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총장' 전락한 尹.. 공수처 수사 1호 되나

이창수 입력 2020.12.17. 06:05 수정 2020.12.17. 07:30 

징계위 결정 배경과 파장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불구 수위 낮춰
징계위 내부에서도 극심한 이견 노출
신성식 기권.. 결국 3명만 표결 참여
"尹 의도 있었다면 해임·면직도 가능"
'징계효력 정지 가처분 피하기' 분석
17시간 심의 마친 징계위 정한중 검사징계위원장 직무대리(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6일 새벽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약 17시간 동안 진행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 2차 심의를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과천=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징계 조치가 이뤄진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큰 오점이 될 것입니다.”

김각영 전 검찰총장 등 전직 검찰총장 9명이 16일 내놓은 성명서에는 윤 총장에게 내려진 중징계 조치에 대한 법조계 우려를 그대로 담고 있다. 전직 검찰총장들이 한목소리로 성명을 낸 건 검찰총장 징계만큼이나 이례적이다. 검찰개혁의 목표가 정치적 독립성 보장이 아니라 검찰 통제에 맞춰져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윤 총장은 정직 2개월 징계로 손발이 묶이면서 사실상 ‘식물 총장’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이 기간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신속히 진행해 검찰 견제를 더욱 확실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징계위원 4명 중 1명 표결 불참 속 의결

법무부 징계위는 전날 오전 10시34분부터 윤 총장 징계에 대한 2차 심의를 17시간 넘게 진행한 끝에 정직 2개월 처분을 의결했다. 정한중 징계위원장 직무대리는 의결을 마치고 “증거에 입각해서 6가지 혐의 중 4가지를 인정하고 양정을 정했다”고 밝혔다.

징계위가 인정한 혐의는 △재판부 사찰 의혹 문건 작성 및 배포 △채널A 사건 관련 감찰 방해 △채널A 사건 관련 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 훼손이다. 다만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만남, 총장 대면조사 과정에서 감찰 방해 사유에 대해선 ‘불문’으로 결정했다. 채널A 사건 감찰 관련 정보 유출,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감찰·수사 방해 혐의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고 ‘무혐의’로 판단했다.

징계위는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의 경우 추 장관 측 주장을 대체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 권한 밖의 일을 지시했단 것이다. 여기에는 추 장관 측 인사로 분류되는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 진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문제의 문건을 입수해 제보하고 증언까지 하는 1인3역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애초 징계위원이었다가 스스로 회피한 인물이다. 그는 “윤 총장과 특수통 검사들이 판사 개인정보를 수집해 언론플레이를 한다. 재판부를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였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문건을 만든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공판 지휘용으로 만들어 아무 문제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성식
징계위원으로 참석한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징계위 재적 인원을 채운 뒤 정작 징계 투표에서는 기권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정 위원장 직무대리와 이용구 법무부 차관, 안진 전남대 교수, 3명이 정직 2개월 결정을 한 것이다.

윤 총장 측은 “심 국장 의견서에 사실과 다른 황당한 내용이 많았지만 징계위에서 제대로 반박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심각하고 중대하다’면서 정직 2개월

추 장관은 지난달 24일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다수 확인했다”면서 윤 총장 직무를 정지했다. 이날 징계위의 정직 2개월 결정은 추 장관이 언급한 ‘심각하고 중대한’ 혐의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재판부 사찰 등이 사실이라면 형사 처벌 대상이다. 애초 해임이나 정직 6개월 등의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징계 수위가 낮아진 건 그만큼 징계하기에 부담이 컸다는 얘기다. 
법조계 일각에선 징계위가 ‘비위로 인한 중징계’라는 명분은 가져가면서도 향후 제기될 법정 공방에서 법원이 징계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주지 않을 정도의 징계 수위를 고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총장이 법적 대응에 나서더라도 2개월만 지나면 실익이 없어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공수처 출범을 추진해 검찰을 견제할 강력한 수단을 갖게 된다.

윤 총장 징계로 각종 수사를 받던 여권 인사들은 일단 한숨 돌리게 됐다. 내년 초 대규모 검사 인사가 예정된 만큼 윤 총장이 다시 업무에 복귀하더라도 지휘력이 예전만 못할 공산이 크다. 정치권에선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은 윤 총장이 될 것이란 얘기까지 파다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당장 총장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내년 초 인사 전까지를 마지막 기회라고 보는 원전수사 등이 차질을 빚을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尹측 최종 의견 진술도 없이 징계 결정 심의기일 추가 지정 요구도 수용 안 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 그렇게 ‘공정’을 이야기하더니 결국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의 징계 결정이 내려진 16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정희도 청주지검 형사1부장은 ‘징계위원회가 아니라 징계추진위원회’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같이 지적하고 “최소한의 양심을 기대한 제가 어리석었다”고 적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가 결정되면서 무성한 뒷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징계위 2차 심의에서 윤 총장 측이 방어권 보장을 위해 심의 기일 추가 지정을 요구했지만, 징계위가 거부하며 갈등을 빚는 등 절차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답정너 징계위’였다는 비아냥이 터져나오는 배경이다.

양측 갈등은 전날 오전 9시43분 2차 심의 시작과 동시에 불거졌다. 윤 총장 측은 정한중 위원장 직무대리와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대해 징계위원 기피 신청을 했는데, 징계위는 기각 사유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기각했다.

정 위원장 직무대리에 대한 기피 신청은 1차 심의에 이어 두 번째였다. 윤 총장 측은 정 위원장 직무대리의 과거 윤 총장 비판 발언 등을 열거하며 징계위원으로서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신 부장은 1차 심의 때는 기피 대상이 아니었지만, ‘채널A 사건과 관련해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기피 대상에 포함됐다.

정한중(왼쪽), 신성식
징계위는 윤 총장 측 변호인들과 휴대전화 제출 여부를 놓고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징계위 측은 심의 시작 전에 윤 총장 측 변호인들에게 보안을 이유로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했다. 회의 내용이 녹음돼 실시간으로 유출될 것을 우려한 징계위원들이 사전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총장 측 변호인들은 “재판에서도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결국 양측이 모두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증인 심문을 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진행했다.

증인 5명의 심문이 끝난 뒤에도 마찰은 계속됐다. 윤 총장 측이 최종 의견진술을 위해 증인심문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진술이나 의견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위원회 측에 새로 심의기일을 지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증인심문 과정에서 제출된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 의견서, 박은정 감찰담당관 진술서 등 600쪽 분량의 자료를 검토하고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이에 징계위는 윤 총장 측에 “내일 오후까지 반박의견서를 내라”고 했고, 윤 총장 측은 “검토할 자료가 많아 금요일까지 내겠다”고 했다. 옥신각신 중에 정 위원장 직무대리는 위원들과 협의한 뒤 갑자기 “금일 종결하겠다”면서 1시간 내 최종 의견진술을 주문했다. 윤 총장 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이의를 제기하고 최종 의견진술을 거부한 채 퇴장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측 특별변호인인 이완규 변호사(가운데)가 15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윤 총장에 대한 2차 검사징계위원회에서 최종의견진술을 거부하고 나오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과천=뉴스1
윤 총장 측 이완규 변호사는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에서는 이미 (결과를) 정해놓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징계 절차 자체가 위법하고 부당해서 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어서 이에 맞춰 대응할까 싶다”며 징계 결과를 예상한 듯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창수·김선영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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