시켰기 때문이다.

1987년 8월20일 열린 하계 기자회견. 박정희 때와 마찬가지로 전두환은 미리 정한 질문을 기자들에게 시키고 준비한 답변을 말했다. 국민들이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진짜 기자회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두환이 통치한 1980년대에도 신문들은 해마다 대통령 신년사를 1면에 보도했다. 전두환의 신년사 역시 박정희와 마찬기지로 국민에게 하달하는 ‘지침’의 성격이 강했다. “본인은”이라는 주어로 시작하는 신년사는 ‘행복’ ‘발전’ ‘미래’ ‘번영’ ‘정의’ 등 긍정적인 뜻의 개념어가 넘쳤지만 아래 인용문처럼 정작 의미있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984년 경향신문 1면.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전두환의 커다란 사진과 함께 신년사 요지를 톱기사로 실었다.

“우리 선조들은 ‘백지 한 장도 마주들면 가볍다’고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한 정신으로 세계 사람들과 손을 잡고 우리 국민 모두가 서로 돕고 힘을 모으면, 우리는 평화와 정의를 누구보다 알차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설령 시련과 도전이 온다 해도 서로 돕고 힘을 모아 헤쳐 나가면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1984년 신년사)

■ 노태우도 ‘각본 회견’ 계승

노태우는 대선에서 ‘보통 사람’이라는 구호를 대히트시키며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언론 노출은 많지 않았다. 매년 연두 기자회견을 했지만 미리 준비한 각본대로 김 빠진 문답을 주고받는 것은 전두환 때와 마찬가지였다.

새해 첫날이면 신문 1면을 대통령 사진과 신년사로 도배하던 관행은 이때부터 사라졌다.

남북 화해와 통일을 강조한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의 신년사

노태우는 1992년 신년사에서 “민주·번영·통일로 가는 겨레의 여정에 획기적인 도약이 이뤄지는 해가 될 것이며 7000만 한민족 공동체 건설의 위업을 실현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과 북을 가르는 철조망을 걷고 사람과 물자와 정보가 자유롭게 오가도록 하여 남북의 온 겨레가 한울타리 속에 사는 통일의 날을 앞당겨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북괴 위협’을 늘상 들먹이며 독재를 합리화하던 군부 정권이 이례적으로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역설한 것은 바로 직전 해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영향 때문이었다. 남북 간 화해와 불가침을 선언한 이 합의서는 한반도 평화의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았고, 이후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가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 ‘문민정부’다운 소통 보여준 YS

1994년 1월6일 열린 김영삼 대통령의 ‘각본 없는’ 신년 기자회견 모습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등장한 문민정부의 수장답게 이전보다 자유로운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청와대가 질문을 사전에 정리했지만 중복 질문을 빼고 순서를 정하는 정도였다. 질문 내용도 기자들이 만들어 청와대에 전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를 세계화의 원년으로 삼자”고 밝혔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신년 기자회견은 비로소 정부의 한 해 국정 운영과 정책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세계화’를 국정 목표로 제시했고, 1997년 신년 기자회견에선 ‘대통령 직속 금융개혁위원회 설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 ‘국민과의 대화’ 시도한 DJ

1998년 1월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장면.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이던 1998년 1월 ‘국민과의 대화’ 행사를 열어 집권 초기 계획을 밝히고 민심을 들었다. 언론을 통하는 기자회견 대신 직접 국민과 대면해 대통령의 뜻을 전한 것이다. 이는 IMF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각종 개혁정책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행보였다.

1999년 2월21일 SBS가 생중계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방송 화면

지상파 방송에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2년차인 1999년 2월에도 국민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구체적인 국정 목표를 제시하는 전통은 ‘국민의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지역감정 극복과 국민통합’을 강조했고, 2001년엔 ‘강한 정부론’과 언론개혁 필요성을 주창했다.

2002년 1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모습

저서 <대중경제론>을 집필한 경제통답게 김대중 대통령은 증시 활성화 방안, 시중은행 합병 문제, 지방경제 활성화 대책, 경기 호전 전망 근거 등 구체적인 경제정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능수능란하게 답했다.

■ ‘진짜 기자회견’ 보여준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은 평소 참모들과도 격의없는 토론을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예고없이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상주하는 춘추관을 찾아 직접 국정 운영을 설명하고 대화하는 일도 잦았다.

2003년 6월2일 청와대에서 열린 참여정부 출범 100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참석한 기자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노 대통령은 2003년 6월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처럼 ‘자유 질문’ 형식을 도입했다.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질문하기 위해 앞다투어 손을 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노 대통령은 매년 초 신년 특별연설과 기자회견을 각각 진행했다. 신년 연설은 원고를 참고하되 즉석에서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고, 밤 10시 생방송으로 드라마와 시청률 경쟁을 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2004년 1월14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노무현 대통령

노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인 2005~2007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시급한 국정 과제로 ‘양극화 해소’를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 외에도 크고작은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사안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참여정부의 대통령 기자회견 횟수는 150회가 넘는다.

■ 질문을 극도로 혐오한 대통령 MB

기업인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은 질문을 반기지 않았다. 기자회견도 꺼렸다.

이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없앴다. 대신 연초마다 청와대 참모들을 옆에 앉혀놓고 일방적인 국정연설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점차 민주적으로 개선돼 온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거꾸로 돌려 군부 독재 시절처럼 만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 대신 참모들을 배석시킨 채 혼자 연설을 했다. 2010년 1월 4일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하는 모습. 박민규 기자

이 대통령은 가끔씩 열리는 기자간담회에서도 극히 적은 질문에 원론적 답변만 해 기자들의 원성을 샀다.

이 대통령이 기자들 질문을 받지 않고 ‘일방통행’ 한다는 비판은 라디오 연설 때문에 더 커졌다.

2009년 3월 남태평양 3개국 방문 일정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제10차 라디오 연설 내용을 녹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KBS 라디오를 통해 격주로 국정 연설을 100번 넘게 했다. ‘일방적인 의견 방송’이라는 비판과 함께 방송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이 일었다. PD들은 ‘KBS 라디오는 청와대 구내방송이 아니다’라는 성명서를 내며 반발했다.

■ ‘불통’의 끝판왕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은 1987년 직선제 실시 후 당선된 대통령 중 취임 첫 해에 기자회견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다. 취임 첫 해 노무현 대통령이 11번, 이명박 대통령이 4번의 기자회견(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포함)을 연 것과 대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2014~2016년 세 차례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매번 1시간이 넘는 질의응답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각본대로만 진행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전 조율되지 않은 질문엔 “잘 모르겠다”며 피해가기도 했다.

박 대통령 역시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 해 정국 운영 구상을 발표하는 건 이전 대통령들과 같았지만 내용에선 의문을 자아낼 때가 많았다.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2015년 1월 12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신년사에서 박 대통령은 적폐 해소·국민소득 4만달러·북한과 신뢰 회복 등을 새해 국정 목표로 꼽았지만 실제론 반대로 갔다.

박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17년엔 국정농단 사태가 확산되며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못했다. 신년사 발표도 없었다. 대신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에게 제기된 여러 의혹을 해명했지만 탄핵 여론을 잠재우긴 역부족이었다.

2017년 1월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신년인사회를 겸한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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