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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팔괴 1리는 영월읍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져 있다. 마을 주민은 188가구 345명이 전부다. 영월군에서도 고추, 벼, 과수 농사가 잘되기로 손꼽힌다. 먹을 것이 풍족해 마을 인심도 후하다. 순박하고 고요한 농촌 마을이다.

지난 22일 오후 찾아간 마을은 수확기를 맞은 분주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길에서 마주친 주민들은 외지인을 보기가 무섭게 몸을 피했다. 애써 말을 붙여보려 해도 쉽사리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아이고, 우리 마을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얼굴 들고 다니기 창피합니다." 어렵사리 대화하게 된 주민 김모씨는 한숨부터 쉬었다. 김씨는 "우리 마을 생긴 이래 가장 충격적 사건이다 보니…"라며 말을 흐렸다. 김씨가 말한 '충격적 사건'은 여성 A(26)씨를 60~80대 마을 남성 7명이 수년간 성추행·성폭행한 사건이다. 지적 장애인 A씨의 정신 연령은 3.5세 정도다. 경찰은 지난 2014년부터 A씨를 상습 성추행·성폭행한 마을 남성 7명 중 3명을 구속하고 4명을 불구속 기소해 지난달 9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이 밝혀진 후에도 피의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범행을 부인했다. 이날 마을에서 만난 피의자 B씨는 "A를 성추행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80대인 B씨는 백발이 성성하고 귀가 어두웠다. 그는 "A씨에게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몸을 한번 만져 보자고 말한 게 전부"라며 "손녀 같아 그랬다"고 말했다. 또 "나는 누구보다 A를 아낀 사람"이라며 "경찰이 A 말만 믿고 그런 것이다.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피의자는 아내를 내세워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피의자의 아내는 언론 인터뷰에서 "제 남편은 A가 자꾸 덤벼들어서 만져만 봤다고 하더라"며 "A가 잘못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A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주민 김씨는 "A는 장애가 있었지만, 붙임성이 좋아서 주민들과 잘 어울렸다. 부모가 없는 A를 모두가 딸처럼 아꼈다"고 했다. A씨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직후 어머니는 마을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A씨는 할머니 손에서 컸다. 2004년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큰아버지(68)와 둘이 남게 됐다. A씨의 유일한 혈육이자 보호자였던 큰아버지도 범행에 가담했다. 하지 기능 장애가 있는 그는 이번에 불구속 기소됐다.

주민들은 "피의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해달라"고 요구한다. 인근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최모씨는 "피의자 중 일부는 마을회관에서 자주 얼굴을 봐 왔는데,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인자한 얼굴을 하며 돌아다녔단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이어 "5년 가까이 주민 누구도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이번 사건의 조직적 은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민 이모씨는 "2015년부터 누군가가 A를 성폭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2015년쯤 A가 임신해 병원을 다녀왔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때라도 바로잡았으면…" 하고 말을 흐렸다.

영월군은 사건 경위를 확실하게 밝히기 위해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영월군 관계자는 "A씨는 중증 장애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이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이상 면담을 진행했지만, 피해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면서 "매일같이 보던 주민들이 어떻게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