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전사 김현아가 돌아왔다, 이번엔 대구 저승사자 잡는다

정종훈 입력 2020.03.18. 01:00 수정 2020.03.18. 06:44 댓글 2188

 

 

"실내화가 다 닳을 때까지
대구 환자 지키겠습니다"
메르스 당시 편지로 국민에게 용기
2017년 병원 떠나, 그 후 작가 전직
대구 소식 듣고 "안 가면 후회" 결심
방호복 입고 병원 중환자실 근무로
간호사들 자부심 커, 응원도 쏟아져
"고생하는 현장 의료진 지원 필요"

5년 전 '메르스 전사' 김현아 간호사가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대구로 내려갔다. 17일 대구동산병원 중환자실 근무에 앞서 방호복 등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김 간호사. [사진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서문시장이 너무 썰렁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실내화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환자를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원래는 2주 근무를 생각하고 왔는데, 익숙해질 즈음 그만두면 후회될 거 같아서 한 달까지 바라보고 있습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전사' 김현아(46) 간호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사로 돌아왔다. 김 간호사는 16일 코로나19 전담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근무를 시작했다. 김 간호사는 1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대구에 와서 병원 근처 서문시장에서 7000원짜리 근무용 실내화를 사면서 각오를 다졌다"고 말했다. 김 간호사는 5년 전 눈앞에서 숨진 메르스 환자를 떠올리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5년 전 '메르스 전사' 김현아 간호사가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대구로 내려갔다. 병원 근처 서문시장에서 산 7000원짜리 실내화가 다 닳을 때까지 환자들을 지킨다는 각오다. [사진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메르스 유행 당시 김현아 간호사의 편지가 실린 2015년 6월 12일자 중앙일보 지면.

그는 2015년 당시 코호트 격리된 경기도 동탄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끝까지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다'는 편지를 써서 메르스에 지친 국민에게 큰 용기를 줬다. 메르스를 이겨낸 김 간호사는 2017년 여름 병원을 떠나 작가로 변신했다. 2년여 만에 그가 다시 신종 감염병 현장에 돌아왔다. 대구의 최악의 상황이 그를 움직였다. 그는 "간호사라면 다 똑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후배들로부터 대구에 가고 싶다는 연락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어머니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메르스 당시 어머니는 환자를 돌보던 딸이 혹여 감염될까 봐 마음을 졸였다. 김 간호사는 "망설이긴 했지만 안 가면 후회할 거 같았다. 정말 가고 싶은 생각에 결심했다"고 말했다. 16일 대구동산병원으로 처음 들어설 때 '잘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출입 통제 담당 직원이 그의 마음을 풀어줬다. "의료 지원 나왔다"고 말하자 직원 표정이 환해졌다고 한다. 김 간호사를 격하게 반기면서 "의료 지원 나온 분들은 아무 데나 편한 곳에 주차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의료진을 위한 N95 마스크는 근무 들어갈 때 하나씩 손에 쥐여줬다. 퇴근할 때도 본인 서명을 받고 KF94 마스크 1개만 배분했다.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방호복 재고도 여유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근무 마친 의료진이 격리병동 밖으로 나오고 있다. 등 부분이 방호복 착용에 따른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뉴스1

병원에는 기존 의료진뿐 아니라 자원봉사자, 파견 근무자들이 여럿이다. 그나마 외부 의료진들은 숙소 제공, 수당 지급 등에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원래 병원에 있던 이들은 별다른 보상이 없다고 했다. 김 간호사는 "신규 확진자가 몰리고 일이 많이 생기는 오전에서 낮까지는 기존 근무자들이 대부분 소화한다. 이들의 희생이 잘 알려지지 않은 걸 보면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근무 첫날 김 간호사는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경증환자 40명이 입원한 일반 병동에서 7시간가량 일했다. 환자 투약과 건강 체크 등을 맡았다. 누군가는 가슴이 따끔거린다고, 다른 이는 숨 쉴 때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중증으로 넘어갈 듯한 환자도 한두명 눈에 띄었다. 혈중 산소 농도가 떨어지고, 혈압도 떨어지는 식이다. 치매 환자 병실은 더 바쁘다고 했다. 의료진이 온종일 소리 지르는 걸 달래고, 대변 보면 치워야 한다.

17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별관 비상대책본부 앞에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벽면 가득 붙어 있다. 전국에서 날아든 메시지에는 어린이집 꼬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 공무원 등을 응원하고 희망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최일선의 의료진들은 피로·불안을 넘어섰다. 환자를 지킨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버티고 있다고 한다. 응원 행렬도 의료진의 어깨를 가볍게 한다. 매일 도시락, 간식거리, 영양제 등이 쏟아진다. 김 간호사는 "어제(16일) 저녁밥으로 광주에서 보내준 주먹밥을 먹었다. 5·18 어머니들이 만들어준 것이었는데 맛이 좋았다. 휴게실에는 응원 편지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17일 밤 늦게 중환자실로 간다. 이곳에선 방호복에다 공기를 정화해주는 전동식 호흡보호구(PAPR)까지 착용하고 일해야 한다. 그는 "필터 등이 빠지기 쉬워서 2인 1조로 서로 장비를 확인해줘야 한다. 중환자실은 생과 사를 오가는 분들이 많으니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인공호흡기·에크모(ECMO, 체외산소순환장치) 등은 메르스 때 많이 다뤄봐서 문제는 없을 거 같다"고 했다.

5년 전 '메르스 전사' 김현아 간호사가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대구로 내려갔다. 17일 대구동산병원 중환자실 근무에 앞서 방호복 등 보호 장비를 착용한 김 간호사. [사진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김 간호사의 당부다.
"간호사들 모두 힘들지만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여기 와보니 코로나가 곧 종식되겠다 느껴질 정도입니다. 메르스 때도 국민 응원이 큰 힘이 됐는데, 이번에는 더 큰 응원을 느낍니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의료진의 처우 문제나 지원 부족이 좀 더 알려지고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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