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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재용 운명의 1주일..재판부가 던진 마지막 질문의 의미는?

원종진 기자 입력 2021. 01. 11. 11:42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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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12월 30일 결심 공판 이후 일주일 정도 기간만 추가 의견서를 받겠다고 밝힌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제 판결문 작성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재판부가 최종적인 법적 판단과 그 근거를 확정할 이번 한 주는 이재용 부회장에겐 '운명의 1주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재용 부회장 재구속 여부를 가를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 평가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결국 법관 인사 전인 1월에 선고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달 21일 재판부는 이런 뜻을 내비치며 삼성과 특검 양 측에 '석명준비명령', 즉 재판부의 질문에 답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1년여 동안 진행된 이번 재판의 마지막 석명준비명령이었습니다.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이 있듯, 이 석명준비명령에선 막바지에 이른 재판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 선고 전 마지막으로 전해드리는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재판부의 석명요청사항과, 이에 대한 삼성과 특검 양측의 답변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취재된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수십 년 뒤 한국 현대사 교과서에 실리게 될 '국정농단 사건'의 마침표를 찍는 이번 재판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끝까지 상세히 기록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 논문까지 제시하며 '위험 유형화' 중요성 강조…총수 일가 범죄도 나열

재판부의 지난달 21일자 석명준비명령은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의 유형화'라는 키워드로 시작됩니다. 재판부는 서두에 2020년 12월 14일자 전문심리위원 보고서 8쪽을 제시하며,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평가한 전문심리위원단 3명 모두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의 유형화'를 핵심 평가 요소로 꼽았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재판부는 이어서 이에 대한 강일원 (재판부 추천 전문심리위원), 홍순탁 (특검 추천 전문심리위원), 김경수 (삼성 추천 전문심리위원) 위원의 평가를 발췌해 기재했습니다.

재판부가 발췌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의 평가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선제적 위험예방 및 감시 활동에 이르고 있지 아니하다'는 부분과 ▲'BCG에서 지속가능한 준법경영체제에 대한 컨설팅 작업을 진행 중이고 그 결과에 따라 향후 발생 가능할 위험을 정의하고 준법 감시활동이 강화될 것이라고 하나, 컨설팅 결과가 2021년에 나올 예정이라 진행상황이나 결과를 확인할 수 없었음'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강일원 전 재판관의 평가 보고서 중,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를 유형화하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대목을 콕 집어 제시한 겁니다.

재판부가 발췌한 홍순탁 회계사의 평가 내용도 비슷했습니다. 재판부는 홍순탁 회계사의 보고서 중 ▲리스크 유형화 및 평가지표·점검항목 설정 작업은 수행되지 않았다는 부분과 ▲삼성준법감시위원회에 충분한 인력이 있고, 출범 후 10개월이 지났음에도 이런 작업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는 대목 등을 언급했습니다.

반면 재판부가 발췌한 김경수 전 고검장의 평가 내용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대외 후원금 지출이나 내부거래를 엄격하게 심사해 불법의 위험성이 감소했다는 것, 그리고 ▲과거 삼성에서 일어났던 위법 행위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노력이 있었으니 의미 있게 평가돼야 한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서 몇 가지 텍스트를 추가로 제시합니다. 법무부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상장회사표준준법통제기준>, 충남대 로스쿨 박세화 교수의 논문 <상장기업의 준법 경영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준법통제기준>, 같은 교수의 논문 <상법상 준법통제프로그램에 관한 실무적 쟁점 및 입법적 정비 방안에 관한 고찰> 등입니다. 재판부가 석명준비명령에서 발췌해 언급한 해당 텍스트들에는 모두 실효적인 준법감시 시스템의 핵심으로 '발생 가능한 위험의 유형화'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상장회사표준준법통제기준> 中
제12조(법적 위험의 평가)
(…)
②준법지원인은 법적 위험의 크기·발생빈도 등을 검토하여 위법의 발생 가능성 등을 판단하고 주요한 법적 위험행위를 유형화하여야 한다.
(…)

논문 <상장기업의 준법 경영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준법통제기준> 中
(…) 준법지원인의 통제활동은 법적 위험의 평가와 관리로부터 시작한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전 영업부문을 상대로 다양한 검증과 자료 분석 등을 통하여 법적 위험의 종류, 크기나 발생 빈도 등을 평가하고 부서별 또는 임직원이나 규제기관별로 위법행위를 유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문 <상법상 준법통제프로그램에 관한 실무적 쟁점 및 입법적 정비 방안에 관한 고찰> 中
(…)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법적 위험의 크기·발생빈도 등을 검토하여 발생 가능성을 판단하고 주요한 위법적 행위를 유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재판부는 이에 더해 이번 재판에서 참조하고 있는 미국 연방양형기준 일부를 제시합니다. 미 연방양형기준에서도 준법감시 프로그램 실효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주기적 리스크 평가'를 들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가장 심각하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위법행위에 먼저 대응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즉 일종의 위험 유형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석명준비명령에서 다양하게 제시된 텍스트들을 종합하면, 재판부는 '발생가능한 법적 위험의 유형화'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 평가의 핵심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특검과 특검 추천 전문심리위원인 홍순탁 회계사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출범 10개월이 지났지만 이러한 유형화 작업이 아직 안 됐다'며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삼성은 법적 위험의 유형화와 관련된 작업은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BCG에 의뢰한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삼성 측 전문심리위원인 김경수 전 고검장도 보고서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위험부터 유형화하여 엄격하게 관리하고, 장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들도 그 가능성이 높은 것부터 유형화하는 것이 맞다'고 언급합니다. 즉,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발생 가능한 법적 위험의 유형화' 작업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과거 발생한 위법 사항들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노력을 했으니 의미 있게 평가돼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 삼성 "과거 범죄들 분석해 예방책 마련했다"

재판부는 이처럼 다소 긴 전제를 제시한 뒤 질문을 던집니다. 삼성 총수 일가가 위법 행위로 처벌받거나 기소된 아래 8개 사건을 나열하며, 이에 대한 법적 위험의 평가와 재발 방지 수단 마련이 돼 있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재판부가 설명을 요구한 삼성 총수 일가 혐의 사실>
①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관련 배임 사건
②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 사건
③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 사건
④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업에 대한 활동비 제공 사건
⑤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임료 대납 관련 뇌물수수 사건
⑥삼성물산 임직원의 이건희 회장 가족 주택 공사비 명목 횡령 사건
⑦삼성그룹 임원의 차명 증권계좌 사용으로 인한 조세포탈 사건
⑧사업지원TF 소속 임직원들의 증거인멸 사건

지난달 21일 재판에서 이번 사건의 주심을 맡고 있는 강상욱 부장 판사는 삼성 측 변호인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습니다.

▷삼성 측 변호인 : 저희가 재판부의 석명 내용을 현재 새로운 준법감시제도 하에서 이러한 위험이 통제될 수 있는지 석명을 구하는 걸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강상욱 부장판사 : 아니 질문을 바꿔서 답하지 마세요. 질문한 대로 해야죠. 이 사안들에 대한 대책이 이뤄졌고, 법적 평가가 이뤄졌느냐를 묻는 겁니다. 아무리 전문심리위원 보고서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런 내용이 없어요. 그래서 상세히 기준을 준 거고, 저도 의아해요.

BCG에 컨설팅을 의뢰했다고는 하지만 재판 막바지까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발생 가능한 법적 위험 유형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 재판부는 과거에 이뤄졌던 삼성 총수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라도 평가와 대책 마련이 이뤄졌는지 좀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한 겁니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해 지난달 24일 제출한 의견서에서 '과거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 평가와 대책 마련이 이뤄졌고, 일부 과거 불법행위 유형은 현재 상황에서 재발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①<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관련 배임 사건>과 관련해서는 '특수관계자 거래가 있을 때 삼성준법감시위가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이사회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등의 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나 전직 대통령 자녀에게 뇌물을 지급한 ② ③ ④ 사건에 대해선 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과 IFRS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됐고, 금융위 산하에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설치된 환경이라 이와 같은 노골적 비자금 조성을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⑤<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임료 대납 관련 뇌물수수 사건>처럼 합법적 용역계약의 형태를 띤 뇌물 제공 행위에 대해선 '대외 후원금 심의 과정을 강화하고, 준법감시위에 후원금 승인 내역을 사후 통지하게 했다'는 설명을, ⑥<삼성물산 임직원의 이건희 회장 가족 주택 공사비 명목 횡령 사건>에 대해선 이와 같은 관계사와 총수일가 사이 거래도 준법감시위원회 감시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설명을 내놨습니다. 삼성 측은 또 2008년 삼성 특검으로 차명 주식 문제가 해소돼 ⑦번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없게 됐다고 설명하면서, ⑧<사업지원TF 소속 임직원들의 증거인멸 사건>에 대해선 '준법감시위 출범 등으로 전반적 준법감시 문화 향상이 이뤄졌다'는 대책을 제시했습니다.

● 특검 "없던 얘기 꺼낸 것. 총수도 두려워할 만한 준법감시위 마련 안돼"

특검은 이에 대한 반박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재판부가 나열한 과거 범죄 혐의들에 대해 법적 위험 평가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는 삼성 측 주장은 처음 듣는 것이라며,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공격했습니다. 만약 삼성 측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계열사 수준에서 준법감시제도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총수 일가 범죄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가 나열한 8개 범죄 혐의에서 알 수 있듯, 삼성이 매번 아무리 대책을 마련했다고 했지만 총수 일가의 범죄 행위는 반복돼 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결국 중요한 건 계열사 수준의 준법감시가 아니라, 총수의 지시가 전달되고 보고되는 체계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준법감시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삼성 측이 개별 범죄 사실에 대해 방지 대책을 길게 언급했지만,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에 대한 평가가 없어 앙꼬 없는 찐빵에 불과하다는 게 특검의 시각입니다. 결국 특검은 지금까지 삼성이 '앞으로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를 유형화하지도 않았고, 과거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총수 지시 체계'와 관련한 평가와 대책 마련은 소홀히 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 요소로 삼겠다고 발표하면서 '총수도 두려워할 만한 실효적 준법감시체계'가 갖춰져야 양형에 유리하게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현 상황에서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총수가 두려워할 만한 제도가 못된다'는 점을 특검이 재판 막바지까지 공략한 것입니다.


● 재판장의 '마지막 당부'

이대로 재판을 결심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공방이 오가던 지난달 21일, '강력 항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복현 특검 파견 부장검사가 재판부를 향해 언성을 높였습니다.

이복현 부장검사 : 재판부 석명 사항에 분명 자료와 논문을 제출하라고, 12쪽에 판결 언급하라고 하는데 변호사 준비에 최소 일주일이 걸리고 저희 의견도 들어야 하는데, 마치 사전에 집행유예 준비한 것처럼 결론을 내야 합니까!

그러자 정준영 재판장이 답했습니다.

정준영 재판장 : 지난번에도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재판부가 언급하지 않은 말 자꾸 전제로 까는 말을 특검 측에서 좀 자제를 해주세요. 집행유예라는 말이 왜 자꾸 나옵니까? 특검 측이 구형할 때 집행유예 구하시겠습니까? 불필요한 말을 자꾸 말하십니다 재판부가 언급하지 않은 걸.

언성을 높이던 이복현 검사는 항의를 중단했고, 양재식 특검보도 이 부장검사를 자제시켰습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제안은 이재용 집행유예 선고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온 정준영 재판장이 '집행유예로 성급히 결론짓지 말라'고 언급한 것에 특검과 삼성 양 측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이었습니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준영 부장판사 :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도 유죄로 인정하고 있는 뇌물·횡령 범행 가담자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고,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위 제도가 필요하다는 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부터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 피고인들이 제시한 삼성의 새로운 준법감시위가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볼 것인지 여부, 이를 양형 조건으로 고려할지 여부, 만일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고려할지는 모두 재판부 판단 대상입니다. 다만 양형 조건으로 고려해도 여러 양형 조건 중 하나이고, 유일한 양형 조건이라거나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양형 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 피고인들은 우리 재판부가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떠한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최종 변론을 준비해주길 바랍니다.

어떤 재판 결과가 나오든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것은 재판장의 통상적인 당부로 볼 수 있겠지만, 삼성준법감시위 실효성에 대해 철저히 평가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대목입니다.

사실상 국정농단 사건 선고의 마침표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사건 재판을 기자로서 지켜보면서, 저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평가하기 위해선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취재파일 링크 : ▶ [취재파일] 삼성준법감시위 평가, 올해 안에 마칠 수 있나?)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131784 ]

하지만 재판부는 추가적인 시간을 갖는 대신, 현 재판부 구성원 임기 내에 선고를 내리기로 결단했습니다. 한 부장판사도 이와 관련해 "판단의 시일을 미루는 건 판사가 일종의 직무 유기를 하는 것이다. 판사는 결단의 순간이 왔을 땐 주어진 것을 바탕으로 결단을 해야 한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재판부가 세상에 내놓을 판단 근거의 논리적 완성도일 겁니다. 재판부의 마지막 석명준비명령에서 볼 수 있듯, 대통령과 글로벌 기업 총수의 정경유착 범죄에 대한 최종 판결은 10년, 20년이 지나도 계속 회자되고 평가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연합뉴스)   

원종진 기자bell@sbs.co.kr

원종진 기자 입력 2021. 01. 11. 11:42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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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12월 30일 결심 공판 이후 일주일 정도 기간만 추가 의견서를 받겠다고 밝힌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제 판결문 작성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재판부가 최종적인 법적 판단과 그 근거를 확정할 이번 한 주는 이재용 부회장에겐 '운명의 1주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재용 부회장 재구속 여부를 가를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 평가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결국 법관 인사 전인 1월에 선고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달 21일 재판부는 이런 뜻을 내비치며 삼성과 특검 양 측에 '석명준비명령', 즉 재판부의 질문에 답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1년여 동안 진행된 이번 재판의 마지막 석명준비명령이었습니다.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이 있듯, 이 석명준비명령에선 막바지에 이른 재판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 선고 전 마지막으로 전해드리는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재판부의 석명요청사항과, 이에 대한 삼성과 특검 양측의 답변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취재된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수십 년 뒤 한국 현대사 교과서에 실리게 될 '국정농단 사건'의 마침표를 찍는 이번 재판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끝까지 상세히 기록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 논문까지 제시하며 '위험 유형화' 중요성 강조…총수 일가 범죄도 나열

재판부의 지난달 21일자 석명준비명령은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의 유형화'라는 키워드로 시작됩니다. 재판부는 서두에 2020년 12월 14일자 전문심리위원 보고서 8쪽을 제시하며,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평가한 전문심리위원단 3명 모두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의 유형화'를 핵심 평가 요소로 꼽았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재판부는 이어서 이에 대한 강일원 (재판부 추천 전문심리위원), 홍순탁 (특검 추천 전문심리위원), 김경수 (삼성 추천 전문심리위원) 위원의 평가를 발췌해 기재했습니다.

재판부가 발췌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의 평가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선제적 위험예방 및 감시 활동에 이르고 있지 아니하다'는 부분과 ▲'BCG에서 지속가능한 준법경영체제에 대한 컨설팅 작업을 진행 중이고 그 결과에 따라 향후 발생 가능할 위험을 정의하고 준법 감시활동이 강화될 것이라고 하나, 컨설팅 결과가 2021년에 나올 예정이라 진행상황이나 결과를 확인할 수 없었음'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강일원 전 재판관의 평가 보고서 중,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를 유형화하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대목을 콕 집어 제시한 겁니다.

재판부가 발췌한 홍순탁 회계사의 평가 내용도 비슷했습니다. 재판부는 홍순탁 회계사의 보고서 중 ▲리스크 유형화 및 평가지표·점검항목 설정 작업은 수행되지 않았다는 부분과 ▲삼성준법감시위원회에 충분한 인력이 있고, 출범 후 10개월이 지났음에도 이런 작업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는 대목 등을 언급했습니다.

반면 재판부가 발췌한 김경수 전 고검장의 평가 내용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대외 후원금 지출이나 내부거래를 엄격하게 심사해 불법의 위험성이 감소했다는 것, 그리고 ▲과거 삼성에서 일어났던 위법 행위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노력이 있었으니 의미 있게 평가돼야 한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서 몇 가지 텍스트를 추가로 제시합니다. 법무부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상장회사표준준법통제기준>, 충남대 로스쿨 박세화 교수의 논문 <상장기업의 준법 경영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준법통제기준>, 같은 교수의 논문 <상법상 준법통제프로그램에 관한 실무적 쟁점 및 입법적 정비 방안에 관한 고찰> 등입니다. 재판부가 석명준비명령에서 발췌해 언급한 해당 텍스트들에는 모두 실효적인 준법감시 시스템의 핵심으로 '발생 가능한 위험의 유형화'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상장회사표준준법통제기준> 中
제12조(법적 위험의 평가)
(…)
②준법지원인은 법적 위험의 크기·발생빈도 등을 검토하여 위법의 발생 가능성 등을 판단하고 주요한 법적 위험행위를 유형화하여야 한다.
(…)

논문 <상장기업의 준법 경영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준법통제기준> 中
(…) 준법지원인의 통제활동은 법적 위험의 평가와 관리로부터 시작한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전 영업부문을 상대로 다양한 검증과 자료 분석 등을 통하여 법적 위험의 종류, 크기나 발생 빈도 등을 평가하고 부서별 또는 임직원이나 규제기관별로 위법행위를 유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문 <상법상 준법통제프로그램에 관한 실무적 쟁점 및 입법적 정비 방안에 관한 고찰> 中
(…)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법적 위험의 크기·발생빈도 등을 검토하여 발생 가능성을 판단하고 주요한 위법적 행위를 유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재판부는 이에 더해 이번 재판에서 참조하고 있는 미국 연방양형기준 일부를 제시합니다. 미 연방양형기준에서도 준법감시 프로그램 실효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주기적 리스크 평가'를 들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가장 심각하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위법행위에 먼저 대응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즉 일종의 위험 유형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석명준비명령에서 다양하게 제시된 텍스트들을 종합하면, 재판부는 '발생가능한 법적 위험의 유형화'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 평가의 핵심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특검과 특검 추천 전문심리위원인 홍순탁 회계사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출범 10개월이 지났지만 이러한 유형화 작업이 아직 안 됐다'며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삼성은 법적 위험의 유형화와 관련된 작업은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BCG에 의뢰한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삼성 측 전문심리위원인 김경수 전 고검장도 보고서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위험부터 유형화하여 엄격하게 관리하고, 장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들도 그 가능성이 높은 것부터 유형화하는 것이 맞다'고 언급합니다. 즉,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발생 가능한 법적 위험의 유형화' 작업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과거 발생한 위법 사항들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노력을 했으니 의미 있게 평가돼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 삼성 "과거 범죄들 분석해 예방책 마련했다"

재판부는 이처럼 다소 긴 전제를 제시한 뒤 질문을 던집니다. 삼성 총수 일가가 위법 행위로 처벌받거나 기소된 아래 8개 사건을 나열하며, 이에 대한 법적 위험의 평가와 재발 방지 수단 마련이 돼 있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재판부가 설명을 요구한 삼성 총수 일가 혐의 사실>
①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관련 배임 사건
②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 사건
③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 사건
④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업에 대한 활동비 제공 사건
⑤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임료 대납 관련 뇌물수수 사건
⑥삼성물산 임직원의 이건희 회장 가족 주택 공사비 명목 횡령 사건
⑦삼성그룹 임원의 차명 증권계좌 사용으로 인한 조세포탈 사건
⑧사업지원TF 소속 임직원들의 증거인멸 사건

지난달 21일 재판에서 이번 사건의 주심을 맡고 있는 강상욱 부장 판사는 삼성 측 변호인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습니다.

▷삼성 측 변호인 : 저희가 재판부의 석명 내용을 현재 새로운 준법감시제도 하에서 이러한 위험이 통제될 수 있는지 석명을 구하는 걸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강상욱 부장판사 : 아니 질문을 바꿔서 답하지 마세요. 질문한 대로 해야죠. 이 사안들에 대한 대책이 이뤄졌고, 법적 평가가 이뤄졌느냐를 묻는 겁니다. 아무리 전문심리위원 보고서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런 내용이 없어요. 그래서 상세히 기준을 준 거고, 저도 의아해요.

BCG에 컨설팅을 의뢰했다고는 하지만 재판 막바지까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발생 가능한 법적 위험 유형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 재판부는 과거에 이뤄졌던 삼성 총수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라도 평가와 대책 마련이 이뤄졌는지 좀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한 겁니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해 지난달 24일 제출한 의견서에서 '과거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 평가와 대책 마련이 이뤄졌고, 일부 과거 불법행위 유형은 현재 상황에서 재발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①<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관련 배임 사건>과 관련해서는 '특수관계자 거래가 있을 때 삼성준법감시위가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이사회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등의 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나 전직 대통령 자녀에게 뇌물을 지급한 ② ③ ④ 사건에 대해선 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과 IFRS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됐고, 금융위 산하에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설치된 환경이라 이와 같은 노골적 비자금 조성을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⑤<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임료 대납 관련 뇌물수수 사건>처럼 합법적 용역계약의 형태를 띤 뇌물 제공 행위에 대해선 '대외 후원금 심의 과정을 강화하고, 준법감시위에 후원금 승인 내역을 사후 통지하게 했다'는 설명을, ⑥<삼성물산 임직원의 이건희 회장 가족 주택 공사비 명목 횡령 사건>에 대해선 이와 같은 관계사와 총수일가 사이 거래도 준법감시위원회 감시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설명을 내놨습니다. 삼성 측은 또 2008년 삼성 특검으로 차명 주식 문제가 해소돼 ⑦번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없게 됐다고 설명하면서, ⑧<사업지원TF 소속 임직원들의 증거인멸 사건>에 대해선 '준법감시위 출범 등으로 전반적 준법감시 문화 향상이 이뤄졌다'는 대책을 제시했습니다.

● 특검 "없던 얘기 꺼낸 것. 총수도 두려워할 만한 준법감시위 마련 안돼"

특검은 이에 대한 반박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재판부가 나열한 과거 범죄 혐의들에 대해 법적 위험 평가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는 삼성 측 주장은 처음 듣는 것이라며,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공격했습니다. 만약 삼성 측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계열사 수준에서 준법감시제도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총수 일가 범죄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가 나열한 8개 범죄 혐의에서 알 수 있듯, 삼성이 매번 아무리 대책을 마련했다고 했지만 총수 일가의 범죄 행위는 반복돼 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결국 중요한 건 계열사 수준의 준법감시가 아니라, 총수의 지시가 전달되고 보고되는 체계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준법감시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삼성 측이 개별 범죄 사실에 대해 방지 대책을 길게 언급했지만,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에 대한 평가가 없어 앙꼬 없는 찐빵에 불과하다는 게 특검의 시각입니다. 결국 특검은 지금까지 삼성이 '앞으로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를 유형화하지도 않았고, 과거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총수 지시 체계'와 관련한 평가와 대책 마련은 소홀히 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 요소로 삼겠다고 발표하면서 '총수도 두려워할 만한 실효적 준법감시체계'가 갖춰져야 양형에 유리하게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현 상황에서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총수가 두려워할 만한 제도가 못된다'는 점을 특검이 재판 막바지까지 공략한 것입니다.


● 재판장의 '마지막 당부'

이대로 재판을 결심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공방이 오가던 지난달 21일, '강력 항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복현 특검 파견 부장검사가 재판부를 향해 언성을 높였습니다.

이복현 부장검사 : 재판부 석명 사항에 분명 자료와 논문을 제출하라고, 12쪽에 판결 언급하라고 하는데 변호사 준비에 최소 일주일이 걸리고 저희 의견도 들어야 하는데, 마치 사전에 집행유예 준비한 것처럼 결론을 내야 합니까!

그러자 정준영 재판장이 답했습니다.

정준영 재판장 : 지난번에도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재판부가 언급하지 않은 말 자꾸 전제로 까는 말을 특검 측에서 좀 자제를 해주세요. 집행유예라는 말이 왜 자꾸 나옵니까? 특검 측이 구형할 때 집행유예 구하시겠습니까? 불필요한 말을 자꾸 말하십니다 재판부가 언급하지 않은 걸.

언성을 높이던 이복현 검사는 항의를 중단했고, 양재식 특검보도 이 부장검사를 자제시켰습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제안은 이재용 집행유예 선고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온 정준영 재판장이 '집행유예로 성급히 결론짓지 말라'고 언급한 것에 특검과 삼성 양 측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이었습니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준영 부장판사 :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도 유죄로 인정하고 있는 뇌물·횡령 범행 가담자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고,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위 제도가 필요하다는 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부터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 피고인들이 제시한 삼성의 새로운 준법감시위가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볼 것인지 여부, 이를 양형 조건으로 고려할지 여부, 만일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고려할지는 모두 재판부 판단 대상입니다. 다만 양형 조건으로 고려해도 여러 양형 조건 중 하나이고, 유일한 양형 조건이라거나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양형 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 피고인들은 우리 재판부가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떠한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최종 변론을 준비해주길 바랍니다.

어떤 재판 결과가 나오든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것은 재판장의 통상적인 당부로 볼 수 있겠지만, 삼성준법감시위 실효성에 대해 철저히 평가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대목입니다.

사실상 국정농단 사건 선고의 마침표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사건 재판을 기자로서 지켜보면서, 저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평가하기 위해선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취재파일 링크 : ▶ [취재파일] 삼성준법감시위 평가, 올해 안에 마칠 수 있나?)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131784 ]

하지만 재판부는 추가적인 시간을 갖는 대신, 현 재판부 구성원 임기 내에 선고를 내리기로 결단했습니다. 한 부장판사도 이와 관련해 "판단의 시일을 미루는 건 판사가 일종의 직무 유기를 하는 것이다. 판사는 결단의 순간이 왔을 땐 주어진 것을 바탕으로 결단을 해야 한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재판부가 세상에 내놓을 판단 근거의 논리적 완성도일 겁니다. 재판부의 마지막 석명준비명령에서 볼 수 있듯, 대통령과 글로벌 기업 총수의 정경유착 범죄에 대한 최종 판결은 10년, 20년이 지나도 계속 회자되고 평가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연합뉴스)   

원종진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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