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재개 수순? 정치 피하려고? 유시민에게 쏠리는 눈길들

입력 2018.10.14. 09:16 수정 2018.10.14. 12:16

[토요판] 뉴스분석 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취임
노무현재단 이사장 수락에 앞서
정의당 탈당·정치비평 방송 하차
정치 '새 그림' 꿈꾸나 해석도
시점상 세 사안 연관성 안 보여

정치 떠난 뒤 자유인 삶에 충실
대중적 인기·영향력 높아져
"정치 재개 가능성 열려 있다"
"나설 상황 안 올 것" 해석 엇갈려

[한겨레] ▶유시민 작가가 오는 15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한다. 유 작가는 지난 2013년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그동안 방송인, 작가 등 ‘자유인’으로 활동해왔다. 정의당 당적까지 올해 정리했다. 그런 그가 여권 핵심 정치그룹 중 하나인 노무현재단의 대표자가 되는 데 대한 여러 추측과 해석이 나오고 있다.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자유인의 삶을 만끽해오던 유시민 작가가 오는 15일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에 취임한다. 지난 2013년 3월 <한겨레>와의 인터뷰 때 유 작가가 파주 출판단지 내 도서출판 아름다운사람들 건물 4층에 위치한 자신의 집필실 책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린 자수 액자를 바라보며 서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유시민 작가(전 보건복지부 장관·59)에게 시선이 새로 쏠리는 것은 최근 몇달 간 그의 활동이나 신상에 몇가지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이 ‘창업주’이자 ‘대주주’였던 정의당을 탈당한 사실이 지난 6월 알려졌다. 2013년 2월 정계은퇴 선언을 하면서 평당원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했지만 정치적 위상이나 상징성이 컸기에 그의 탈당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정의당 탈당과 비슷한 시기인 6월 말 유시민 작가는 그동안 2년 반 동안 출연해오던 의 ‘썰전’에서 하차했다. 예리한 분석과 명쾌한 논리로 많은 팬들이 생긴 터여서 그의 갑작스런 방송 출연 중단도 의외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지난달 말 노무현재단 5대 이사장에 선임됐다는 소식이 더해졌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09년에 출범한 노무현재단은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조직은 아니지만, 여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 중의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2대 이사장(2010~2012년)을 지냈으며, 직전 4대 이사장(2014~2018)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다. 탈정치 노선을 걷던 유 작가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그가 뭔가 새로운 정치 행보를 시작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차기 대선주자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내각·청와대 피하려면 재단 맡아라” 설득

그에게 직접 듣고 싶었지만, 그는 “개인적 인터뷰는 사양하고자 한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대신 오는 15일 노무현재단 이사장 취임식에서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 예정이라고 주변에서는 말했다. 하지만, 이때도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만 재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가 어디로 가려는지는 여러 정황과 흐름을 살펴보면서 조심스레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우선, 정의당 탈당과 방송 하차, 이사장 취임이라는 최근 움직임 간에 긴밀한 연관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유 작가가 탈당 사실을 대외적으로 최초로 밝힌 것은 지난 6·13 지방선거 때였다. 그는 당시 <문화방송>(MBC) 개표 방송에 출연해 해설하면서 “이제 당원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탈당은 그보다 전에 이뤄졌다. 정의당의 한 전직 고위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올 초에 탈당 의사를 당 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 지도부의 만류에도 본인의 뜻이 완강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지방선거에 타격을 줄 것을 우려해 선거 뒤에 탈당 사실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썰전’ 하차도 지난 6월에 공식화됐지만, ‘썰전’의 한 출연자는 “유 작가가 올 초부터 제작진에게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고 말했다. 유시민 작가의 팬클럽인 ‘시민광장’의 최두한 대표는 “썰전은 2년 반이나 출연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좀 식상해 할 수도 있는 데다 집필이 밀린 책들이 많아서 시간 확보 차원에서 하차하겠다고 우리들한테 말한 적이 있다”면서 “썰전이 정치비평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정치를 안 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해온 그에게는 좀 부담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노무현재단 이사장 제안을 받은 것은 한 달 전쯤이었다. 처음에 재단에서는 문성근 배우,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 등 다른 후보자를 놓고 고민하다 당사자의 고사 등 이런저런 사유로 유 작가에게 뒤늦게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친문계의 한 민주당 중진의원은 “적임자가 마땅치 않아 상당 기간 고민하던 차에 이해찬 대표가 지난달에 유 작가를 만나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내년)를 책임있게 준비할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있으면 언제 내각이나 청와대로 끌려갈지 모른다, 자유인으로 남고 싶으면 차라리 재단 이사장을 맡는 게 나을 것이다’고 설득해서 수락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해찬-유시민 두 사람 사이에 이사장 승계에 대한 사전 교감이 오래 전부터 있을 수는 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 시점이 올 초까지 거슬러 가기는 힘들다. 이해찬 대표가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에 출마하기로 최종 결심한 것은 지난 7월이다. 그가 올 초부터 경선 출마를 작정했더라도 당시에는 유력한 당 대표 후보가 아니었기에 미리 유 작가에게 재단 이사장을 이어받으라,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자리를 내려놓으라고 귀뜸할 상황이 아니었다.

유시민 작가가 2015년 방송 1년을 맞은 팟캐스트 ‘노유진(노회찬, 진중권, 유시민)의 정치카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2hani.co.kr

정치 은퇴 뒤 대중적 인기 더 올라

한국 정치 구도에서 중도개혁 성향이자 ‘자유주의자(리버럴)’를 자처하는 그가 2011년 말부터 심상정 의원, 고 노회찬 의원 등 좀 더 ‘왼쪽’에 있는 진보세력과 손잡았던 것은 그로서는 하나의 승부수였다. 2012년 야권(현 여권)의 단일 대선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류인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에 몸담기보다는 외곽에서부터 세력을 모아서 후보 단일화에 임하는 게 더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음직하다. 하지만,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의 등장 등으로 인해 야권의 대표주자는 문재인-안철수의 양자 대결로 굳어짐에 따라 유 작가는 2012년 대선 때 예비무대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후 통합진보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 부정 경선’ 등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유시민 계보(국민참여당계)는 진보진영에서 힘을 잃어갔다. 유 작가는 2002년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 노무현을 지키겠다며 정치권에 뛰어든 뒤 계속 개혁국민정당, 국민참여당 등 독자적인 세력 구축에 나서면서 민주당 주류 쪽과 정치적으로 앙금이 쌓인 상태이기도 했다. 그는 정계은퇴 선언 직후 “힘들어도 전망이 보이면 계속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졌다. 내가 가진 모든 걸 갖고 할 만큼 해봤는데 졌다”(<한겨레> 인터뷰 2013.3.15)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적 ‘실패’를 인정하고 현실 정치의 최전선을 떠난 뒤에 그의 사회적 삶은 오히려 더 풍부해졌다. 저서들이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여러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중에 대한 영향력과 인기는 더 커졌다. ‘유시민 현상’ ‘문화 대통령’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잘 나가는’ 상황에서 정의당 당적을 왜 굳이 정리했는지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진보정당 당원 자격은 자유인으로서의 그의 삶에 걸림돌이기보다는 오히려 정치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방어막이 될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정의당 입장에서도 대중적 명망이 높은 유시민이 당원으로 있으면 그 자체가 큰 도움이 된다. 서로 윈윈하는 상태를 깼다는 점에서 그가 ‘큰 물’에 가기 위해 좁은 울타리를 우선 벗어나는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물론,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정치에서 더 멀어지고 싶어서”(지난 6월 ‘썰전’ 하차 입장문) 순수하게 내린 결정일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그를 매우 과격하고 강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유주의자로서의 따뜻함과 책임감이 두드러진다는 게 주변 지인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1980년 5월15일 서울역 집회 때 버스 위에 올라가 “오늘 밤 이곳을 지켜야 한다”며 ‘결사항전’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당시 해산을 주장한 심재철(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자유한국당 의원은 온건파, 유시민(당시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 작가는 강경파로 분류하는 것은 드러난 현상만 본 것이다. 당시 그런 연설을 한 것은 지도 선배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지 그의 의지나 생각이 아니었으며, 그는 오히려 “두려움과 번민을 감추고”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나의 한국현대사> 2014년, 돌베개) 또 5월17일 계엄령이 확대되던 날 밤에는 동료들을 다 귀가시키고 혼자 남아 학생회관을 지키다 계엄군에 잡혀갔다.

그는 현재 자유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크게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참여당 활동을 함께 했던 한 인사는 “유 작가는 ‘알쓸신잡’ 등 방송 출연을 재미있어 하면서 행복해 하고 있다. 그러기에 정치를 다시 할 생각은 전혀 없더라”고 말했다. 스스로 “정치할 때가 제일 불행했다”(<범인(凡人)은 이 안에 없다> 2016년, 생각비행)고 말했던 정치인 시절과 대조적이다.

지난 2007년부터 존속해온 자신의 정치 팬클럽 ‘시민광장’의 해체를 시도하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최두한 시민광장 대표는 “정치를 떠났는데 계속 지지자들이 남아 활동하는 게 부담스럽다면서 유 작가가 지난해 해산을 요청해왔다. 이에 지난해 말 회원들이 논의한 끝에 정치인 유시민이 아니라 작가 유시민에 대한 순수한 팬클럽으로 전환해서 존속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소 모호한 측면은 있다. 회원들의 자율적인 결정이라고 하지만, 언제든 유시민을 위해 정치세력화할 수 있는 막강한 응원군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시민광장은 회원 숫자만 해도 2만6천여명에 전국 대부분의 시·군 단위까지 조직을 갖추고 있어, 정치 동원이 필요할 경우에는 ‘주력군’이 될 수 있다. 유 작가 역시 이들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한다면서도 지난달 15일 열린 가을운동회 등 각종 행사에는 여전히 참석하고 있다.

유시민 작가는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등에 출연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알쓸신잡> tvN 화면 갈무리

“정치 절대 안 한다던 문 대통령 어찌됐나”

정의당 탈당이나 시민광장의 존속 등은 ‘정치와 가능한 멀리 있겠다’는 말과는 부합하지 않는 구석이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의 의도를 의심하거나 비틀어 볼 필요는 없다. 유시민 작가에게 있어 정치 재개 여부는 그의 의지나 계획에만 달린 게 아니라 ‘상황’에 크게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이후에 번복한 그동안의 정치인들은 그럴 듯한 핑계나 논리를 본인이 만들어서 복귀 명분으로 삼았지만, 그는 설령 뜻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먼저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의 한 전략통은 “자기 당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은 잠깐 비난받으면 끝날 문제인데 작은 진보정당을 나간 뒤에 동료들과 떨어져 혼자 민주당 대선주자가 되려한다든지 하면 감당해야 할 부담이 훨씬 크다”며 “결국 유시민의 정치권 재등장 여부는 시대의 요청 등 큰 계기와 변화가 있을 때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이 올까. 민주당 한 고위인사는 “문 대통령이 불려나온 것은 노무현, 김대중 두 분 대통령이 서거하고 우리 진영에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차기 주자들이 상당히 많은 상태다. ‘문재인 모델’은 그에게 맞지 않는다. 은퇴해서 다른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을 왜 소환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재단 이사를 지낸 한 인사는 “정치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절대로 안 하겠다던 문 대통령이 불려나와서 성공한 것을 봐라. 정치를 그만둔 뒤에 젊은 층을 비롯한 대중들한테 인기가 올라가고, 정치권 안에서도 안티 정서가 많이 줄었기에, 그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꼭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정치권에서 할 역할이 많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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