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죽도록 맞아" 551명 숨진 형제복지원, 비상상고 되나

 

'특별법 제정' 300일 넘긴 국회 앞 농성
비상상고? "89년 판결 바로잡는 첫단추"
수용 첫 날부터 구타..."반만 죽여줄게"
피해생존자만 270명, 진상 규명 해달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한종선(피해생존자모임 대표)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요. 저희가 탐정 손수호 코너를 통해서도 깊이 있게 다뤘던, 하지만 과연 제대로 된 재수사라는 게 가능하겠는가 안타까워하면서 끝을 냈던 바로 그 사건. 형제복지원에 관한 얘기입니다. 형제복지원.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도시 정화라는 명분으로 부랑자, 노약자,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갔던 사건인데 그 안에서 무려 551명이 사망했습니다. 1987년에 그 원장이 재판에 부쳐지기는 했습니다만 고작 횡령죄만 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검찰이 대법원에다가 이 사건을 비상 상고할지 말지 논의를 했다 그럽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의 대표, 직접 연결을 해 보죠. 한종선 대표 연결이 돼 있습니다. 한 대표님, 안녕하세요?  

◆ 한종선>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지금도 국회 앞에 계시다고요?  

◆ 한종선> 네.

◇ 김현정> 무슨 일입니까?

◆ 한종선>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 특별법을 2012년부터 이야기를 했었는데 들어줄 것처럼 이렇게 이야기만 해서 우리가 이번에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300일 넘게 이렇게(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농성 중이신 거죠, 그러니까 국회 앞에서 계속해서?

◆ 한종선> 네.  

◇ 김현정> 300일이 넘어갔습니다. 혹한, 폭염 다 겪고 이제 찬바람 부는 가을까지 온 건데. 그사이에 변화가 조금 있기는 있었습니다. 뭔고 하니 ‘어제 검찰 개혁위에서 형제복지원 재판에 대한 비상 상고를 할지 말지 논의에 들어갔다.’ 이건데 비상 상고라는 말이 좀 어려워요. 비상 상고를 결정하면 뭐가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 한종선> 그러니까 그 예전에 89년도 때 형제복지원 관련한 사건 재판에 특수 감금에 대한 무죄 부분.  

◇ 김현정> 그때 그러니까 특수 감금. 이런 것에 대해서는 다 무죄가 나오고 횡령했다는 부분만 유죄가 나와서 한 2년 몇 개월 살고 말았죠?  

◆ 한종선> 네, 초지법 위반하고 공금 횡령 이런 걸로요.  

1970~80년대 참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던 형제복지원. (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그래요. 그런데 그게 ‘잘못된 법령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라는 부분이 인정이 되면 검찰이 비상 상고. 상고를 하는데 비상으로 할 수 있다, 이런 거군요.

◆ 한종선> 그렇죠. 검찰총장이 올리면 거기에서 검토를 한 후에 다시 재판을 하는 제도죠.

◇ 김현정> 그렇죠. 그러니까 대법원 판결이 다 난 거라도 그때 그 바탕이 되는 법령이 잘못됐으면 다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그런데 이것은 검찰총장만 할 수 있는 거라면서요, 비상 상고라는 건?  

◆ 한종선> 그렇죠.  

◇ 김현정> 그런데 이게 어제 회의는 했는데 결론이 안 나왔네요?

◆ 한종선>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전혀 언론에서도 이야기가 안 나오고 있고 그러네요.  

◇ 김현정> 그러게요. 그러니까 어제 예정대로라면 어제 회의하고 어제 결론이 내려질 줄 알았는데 그 후로 아무 얘기가 안 나오는 상황. 그러니까 어제 치열했던 모양입니다.

◆ 한종선>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또 유야무야 이렇게 지나가지 않을까. 이런 걱정도 들고.

◇ 김현정> 흐지부지될까 봐. 그런데 설사 검찰에서 이걸 비상 상고 올리자 해서 대법원에다가 검찰이 올리고 대법원이 그걸 받아들인다고 치더라도 여러분, 그게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재판이요. 사실은 부산 형제복지원 전체에 대한 재판까지 못 갔어요. 그 형제복지원의 원장이 부산 형제복지원 사람들을 몇 명 빼내서 울산에서 또 나쁜 짓을 벌이다가 그게 처음 실마리가 잡혔던 건데. 그래서 부산 형제복지원까지 수사를 확대하려고 했는데 윗선에서 압력이 내려오고 이러면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까지는 그때 수사를 충분히 못 했죠?

◆ 한종선> 거의 못 했다고 봐야죠.  

◇ 김현정> 못 했죠. 따라서 부산 형제복지원에 대한 재수사는 이 비상 상고 조치가 내려진 후에도 다시 또 촉구를 해야 되는 상황 맞습니까?  

◆ 한종선> 그렇죠. 30년 만에 다시 바로잡는 첫 단추라고 보시면 되죠.

◇ 김현정> 그래요. 한 대표님.  

◆ 한종선> 네.  

◇ 김현정> 그러면 도대체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1984년으로 한번 돌아가보죠. 그때 몇 살이셨어요?  

◆ 한종선> 제가 9살이었고 저희 누나가 12살이었어요.  

◇ 김현정> 9살, 12살. 9살, 12살이 어쩌다가 형제복지원에 끌려가셨어요?

◆ 한종선> 저는 그 당시 형제복지원이 다 지어진 상태에서 들어가게 됐는데요. 강제 노역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제. 건물을 다시 올릴 이유는 없으니까.  

◇ 김현정> 그러니까 건물을 올리는 것도 사실은 끌려온 사람들의 강제 노역으로 올렸는데 한 대표가 끌려갔을 때는 이미 건물은 지어졌다.  

◆ 한종선> 다 지어진 상태라서 이제 사람만 수용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한 부모 가정 같은 가난하거나 어렵게 사는 가족들을 경찰들이나 공무원들이 가서 위탁 종용을 했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어떤, 한 대표님 같은 경우는 어떤 식으로는요?  

◆ 한종선> 학교 갔다 오니까 아버지가 시내를 이제 구경을 시켜줬어요, 그날. 그래서 저녁 8시경에 동광파출소에 데리고 갔어요.  

◇ 김현정> 아버지가.  

◆ 한종선> 네. 그리고 아버지가 “여기에서 잠시만 기다려라. 아버지 곧 갔다 올게.” 이러면서 파출소를 나가셨어요. 그리고 형제복지원 차량이 파출소 앞에 와서 저랑 작은 누나를 번쩍 들어서 차에 싣고 가버린 거죠.  

◇ 김현정> 아버지는 이게 일종의 위탁 수용 시설. ‘좋은 시설에 가서 잘 먹이고 잘 키울 테니까 여기로 넘기시죠.’ 이런 종용을 받으셨다?  

◆ 한종선> 그렇죠. 그런데 저희 입수 자료에는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누나랑 같이 집에서 며칠 동안 굶고 울고 있어서 주민 신고로 들어간 걸로 돼 있죠.

◇ 김현정> 고아로 돼 있군요, 거기에는?  

◆ 한종선> 네.  

◇ 김현정> 그래서 영문도 모르고 초등학교 2학년이 수용이 됐습니다, 형제복지원에. 그리고 나서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정말 잘 먹고 잘살고 잘 교육받고가 아니었잖아요?

◆ 한종선> 그렇죠. 차 안에서부터 이미 구타가 시작됐었으니까요. 파출소에서 나가서부터.

◇ 김현정> 초등학교 2학년을?  

◆ 한종선> 우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엄청나게 세게 때렸죠.  

◇ 김현정> 그렇게 해서 끌려간 후에 벌어진 일들.  

◆ 한종선> 일단 그 형제복지원에서는 새벽 4시에 기상을 하고요. 그리고 굵은 소금으로 양치를 하고 물 세 바가지 정도로만 세면을 하는데 한 100여 명이 되는 사람이 15분 안쪽에 세면을 다 끝내요.  

◇ 김현정> 100여 명이.  

◆ 한종선> 그 정도로 세면을 깨끗하게 안 시킨다는 소리죠.

◇ 김현정> 그냥 시늉만 하는 거네요, 고양이 세수?  

◆ 한종선> 그렇죠.  

◇ 김현정> 물 아끼려고?  

◆ 한종선> 그렇죠. 그리고 나서 점호가 끝나고 나면 아침에 찬송가 같은 게 나오거든요, 스피커로. 그러면 그 기도문하고 그거 다 따라서 외워야 되고. 그거 끝나면 운동장 나가서 식사 시간이 6시니까 그 시간까지 군가를 부르면서 구보를 돌아요. 발 다 딱딱 맞춰가면서.

◇ 김현정> 9살짜리도 그걸 해야 돼요?  

◆ 한종선> 그렇죠.  

◇ 김현정> 그리고 나서요?  

◆ 한종선> 그리고 나서 식사 시간이 시간표대로라면 30분씩 주어지는데 항상 선착순으로 시켜요. 많게는 4500명, 적게는 평균 한 3500명이 생활했으니까 한 식당에서 한꺼번에 다 못 먹는다는 거죠, 30분 안에. 그러니까 우리가 빨리 먹어줘야 뒷 소대가 또 먹을 수 있으니까 선착순을 시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선착순 안에 못 들어가면 또 아침부터 빠따 5대씩 맞고 시작하는 거예요.  

◇ 김현정>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한 식당 안에 예를 들면 200명, 300명이 들어갈 수 있는데 그 안에 “자, 출발!” 해가지고 한 번에 못 들어가면 나머지 사람들 맞고. 이런 식으로?

◆ 한종선> 아니요. 식당을 못 들어가서 맞는 게 아니라 이 먹는 시간이 30분이 원래 주어져야 되는데.  

◇ 김현정> 그 시간 안에 못 먹으면, 주어진 시간 안에 못 먹으면 매질.

◆ 한종선> 그러니까 30분을 주어진 게 아니라 저희한테는 5분도 안 주어지는 거예요.

◇ 김현정> 5분 동안 못 먹으면 낙오자는 매질.  

◆ 한종선> 그렇죠. 그러니까 저희한테는 항상 선택 사항이 뭐였냐면 밥이라도 많이 먹고 맞을 것이냐 아니면 안 먹고 맞을 것이냐. 이런 선택밖에 없는 거죠.

◇ 김현정> 밥은 제대로 나왔어요? 밥이며 반찬은?  

◆ 한종선> 밥도 제대로 안 나왔죠. 꽁보리밥이라고 하는데요. 입안에 넣으면 입안에서 막 굴러다녀요. 그리고 전어젓이라는 생선 찌꺼기로 만든 젓이 있는데 거기 뚜껑 열어보면 그 위에 구더기가 버글버글해요. 그러면 그것만 싹 걷어내서 버리고 또다시 퍼서 먹이고 이러거든요.  

◇ 김현정> 젓갈을 주는 이유는 그러니까 젓갈 조금 찍어먹고 밥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 한종선> 그렇죠, 그렇죠.  

◇ 김현정> 그런 반찬 나오고. 아니, 제가 어떤 수기를 보니까 쥐를 잡아서 보약이라고 먹어야 될 정도였다. 이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 한종선> 그 부분은 제가 27소대에서 생활할 때인데.  

◇ 김현정> 이게 한 대표님 얘기예요?  

◆ 한종선> 네.  

◇ 김현정> 어떤 겁니까?  

◆ 한종선> 27소대에서 생활할 때 매트리스가 있거든요? 겨울에 사용하는 매트리스인데 그런데 소대 내부가 여름에는 찝찝하고 하여튼 썩은 내가 많이 날 정도로 곰팡내 날 정도로 열악한데 이걸 싹 끄집어냈는데 거기에 새끼 쥐들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털도 안 나 있고 분홍색깔의 눈도 못 뜬 게 꼬물꼬물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게 제 옆에 있는 형이 갑자기 이걸 딱 빼앗아가더만 이건 보약이라면서 딱 먹어버리는 거예요.  

◇ 김현정> 옆에 있던 어른이?  

◆ 한종선> 그래서 저는 울었죠.  

◇ 김현정> 그 얘기군요. 이 단백질이라도 먹어야 된다.  

◆ 한종선> 그렇죠.  

◇ 김현정> 그런 일도 있었고. 그렇게 먹는 것도 충분치 않고 일은 계속 시키고. 못 견디는 사람들은 탈출하려고 시도도 했겠는데요?  

◆ 한종선> 탈출 시도를 하다가 잡히면 이제 진짜 죽어서 나간다라는 생각으로 탈출을 하는 거니까.  

◇ 김현정> 맞아서?  

◆ 한종선> 그렇죠. 잘못 맞으면 이제 진짜 장애가 생기는 거고. 그렇게 되죠.

◇ 김현정> 아니, 어떻게 때리면 사람이 맞아 죽을 정도로 때립니까?

◆ 한종선> 제가 형제복지원에 있을 때 가장 무서워했었던 말이 “반만 죽여줄게.”였거든요.

◇ 김현정> 반만 죽여줄게?  

◆ 한종선> 네.  

◇ 김현정> 왜요? 그게 왜 제일 무서운 말입니까?  

◆ 한종선> 이건 죽지도 못하는 거잖아요.  

◇ 김현정> 아예 깨끗하게 죽어서 여기서 나가면 모르는데 그것도 아니고 반만 고통스럽게 죽여줄게라는 말을 했어요?  

◆ 한종선> 그렇죠. 그래서 제가 거기에서 맞으면서 장애가 생기거나 아니면 죽어나가는 경우를 정확하게 한 두세 번은 봤으니까요.  

◇ 김현정> 직접 본 것만도.  

◆ 한종선> 네.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것도 그냥 두들겨 패는 게 아니라 있는 힘껏 막 두들겨 패요.  

◇ 김현정> 그랬겠죠.  

◆ 한종선> 그러면 진짜 죽을 때까지 맞는 거죠. 그래서 실려나가서 안 돌아오는 경우가 죽은 걸로 판단을 하고 있죠, 저희들은.  

◇ 김현정> 그렇게 해서 시킨 노동의 대가는 전혀 못 받으신 거예요?

◆ 한종선> 그렇죠. 어른 소대들은 대가가 담배 세 까치. 이렇게 정해져 있고 우리들은, 아동 소대들은 없죠.  

◇ 김현정>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이 박인근이라는 원장은 치부를 했습니다. 금고를 열자 수십억 원이 그 당시 돈으로. 그 당시 돈으로 수십억 원이 금고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죠. 이게 이제 울산에서 나쁜 짓을 하다 그게 검찰 눈에 띄면서 거기서부터 실마리가 잡히기는 했는데 여차저차해서 잡혔으니까 이제 부산 형제원까지, 부산 형제복지원까지 수사가 확대되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거기서 막힌 거예요?  

◆ 한종선> 그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사회 정화 사업을 슬로건으로 걸고 이렇게 복지 강국을 표방해서 한 일에 대해서 “박인근만큼 잘한 사람 없다.”면서 동백훈장 등 2개 정도의 훈장까지 받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사람을 구속시켜서 되겠는가 하며 부산지검에 외압이 있었던 것 같고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의 전폭적인지지, 그 자체가 외압 행사였던 거죠.

◇ 김현정> 그리고 돈을 이렇게 많이 모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여기저기에다가 권력자들한테 로비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요?  

◆ 한종선> 그렇죠. 구속돼 있는 상태에서도 이 사람이 밤에 나와서 사우나 갔던 뉴스 기사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묻힌 겁니다. 횡령죄 가볍게 살고 나와서 지금 박인근 원장은 잘살다가 사망한 상태입니다. 피해생존자모임에는 몇 분이나 계세요?

◆ 한종선> 한 270여 명이 저하고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피해 생존자들이 지금 가장 바라는 건 뭡니까?  

◆ 한종선> 진상 규명이죠. 도대체 우리가 왜 잡혀가야 했었는지. 잡아간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 달라는 거죠.  

◇ 김현정> 여러분, 지금 검찰이 논의 중입니다만 아직 비상 상고를 할지 말지 결정 못 했습니다. 검찰이 엄정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이 문제를 바라보기를. 그래서 1980년대에 멈춰져 있는 이 진실이 반드시 규명되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한 대표님, 고맙습니다.

◆ 한종선>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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