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계엄령 문건=폭동 가능성" 판단해놓고, 수사단은 왜?소중한,봉주영 입력 2019.10.24. 09:36 수정 2019.10.24. 10:03
[오마이뉴스 글:소중한, 그래픽:봉주영]
▲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민·군 합동수사단' 수사 결과에 따른 불기소 결정서 일부. 합동수사단은 계엄령 문건을 "국헌문란", "폭동"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엄중하게 판단했다. |
ⓒ 불기소 결정서 갈무리 |
하지만 지난해 7월 26일~11월 7일까지 활동한 합동수사단은 김관진-한민구까지 조사를 진행했으나, 박근혜-황교안은 부르지 않은 채 수사를 마쳤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7일 '조현천을 조사하지 못해 사건의 전모 및 범죄 성립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오마이뉴스>는 23일 군인권센터로부터 위 인물들의 불기소 결정서를 입수해 그 내용을 분석했다. 불기소 결정서엔 위 인물 모두 '피의자'로 기재돼 있다. 불기소 결정서는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하지 않을 경우 작성하는 문서다.
[조현천] 김관진·한민구 이어 왜 20사단장·8사단장 만났을까
합동수사단이 불기소 결정서에 기재한 '인정되는 사실'은 주로 조현천과 관련된 내용이다.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2016년 11월 3일 경부터 11월 4일 경까지 기무사에서 작성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국면별 대비방안', '현 시국 관련 국면별 고려 사항', '통수권자 안위를 위한 군의 역할' 등 3건의 문서에 계엄 선포에 관한 언급이 있고 이러한 문서가 소강원(당시 기무사 3처장)과 조현천에게 보고됐다.
조현천은 2017년 2월 10일 경 청와대에서 김관진을 만났고 2017년 2월 17일 경 국방부 고위정책간담회 종료 후 별도로 한민구를 만났다.
이후 조현천의 지시에 따라 기무사에 '미래 방첩수사 업무체계 발전방안 연구'라는 위장 TF를 조직해 2017년 2월 17일 경부터 3월 3일까지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 및 '대비계획 세부자료' 등을 작성했다. (TF 종료 이후 기무사 방첩정책과장 전경일의 USB에 보관돼 있던 문건으로 언론에 공개된 8쪽 분량의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및 67쪽 분량의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의미)
조현천은 2017년 2월 28일 경 20사단장, 2017년 3월 27일 경 8사단장을 만났고 위 사단은 본건 계엄 문건에 계엄임무수행군으로 편성돼 있다.
조현천은 2017년 3월 3일 경 국방부에서 소강원, 기우진(당시 기무사 3처 수사단장)이 포함된 위 TF가 작성한 본건 계엄 문건을 한민구에게 보고했고 보고 당시 문건의 이름은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8쪽), '대비계획 세부자료'(67쪽)이었다.
[박근혜-황교안] 박근혜 청와대 방문, 황교안 행사 참석 정황
▲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
ⓒ 사진공동취재단 |
계엄 문건에는 계엄사령관 추천 건의, 전국 비상계엄 선포 건의, 비상계엄 선포문, 합동수사본부장 추천 건의 등 대통령이 서명하도록 돼 있는 문건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는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가 기각되는 상황을 염두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탄핵소추가 기각됐을 경우 계엄선포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가 박근혜임을 고려했을 때 계엄 문건의 실행의사 유무 판단은 박근혜와 조현천과의 사전 의사 연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인다. 기무사령관은 필요시 대통령에게 직보해왔고 그 과정에서 박근혜와 조현천과의 사이에 계엄에 대한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로 조현천은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가 발의되기 직전인 2016년 12월 5일 경 청와대를 방문한 정황도 확인된다.
계엄 문건에는 비상계엄 선포문 등 대통령 권한대행이 서명하도록 돼 있는 문건이 포함돼 있다. 이는 계엄 문건이 작성돼 한민구에게 보고되는 2017년 2~3월 경 계엄선포 권한을 비롯한 국정운영 전반을 총괄했던 황교안으로부터 결심을 받는 상황을 염두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계엄 문건에는 탄핵소추가 기각되는 상황과 인용되는 상황을 모두 언급하고 있는데 탄핵소추가 인용될 경우 계엄선포 권한은 황교안이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이러한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계엄 문건의 실행의사 유무 판단은 황교안과 조현천과의 사전 의사 연락이 중요해 보인다.
2017년 3월 경 황교안이 참여한 공식 행사에 조현천이 4회 참석한 정황이 나타나는 등 조현천이 황교안에게 계엄 문건을 보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합동수사단은 "조현천의 진술을 들어봐야 피의자의 관여 여부 등 그 진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인다"라며 "조현천의 소재가 발견될 때까지 참고인중지한다"라고 결정했다.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 남소연 |
조현천과 김관진-한민구의 관계는 보다 자세히 기재돼 있다. 김관진-한민구는 박근혜-황교안과 달리 소환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진술 취지도 불기소 이유서에 담겨 있다. 합동수사단은 두 사람의 진술과 조현천 및 다른 관계자의 진술이 배치된다며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물론 "조현천의 소재가 발견될 때까지 참고인중지한다"는 결과는 박근혜-황교안과 같았다. 아래는 주요 내용이다.
김관진은 조현천에게 위수령 또는 계엄과 관련된 지시를 하거나 모의한 적이 없고 조현천이나 한민구로부터 계엄 문건에 대해 보고받은 적도 없어 자신은 본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김관진은 2016년 10월 경 신○○(국방비서관실 행정관)에게 '북한 급변사태'를 가정해 계엄 선포 등을 검토시켰고 그 과정에서 위 행정관으로부터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시 대처방안과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지정하는 방안 등에 대해 보고받았다. 위와 같이 보고받은 방안들은 계엄 문건에 포함된 내용과 일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기우진은 조현천으로부터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하고 국회가 계엄해제를 건의할 경우 국회를 해산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본건 계엄 문건에 반영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 점에 비춰 봐도 당시 김관진과 조현천 사이에 모종의 의사 연락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된다. 한편 김관진은 2017년 2월 10일 경 청와대를 방문한 조현천을 만난 사실도 확인된다.
한민구는 ▲ 2017년 2월 17일 경 조현천에게 '(중략) 국회에서 더 질의가 있을 것 같으니 전반적인 군 병력 출동 문제에 대하여 위수령 등 관련 법령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종합적으로 (국방부 법무관리관에게) 더 검토시키려고 한다'고 하자 ▲ 조현천이 '그럼 저희도 검토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고 했고 ▲ 이에 '그럼 한 번 해보라'고 하여 기무사에서 계엄 문건을 만들게 된 것일 뿐 위수령 또는 계엄의 시행과 관련된 구체적 지시는 한 적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조현천은 우편진술서를 통해 한민구의 구체적 지시에 따라 위수령과 계엄을 검토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한민구의 진술과 다소 배치된다. 계엄선포 건의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한민구의 위와 같은 발언 시점 전후로 기무사에서 TF를 구성해 계엄 문건을 작성하기 시작한 정황이 확인된다. 계엄 문건의 작성 및 보고 시점 전후인 2017년 2월 22일 경 및 3월 6일 경 한민구가 청와대를 방문한 정황도 확인된다.
▲ 국방부 장관에게 귓속말 하는 조현천 기무사령관 2015년 7월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당시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한민구 국방부장관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
ⓒ 이희훈 |
합동수사단은 계엄령 문건의 문제를 "국헌문란", "폭동"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엄중하게 판단했다. 합동수사단은 불기소 결정서를 통해 "비상사태로 보기 부족한 상황에서 위수령과 계엄으로 병력을 동원해 일반 시민들의 집회·시위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입법·행정·사법기관 등을 통제하려 한 것"이라며 "계엄 문건의 계획대로 실행됐을 경우 국헌문란의 목적이 인정될 소지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계엄 문건에 나타나는 위수령과 계엄의 실행 및 구체적인 수행방안들은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위협이 되는 등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가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할 경우 폭동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일응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조현천의 진술을 들어야 진상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하더라도, 합동수사단의 수사 과정 및 결과를 놓고 "선별적이고 피상적이었다"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안의 엄중함에 비해 수사 과정 및 결과가 부실했다는 것이다.
▲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 남소연 |
이에 대검찰청은 23일 기자단에 보낸 문자를 통해 "합동수사단은 2018년 7월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기존 검찰조직과는 별개의 독립수사단(실제 설치 장소도 서울동부지검)으로 구성됐다"라며 "합동수사단 활동 기간 중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지휘 보고 라인이 아니어서 관련 수사 진행 및 결정에 관여한 바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불기소 결정서 통지문에 서울중앙지검장 직인이 찍힌 것과 관련해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합동수사단이 해체됐기 때문에, 관할 등을 고려해 형식적으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처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민·군 합동수사단' 수사 결과에 따른 불기소 결정서 일부. |
ⓒ 불기소 결정서 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