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 꼰대정치를 뒤엎으러 나왔다"

이하늬 기자 입력 2018.02.11. 09:31

[경향신문]
·지방선거 준비하는 군소후보들 “지방의회, 더 다양한 목소리 담아야”
“당신의 그 꼰대정치를 뒤엎으러 나왔다.”

지난 5일 한 정치인의 서울시장 출마선언문이 화제가 됐다. 그는 동영상으로 발표한 출마선언문에서 “운전도 못하고 애도 안 키워본 여자가 무슨 정치하냐고 할 때 1종 보통면허에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고, 근데 그게 정치랑 무슨 상관이냐고 당당하게 받아칠 그 사람입니다”라고 밝혀 ‘사이다’라는 평을 받았다. 녹색당 신지예 후보다.

피선거권 헌법소원을 청구한 청년 등이 1월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피선거권 헌법소원 빠른 판결을 촉구하는 목요행동’을 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전국 각지에서 신 후보처럼 “보통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구의원, 시의원, 시장, 도지사 등 목표는 다양하다. 이들은 기존 정당 중심의 지방의회는 문제가 있으며, 지방의회가 더 다양한 연령·성별·계층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방선거에서 가장 작은 단위 선출직은 ‘구의원’이다. 차윤주 후보자(36)는 서울 마포구 구의원에 도전한다. 소속 정당은 없다. 그는 “구의원은 동 2~3개를 묶어서 선거를 실시한다”며 “유권자로 따지면 3만에서 4만명 수준이다. 이 정도 선출직에서는 우리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차 후보처럼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청년들을 일컫는다.

구의원 출마조건? 200만원에 60일! 차 후보는 2월 초까지 기자였다.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등을 거쳤다. 2015년 9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아파트 동대표를 지낸 게 정치와 관련된 경험이라면 경험이다. 그는 아파트 동대표를 지내게 된 계기와 관련해 “내 삶의 밀접한 부분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면면이나 결정과정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당이나 시민단체 활동은 해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뭘 했다고?”라는 질문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차 후보는 “제도 안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며 “구의원은 기탁금 200만원, 그 동네에서 60일 이상 살면 나올 수 있다. 이 정도는 어느 정도 노력하면 누구나 모을 수 있고 두 달 정도만 거주해도 그 동네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이 제도의 취지와는 동 떨어진 이들이 선거에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거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게다가 차 후보와 함께 하는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 구성원 모두 무소속으로 선거를 준비한다. 그는 “정당에 들어갈 필요성을 느끼긴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취지 자체가 출마 문턱을 낮추고 한국 정당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자는 것”이라며 “지금 정당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품어 안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차 후보가 거주하는 마포구 대흥동·염리동에는 대학생들이 많다. 더불어 주거 양극화가 심한 지역이다. 굉장히 비싼 아파트가 있는 반면 한쪽에는 주거환경정비가 필요한 주택들이 있다. 그는 “타깃화된 선거이기 때문에 지역의 인구구조, 주거형태, 지역현황 등 유권자 분석부터 하고 있다”며 “1인가구, 20대, 여성이 많은 지역이다. 유권자 분석을 바탕으로 공약이나 정책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차 후보의 유권자가 3만~4만명 수준인 반면, 고은영 후보(34)의 유권자는 53만명에 이른다. 고 후보는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다. 큰 ‘직’에 비해 고 후보가 가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거대 정당이 아니고, 제도정치의 경험은 물론이고 선거를 치러본 경험도 없다. 40∼60대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정치판에서 고 후보는 30대 비혼 여성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행동하는 시민 정체성’이었다고 표현했다.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온 건 4년째이고, 제주에서 시민활동과 녹색당 활동을 한 건 2년 정도 됐다. 고 후보는 “제주에서 지내다 보니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며 “서울에서 수십 년 동안 진행됐던 개발이 제주에서 압축적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활동을 하면서 정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특히 제주 2공항이 출마 계기가 됐다. 고 후보는 “우리는 효과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은데 왜 의원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까. 왜 정책적으로 반영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내가 직접 참여해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창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먼저 ‘괜당 정치’다. 괜당은 친척을 일컫는 제주 사투리로, 괜당 정치는 정치이념이나 성향보다 혈연이나 연고가 중시되는 정치 토양을 말한다. 고 후보는 “제가 이주민이라서 이주민 목소리를 내겠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 정치에 진입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라며 “제주의 시민사회는 기존의 정치권 구성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말했다.

선거자금이나 경험, 인력 부족 등의 약점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시장으로 출마한 신지예 후보와 고 후보는 얼마 전 ‘기탁금 마련을 위한 1만원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들이 필요한 기탁금은 각각 5000만원씩인데 이를 두고 “고액기탁금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고 후보는 “선거제도의 틀을 깨려고 노력하면서 선거를 진행하는 것도 선거전략”이라고 말했다.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안소희 민중당 파주시의원, 차윤주 무소속 마포구의원 후보 (왼쪽부터) / 연합뉴스, 본인제공, 본인제공

기업하기 좋은 파주? 노동자는? 안소희 민중당 파주시의원(39)은 앞선 두 후보에 비해 정치적 토양이 마련돼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경기도 파주에서 지냈고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파주로 돌아왔다. 2005년부터 파주시에서 청소년 무료 공부방, 독거노인 봉사활동 등을 하며 지역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2010년과 2014년 모두 파주시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오는 6월에는 3선에 도전한다.

안 의원은 “시의원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더 절감한다”고 말했다. 2010년 초선 당시 신도시였던 파주는 교통이나 안전에 취약했다. 임대아파트도 많았다. 안 의원은 “임대아파트뿐 아니라 마을공동체 사업을 시작해 급식지원, 마을카페, 도서관 지원사업 등을 진행했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광역버스, 직행버스 등의 문제를 개선했다”고 말했다.

복지가 초점이라면 다른 정당과 다른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안 의원은 “시의회는 시에 대한 견제장치를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같은 당이면 감시의 역할이 미약한 경우가 많다. 특히 지역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보은인사로 채워지곤 한다”며 “작은 진보정당 시의원들이 이런 감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파주시의원 14명 중에 진보정당 의원은 안 의원 1명뿐이다.

안 의원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기존 정당과는 차별화된 정책을 앞세울 예정이다. 먼저 노동자를 위한 도시다. 안 의원은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파주를 두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기업을 많이 유치했다. 그런데 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출·퇴근을 할 수 있는 버스조차 제대로 없다.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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