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양팔 없는 남교사와 초 6학년 때 성관계 후 딸 낳은 여중생이 가출한 까닭은..현대판 '민며느리' 논란
김준희 입력 2017.08.03. 00:02 수정 2017.08.03. 14:12
이듬해 딸 출산..13세 미만 강간 혐의로 입건
피해아동 "성관계 합의"..검찰, 기소유예 처분
남자 집서 살면서 학교다니다 최근 가출
"당시 강요로 거짓말" 2년 전 진술 뒤집어
학교, 1366신고..경찰 "남자와 부모 등 3명 입건"
부실 수사 의혹..檢 "시민위도 기소유예 결론" 반박
전문가 "성인-여아 간 연애로 보는 건 가해자 시선"
이듬해 중학교에 입학한 김양은 배가 불러왔다. 만 13세도 안 된 여자아이가 임신을 한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던 주변 사람이 2015년 6월 전북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에 최씨를 신고했다.
경찰은 최씨에게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적용해 같은 해 8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형법은 13세 미만 아동과 성관계를 한 사람은 폭행이나 협박을 하지 않았더라도 강간죄를 적용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해 아동의 동의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양은 경찰과 검찰이 수사할 당시에도 최씨의 집에서 최씨 부모와 함께 살았다.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피의자)가 분리되지 않고 한 집에서 생활한 것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김양이 현대판 '민며느리'였다"는 말이 나온다.
민며느리제는 10세가량의 소녀가 남자 집에 미리 가서 살다가 결혼하는 제도다. 기원전 2세기부터 56년까지 함경도의 동해안 지방에 있었던 옥저의 결혼 풍습이었다.
이상 징후를 보인 건 김양이 3학년이 된 올해부터였다. 갑자기 학교를 빠지는 날이 잦아지더니 지난 6월 가출했다. 친구 집에 머물며 학교는 가끔 나왔지만 최씨 가족과는 아예 연락을 끊었다. 급기야 김양의 시어머니격인 박씨가 같은 달 29일 학교를 찾아와 김양의 담임교사에게 "우리 아이가 없어졌으니 찾아달라"고 했다.
앞서 최씨 측은 김양의 담임교사에게 '장기 결석'을 요청하기도 했다. 신장 이식 수술을 앞둔 최씨 아버지의 병간호를 김양에게 맡기려 했지만 학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양은 2학년 담임이던 여교사가 가출한 이유를 묻자 "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집에 있으면 최씨 어머니가 빨래와 청소·설거지 등 살림을 시키고, 밤마다 최씨가 성관계를 원해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학교 측은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대응에 나섰다. 여교사로부터 이런 내용을 보고받은 교장과 교감은 이튿날(6월 30일) 여성긴급전화 1366전북센터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센터 측이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 다시 김양의 동의를 구해 정식 신고 절차를 밟았다. 학교 측은 지난달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센터를 찾아 김양의 심리적 안정을 도왔다.
학교 측에 따르면 당초 김양의 친모는 센터에 신고하는 것을 반대했다. 가출한 김양이 최씨의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딸(김양)만 생각하자"는 학교 측의 설득에 생각을 바꿨다.
하지만 김양은 최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2년 전 수사기관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최씨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거짓말을 했다"는 취지로 말을 뒤집은 것이다.
검찰은 김양에 대한 추가 조사는 하지 않았다. 앞서 경찰에서 성폭력 상담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피해자 조사를 마쳤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는 김양의 탄원서를 받은 다음 최씨에 대한 피의자 조사만 진행했다.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면 사실 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피해자를 조사해야 하지만 피의자 본인이 성관계 사실을 자백했기 때문에 피해자를 조사할 필요성이 없었다"는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당시 검찰은 검찰시민위원회를 열어 시민 의견도 들었다. 시민 9명이 참여해 만장일치로 기소유예 의견을 냈다. 군산지청 관계자는 "검찰시민위원회를 연 것은 주임 검사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한 증거"라며 "두 사람의 처지가 모두 딱한 데다 이미 애를 낳아 키우면서 부부처럼 사는 상황을 감안해 (기소유예로) 만장일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양이 자필로 쓴 탄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자 딸아이의 아빠인 오빠를 처벌받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로 시작한다. "딸을 위해서라도 오빠를 용서해 주세요. 딸이 오빠를 보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검찰 관계자는 "글만 보면 진정성 있게 썼다. 누가 시켜서 쓴 글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만 13세도 안 되는 김양이 경찰과 검찰, 시민위원들까지 감쪽같이 속인 걸까. 아니면 어른들이 김양의 진짜 속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걸까.
황 대표는 또 "10대 여중생이 법적으로 혼인 관계도 아닌 동거인에게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당하는 것 자체가 성폭력"이라며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김양이 다시 최씨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러 정황상 김양의 부모가 딸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는 데다 돌볼 의지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씨 부모의 경우 장애가 있는 아들이 누군가를 만나기 쉽지 않아 손녀까지 낳은 김양을 며느리로 삼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황 대표는 김양이 2년 만에 진술을 바꾼 데 대해 "아동·청소년 발달 과정에서 누군가의 얘기를 지속적으로 들으면 그 말이 주입될 수 있다"며 "피해 아동이 스스로 보호할 수 없고 주변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똑같이 한다고 해서 그 아이의 진짜 생각이라고 믿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