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한 명 없던 한국학과.. 이젠 서로 배우려 난리죠"

유석재 기자 입력 2020.09.18. 03:02 

이은정 독일 베를린자유대 교수, 한국학과 350명 규모로 키운 주역

“한여름에 유럽 학생 12명과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2주 동안 자가 격리하면서 하루 6시간 한국 현대사 집중 수업을 받도록 했죠. 그래도 불만이 없었어요. 다들 한국을 알고 싶은 열정이 대단하기 때문이죠.”

최근 한반도국제평화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이은정(57) 독일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유럽의 대표적 한국학 센터 중 하나인 이 대학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13년째 맡고 있다. 정치학자인 그는 2016년 비(非) 서구권 학자 중 처음으로 옛 프러시아 왕립 학술원인 베를린-브란덴부르크 학술원 정회원에 선출됐다. 칸트, 헤겔, 아인슈타인이 이곳 회원이었다.

이은정 독일 베를린자유대 교수

막스 베버의 전기를 읽고 독일에서 공부할 꿈을 가지던 그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이던 1984년 독일 괴팅겐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만 해도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지도를 펼쳐놓고 설명해야 했다. “독일어는 나름대로 자신 있었지만, 사투리가 섞인 강의를 듣자니 죽을 맛이었어요. 하지만 ‘쟤들한테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 악물고 공부했죠.” 1988년 석사 학위를 받을 때 사회과학대 수석을 했고, 1992년 박사가 됐다.

2008년 베를린자유대에 한국학과가 생기면서 부임했다. “학생도 없고 교직원은 세 명뿐이었어요.” ‘맨땅에 헤딩’하듯 어학 코스부터 만들고 학과를 키워나갔다. 3~4년 만에 학생 수가 100명을 넘어섰다. “한국이란 나라를 알고 싶은 욕구는 많은데,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때마침 K팝 열풍이 불어 한국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 “저한테 슈퍼주니어 춤을 가르쳐 준 독일 학생도 있었어요.”

이제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는 전임교원 12명, 학생 350명으로 성장했다. “영문학이나 불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한국학을 배우는 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한국으로 교환 학생을 가려는 지원자는 너무 많아졌고요.”

지난 13년 동안 독일 베를린 한국학연구소를 유럽 한국학의 중심지 중 하나로 키워온 이은정 교수는 “세계인의 일상에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이 교수는 “독일 학생들이 ‘한국은 왜 아직도 분단국가인가’를 깊게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독일의 분단 극복 역사를 다룬 저서 ‘베를린, 베를린’을 출간한 그는 “과거 동·서독은 다양한 방식의 교류가 이뤄져 통일로 이어졌다”며 “분단이 꼭 단절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베를린 지하의 하수도를 관리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등 서로 다른 입장을 인정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는 것이다.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그는 “오히려 시민들의 연대(連帶) 의식이 발휘될 기회”라고 했다. 독일에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던 사람들이 이웃 아이를 봐 주거나 노인이 장 보는 걸 도와주는 일이 일상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유교 전통 때문에 방역에서 선방하는 것’이라는 유럽 일부 언론의 분석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순종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시민 의식이 성장한 결과라고 봐야 합니다.”

그는 “유럽의 한국학은 여전히 젊은 학문”이라며 “앞으로 현지에서 활동할 중량급 한국학자들을 학부 시절부터 길러내는 공공 외교가 중요하다”고 했다. “세계인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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