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님들 싸움에 우리만 빨간 줄" 육탄전에 보좌진들 떤다
현일훈 입력 2019.04.29. 06:01 수정 2019.04.29. 09:34
“영감님들 싸움에 우리만 ‘빨간 줄’ 생기는 게 아닌지….”
28일 오후 여의도 국회 본청 4층. 다시 ‘육탄전’을 대비 중인 한 보좌진이 혼잣말처럼 이런 말을 했다.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을 두고 벌어진 25~26일의 여야 간 고성과 욕설, 몸싸움의 중심에는 국회의원의 보좌진들이 있다. 여야 지도부는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며 맞불식 고발전(戰)을 진행 중이다. 물리적 충돌을 직접 치른 보좌진들의 ‘남모르는’ 걱정은 커지고 있다.
익명을 원한 이 30대 남성 보좌진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영감님들 싸움에 보좌진 등만 터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몸빵’한 보좌진들만 나중에 법정에 서는 게 아니냐고 가족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토로하면서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한 비서관은 “냉정하게 말해 내년 총선(2020년 4월 15일)이 1년도 안 남았는데 모시고 있는 의원님이 당선될 지, 날 책임져 줄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속내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회의 방해가 아니니 (고발 압박에) 쫄지 말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야가 상호 고발전을 벌이면서 보좌진들도 덩달아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특히 국회선진화법은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죄)’가 아니기에 여야 지도부가 나중에 고소·고발을 취하해도 수사는 진행된다. 국회에서 만난 한 보좌진은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고 불안해 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8일 “회의 질서 유지를 방해하는 국회의원이나 보좌관, 당직자 모두 예외 없이 고발하겠다. 과거처럼 유야무야 끝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당도 지난 27일 폭력을 행사한 민주당 측 17명을 공동상해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의원은 물론 당직자와 보좌관들도 예외 없이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국회 근무자 시절인 2011년 한나라당(한국당 전신)이 법안을 날치기로 처리하려 해 이를 막기 위해 이회창 총재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았다가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며 “지금의 보좌진 역시 홀로 외로운 법정 싸움하며 독박 쓸 수 있으니 불법에 동원되지 말라”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