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성폭행 신고' 아내 살해한 '스토킹 남편' 무기징역 구형

입력 2018.05.15. 16:57 수정 2018.05.15. 18:16

피해자 아버지 "여성들이 폭력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도록 엄벌 내려달라"

[한겨레]

일러스트 son of you

가정폭력으로 협의이혼 숙려 기간에 자신을 성폭행으로 신고한 아내를 신고 당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조아무개(25) 씨에게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1심 선고는 6월 4일 예정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는 15일 오전 조 씨의 재판을 열고 검찰과 변호인의 최후 변론을 들었다. 검찰은 “피고인은 살해 두 달 전에도 흉기로 피해자를 협박했고 시시티브이(CCTV)가 명백한 살인은 인정하면서도, 피해자 진술밖에 없는 강간은 부인하고 있다. 또 미리 흉기를 준비한 점, 피해자가 현관문을 나오자마자 찌르기 시작해 반항도 하지 않는 피해자를 재차 찌른 점 등을 고려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킬 수 있도록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밝혔다. 검찰은 조 씨 신상정보 공개와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도 함께 요청했다.

조 씨는 2016년 5월 피해자와 결혼한 뒤 지속적으로 피해자의 행동을 통제, 감시했다. 2017년 9월에는 “조씨가 흉기를 들고 (피해자를) 때리고 있다”는 지인의 신고로 집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에 신고한 지인은 주변에 “피해자 목에서 칼을 댄 붉은 자국을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남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경찰에 말했고 별다른 격리 조처 없이 조 씨와 함께 한 달을 더 살았다.

폭행은 끝나지 않았다. 10월 중순, 조 씨는 피해자의 옷을 모두 벗기고 여섯 시간 동안 집안 곳곳으로 끌고 다니며 때린 뒤 피해자를 성폭행했다. 그제야 또 다른 지인의 집으로 도망친 피해자는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조 씨의 주장을 전해 듣고 지인에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같은 여자로서 6시간 때린 남자랑 사랑을 나눌 수 있겠어?”라고 되물었다.

협의이혼 숙려기간이 시작됐지만 피해자는 가정폭력의 현장이기도 한 집에 돌아가야 했다. 가정법원이 숙려기간 동안 피해자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9개월 된 딸을 돌봐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조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11월 25일도 법원 명령에 따라 딸을 보러 간 날이었다. 피해자는 다음날인 11월 26일 새벽 몰래 집을 빠져나와 경찰에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 내용을 즉각 조 씨에게 전화로 알렸다. 조 씨는 그날 저녁 서울 강남 한 빌라 앞에서 경찰병원 증거채취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를 기다렸다가 흉기로 수십 차례 찌른 혐의(특수강간·살인 등)로 구속된 뒤 재판에 넘겨졌다. (▶관련 기사 :‘스토킹 남편’ 성폭행 신고한 날, 아내가 살해당했다)

조 씨의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살인은 인정하지만 강간은 인정할 수 없다”며 “피고인은 피해자를 정말로 사랑했다. 피해자가 곁에 있어 주길 원했는데 강간으로 신고하자 배신감을 느끼고 순간 분노조절장애가 발현됐다”고 주장했다. 조 씨도 최후진술에서 “유년시절 엄마 없이 외롭게 자라 엄마의 빈자리를 잘 안다. 그래서 아내를 붙잡으려고 했다. 억울한 한순간 감정에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며 우발적인 범행임을 강조했다.

이날 방청석에 앉아있던 피해자의 아버지는 증인석에 앉아 “조 씨는 내 딸을 소유물로 여기고 자신의 뜻을 거역하자 응징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범행했다. 또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해서 사치, 불륜 등 왜곡된 주장을 하며 형량을 낮추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작게는 억울하게 죽은 내 딸의 영혼을 달래고, 크게는 폭력에 고통받는 여성들이 폭력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도록 조 씨에게 엄벌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옛날에 살인, 강도, 밀수나 방화 같은 강력범죄가 있었다면 시대가 변화면서 이제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몰카범죄 등도 중대하다. 과거에는 있을 수 있는 범죄로 보거나, 관념이 약했기 때문에 처벌의 강도가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 등을 보면 가정폭력을 신고하면 곧바로 접근 금지하고 제대로 피해자를 보호한 뒤, 사실 확인되면 엄하게 처벌한다. 이런 식으로 성차별적 사회를 바꿔나가자”며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악성 범죄를 수사기관들이 조금 더 중대한 위법으로 다루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유진 이재호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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