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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전화 한 통에, 순식간에 범죄자가 된 또다른 사람들이 있다. 최근 보이스피싱범들은 대포통장을 만들기가 어려워지자 돈을 운반하는 방식을 바꿨다. 바로 사람을 대포통장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각종 SNS나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채권 추심, 부동산 경매, 퀵서비스 등의 업체로 위장해 현금수거책을 모집한다. 현금수거책이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고 전달한 뒤 체포되면, 다른 조직원이 잡히지 않는 이상 법적인 책임도, 피해금액에 대한 배상도 홀로 떠안게 된다. 취업의 문을 열고 보니 보이스피싱 범죄의 공범이 돼있는 것이다. 시사직격은 현금수거책으로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청년들이었다.
 
■ 보이스피싱, 청춘에 덫을 놓다 이들은 어떻게 보이스피싱에 가담하게 되는 것일까. 정말 모르고 한 것일까. 현금수거책 피의자들은 대부분 흔히 접할 수 있는 온라인 구인구직사이트나 생활정보지에 올라와 있는 구인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다. 채용과정은 물론, 업무지시 역시 메신저로 진행됐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운영 중이라는 설명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데. 특히 일자리가 간절한 청년들은, 보이스피싱범들의 제안에 의심보다는 취업을 했다는 기쁨이 앞섰다고 했다. 시사직격은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의심이 가는 몇몇 구인업체들의 주소지로 찾아가 봤다. “누구나 다 아는 사이트에 공고가 올라와 있었고 검색해도 나오는 업체였어요.” 현금수거책 피의자 인터뷰 中 - “돈보다는 사람구실을 하고 싶었거든요 나도 그냥 회사다니고 있다 뭐...월급 조금이라도 내가 내 밥 먹고 살면 솔직히 우리나라에선 평범하게 산다고 할 수 있잖아요“ 현금수거책 피의자 인터뷰 中 -
 
■ 단독인터뷰! 중국 현지에서 만난 총책 시사직격은 수소문 끝에 중국 현지의 한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이른바 ‘총책’으로 일하고 있다는 A씨를 만났다. 한국에서 수거책 일을 하다 붙잡혀 징역을 살고 나온 뒤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그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은밀한 운영방식을 털어놓았는데.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물론, 현금수거책이나 전달책들을 모집하는 데 사용하는 이른바 ‘멘트장’은 영화 시나리오를 연상케할 만큼 치밀했다. 총책은 사회경험이 없고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범죄에 끌어들여 이용하기에 가장 좋다고 말한다. 수거책이 된 이들이 왜 쉽게 그만둘 수 없는지, 보이스피싱 조직이 그들을 어떻게 못 빠져나가도록 관리하는지, 그 과정에서 동원되는 ‘좀비앱’의 실체도 낱낱이 공개한다. “보이스피싱을 인지하고 빠지려고 해도 빠질 수가 없어요 이쪽에서 협박이 들어가니까“ - 총책 인터뷰 中 - “그만두거나 자수로 터지면 그냥 버리는 애들도 있고 써먹을 만큼 써먹었으니까“ - 총책 인터뷰 中 -
 
■ 보이스피싱, 몸통을 잡아라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보이스피싱, 단순 수거책들을 잡아 엄벌에 처하면 줄어들 수 있을까? 현금수거책으로 일하다 붙잡혀 재판을 앞둔 영진 씨(가명, 27세)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주 7일, 매주 10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자신이 가담했던 보이스피싱 사건 피해자들과의 합의금을 갚기 위해서다. 현금을 전달하고 수거책들이 받는 돈은 평균 10만원 남짓. 정작 피해자의 돈은 해외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흘러들어간다. 최근 보이스피싱의 원조격인 이른바 ‘김미영 팀장’과 ‘김민수 검사’가 검거됐다. 그러나 진짜 몸통에 해당하는 이런 총책급의 검거율은 불과 1.8% 남짓. 이들이 쉽게 잡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수해서 오게 되면 그들을 구하러 가는 작업들을 같이 해야 된다“ 서영교 의원 인터뷰 中 - “수익금의 대부분은 정범한테 흘러갔는데 처벌은 단순 수거책들에게 훨씬 무겁게 이루어지는 모순이 나타난다“ 이형주 변호사(전 판사) 인터뷰 中 - ‘나는 인간 대포통장이었다’ 편에서는 보이스피싱 최신 수법을 분석하고 ‘현금수거책’들이 어떤 식으로 이용되고 버려지는지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보여준다. 나아가 단순 수거책에게 무거운 형량을 선고하고 발생한 피해의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보이스피싱 범죄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탐사 보도의 노하우와 정통 다큐멘터리의 기획력을 더했다! 《시사직격》 일본 강제동원 손해배상사건과 제주 4.3 군사재판 희생자들의 재심사건 담당. 거대한 국가 폭력에 항거하는 피해자의 곁을 묵묵히 지켰던 임재성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매주 금요일 밤 10시, KBS 1TV 방송 ✔ 제보 : 010-4828-0203 / 시사직격 홈페이지 / betterkbs@gmail.com ▶홈페이지 : http://program.kbs.co.kr/1tv/culture/... ▶트위터 : https://twitter.com/KBSsisajg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kbssisajg1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kbssisa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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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공범 몰린 스무살 청년 ‘무죄’ 확정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1.18. 오후 5:02 최종수정 2021.11.18. 오후 6:07 기사원문 스크랩 
 
20대 청년 취업사기 속아 현금수거책 연루
'고객' 3명 만나 7150만원 받은 후 무통장 입금
항소심 재판부 “원심 무죄 판결 반하는 납득할만한 사정 없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최재원 작가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지난달 27일 대구고등법원 법정에서 판사가 주문을 읽었다.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에 ‘현금수거책’으로 가담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최민정(21·가명) 씨의 무죄가 확정된 순간이었다.

스스로 생활비를 조달하면서 대학진학을 준비하던 최씨는 지난해 미끼 구인공고에 속아 ‘거래처 사람을 만나 수금하는 업무’를 했다. 이게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피해금을 받아오는 범죄였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올 4월 검찰은 그를 사기, 사문서 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혐의로 기소했다.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판단한 것이다.

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국민배심원 7명은 검사의 주장과 변호인의 변론을 듣고,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들을 살핀 끝에 최씨에게 죄가 없다고 평결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는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을 맏은 대구고법 2형사부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판결문에 “(원심) 배심원의 평결이 잘못됐다고 볼 수 없고 원심의 판단에 반대되는 충분하고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지 않다”고 적었다.

최씨의 1심 변호인이었던 강수영 변호사(법무법인 맑은뜻)는 “검사는 줄곧 법리적으로 피고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1심 결과를 뒤집을)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진 못했다”며 “법원도 ‘뭔가 이상했다’라는 점만으로는 큰 규모의 재산범죄의 공범으로 처벌하기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민정(가명) 씨의 항소심 판결문. 무죄를 선고한 1심 결론이 유지됐다.
갓 스무 살, 어쩌다 공범으로 몰렸나


그간 보이스피싱은 비대면으로 범죄가 성립됐다. 검사나 금감원 직원을 사칭하는 ‘그놈 목소리’로 피해자를 속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받는 대면편취 방식이 폭증했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심부름꾼을 온라인에서 물색했다. 채용 사이트, SNS 등 온라인에 ‘가짜 구인공고’를 뿌려서 일자리가 필요한 평범한 시민을 낚았다.

최씨는 조직으로서는 낚기 쉬운 대상이었다. 그는 고등학교까지 외국에서 보냈다. 그러다 지난해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귀국했다. 나라 안팎이 어수선해졌고 설상가상 집에선 유학비용을 지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외국에서 미래를 설계했던 20세 청년은 좌절감에 휩싸였다. 부모님과 갈등 끝에 스스로 돈 벌어서 앞으로 계획대로 살겠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지난해 11월 가출청소년쉼터에서 지내면서 이력서를 적어 알바천국에 올렸다.

일주일 뒤 무역회사의 인사담당자라는 이가 이력서를 보고 연락해왔다. “단순행정, 회계업무 등을 하면 된다. 영어 가능자를 우대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면접’만 거치니 입사가 결정됐다. 처음엔 계좌이체 같은 단순업무를 시키더니 “거래처 고객을 만나 수금해서 무통장 입금하는 업무를 해 달라”고 했다.

11 17~23일 5차례에 걸쳐 ‘고객님’ 3명을 만나 ‘대금’ 7150만원을 받았다. 그걸 은행 자동화기기(ATM)로 무통장 입금했다. 하지만 고객으로만 알았던 이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그들이 건넨 대금은 피해금이었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안 사실이었다. 최씨는 “한국에서 회사생활 경험이 없고 보이스피싱이란 단어도 몰랐다. 돈이 필요해 알바를 했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취재팀이 보이스피싱 대면편취 사건 판결문 252건, 257명의 현금수거책 피고의 형량을 분석했다. 전체의 70%가 징역형을 받았다. 무죄가 나온 재판은 단 2건이었다. 초범이어도 보이스피싱 단순 가담자로 기소되면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웠다. 권해원 디자이너
무죄 극히 드물어…대부분 형사처벌


취업사기를 당해 보이스피싱에 관여한 ‘현금수거책’들은 저마다 결백을 호소한다. 하지만 대부분 형사처벌을 면치 못한다. 헤럴드경제가지난해 7월부터 올 6월 말 사이 선고가 이뤄진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판결문 252건을 분석했더니 무죄는 2건뿐이었다. 70.0%가 징역형, 집행유예는 28.8%를 차지했다.

범죄 전력이 없던 초범도 보이스피싱에 엮이면 어떻게든 형사처벌을 면치 못하는 구조다. 형사정책적으로 “모르고 했다”고 주장하는 단순 가담자들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게 수사기관과 법원의 기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씨가 무죄를 받아낸 건 이례적이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전환한 점이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변호인들은 국민 눈높이에서 사건의 진실을 설명해야 무죄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봤다. 검찰은 국민참여재판 전환을 반대하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씨의 1심 판결문에서 배심원 평결결과를 서술한 대목

변호인은 배심원들에게 증거를 보여주면서 “이런 사람도 징역 살게 하고 인생 다 포기시켜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익명을 요청한 국선변호사(재판 참여)는 “보이스피싱 조직원과 현금수거책 일을 한 피고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를 확보한 점이 유리한 부분”이었다며 “조직원이 실제 회사인 것처럼 행세하고 고객님, 직원, 사원번호, 퇴사, 급여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대화를 배심원들에게 제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피고 최씨는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했고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겨우 스무 살에 또래는 상상도 못하는 경험을 했다. 그가 무죄 확정에 기뻐하지 못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변호인들이 전했다.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더라도 피해자들을 만나 7000만원 넘는 거금을 받았다는 죄책감을 지우긴 힘들다는 것이다.

기획취재팀=박준규·박로명 기자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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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nyang@heraldcorp.com, 박로명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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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준생 죽음 몬 '김민수 검사', 中공안 체포됐다 풀려나[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강주안 입력 2021. 11. 16. 00:33 수정 2021. 11. 16. 06:30 댓글 2
 

추가 범행에 20대 극단 선택


“택배ㆍ경리 업무” 믿은 청년들만 철퇴

지난 7일 오후 8시쯤 경기도 안산의 한 지하철역 앞에서 A씨(22)를 만났다. 대학 2년생인 그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사흘 뒤 법원 선고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검ㆍ경 수사기록 등에 따르면 그가 함정에 빠진 건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한 직후인 지난 1월이다. 채용사이트 ‘알바몬’을 통해 신용정보회사와 연결됐다. 코로나19 속 비대면 면접을 통해 대출 관련 업무라는 설명을 들었다. 두 차례에 걸쳐 200만원과 1300만원을 전달한 그는 혹시나 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보이스피싱일지 모른다는 게시물을 본 그는 파출소를 찾아갔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는 보이스피싱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해명했지만, 검ㆍ경은 그가 범죄임을 몰랐을 리 없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A씨는 "군 적금으로 집에 에어컨을 달아드렸고 학비를 보태려다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일요일인 이날도 온종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알바)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혹시라도 전과가 생길까 봐 근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이스피싱 일당이 위조한 검찰 공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름을 적었다.


A씨는 요즘 전국의 경찰서ㆍ검찰청ㆍ법원ㆍ구치소ㆍ교도소에 넘쳐나는 ‘알바 범죄자’ 중 한 명이다. 검사와 수사관을 사칭해 시민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피해자에게 돈을 받아내려 또 한 번의 정교한 사기극을 벌인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현실을 악용해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같은 사이트를 무대로 알바생을 끌어들인다. 택배ㆍ경리ㆍ금융 알바라고 속인다. 재직 증명서를 보내고 근로계약서까지 쓴다. 알바생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자들과 주고받은 메시지에는 일자리를 얻었다는 20대 사회초년병의 기쁨이 묻어난다.


중형에 거액 물어내는 알바생

그러나 사기가 드러나는 순간 알바생들만 체포된다. 떳떳한 알바라는 생각에 자기 휴대폰으로 집까지 택시를 부르고 자기 카드로 돈을 내 바로 검거된다. 그들을 끌어들인 범죄자들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다. 알바생들만 남아 경찰ㆍ검찰 조사를 받고 ‘자금수거책’ ‘현금운반책’이라는 태그를 단다. 그들 머리 위로 총책ㆍ사장ㆍ유인책ㆍ장집관리자ㆍ관시담당ㆍ상담원 같은 ‘성명불상자’들이 등장한다. 알바생들은 졸지에 이들과 공모한 범죄조직원이 된다. 범행을 설계한 본범(本犯)을 못 잡으니 범죄 조직에 뜯긴 시민의 돈을 갚는 것도 알바생 몫이다. 몇십만원을 번 죄로 수천만 원, 수억 원을 물어내라는 압박에 눌린다. 그래야 형량이 조금 줄어든다.

보이스피싱 주범들이 알바생에게 보낸 가짜 재직증명서.

지난 4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중앙지법의 한 법정 앞에 20대 여성이 아버지ㆍ변호인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대학을 다니다 우울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치료를 받으며 재택 알바를 해왔다. 일당 7만원의 총무 업무가 덫이었다.부친은 "만약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면 제가 그 일을 하도록 놔뒀겠습니까"라고 했다.

재판이 시작됐다. 검사는 징역 3년을 구형했다.B씨가 최후 진술을 했다.

"죽어야 이 죄를 감당할까 자책했지만, 속이 문드러지시는 부모님을 보며…" 눈물이 쏟아졌고 목소리는 떨렸다. 방청석에 앉아 울음을 참던 아버지의 어깨가 흔들리며 "흑흑"하는 소리가 새 나왔다. 짧은 취업의 기쁨 속에 100만원 남짓 벌었던 B씨는 합의금만 수천만 원을 물어야 했다.

지난해 발표된 ‘보이스피싱 전달책의 가담경로에 관한 연구’(홍동규ㆍ홍순민ㆍ김한결)에 따르면 A·B씨 같은 전달책은 절반 이상(50.6%)이 전과가 없고 10~20대가 무려 77%를 차지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전과자로 전락하는 셈이다.


검찰·법원 "보이스피싱 엄단 불가피"

보이스피싱 범죄는 연간 3만건에 이르고 지난해 피해 금액만 7000억원이다. 범죄인줄 알면서 가담한 사람들을 엄벌하자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대검찰청 관계자는 “현금수거책은 속은 피해자들을 직접 대면해 범행을 최종 완성시키는 역할로 엄단이 필요하다”며 “이들 중 조직원과 적극 공모하고도 ‘몰랐다’며 처벌을 피하려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 관계자는 “판사가 먼저 유ㆍ무죄를 가려서 유죄로 판단되면 양형을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양형위원회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은 조직적 사기에 해당하고 피해 금액이 크기 때문에 특별 양형 인자를 반영해 권고 형량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사회적으로 보이스피싱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분위기”라며 “만약 약하게 처벌하면 어떤 쪽으로 발전해갈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알바생을 속이기 위해 제공한 가짜 사업자등록증.


문제는 속았을 경우다. 검찰과 법원은 범죄인 줄 알았는지 철저히 따진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건을 많이 접한 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전민성 변호사는 “단순히 알바로 생각했거나 가담 사실을 모르고 시작한 일들인데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이를 참작하기보다는 ‘알았을 것이다’라고 단정하고 결국 중형이 선고된 사례가 많다”고 말한다.

경찰 출신인 임휘성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은 “최근에도 입대를 앞둔 대학생이 잠깐 알바를 하려다가 속아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며 “100만원 정도 보수를 받고서 피해자들에게 3000만원을 주고 합의해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이 고의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한 사건을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알바생을 통해 건넨 가짜 카드사 영수증.

대검과 은행연합회가 지난 5일 발표한 보이스피싱 대책엔 ‘고액 알바 등을 미끼로 구직자를 현혹해 현금수거책 등 점조직의 말단으로 가담시킨다’며 ‘절박한 구직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위험으로까지 확대되는 상황’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중국 공안에 잡힌 날, 인맥 통해 곧바로 석방

알바생까지 엄벌하는 한국과 대조적으로 중국에선 보이스피싱 주범들을 검거하고도 풀어줬다는 조직원들의 증언이 중앙일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지난달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형을 받은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원 C씨는 지난해 10월 부산경찰청 조사에서 2017년 칭다오에서 일당이 전부 중국 공안에 체포됐던 사실을 털어놨다. C씨에 따르면 범행 장소인 아파트에 한국인이 드나드는 걸 수상하게 여긴 경비원이 공안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출동한 공안은 조직원들이 DB를 보면서 범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무전기로 지원을 요청해 공안 20여명이 들이닥쳤다. 조직원들을 대형 승합차에 태워 파출소로 끌고 갔다. 그런데 공안에 인맥이 있는 조직 핵심인물 전모씨가 간부에게 연락해 그날로 석방됐다는 것이다.

같은 조직에서 일했던 D씨도 "공안에 2차례 잡혀갔지만, 전 씨가 힘을 써 풀려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김민수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로 20대 취업준비생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갔다. 중국 공안이 보이스피싱 일당을 처벌하거나 한국에 인도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중국서 가담한 한국인이 국내로 돌아와 검거된 사례도 중국 보이스피싱 주범들이 공안 당국에 손을 써 조직에서 이탈하려는 한국인을 불법체류자로 체포해 강제 추방했기 때문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경찰은 범죄 무대가 된 중국 칭다오ㆍ옌지ㆍ다롄ㆍ선양 등지의 아파트 주소와 특징 등을 파악하고 사진까지 확보했지만, 검거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법조계 "본범 못 잡고 책임 전가"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사회 취약계층의 변론을 맡은 한 국선변호인은 "본범을 잡는 게 국가의 역할인데 종범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일괄적으로 답을 정해놓고 기소를 하고 재판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범죄단체 수사를 많이 했던 서울지검 강력부장 출신의 김규헌 변호사는 “재범 이상인 경우엔 미필적 인식이 있다고 봐야 하지만 어쩌다 걸려든 사람의 경우 ‘강자에겐 엄하게 약자는 관대하게’라는 원칙으로 검사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이병찬 파트너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알바생들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범행 도구로 이용된 것”이라며 “그런데 정부는 이들을 피해자를 달래는 도구로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과실범에 불과한 이들에게 검찰과 법원은 미필적 고의가 있다는 미명하에 무조건 실형을 선고해 보이스피싱 방지의 도구로 삼고 있다”며 “이는 형사법상 대원칙인 책임주의에도 반하는 위헌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받은 A씨

대학생 A씨의 1심 선고일인 지난 10일 오전 9시 30분쯤 법원 앞에서 그를 만났다. 혼자였다. 그는 "진짜로 몰랐고, 두 번 알바비 20만원을 받고 이상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경찰서에 갔기 때문에 무죄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선고가 시작됐다.

-생년월일을 말씀하세요.

"1999년 O월O일입니다."

-유죄가 인정됩니다. 합의하지 않은 점은 불리한 정상입니다. 범행의 이익이 크지 않은 점은 유리한 정상입니다. 징역 1년을 선고합니다. 단 2년간 집행을 유예합니다.

돌아서는 A씨의 얼굴에 당황함이 역력했다. 그는 "수업 들으러 학교에 가야 한다"며 법원을 나섰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기자 joo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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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제보] 구직업체에 등록된 곳이 보이스피싱 조직..범죄자로 몰린 20대

김대호 입력 2021. 11. 04. 07:00 수정 2021. 11. 04. 07:01 댓글 4

 

행사대행 업체로 등록한 후 대출업무 시켜
중간 전달책 역할로 사기·사문서 위조 혐의
"피해자들 피해금액까지 물어내야 할 상황"

경찰, 보이스피싱과의 전쟁 TF 구성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대호 기자 = 20대 여성이 구직 사이트를 통해 취업한 곳이 나중에 알고보니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으로 드러나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일이 일어났다.

4일 관계 기관들에 따르면 경기도 포천에 사는 20대 여성 A씨는 작년 12월 대형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 에 올라온 B 업체를 보고 연락해 일하게 됐다.

당초 행사대행 업무를 한다고 광고했던 B 업체는 면접을 본 후 A씨에게 대출중개라는 다른 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사회경험이 부족했던 A씨는 제2금융권 업무라 생각하고 그곳에서 시키는 대로 여러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아 업체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A씨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으러 가면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어떤 분은 고생한다고 홍삼도 챙겨주어서 전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할 때 텔레그램과 전화로 연락하며 업무를 진행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대면접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았다.

그는 이렇게 한달가량 일을 하는데 경찰서로부터 자신이 하는 일이 보이스피싱이라며 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으며 경찰서로 출석해 조사도 받았다.

A씨에게 돈을 전달했던 사람 중 일부가 뒤늦게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A씨는 지난 1월 이후 경찰 조사를 거쳐 최근 사기와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됐으며 오는 26일 재판을 앞두고 있다.

현재까지 A씨와 관련해 접수된 피해금액은 5천여만원으로 집계됐으며, 피해자들과 배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A씨가 재판에서 불리해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여기다 다른 피해자들까지 신고가 들어오면 그들 피해금액까지 A씨가 배상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한다.

연령별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 사례 (서울=연합뉴스) 장성구 기자 = 금융감독원은 올해 2~3월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 신청 등을 위해 금융회사 영업점을 찾은 피해자 620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를 토대로 피해 유형을 분석해 지난 6월 공개했다. sunggu@yna.co.kr

A씨의 작은 아버지는 "보이스피싱 몸통을 놔두고 전달책으로 이용당한 사람만 잡아들여 처벌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범죄 총책을 잡아 처벌하고 피해금액을 배상토록 해야 한다"면서 "조카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카가 경찰에서 보이스피싱 조직 전화번호로 연락해보자고 했지만 경찰이 '소용없다. 잡지 못한다'며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식당에서 밥을 먹다 이가 부러져도 보상을 받는데 대형 구직 사이트에서 소개된 업체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구직 사이트 관계자는 "평소 보이스피싱 피해를 차단하기 위해 경찰 당국과 협조하고 있으며, 업체들이 공고를 올릴 때 '단순 전달책' '고액알바' ' 채권 회수' ' 현금 수거' 등의 단어가 뜨면 등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체 정보, 연락처, 등록자 등의 정보를 파악, 수사기관과 협조함으로써 우리 사이트를 통해 구직한 분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적극 협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보이스피싱 몸통을 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 보이스피싱 사기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가정이 파탄 나는 등 고통받는 다른 피해자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 사건이 안타깝지만 법원에서 잘 설명하길 바란다면서도 일단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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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취업 축하받지만…곧 해고될 시한부 같습니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8. 오후 5:02 최종수정 2021.10.28. 오후 6:10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끝

에필로그 - 어느 공기업 사원의 말하지 못한 비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이 스마트폰으로 업무 지시를 기다리는 모습을 대역배우를 통해 재연했다. 최재원 사진작가

20대 이정우(가명) 씨는 지난 여름 누구나 알 만한 공기업에 합격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오히려 우울감에 젖어 있다. “부럽다. 그런 안정적인 공기업 들어가서.” 주변의 축하에 애써 웃어 보이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곧 잘리게 될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전과자가 되게 생겼으니까요.”

그에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친구, 직장 동료는 물론 가족들마저 모르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어요. 커서 공직생활을 할 거라고 기대했죠. 하지만 한순간 범죄자가 됐어요.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가능하더라고요.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씨는 직업군인으로 입대해 4년을 복무했다. 사회에 나가 공적 영역에서 근무하고 싶단 포부를 품었다. 지난해 말 군복을 벗고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틈틈이 공기업에도 원서를 넣었다. 구직은 만만치 않았다. 합격도 기약은 없었다. 모아뒀던 생활비가 빠르게 줄어들자 아르바이트(알바)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올해 봄 알바천국 채용공고를 훑다가 수납직원을 구한다는 ‘태은대부’라는 곳의 공고를 봤다. 채용 담당자는 “고객들에게 대출을 알선해주는 회사다. 당신의 업무는 고객들을 만나 수수료를 받아오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대부업체라 경계심은 들었지만 검색해보니 서울 양천구에 그런 상호의 회사가 존재했다. 알바천국에 적힌 회사 주소와 같았다.

일을 하기로 했다. 근무 첫날, 영등포역으로 나와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거기서 6시간을 기다린 끝에 경기도의 한 도시로 이동하란 업무가 떨어졌다. 거기서 고객 한 명을 만나 대금(800만원)을 받았고 회사에서 알려준 대로 은행 ATM으로 무통장 입금했다. 그리고 일을 더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당으로 20만원을 받았다.

“첫날 퇴근하려는데 추가 건을 진행할 수 있겠냐더라고요.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거절했습니다. 내적갈등을 했어요. 큰돈이 오간다는 점이 부담스러웠고 실제 일하는 시간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서 차라리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당일치기 알바는 이후 기억에서 잊혔다. 하지만 한 달 뒤 족쇄가 돼 돌아왔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가담했다”며 출석하라고 했다.

“조사받으면서 수사관님이 죄명을 ‘사기죄’로 적는 걸 보는데 허망했어요. 어린 나이지만 직업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는데 사기라니….”

권해원 디자이너

이씨는 헤럴드경제가 ‘인간 대포통장’ 기획 보도를 준비하며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이다.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다. 심부름꾼으로 쓰이고, 꼬리 자르기를 당했다. 보이스피싱임을 알지 못했다고 항변해도 재판에 넘겨지면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징역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연재기사에 나온 분들 보면 그저 안쓰러워요. 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 상황이 절망적이에요. 저는 하루 알바로 끝냈지만 길게 할 수도 있었어요. 어쩌면 그분들처럼 될 수도 있었겠죠.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한 명의 피해자만 남긴 이씨는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취재팀이 만난 피의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최대한 빨리 체포되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다. 피해자와 피해금이 많다면 형량은 더 높아진다. 형사처벌 전력이 전혀 없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은 ‘강력처벌’을 내세운다.

피해자가 한 명이고 피해액이 비교적 적다. 이씨는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 피해자와 합의할 계획이다. 재판부의 선처를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엔 ‘언제라도 전과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웅크리고 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취업, 연애 걱정을 늘어놓으며 속상해하지만 공감이 안 된다. 검찰은 이씨의 사건을 ‘보완 수사’를 요구하며 경찰로 다시 내려보낸 상태다.

“공기업에 합격했는데 한동안 아무한테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했어요. 동료들의 자신감과 씩씩함을 보면 부럽습니다. 집행유예라도 받게 되는 날엔 해고될 시한부처럼 느껴져요. ‘알고 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일당 10~20만원 벌자고 꿈과 희망을 버리는 선택을 누가 하겠어요.”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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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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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구인’ 현수막, 길거리에 대놓고 걸렸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7. 오후 5:03 최종수정 2021.10.27. 오후 5:47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③

거미줄처럼 퍼진 ‘미끼 구인광고’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노상에 걸려 있던 현수막.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문구가 적혔지만 실제론 보이스피싱 단순 가담자를 물색하는 허위 정보다. [독자 강철수(가명) 씨 제공]

지난 7일 천안 서북구 성정동을 지나던 강철수(가명·27) 씨는 눈을 의심했다. ‘서류 대행·관공서 민원대행·채권대행 아르바이트 초보자 환영’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대로변에 버젓이 걸려 있었던 것. 직감적으로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모집하는 위장 광고라고 느꼈다. 그는 알바를 구하다가 현금수금책으로 엮여 재판을 앞둔 상황이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강씨는 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연락했다. ‘이준호 팀장’이란 사람은 “부실 채권을 매입하는 대행 전문업체”라며 “금융감독원에 소송이 걸려 제1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려운 고객들이 방문을 요청하면 찾아가는 업무”라며 복잡한 단어를 섞어가며 소개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를 만나 현금을 수거할 심부름꾼을 모집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그는 곧장 천안 내 경찰서 3곳에 전화를 걸어 제보했으나 “우리 관할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구청에 민원을 접수하자 하루 만에 현수막은 철거됐다. 강씨는 “며칠 동안 합법적인 구인 공고라고 여겨 연락한 사람들이 꼼짝없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을 것을 생각하니 착잡하다”고 했다.

대면 편취 보이스피싱이 지금 이 순간도 기승을 부리지만 ‘미끼’ 알바 모집공고가 여전히 일상에서 활개 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문자·현수막·생활정보지까지 구직자를 유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이미 침투했다. ‘채권 대행’ ‘법률사무소 외근직’ ‘부동산경매 업무’ 등 그럴듯한 회사를 앞세워 취업이 절박한 구직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독자 강철수 씨가 불법 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하니 자신을 채용(인사) 담당자라고 소개한 이가 업무를 설명하는 내용. 대출, 상환 등 금융에 관해 잘 모르는 구직자일수록 속기 쉽다.

김장범 변호사는 “현금수거책 대다수는 ‘고액 알바’를 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자신이 제공한 노동의 대가로 보수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검·경에선) 비교적 수당이 높다는 이유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것’이라고 간주한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모집 수법은 갈수록 감시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구직자들이 범행에 엮이는 통로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공개적으로 올라온 알바 공고였다.

그러나 구인·구직 사업자들이 ‘채권 추심’ ‘수금 알바’ 등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를 검수해 차단하기 시작하자 수법을 바꿨다. 구직자가 지원서를 제출하길 기다리는 대신, 구직자가 사전에 등록해둔 ‘공개 이력서’를 보고 문자나 메신저로 연락해 포섭한다. 이렇게 하면 구인·구직 사이트의 눈을 피할 수 있다.

실제로 네이버 ‘보이스피싱 피의자 정보공유 카페’에는 구인·구직 사이트 공개 이력서를 통해 일을 시작해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다는 글들이 매일 새로 게재된다. ‘백화점 사무보조’ ‘여행업체 외근직’ ‘법무법인 사무직’ ‘대환대출 업무’ ‘부동산 외근직’ 등 미끼로 제시한 업무도 가지각색이다. 회사의 상호와 주소는 물론 사업자등록번호까지 허위로 기재하거나 도용하는 방법으로 치밀하게 접근하기 때문에 구직자로선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네이버 밴드 등 SNS도 단속이 느슨한 까닭에 구직자를 끌어들이는 창구가 된다.

[123RF]

사업자들도 이런 논란을 모르는 건 아니다. ‘보이스피싱 현금전달책 알바’에 주의하라는 공지를 올리고 인공지능(AI)기술을 바탕으로 보이스피싱 광고 키워드를 검수하고 있다. 그런데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수법을 파악해 걸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알바천국 관계자는 “기업 회원으로 등록한 회사만 구직자의 오픈 이력서를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사업자등록번호, 실제 영업 여부, 채용담당자 연락처 등 요구해 인증한다”며 “그러나 민간기업으로서 (보피 조직이) 사업자등록번호를 도용해 악용하는 것까지 수사할 권한은 없어 더 확실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미끼 공고가 활개 치는 다른 대형 사업자인 알바몬은 취재팀이 입장을 물었으나 반응하지 않았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인터뷰]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3부]

① 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8.8%가 ‘빨간줄’

② [인터뷰] “정부가 보이스피싱 전과자를 양성하는 겁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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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보이스피싱 전과자를 양성하는 겁니다”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6. 오후 6:02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 ②

이병찬 파트너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인터뷰

이병찬 변호사. 그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붙잡힌 일반인들을 강하게 처벌하는 형사정책적 기조를 두고 “국가가 범죄자를 양산한다”고 말했다. 최재원 사진작가

보이스피싱 단순 조력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여 다수의 국내 송금·인출책 범죄에 대한 경각심 강화

2020년 6월 관계부처 합동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방안’ 中

조직의 총책에 대하여는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고 단순 가담자에 대하여도 중형 구형

2021년 7월 대검찰청 보도자료 中



정부와 수사기관의 보이스피싱 기조를 한 줄 요약하면 이렇다. ‘가담 정도를 막론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서 경각심을 높인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판을 짜고, 점조직을 운영하며 피해자를 낚는 총책이야 잡기만 한다면 강력한 처벌이 당연하다.

다만 감쪽 같은 가짜 알바공고에 속아 범죄에 이용된 이들도 있다. 헤럴드경제가 3부에 걸쳐 소개한 ‘인간 대포통장’(현금수거책)들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법조인, 법학자 가운데엔 “일회용 도구로 쓰이는 수거책, 전달책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건 주범 억제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병찬 변호사는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는 내는 이다. “국가가 범죄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이 변호사를 만나 그 근거를 들어봤다.

“시쳇말로 ‘어그로’를 끄려는 게 아닙니다. 의뢰인을 만나고 재판에 들어가 보면 진실로 느껴지는 감정이에요. 수거책들이 잡혀서 처벌받아도 보이스피싱 일당은 관심도 없어요. 하지만 피해자가 생겼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죠. 돈도 받아낼 사람이 필요하고요. 그러니 다들 여기만 목을 조르는 겁니다.”

취재팀이 2020년 하반기~2021년 상반기 선고된 1심 판결문 252건을 분석했더니 70.0%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77%는 1년 이상~3년 미만의 실형이었다.

[123rf]

이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막겠다고 일반인을 잡아 실형 주는 게 보이지 않는 사회적 문제”라며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데 무고한 일반인이 너무 많이 엮인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면 아무리 10~20만원 준다고 할 일반인이 얼마나 되겠는가”고 말했다.

검찰은 현금수거책을 대개 사기,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한다. 이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수거책에게 ‘미필적 고의’ 법리를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확정적 고의가 ‘범죄임을 명확히 알면서 이를 용인’한 것이라면 미필적 고의는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을 내심 알면서도 용인’했다는 법리다.

우리 형법은 고의가 없으면 과실로 본다. 과실이 인정되면 처벌한다. 다만 국내 법에선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과실치상·과실치사)만 과실로 처벌할 수 있다. 남을 돈을 가로챈 일반 사기범죄에선 과실로 처벌할 근거가 없다. 때문에 ‘고의는 없었음’을 증명하면 무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사기범죄는 이야기가 다르다. 검찰은 “피고가 미필적으로 보이스피싱을 인지했다”는 논리로 기소한다. 법원은 ▷취업 과정 ▷업무 방식 ▷보수 수준 등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검찰의 주장을 인정한다.

“(미필적으로나마) 고의가 있었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겁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보이스피싱에 관여하던 사람들이나 조직적으로 대포통장을 모집했던 이들은 그야말로 확정적 고의가 있어서 처벌받았다면 지금은 그런 사람은 1%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대부분 미필적 고의죠.”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병찬 변호사. 최재원 사진작가

이 변호사는 2018년 처음 보이스피싱 사건을 맡았다. 의뢰인은 인천에선 쌀국수가게를 하던 자영업자였다. 영업이 어려우니 단기 알바를 찾다가 코인 구매대행을 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방조로 기소됐다. 수사에 배석하면서 보이스피싱이 수사기관과 사법부에서 다뤄지는 생리를 알았다.

“‘알바를 준 이들이 보이스피싱 일당임을 (의뢰인이) 알았는지 몰랐는지가 관건’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수사관들은 자꾸 ‘뭔가 이상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어요. 나중에 판결을 보니 그 질문에 ‘이상하긴 했었다’고 말하면 처벌이 되더라고요.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면 알아봤어야 했다는 거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이 조사를 안 하거나 제대로 못 알아봅니다. 그러면 미필적 고의가 적용되는 겁니다.”

이 변호사가 모든 현금수거책의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확실히 알아보지 않고 부주의하게 일자리를 받아들인 책임은 있다.

“검색이라도 해보면 될 텐데 그걸 안 한 실수는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바로 징역 몇 년을 사는 건 과해요. (범죄) 예방적 효과는 집행유예만 줘도 일반인들에겐 충분합니다. 범죄에 대한 결과적 책임이든, 예방적 목적이든 실형 살게 하는 건 책임주의 원칙에 어긋합니다. 더불어 ‘이런 알바도 보이스피싱이다’라는 메시지를 널리 알리는 것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3부]

① 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8.8%가 ‘빨간줄’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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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9.2%가 ‘빨간줄’ [인간 대포통장]

신문6면 TOP 기사입력 2021.10.26. 오전 10:12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 ①

법원 판결문 252건 들여다 보니

최재원 사진작가

‘대면편취’ 유형의 보이스피싱이 폭발적으로 늘자 재판정에 서는 이들도 많아졌다. 검찰에선 “요새 구속수사받는 피의자 절반 이상이 현금 수거책”이란 말이 나온다. 이들 대다수는 수사기관, 법정에서 보이스피싱이라곤 전혀 인지 못했다고 항변하지만 처벌을 피하지 못한다.

경찰과 검찰은 ‘단순 가담자도 강하게 처벌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를 두고 최종 가담자를 무겁게 처벌한다고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진 않는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헤럴드경제는 대면편취에 연루된 현금 수거책 피의자들이 법원에서 사법처분되는 양상을 확인했다. 이들 가운데엔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범죄에 조력하고 꼬리 자르기를 당한 시민들이 끼어 있다. 누구나 부지불식중에 엮일 수 있는 일이기에 처벌 경향을 짚어보는 건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전국 법원에서 선고된 1심 판결문 총 252건을 분석했다.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활용해 ‘현금수거책’과 ‘보이스피싱’이란 키워드가 포함된 판결문 350여개를 1차로 수집했다. 이후 복수의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 내용이 대면편취 유형에 해당하는 252개를 추렸다.

판결문에는 모두 257명의 피고인이 등장했다. 피고인 한 명이 평균 4.78명의 피해자를 만났고, 1억203만원의 피해금을 수거했다.

권해원 디자이너

80%의 죄명이 ‘사기’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연루된다면 대개 사기 혹은 사기방조 혐의가 적용된다. 분석한 252개 판결문 가운데 200건(79.4%)이 사기였다. 사기로 기소했다는 것은 피고를 보이스피싱 범행의 ‘공범’으로 판단한단 얘기다. 공범은 넓은 의미에서 공동정범, 교사범, 간접정범 등으로 나뉘는데 보이스피싱 수거책들은 대개 공동정범으로 간주됐다. 죄목이 사기방조인 판결문은 48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권 지검의 한 검사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 사건 전체에서의 맥락을 본다”며 “전체적인 보이스피싱의 규모를 인식하고 그 행위의 일환으로 가담한다는 증거가 있다면 사기 공범으로 다룬다”고 말했다.

권해원 디자이너

사기 혐의를 적용한 검찰의 기소장에는 ‘피고가 범행을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공모했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경찰과 검찰은 보이스피싱을 ‘조직적 사기’로 다룬다. 단순사기보다 구형 수준이 높다. 판사가 참고하는 대법원 양형기준에도 조직적 사기의 기본형량은 일반사기보다 1년~1년6개월 더 길다.

이원일 변호사는 “사기냐 사기방조냐 분류 기준은 있다. 피의자가 충분히 (범죄를) 인식하고 가담했다고 하면 사기, 기능적인 행위가 없었다고 하면 사기방조인데 그 차이가 상당히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사기로 기소한 사건을 이따금 재판부가 사기방조로 낮추기도 한다. 범죄를 인식하고 가담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단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런 사건은 전체의 1.6%에 불과했다.

무죄 0.8%

권해원 디자이너

252개 판결문에 등장한 피고 257명 가운데 무죄는 단 2명, 벌금형은 1명이었다. 징역형이 180건(70.0%)으로 가장 많고 집행유예는 72건(28.8%)이었다. 붙잡혀서 재판에 넘겨진다면 어떻게든 범죄기록(전과)이 남는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 가운데 ▷‘1년 이상 2년 미만’ 72건(40%) ▷‘2년 이상 3년미만’ 67건(37.22%)으로 1~3년 사이가 전체의 80%에 달한다. ‘1년 미만’은 12.22%, ‘3년 이상’ 징역은 10.55%였다.

피고 가운데 141명은 형사처벌 이력이 없는 초범이었다. 이 가운데 89명은 징역형을 받았고 나머지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초범인 점은 판사가 양형 과정에서 감안하는 주요 감경요소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의 경우 피해자 수가 많고 피해금액이 크다면 초범 메리트를 기대하긴 힘들다. 피해금액이 비슷한 사건이라면 피고가 피해자들과 합의를 봤는지에 따라 징역-집유가 갈리는 양상을 보였다.

[123rf]

박현근 변호사는 “초범인데다가 피해금액이 적으면 재판부는 선처해준다. (합의를 통해) 피해자의 피해금액이 회복된다면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거의 실형”이라고 말했다.

징역 살 가능성이 높다는 건 현금 수거책으로 엮인 이들이 좌절하는 대목이다. 범죄를 기획하고 허위로 일자리를 제공한 범죄의 몸통은 몸을 사리고 있단 점도 억울해 한다.

김장범 변호사는 “대개 부주의했던 건 있다. 잘못한 건 맞지만 그게 사기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준인가는 의문”이라며 “하지만 보이스피싱이 심각하고 가만 놔두면 문제가 커지기에 밑에 있는 사람이라도 처벌하고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게 현재 사법시스템 실무의 모습”이라고 했다.

대부분 미필적 고의

판결문에서 등장하는 '미필적 고의'

처벌하려면 법리적 근거가 필요하다. 취재팀이 살핀 판결문에선 ‘미필적 고의’ 법리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본인 행위로 인해 범죄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인식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받아들였다’는 논리다.

반대로 ‘확정적 고의’는 보이스피싱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가담한 것이다. 분석한 판결문 가운데 확정적 고의가 적시된 건 1개 뿐이었다. 확정적 고의가 명시되진 않았으나, 과거 다른 보이스피싱 범행에 연루돼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피고는 11명(재범)이었다. 이병찬 변호사는 “동종전과가 있다면 확정적 고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죄처분을 받은 대부분의 피고에겐 미필적 고의가 적용된 셈이다. 법조인들은 재판부가 보이스피싱 사건에선 유독 미필적 고의를 광범위하게 해석한다고 지적했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미필적 고의는 ‘이게 혹시 나쁜일은 아닌가’라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특정성이 있어야 한다”며 “나쁜일은 불법 채권추심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다수의 법원에서 ‘보이스피싱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생각했다’고 간주해 판결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 이형주 변호사(법무법인 율성)는 비슷한 논리의 무난한 판결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유죄 판결문에서 과거 판례를 언급하는데 그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 위한 편리한 도구”라면서 “(피고가) 보이스피싱임을 미리 인식했다라는 서술은 논리적을 비약이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김희량·유혜정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박준규 nyang@heraldcorp.com, 박로명 dodo@heraldcorp.com, 유혜정 yoohj@heraldcorp.com, 김희량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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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인간 대포통장]

입력 2021. 10. 22. 09:34 수정 2021. 10. 22. 12:34 댓글 0

 

인간 대포통장 〈2부 - 범죄자 낙인 〉 ②

홍순민 서울광진경찰서 강력팀장 인터뷰

홍순민 서울광진서 강력팀장. 최재원 사진작가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현금수거책’이란 역할이 생긴 건 2017년 무렵이다. 이들은 미리 속여둔 피해자를 직접 만나서 돈을 받는다. 그리고 무통장 송금을 한다. 이른바 ‘대면 편취’ 유형이다.

한 형사의 눈에 이들은 사기범죄에 가담한 범죄자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잡히면 구속해 실형을 살게 하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잡아도 끝이 없었다. 2018년, 2019년이 지나도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급증했다.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저도 구인공고를 보고 일을 시작했다가 속았어요.”

피의자들의 진술과 정황이 대개 비슷했다. ‘구인공고를 보고 아르바이트를 구했을 뿐인데 그게 보이스피싱인지 꿈에도 몰랐다’는 주장. 어쩌면 현금수거책들도 ‘취업 사기’에 속은 이들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수사할수록 이런 심증이 굳어졌고 직접 연구에 매달려 논문까지 발표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홍순민(40) 서울광진경찰서 강력팀장(경감)의 이야기다. 10년 가까이 보이스피싱을 수사해온 그는 현역 형사 가운데 처음으로 현금수거책에 관한 연구논문을 썼다. 지난달 서울 광진서에서 홍 팀장을 만났다.

“‘보이스피싱 일 할 사람 구합니다’ 하면 누가 지원을 하겠어요. 그러니 정상적인 회사인 것처럼 꾸며 구인 공고를 올려요. ‘현금 수금업무’ ‘은행 외근 알바’ 같은 문구로 올라와요. 저도 형사가 아니었다면 속을 수 있겠다 싶었죠. 검찰이나 법원에선 ‘미리 보이스피싱인 걸 의심했어야 한다’고 하는데 일반인들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구조를 알 리가 없잖아요.”

권해원 디자이너

홍 팀장은 현금수거책을 보이스피싱 말단 조직원으로 쉽게 간주하는 시각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직접 수사한 현금수거책들은 학생·주부 등 평범한 사람이었다”며 “하나같이 재정적 여유가 없는 구직자들로, 교묘한 취업 사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이 사람들은 조직원이 아니다’라고 백날 주장하기보다 정식으로 연구해 논문을 쓰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범죄학 석사과정을 거치며 지난해 두 차례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3월 교신저자로 참여한 ‘보이스피싱 범죄 전달책 특성에 관한 연구’에선 현금수거책의 인구사회학적 배경을 분석했다. 그가 경찰 내부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현금수거책의 73.5%가 청년(19~39세)이었으며 85.7%가 무직자였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67.3%), 구직 사이트(20.9%) 등을 통해 일을 구했다가 범행에 연루됐다.

이이서 ‘보이스피싱 범죄 전달책의 특성에 관한 질적 연구’라는 논문을 썼다. 여기선 현금수거책의 피해자적 특성에 주목했다. 경찰에 붙잡힌 뒤 재판에서 사법처리를 받은 6명의 사례자를 심층 인터뷰 했다. 홍 팀장은 “해외 ‘근거이론’을 바탕으로 질문지를 구성해 수사자료와 교차 검증한 결과, 이들은 사기 가해자 특성은 없고 피해자의 특성이 발견됐다”고 했다.

“이 사람들이 완전히 무고하다는 것은 아니에요. 형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긴 했지만 과연 구속수사해 중범죄자 수준으로 징역형을 선고해 처벌하는 게 맞느냐는 거죠. 현금수거책은 보통 사기죄나 사기방조죄로 처벌돼요. 그럼 사기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특성이 강해야 하는데 제가 직접 연구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홍순민 서울광진경찰서 강력팀장이 헤럴드경제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재원 사진작가

홍 팀장은 논문에서 무고한 시민이 현금수거책으로 이용당하는 걸 막으려면 ▷공익광고 ▷구인광고 적격성 검증 ▷보이스피싱 구인광고 신고포상제 등이 필요하다고 썼다. 그저 강력한 처벌만으로는 현금수거책이 등장하는 사건을 줄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해마다 현금수거책으로 검거돼 징역형을 사는 사람들이 수천명입니다. 정부가 보이스피싱 범죄 가담 방지에 관한 대대적인 홍보를 해야 현금수거책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알바 잘못했다가 징역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야 합니다.”

그가 논문을 냈지만 경찰조직이나 학계에서 달라진 건 없었다. 지극히 ‘소수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주류적 입장이기에 반응이 전혀 없었다”며 “일부 수사관이나 법조인 입장에선 기분 나쁠 수 있는 논문이라는 걸 예상하고도 썼다”고 했다.

하지만 현금수거책 피의자들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취약한 상태라면 누구나 엮일 수 있기에 홍 팀장의 주장은 귀 기울일 만하다.

“비대면 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이 두 가지를 확실히 경계하세요. 대면 면접 없이 하는 알바는 없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든, 신분증이든 전화기로 찍어서 카톡으로 전달하라고 하는 알바도 없습니다. 제출하려면 직접 만나서 제대로 된 회사인지 확인부터 해야 해요. 쉽게 가족 인적 사항을 통신매체로 넘기는 건 지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단독]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④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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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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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인간 대포통장]

기사입력 2021.10.23. 오후 5:02 최종수정 2021.10.23. 오후 9:16 기사원문 스크랩 

인간 대포통장 〈2부 - 범죄자 낙인 〉 ④
자영업자에서 보이스피싱 피의자로…박동진(40)씨 이야기
이미지는 기사 본문과 무관합니다 [연합]

“박동진 씨, 보이스피싱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출근길 지하철역. 불쑥 나타난 경찰들이 순식간에 주위를 에워쌌다. ‘미란다 원칙’을 빠르게 읊조리곤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한 달간 했던 아르바이트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역할이었다고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해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까지 보냈는데…. 혹여나 주소를 보고 가족에게 찾아가 해코지라도 할까 겁이 났다. 이제야 안 것이지만, 기우였다. 그들에게 우리는 잡히면 버려지는 ‘병정’이었을 뿐이니까.

작년 겨울은 유독 찼다. 경기도 한 소도시에 있는 카페는 삶의 터전이었다. 하루 14시간씩, 13년을 일궈왔다. 코로나19에도 굳건히 버텼건만 정부가 연말에 발표한 집합금지 조치는 모든 것을 바꿨다. 잘 될 땐 하루 80만원이었던 매출이 0원이 됐다. 상가 2층에 위치한 까닭에 테이크아웃 손님도 없었다. 어린 딸을 둔 외벌이 가장으로서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12월 한 달. 집합금지가 풀릴 때까지 딱 한 달만 가게를 닫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자고 마음을 먹었다.

코로나가 확산될 시기었기에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재 운송 알바. 1종 보통 운전면허 소유자 가능.’ 일용직 공고가 올라오는 네이버 밴드에서 구직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러나 막상 인사 담당자와 연락하니 “이미 알바생을 구해 마감됐다”며 “거래처 수금 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한데 해보겠냐”며 제안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자재 운송 알바는 미끼였지만 그땐 재고 따질 여력이 없었다. 당장 가게 월세가 밀릴 위기였다.

장 실장이라는 사람은 자기회사가 저축은행과 거래하는 추심업체라며 “악성 채권을 싸게 사들여 시세차익을 남기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왜 고객과 계좌이체로 거래하지 않냐”고 묻자 “세금을 감면하기 위한 방법이며 절대 불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순진하게 믿어버렸다. 합격 통보를 받곤 개인 신상 정보가 담긴 서류 여러 장과 셀카를 보냈다. 정 실장은 “금전을 다루는 업무기에 보안 차원에서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지는 기사 본문과 무관합니다 [연합]

장 실장은 매일 고객과 만날 장소를 일러줬다. 한 달 동안 수도권에서 만났던 고객은 10명 남짓. 약속 장소에서 나가면 항상 회사 관계자와 통화 중이던 고객들은 전화기를 건넸고, “박동진입니다”라고 확인하면 “빨리 일을 처리하고 복귀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가볍게 목례만 할 뿐, 한 번도 고객과 말을 섞지 못했다. 여러 번 만난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그저 단골이라고 여겼다. 전달받은 현금은 지시대로 회사 계좌로 무통장 입금했다.

주로 수도권에서 일했으나 간혹 지방 출장도 있었다. 장 실장은 “세금 때문에 교통비는 현금으로 결제하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경찰의 추적을 피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매번 현금 쓰기가 불편해 개인카드로 택시를 결제하고 KTX 탑승권을 끊었다. 콜택시 회사에 전화해 택시를 부르기도 했다. 경찰은 이 흔적을 따라와 체포했다. 장 실장은 잠적했다.

모두가 그랬다. 보이스피싱 총책은 중국에 몸을 숨기고 짜인 각본으로 병정만 부리면 된다고. 그 병정은 돈이 궁한 취준생, 실직자, 자영업자라고. 허탈했다. 멍청하게 속지 않았더라면…. 피해자들에게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괜한 코로나 탓을 해봤지만 무력감과 죄책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하루하루를 좀먹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살이 빠졌다.

피해금은 수억원. 합의금부터 마련해야 했다. 카페를 폐업해 집기를 팔았다. 한 단골손님이 “인생 카페였는데 왜 문을 닫냐”고 물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합의금을 벌기 위해 궂은 일을 시작했다. 집도 팔 생각이었다. 피해자들에겐 죄인, 가족에겐 보금자리조차 지키지 못한 가장이었다. 죽음으로만 속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권해원 디자이너

외진 곳에 죽을 자리를 봐뒀다. 아내와, 엄마, 장인, 장모에게 유서를 남겼다. 어린 딸에겐 차마 쓰지 못했다. 죽음에도 돈이 필요했다. 가장 값싼 방법을 택해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날 밤, 잠든 딸 앞에 무릎을 꿇고 홀로 빌었다. 아빠가 미안하다고…. 이 사실을 안 아내는 “저 핏덩이 두고 죽으면 평생 죄짓는 거야”라며 가슴을 쳤다.

하루 24알의 정신과 약을 먹으며 버텼다. 죽기를 단념 한 건 우연히 마주한 풍경 때문이었다. 비 오는 날 한 우산을 쥐고 나란히 걸어가는 부녀를 보며 먼 훗날 딸과의 미래를 떠올렸다. 과거에 붙잡혀 있지 말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어떻게든 합의금을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주기로 했다. 꽃 한 송이를 사서 죽음을 기도했던 자리에 놓곤 스스로에게 명복을 빌었다.

일부터 구했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새벽 2시에 퇴근한다. 주간엔 제조업 회사에서, 야간엔 물류센터에서 하루를 보낸다. 집에 도착하면 씻은 후에 새벽 4시까지 판사에게 보낼 자필 반성문을 쓴다. 변호사는 “그래봐야 소용없다”고 한다. 그래도 쓴다. 수면 시간은 4시간 남짓. 쉼 없이 도는 하루지만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곧 재판을 앞두고 있다. 반년이 지나서야 피해자 모두에게 합의금을 전달할 수 있었다. 몇 달 간 모은 월급에 신용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장인은 평생 일군 재산의 일부를 선뜻 건넸다. 그저 미안하고 고마웠다. 변호사는 “전원 합의해도 실형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일반인도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되는 순간 강력하게 처벌받는다고 했다.

“아빠, 요즘 무슨 일 있지?”

7살 딸은 요즘 묻는다. 그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면 “내가 나중에 커서 이해할 수 있을 때 말해줘”라고 어른처럼 말한다. 언제 이렇게 눈치가 빨라진 것인지….

“아빠 곧 미국 출장간다.”

혹시 몰라 딸에게 말했다. 아이는 그 말을 믿어준 것 같다.

“아빠, 맨날 전화 할 거지?”

그래도 아이가 반문한다.

“그건 어려울지도 몰라.”

마지못해 대답한다. 어쩌면, 몇 년 뒤에나 볼 수 있을지도 몰라.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박로명 dodo@heraldcorp.com, 박준규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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