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대란下]"5년위약금' 풀리는 2020년 폐업 대란 온다"

박성우 기자 입력 2018.07.21. 14:00 수정 2018.07.21. 14:42

지난해 말 박진성(가명·45)씨는 인테리어 철거 공사가 한창인 서울의 한 편의점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불과 며칠 전까지 만해도 박씨는 이 편의점 점주(店主)였다. 월 130만원 정도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본사 개발팀 영업사원의 말을 믿고 5년 계약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개업 첫 달부터 적자였다. 이후 여름철 성수기 두 달 50만원 정도 흑자를 제외하고는 매달 150만원 이상 손해를 봤다. 손해가 갈수록 커지자, 결국 박씨는 개업 1년 만에 폐업을 했다.

한 편의점 점주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편의점 운영권을 넘기려는 문구를 붙여놓고 새로운 운영자를 찾고 있다. /조선DB

박씨는 “1년간 적자 금액과 폐업할 때 위약금, 시설사용료, 임대료 6개월치 보상비 등을 지불하면서 7000여만원 손해를 본 것 같다”며 “폐업을 하고 싶지만 5년 계약에 발목 잡혀서 편의점 점주가 억지로 매장을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4년, 2015년 신규 매장이 급격히 증가한 만큼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2019년, 2020년 편의점이 줄줄이 폐업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업계에 떠도는 ‘2020년 편의점 폐업 대란설(說)’
업계에 ‘2020년 편의점 폐업 대란설’이 돌고 있다.
편의점 점주, 본사 직원, 증권사 연구원까지 여러 명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이미 업계에서는 2~3년 후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에 편의점들이 줄 폐점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저마다 시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편의점 수가 너무 많아 업계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었다.

NH농협증권은 지난 3월 우리나라 편의점 폐점률이 지난해 4%대에서 올해 7%대로 뛰면서, 3000여 곳 이상의 편의점 매장들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 보고서를 내놨다. 이지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저임금 상승에 따라)점주가 직접 근무 가능한 1개 점포를 제외한 나머지 1.5개 점포의 인건비 부담이 점차 늘어나게 된다”며 “올해 약 3047개의 점포가 폐점을 해서 폐점률이 7%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래픽=정다운

이미 올해 국내 5대 편의점 브랜드의 매장들도 1000개 넘게 폐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접출점과 과도한 가맹수수료, 높아지는 임대료 등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인건비 부담은 폐업 결심의 결정타로 작용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2016년 6030원 2017년 6470원, 2018년 7530원으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일 24시간 중에 점주가 12시간, 아르바이트 직원이 12시간 운영하는 가정해보면, 2016년 연간 인건비 부담이 2641만원이었지만 2018년에는 3290만원으로 24.6%나 올랐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0.9% 인상된 8350원으로 결정됐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실질 시급이 1만원을 웃돌게 되면 앞으로 점포 폐점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 폐업은 아무나 하나?…계약기간·위약금이 발목 잡네
편의점 점주들은 이미 ‘폐업의 길’로 내몰렸지만, 정작 폐업하기는 어렵다. 편의점은 보통 5년 계약을 한다. 5년이 지나기 전에 폐업하면 수천만원 위약금과 각종 시설·인테리어 사용료 등 ‘폐업비 폭탄’이 떨어진다.

성인제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공동대표는 “불합리한 5년 계약이 편의점 점주들의 재산권 활동에 발목을 잡는다”며 “장사가 안되서 폐업하는 것도 억울한데, 수천만 원 비용이 드니 적자가 나도 꾹 참고 계약기간을 채운 뒤 폐점을 준비하는 점주들도 많다”고 했다.

그래픽=정다운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서울 지역 한 편의점의 ‘폐업비용 산출견적’을 입수해봤다. 이 매장은 5년 계약을 한 뒤 3년 가까이 매장을 운영했다. 위약금 2000여만원에 시설 사용료, 장려금 반환 등 총 폐업비는 5000여만원이 나왔다. 폐업 견적을 보여주던 점주 B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일부 전문가들은 오는 2020년부터 편의점 폐업 대란이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규 점포 수 증가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2013년 300개로 최저점을 찍은 뒤, 2014년 1597개, 2015년 3496개 매장이 새로 생겨났다. 이후 2016년 4224개, 2017년 4291개 등 매년 4000개 이상의 편의점이 늘어났다. 많이 생겨났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심해졌다는 의미. 또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5년 뒤, 폐업을 신청할 편의점수도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2010년에는 2807개, 2011년 4284개, 2012년 3338개의 편의점이 생겨났다. 5년 뒤 폐점률을 살펴보면 편의점 개점 그래프와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2013년 1678개, 2014년 2100개, 2017년 1754개의 편의점이 폐점을 했다.

배인해 한국기업평가 평가4실 선임연구원은 “2020년 이후 편의점업(業) 성장이 멈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창업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고 구멍가게의 전환수요가 남아있고, 후발 편의점 업체의 출점 정책도 공격적이라 단기적으로 편의점 시장의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며 “하지만 동일 상권에서 경쟁이 치열하고 매년 증가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편의점주의 인건비 상승은 편의점업의 성장정체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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