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3명을 살해하고 뉴질랜드로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는 35살 김 모 씨가 지난달 30일 현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김 씨는 도피 전인 지난달 21일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의붓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같은 날 강원도 평창에서 의붓아버지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사법 당국은 우리 수사 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어제(1일) 김 씨를 구속했습니다. 김 씨는 뉴질랜드 도피 중 과거 현지에서 저지른 절도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구금된 상태입니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S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서 진행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와의 대담을 바탕으로 용인 일가족 살인 사건의 전말을 분석해봤습니다.
■ 10월 21일,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일가족이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달 21일입니다. 이날 오후 2~5시쯤 용인시 처인구 아파트에서 55살 여성 A 씨와 14살 B 군이 수차례 흉기에 찔려 살해됐습니다. 두 사람은 모자(母子) 관계였습니다. 같은 날 저녁 8시 강원 평창군의 한 도로 졸음 쉼터에서 B 군의 아버지 57살 C 씨도 흉기에 찔려 숨졌습니다.
사건 발생 나흘 뒤인 지난달 25일 모자의 시신이 발견됐고, 경찰은 장남 김 모 씨를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김 씨가 계획적으로 가족을 살해하고 도주한 정황을 포착한 겁니다. 하지만, 김 씨는 범행 이틀 뒤 아내와 자녀 둘을 데리고 이미 뉴질랜드로 출국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습니다.
■ 깨끗하게 정리된 사건 현장, 증거 인멸 위해 밀가루까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치밀한 계획범죄로 보이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모자가 살해된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범죄 현장은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였습니다. 이 교수는 "당시 시신이 발견된 아파트 안은 범행 현장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모자가 살해된 현장에서는 범인이 밀가루를 뿌려 증거를 훼손하려 한 흔적도 발견됐습니다. 이 교수는 "범인이 영화 등을 통해 밀가루를 뿌리는 수법을 터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혈흔에 밀가루를 뿌린 행동을 볼 때 증거를 은폐하려는 범인의 의지가 굉장히 강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습니다.
■ 피의자의 치밀한 행각…출국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김 씨는 범행 발생 이틀 만에 뉴질랜드로 출국했고 일가족의 시신은 그로부터 2~3일이 더 지나고 나서야 발견됐습니다. 김 씨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출국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교수는 범행 이후 범인의 치밀한 행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출국 직전 인천공항까지 피해자들의 휴대전화를 갖고 다녔습니다. 지인들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주말에 해외여행 갔다', '술 취해서 자고 있다' 등 일일이 거짓 대응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친척과 지인들에게 피해자의 행적을 거짓으로 알려 혼선을 주고 신고가 늦어지도록 해 사건 발생 이틀 뒤인 23일 출국까지 시간을 번 겁니다.
■ 뉴질랜드에서 구속된 피의자…언제 송환될까?
김 씨는 뉴질랜드에서 저지른 절도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김 씨는 4,100달러어치 전자제품 절도 혐의로 기소되자 도주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왔다가, 다시 뉴질랜드로 달아났습니다. 이 교수는 이런 동선이 김 씨의 계획 중 일부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김 씨는 어제(1일) 변호사를 통해 우리 당국의 송환 방침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김 씨의 우리나라 송환 시기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한국은 뉴질랜드와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어 김 씨 송환을 요청할 수 있으나 일단 김 씨가 현지에서 절도혐의로 체포된 만큼 현지 사법당국의 절차에 따라 인도 시기가 구체화 될 전망입니다.
이런 가운데 김 씨의 아내 정 모 씨가 뉴질랜드에서 자진 귀국하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 씨는 남편의 범행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경찰은 정 씨를 상대로 남편 김 씨의 범행을 알았는지, 알았다면 어느 정도 가담했는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입니다.
(기획·구성: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윤영현 기자yoon@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