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양팔 없는 남교사와 초 6학년 때 성관계 후 딸 낳은 여중생이 가출한 까닭은..현대판 '민며느리' 논란

김준희 입력 2017.08.03. 00:02 수정 2017.08.03. 14:12

2014년 군산 아동센터 사회복지사와 학생 사이
이듬해 딸 출산..13세 미만 강간 혐의로 입건
피해아동 "성관계 합의"..검찰, 기소유예 처분
남자 집서 살면서 학교다니다 최근 가출
"당시 강요로 거짓말" 2년 전 진술 뒤집어
학교, 1366신고..경찰 "남자와 부모 등 3명 입건"
부실 수사 의혹..檢 "시민위도 기소유예 결론" 반박
전문가 "성인-여아 간 연애로 보는 건 가해자 시선"
아동학대 그래픽. [중앙포토]
김고운(15·가명)양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14년 전북 군산의 한 아동센터에 다녔다. 거기서 알게 된 아동복지교사 최진호(29·가명)씨와 그해 9월 성관계를 맺었다. 최씨는 두 팔이 없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평소엔 의수를 사용한다.

이듬해 중학교에 입학한 김양은 배가 불러왔다. 만 13세도 안 된 여자아이가 임신을 한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던 주변 사람이 2015년 6월 전북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에 최씨를 신고했다.

경찰은 최씨에게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적용해 같은 해 8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형법은 13세 미만 아동과 성관계를 한 사람은 폭행이나 협박을 하지 않았더라도 강간죄를 적용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해 아동의 동의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씨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검찰이 2015년 10월 22일 최씨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서다. 김양은 앞서 경찰 조사에서 "내가 원해서 성관계가 이뤄졌고 최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최씨가 지체장애 1급이고, 두 사람이 앞서 6, 7월께 딸을 낳아 키우고 있는 상황도 기소유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아동학대 그래픽. [중앙포토]
김양의 부모도 친딸이 최씨의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을 허락했다. 부부가 이혼한 데다 가정 형편도 넉넉지 않아서다. 김양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친모는 현재 재혼해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다. 딸보다 14세나 많고 장애가 있는 남자를 사실상 사위로 인정한 이유다.

김양은 경찰과 검찰이 수사할 당시에도 최씨의 집에서 최씨 부모와 함께 살았다.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피의자)가 분리되지 않고 한 집에서 생활한 것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김양이 현대판 '민며느리'였다"는 말이 나온다.

민며느리제는 10세가량의 소녀가 남자 집에 미리 가서 살다가 결혼하는 제도다. 기원전 2세기부터 56년까지 함경도의 동해안 지방에 있었던 옥저의 결혼 풍습이었다.

현재 국내 민법에 따르면 만 18세가 안 된 미성년자는 양쪽 부모의 동의가 있어도 혼인할 수 없다. 최씨의 어머니 박미경(59·가명)씨는 현직 공무원이고, 아버지 최두식(60·가명)씨는 중견기업을 다니다 퇴직했다.
아동학대 그래픽. [중앙포토]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한 이듬해인 2016년 초 김양은 전주의 한 중학교로 전학했다. 학교 측은 김양을 배려해 여교사가 담임인 반에 배치했다. 김양은 2학년 때는 결석도 하지 않고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는 등 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다.

이상 징후를 보인 건 김양이 3학년이 된 올해부터였다. 갑자기 학교를 빠지는 날이 잦아지더니 지난 6월 가출했다. 친구 집에 머물며 학교는 가끔 나왔지만 최씨 가족과는 아예 연락을 끊었다. 급기야 김양의 시어머니격인 박씨가 같은 달 29일 학교를 찾아와 김양의 담임교사에게 "우리 아이가 없어졌으니 찾아달라"고 했다.

앞서 최씨 측은 김양의 담임교사에게 '장기 결석'을 요청하기도 했다. 신장 이식 수술을 앞둔 최씨 아버지의 병간호를 김양에게 맡기려 했지만 학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양은 2학년 담임이던 여교사가 가출한 이유를 묻자 "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집에 있으면 최씨 어머니가 빨래와 청소·설거지 등 살림을 시키고, 밤마다 최씨가 성관계를 원해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학교 측은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대응에 나섰다. 여교사로부터 이런 내용을 보고받은 교장과 교감은 이튿날(6월 30일) 여성긴급전화 1366전북센터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센터 측이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 다시 김양의 동의를 구해 정식 신고 절차를 밟았다. 학교 측은 지난달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센터를 찾아 김양의 심리적 안정을 도왔다.

학교 측에 따르면 당초 김양의 친모는 센터에 신고하는 것을 반대했다. 가출한 김양이 최씨의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딸(김양)만 생각하자"는 학교 측의 설득에 생각을 바꿨다.

1366센터 측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손잡고 김양에 대한 상담과 심리 치료를 병행하는 한편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지난달 3일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김양에 대한 1차 조사 서류 등을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아동학대 체크리스트. [중앙포토]
최씨와 최씨의 부모 등 3명은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18세 미만)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 김양은 지난달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으며, 현재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마련한 쉼터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아동학대 신고 건수. [중앙포토]
전주 완산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건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다"면서도 "양측 의견을 충분히 듣고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최씨 등은 일부 사실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김양을 학대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김양은 최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2년 전 수사기관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최씨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거짓말을 했다"는 취지로 말을 뒤집은 것이다.

당시 "최씨를 사랑해서 성관계를 맺었다"는 김양의 진술은 최씨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검찰과 경찰 수사가 부실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9대 주요 대선 후보 아동보호 공약. [중앙포토]
검찰은 "당시 수사는 엄정히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2일 전주지검 군산지청에 따르면 최씨에 대해 기소유예를 내린 배경에는 김양과 최씨가 나중에 결혼할 것을 서약한 점,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 두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가정의 행복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검찰은 김양에 대한 추가 조사는 하지 않았다. 앞서 경찰에서 성폭력 상담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피해자 조사를 마쳤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는 김양의 탄원서를 받은 다음 최씨에 대한 피의자 조사만 진행했다.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면 사실 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피해자를 조사해야 하지만 피의자 본인이 성관계 사실을 자백했기 때문에 피해자를 조사할 필요성이 없었다"는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당시 검찰은 검찰시민위원회를 열어 시민 의견도 들었다. 시민 9명이 참여해 만장일치로 기소유예 의견을 냈다. 군산지청 관계자는 "검찰시민위원회를 연 것은 주임 검사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한 증거"라며 "두 사람의 처지가 모두 딱한 데다 이미 애를 낳아 키우면서 부부처럼 사는 상황을 감안해 (기소유예로) 만장일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양이 자필로 쓴 탄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자 딸아이의 아빠인 오빠를 처벌받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로 시작한다. "딸을 위해서라도 오빠를 용서해 주세요. 딸이 오빠를 보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검찰 관계자는 "글만 보면 진정성 있게 썼다. 누가 시켜서 쓴 글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만 13세도 안 되는 김양이 경찰과 검찰, 시민위원들까지 감쪽같이 속인 걸까. 아니면 어른들이 김양의 진짜 속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걸까.

전문가들은 "단순히 사춘기 소녀의 변덕이라고 치부하기엔 김양을 둘러싼 현실이 너무 복잡하고 가혹하다"고 입을 모은다. "20대 남성이 초등학생 여자아이와 성관계를 한 것은 강제성 여부와 상관없이 명백한 범죄인데도 남녀 간의 연애라고 보는 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고 가해자의 시선"이라는 지적이다.
아동학대 삽화. [중앙포토]
황지영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는 "피해 아동이 어떤 상황에 있었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하는 게 중요하다"며 "검찰이 피해 아동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피의자와 분리하지 않고 전문기관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피해자 보호 의무를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대표는 또 "10대 여중생이 법적으로 혼인 관계도 아닌 동거인에게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당하는 것 자체가 성폭력"이라며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김양이 다시 최씨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러 정황상 김양의 부모가 딸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는 데다 돌볼 의지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씨 부모의 경우 장애가 있는 아들이 누군가를 만나기 쉽지 않아 손녀까지 낳은 김양을 며느리로 삼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황 대표는 김양이 2년 만에 진술을 바꾼 데 대해 "아동·청소년 발달 과정에서 누군가의 얘기를 지속적으로 들으면 그 말이 주입될 수 있다"며 "피해 아동이 스스로 보호할 수 없고 주변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똑같이 한다고 해서 그 아이의 진짜 생각이라고 믿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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