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의 컷인] 말 한 마디로 천냥 빚 만든 최문순 도지사
김희선 입력 2018.01.09. 06:00
1988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던 피겨스케이팅 페어 국가대표 김규은(19·하남고)과 감강찬(23)은 얼마 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최 도지사가 북한에 피겨스케이팅 단체전 남북 단일팀을 제안했다는 소식이다.
'피겨 남북 단일팀' 발언은 최 도지사가 지난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발언에서 비롯됐다. 최 도지사는 "북한이 올림픽 참가 자격을 얻은 피겨스케이팅 페어에 참가하면 남북한 단일팀을 구성할 수 있다"면서 "피겨 단체전은 남녀 싱글과 남녀 페어, 아이스댄싱 등 네 종목인데 우리는 남녀 페어가 없어 북한이 여기에 참가해 주면 단체팀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일본 삿포로겨울아시안게임 피겨 페어에서 동메달을 딴 렴대옥(19)-김주식(26) 조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렴대옥-김주식 조는 지난해 9월 네벨혼 트로피 6위에 올라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으나 마감 시한(지난해 10월 30일)까지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아 평창겨울올림픽 출전권을 박탈당한 바 있다.
하지만 '남북 피겨 단일팀 구성'이 성사될 경우엔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개최국 쿼터를 얻지 못하고, 남북 단일팀이 성사돼 렴대옥-김주식 조가 단체전에 나설 경우 김규은-감강찬 조는 아예 올림픽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렴대옥-김주식 조의 경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북한에 와일드카드를 배분할 경우 페어 종목에 출전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 도지사의 '단일팀 발언'은 괜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겨울올림픽만 바라보고 구슬땀을 흘려 온 김규은-감강찬 조는 "신경 쓰지 않고 우리 것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남북 단일팀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대신 "올림픽은 처음 (피겨를) 시작했을 때부터 꼭 나가고 싶은 무대였다"고 덧붙였다. 출전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남북 단일팀이 성사된다면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노력은 무시하고 정치적인 고려만으로 이뤄진다면 의미가 없다”며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로 불리고, 그만큼 정치적인 관심도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도지사는 8일 강원도청에서 기자설명회를 갖고 “우리나라 선수들의 불이익 우려에 대해선 IOC에 와일드카드 시스템이 있어 누구를 빼고 넣는 게 아니라 추가하는 것이어서 불이익 등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올림픽까지 불과 한 달가량 남은 상황에서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 그리고 체육계와 교감 없이 비공식 자리에서 '남북 피겨 단일팀'을 언급한 최 도지사의 발언이 선수들에게 큰 불안을 안겨 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3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치르는 올림픽이다. 최 도지사의 제안과 구상은 그 자체로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절차와 과정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성급했다.
김희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