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딥 포커스] 'K팝 인베이전'.. BTS 美 흔들고, 트와이스는 日 강타

양승준 입력 2017.11.21 04:42 78 
그룹 방탄소년단이 19일 (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신곡 'DNA'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아시아 가수로는 유일하게 초대된 방탄소년단은 이 시상식 마지막에서 두 번째(16번째)로 무대에 올랐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1. “인터내셔널 슈퍼스타란 말로 부족하다.” 1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전자음악 듀오 체인스모커스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을 이렇게 소개했다. 방탄소년단이 신곡 ‘DNA’를 선보이자 외국 방청객들의 함성은 끊이지 않았다.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울면서 보는 흑인 여성 관객의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영원히 함께니까”란 대목을 한국어로 따라 하는 외국 팬도 있었다. 한국에서 음악 방송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만한 장면이었다. 이 무대는 미국 지상파 방송사 ABC를 통해 현지 전역으로 생중계됐다. 그래미어워즈와 함께 미국 양대 음악 시상식으로 꼽히는 이 행사에서 K팝 그룹이 공연을 선보이기는 처음이다. 한국 가수로는 싸이가 2012년 이 무대에 처음 올랐다.

걸그룹 트와이스가 지난 7월 일본 도쿄 도쿄체육관에서 공연하고 있다. 2회에 걸친 행사엔 1만 5,000여 명이 몰렸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걸그룹 트와이스는 내달 31일 일본 공영방송 NHK의 ‘홍백가합전’에 출연한다. 한 해 최고 인기 가수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이 연말 음악 축제에 한국 가수가 초대되기는 2011년(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이후 6년 만이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에선 ‘혐한류’가 조성돼 한국 연예인들의 현지 방송사 프로그램 출연이 어려웠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지난 6월 앨범 ‘해시태그 트와이스’로 일본에서 데뷔한 트와이스는 발매한 음반마다 현지 유력 음악차트인 오리콘 정상을 휩쓸었다.

아이돌 K팝이 세계 양대 음악 시장인 미국과 일본을 흔들고 있다. 팝의 본고장에서 마니아 문화로만 여겨졌던 K팝이 방탄소년단을 발판 삼아 라틴팝과 함께 주목 받는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트와이스는 올 여름 노래 ‘TT(티티)’를 유행시키며 일본 열도에서 꺼진 줄 알았던 K팝 열풍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룹 동방신기와 빅뱅, 소녀시대, 카라 이후 해외 시장에서 파괴력 있는 아이돌 그룹이 나오지 않으면서 K팝 열풍은 주춤했다. 지난해 한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에까지 아이돌그룹의 활로가 막혀 악재는 겹쳤다. 암흑기를 깨고 K팝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는 셈이다.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를 앞세운 ‘K팝의 미ㆍ일 인베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15일 ABC 유명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 스튜디오 밖에서 보이그룹 방탄소년단과 깜짝 전화를 하게 된 해외 팬들이 놀라고 있다. 이날 스튜디오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밖에서 방탄소년단의 'DNA'를 함께 불렀다. ABC 제공

군무에 스토리까지... K팝 새 장 열고 미주서 부상

방탄소년단은 미국에서 K팝 아이돌그룹으로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9월 낸 새 앨범 ‘러브 유어셀프 승 허’로 빌보드 앨범 차트 ‘빌보드 200’ 톱10(7위)에 진입했고, 노래 ‘DNA’는 싱글 차트인 ‘핫100’에 4주 동안 머물렀다. 모두 K팝 아이돌 최초 기록이었다. ‘핫100’은 음원 다운로드 외에 라디오 방송 횟수 등이 순위 산정에 포함된다. 미국 전역에 한 달 동안 라디오에서 한국어 노래가 울려 퍼진 셈인데 방탄소년단의 현지 팬층이 꽤 두텁게 쌓였다는 방증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이 여느 K팝과 결이 다른 걸 고려하면, 방탄소년단이 아이돌 K팝으로 미국 본토에서 한류를 만든 최초 사례”(김상화 음악평론가)다.

지난 8월 미국에서 사랑 받는 가수 50팀을 분석한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은 캘리포니아주와 위스콘신주에서 인기가 높다. 방탄소년단은 아이돌 K팝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해 세력을 넓혔다. 빈틈없는 군무로 외국 팬들의 눈길을 끈 뒤 K팝에 서사를 입혀 팬덤을 강화했다. 일본 대학생 오 바유리(25)씨는 “유튜브에서 ‘쩔어’ 뮤직비디오를 보고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게 됐다”며 “나중엔 청춘 3부작 앨범으로 젊은이들의 헛되고 헛된 청춘을 일관적으로 그려 스토리에 빠졌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소설 ‘데미안’을 모티프로 앨범 ‘윙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칼군무와 조각 같은 외모의 미소년 집단이란 K팝 아이돌의 흔해 빠진 스토리에 새 이야기가 붙으면서 환호의 저변은 넓어졌다.

미국에서 K팝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도 방탄소년단의 활약에 밑거름이 됐다. “미국에서 K팝은 이제 ‘루저’가 듣는 음악이 아닌 ‘힙(Hipㆍ개성 있는)한 문화 소비”(DJ 히치하이커)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 등을 계기로 K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중미에서 먼저 조명 받고 뒤늦게 한국으로 역수입되는 사례까지 생겼다. 혼성그룹 카드는 지난 7월 데뷔 앨범 ‘홀라 홀라’ 국내 발매에 앞서 유튜브에 공개한 노래 ‘오 나나’ 등이 화제가 돼 멕시코에서 같은 달 2,000석 규모의 공연을 열었다. 동방신기와 빅뱅 등이 일군 아이돌 K팝 시장에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더해지면서 K팝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져 가능해진 일이다.

일본 럭비팀 선수들이 패러디한 트와이스 'TT'.

현지화로 깬 장벽… 10대로 젊어진 ‘K팝 한류’

트와이스는 일본에서 이미 10대들의 스타다. 일본 유명 음반 기획사 현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ㆍ고등학교 축제에 트와이스 히트곡 ‘TT’는 단골 손님처럼 등장했고, ‘TT’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했다. 인터넷에는 남성 럭비팀 등의 ‘TT’ 패러디 등이 쏟아졌다. 후지TV 정보프로그램 ’메자마시TV’는 지난 7월 ’TT’춤을 ’일본 여중생 유행 톱10’에서 1위로 선정했다. 트와이스가 6월 ’해시태그 트와이스’를 낸 직후 벌어진 일들이다.

트와이스는 7월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쇼케이스에 1만5,000여 명을 불러 모았다. 소녀시대(2010)이후 일본에 진출한 걸그룹 중에선 가장 큰 규모의 데뷔 행사였다. 트와이스의 데뷔 앨범은 한 달 동안 25만장이 넘게 팔려 나갔다.

일본 여중생 유행 톱10에 1위로 선정된 걸그룹 트와이스의 ‘TT’춤.

트와이스가 일본에서 얼어 붙은 한류를 녹일 수 있었던 데는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다. 트와이스 멤버인 모모, 미나, 사나는 일본인이다. “9명 중 3명이 일본인으로 팀이 꾸려져 일본인들에게 반한 정서를 떠나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 줄 결정적 요소가 됐다”(김성환 음악평론가).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소녀시대와 카라 등이 ‘혐한류’라는 역풍을 맞고 현지에서 입지가 좁아진 것과 달리 트와이스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세를 넓힐 수 있었던 비결이다. 트와이스는 지난 6월 일본 지상파 방송사 TV아사히의 유명 음악 프로그램인 ‘뮤직스테이션’에도 나왔다. 2012년 소녀시대 이후 한국 걸그룹 중 첫 출연이었다.

보아(2000년대 초반)에서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2000년대 후반)로 이어진 일본에서의 K팝 한류는 트와이스를 계기로 새 국면에 접어 들었다. CJ E&M에 따르면 지난 4월 일본에서 열린 한류 콘서트 ‘K콘’의 일본 관객 중 20대 이하가 56.8%를 차지했다. 지난해(45.2%)보다 약 11%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중년층의 충성도가 강했던 일본에서의 한류가 트와이스 등의 활약을 계기로 소비층이 젊어지고 있는 것이다. CJ E&M은 “한류의 발원지인 일본은 한류 팬의 연령층이 대표적으로 높은 국가”라며 “‘아줌마 부대’에서 10대와 20대 중심인 ‘신한류’로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이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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