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이건알아야해]45년만에 바뀌는 주민등록번호, 그 탄생은 간첩 탓

최정훈 입력 2020.01.04. 09:23
               
10월부터 주민등록번호서 지역번호 사라져.."개인정보 보호"
1968년, 간첩을 막는다며 생긴 '주민등록번호'..반발도 거세
"생년월일 개인정보 아냐"..1975년 지금 모습으로 바뀐 주민번호
개인번호에 정보 가장 많이 담긴 韓.."개편 아쉬움"
자료=행정안전부 제공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오는 10월부터 주민등록번호에서 지역번호가 사라집니다. 이번 개편은 1975년 이후 현재의 13자리 주민등록번호 전면 개편 이후 45년만입니다. 우리나라 주민번호는 그동안 생년월일부터 출생지역까지 개인정보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여권번호, 운전면허증번호, 은행계좌번호 등 번호만으로 주인의 특징을 알아내기 어려운 개인식별번호도 세계적으로 많이 쓰입니다. 왜 우리나라만 번호만 보고도 주인이 누군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주민번호 체계를 가지게 됐을까요?

자료=행정안전부 제공


◇간첩을 막는다며 생긴 ‘주민등록번호’…반발도 거세

주민번호가 처음 탄생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1년 전인 1968년 11월 21일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던 당시 우리나라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 무조건 열세 자리의 일련번호를 부여받게 됐습니다. 이유는 ‘시민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반국가적 불순분자를 색출, 제거한다’는 것.

사실 그 이전부터 전입신고, 퇴거신고제 등 다양한 형태의 주민등록이 있었습니다. 1965년 정부가 인구동태 파악과 간첩 은신을 방지한다며 법률을 개정해 주민등록증 발급과 휴대를 강제하려고하자 반발이 거센 이유였죠. 국민을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한다고 말이죠.

이런 반발로 보류됐던 법안은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서울에 침투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반전이 찾아옵니다. 정부는 곧바로 ‘간첩이나 불순분자의 색출, 병역기피자의 징병 관리’을 이유로 법안을 만듭니다. 당시 사회분위기에서 간첩을 막는다는 건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웠고, 만 18세 이상 지문등록, 주민등록증 발급 및 휴대 의무화가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주민등록증이 만들어지면서 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일련번호를 붙이기로 했는데, 이게 바로 주민번호의 시초입니다. 반발도 거셌습니다. 개인의 권리를 단지 행정사무 기술 때문에 도구처럼 희생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 있을 수 없는 악법이라는 반발 속에서도 그해 11월 주민번호는 탄생했습니다.

탄생 당시 주민번호는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만들어질 당시는 주민번호는 12자리로 앞 6자리가 등록지역, 뒤 6자리는 성별과 주민등록 순서를 의미했습니다. 1968년 1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는 서울 종로구 자하동사무소에서 1호 주민등록증을 받았습니다.

자료=행정안전부 제공


◇“생년월일 개인정보 아냐”…1975년 지금 모습으로 바뀐 주민번호

주민번호에서 생년월일이 추가되고 13자리로 늘어난 현행 체계로 개편된 건 1975년 8월입니다. 주민 통제 명목으로 시작된 주민번호가 본격적으로 행정사무에 활용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당시엔 생년월일이나 성별이 알려지는 것을 개인정보가 침해된다고 여기지 않았고, 행정적인 관리에서는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는 정보화 시대가 오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주민번호 유출 등 각종 범죄가 만연해진 겁니다. 특히 법으로 한번 확보하면 평생 활용할 수 있고 불법 정보의 대량 수집과 대량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또 주민번호로 인한 인권 침해 사례도 속속 발견됐습니다. 실제로 한 경기도 부천의 편의점에서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2·3번째 번호가 호남지역을 뜻하는 48~66인 경우 지원을 금지하는 채용 공고를 올리는 등 특정 지역 차별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해당 번호 소지자가 꼭 출신자를 뜻하는 게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지역번호로 지역 차별을 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지난 2014년 지역고유번호 ‘44’를 부여받은 세종시 주민들이 “신생아 주민번호에 4가 연달아 들어간다”며 집단으로 문제 삼자 240여 명의 주민번호를 고쳐준 일도 있었고, 새터민의 경우 경기 안성(고유번호 25) 하나원에서 일괄적으로 주민 등록을 하는 탈북자 주민번호 뒷자리가 남자는 125, 여자는 225로 동일해 탈북자임이 쉽게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성별번호가 남성은 각각 1, 3번인데 여성은 그 뒤인 2, 4번인 것은 남녀평등에 위배된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특히 지난 2017년에는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당시 김부겸 행안부 장관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주민번호를 맞추면서 현행 체계의 허술한 점을 꼬집기도 했습니다.

◇10월부터 지역번호만 사라져…“모두 바뀌면 변경비용 너무 많아”

주민번호가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노출하면서 나타나는 폐해가 늘면서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주민번호의 변경 조항이 없는 법률을 헌법불합치 결정했고,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주민번호변경위원회도 문을 열었습니다. 이제 ‘주민번호 유출로 생명·신체·재산·성폭력 등의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가 우려되는 사람’은 위원회 심사를 거쳐 주민번호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제도에서도 여전히 생년월일과 성별 정보는 바꿀 수 없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임의번호를 부여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주민번호에 생년월일과 지역번호까지 포함된 국가는 OECD 35개 중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10월부터 개편되는 주민번호 개편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국민 통제 목적으로 시작되고, 정보화 시대의 폐해가 남아 있는 주민번호 체계에서 바뀌는 게 지역번호뿐이기 때문입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주민등록제도 발전방안 연구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개편방안을 검토했다”며 “그러나 모두 임의번호로 전환하면 공공기관이나 병원, 은행, 보험사 등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는 기관들이 치러야 하는 추가 변경비용 11조원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혼란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료=행정안전부 제공

최정훈 (hoonism@edaily.co.kr

 

블로그 이미지

오사사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정보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