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짜 계약' 위해 사채 쓰다 구치소로.. 눈물 담긴 '빨간펜'

이택현 기자 입력 2018.04.18. 05:02

 

'다단계 영업' 빨간펜에 피해당한 교사들 사연

혼자 딸 키우는 40대 싱글맘
돈 벌면서 아이 교육 위해 시작… 가짜 계약 늪에 빠져 빚더미 올라
매출 압박 시달리던 50대 여성
가짜 계약 손 대며 모은 돈 날려… 이혼 당하고 알바 뛰며 생활

가정주부는 방문학습지 교원 빨간펜의 주 고객이자 채용 대상이다. 교사가 되면 할인된 가격에 교재를 살 수 있어 주부, 싱글맘이 교사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자식들에게 교육도 시키면서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가짜 계약을 강요받으면서 오히려 빚더미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달 초 찾아간 서울 양천구 A씨(42·여) 집에는 벽면 곳곳에 학습 전집이 꽂혀 있었다. 벽에는 다 꽂아두지 못한 책과 전집 등이 거실 이곳저곳에 쌓여 있어 움직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A씨 딸도 책 더미에 파묻혀 학습지를 풀고 있었다. 남편 없이 혼자 딸을 키우는 A씨는 2016년 6월 빨간펜 교사가 됐다. 돈도 벌면서 아이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끌렸다. 그러나 가짜 계약을 강요받으면서 A씨는 곧 빚더미에 올랐다. 월세를 내지 못해 세 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A씨는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워보려고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평범한 주부였던 B씨(45·여)는 빨간펜에서 일하며 구치소 신세까지 졌다. 자식 4명을 키우며 할 일을 찾다가 빨간펜 교사로 일하게 됐지만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B씨는 “사무실에 돗자리 펴놓고 아이들을 억지로 있게 해가며 가짜 계약으로 실적을 올렸다”고 말했다. 결국 B씨는 지난해 사기죄로 회사에 고소까지 당했다. B씨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사채까지 끌어 썼다가 빚을 갚지 못해 얼마 전 구치소에 수감됐다.

C씨(44·여)도 2016년 7월 회사로부터 사기죄로 고소당했다. 회사는 C씨가 계약자 명의를 도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계약서상 명의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했다. 주로 C씨 친구와 고객, 가족 등이었다. C씨는 “회사 쪽 사람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억울하면 언니 고소해라’ ‘언니한테 사기 치는 것 제대로 배웠다’고 했다더라”고 말했다. C씨는 이때 틀어진 관계를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의류업체를 운영했던 D씨(50·여)는 빨간펜 교사를 하면서 수렁에 빠졌다. 매출 압박을 견디다 못한 D씨는 2015년 가짜 계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가짜 계약으로 사들인 교재의 할부금을 내느라 사업하며 벌어둔 돈까지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빚이 너무 불어 그만둘 수도 없었다. 회사에 수억원의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다. 위자료를 받았지만 고스란히 빚을 갚는데 썼다. D씨는 현재 하루 1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돈댁에서 얻어준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D씨는 “의류업체를 운영할 때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밤낮으로 바깥일을 하느라 아들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다”며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빨간펜 인적성 검사를 받게 한 것을 계기로 학습지 교사 일을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가정이 깨졌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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