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취준생 죽음 몬 '김민수 검사', 中공안 체포됐다 풀려나[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강주안 입력 2021. 11. 16. 00:33 수정 2021. 11. 16. 06:30 댓글 2
 

추가 범행에 20대 극단 선택


“택배ㆍ경리 업무” 믿은 청년들만 철퇴

지난 7일 오후 8시쯤 경기도 안산의 한 지하철역 앞에서 A씨(22)를 만났다. 대학 2년생인 그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사흘 뒤 법원 선고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검ㆍ경 수사기록 등에 따르면 그가 함정에 빠진 건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한 직후인 지난 1월이다. 채용사이트 ‘알바몬’을 통해 신용정보회사와 연결됐다. 코로나19 속 비대면 면접을 통해 대출 관련 업무라는 설명을 들었다. 두 차례에 걸쳐 200만원과 1300만원을 전달한 그는 혹시나 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보이스피싱일지 모른다는 게시물을 본 그는 파출소를 찾아갔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는 보이스피싱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해명했지만, 검ㆍ경은 그가 범죄임을 몰랐을 리 없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A씨는 "군 적금으로 집에 에어컨을 달아드렸고 학비를 보태려다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일요일인 이날도 온종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알바)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혹시라도 전과가 생길까 봐 근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이스피싱 일당이 위조한 검찰 공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름을 적었다.


A씨는 요즘 전국의 경찰서ㆍ검찰청ㆍ법원ㆍ구치소ㆍ교도소에 넘쳐나는 ‘알바 범죄자’ 중 한 명이다. 검사와 수사관을 사칭해 시민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피해자에게 돈을 받아내려 또 한 번의 정교한 사기극을 벌인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현실을 악용해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같은 사이트를 무대로 알바생을 끌어들인다. 택배ㆍ경리ㆍ금융 알바라고 속인다. 재직 증명서를 보내고 근로계약서까지 쓴다. 알바생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자들과 주고받은 메시지에는 일자리를 얻었다는 20대 사회초년병의 기쁨이 묻어난다.


중형에 거액 물어내는 알바생

그러나 사기가 드러나는 순간 알바생들만 체포된다. 떳떳한 알바라는 생각에 자기 휴대폰으로 집까지 택시를 부르고 자기 카드로 돈을 내 바로 검거된다. 그들을 끌어들인 범죄자들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다. 알바생들만 남아 경찰ㆍ검찰 조사를 받고 ‘자금수거책’ ‘현금운반책’이라는 태그를 단다. 그들 머리 위로 총책ㆍ사장ㆍ유인책ㆍ장집관리자ㆍ관시담당ㆍ상담원 같은 ‘성명불상자’들이 등장한다. 알바생들은 졸지에 이들과 공모한 범죄조직원이 된다. 범행을 설계한 본범(本犯)을 못 잡으니 범죄 조직에 뜯긴 시민의 돈을 갚는 것도 알바생 몫이다. 몇십만원을 번 죄로 수천만 원, 수억 원을 물어내라는 압박에 눌린다. 그래야 형량이 조금 줄어든다.

보이스피싱 주범들이 알바생에게 보낸 가짜 재직증명서.

지난 4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중앙지법의 한 법정 앞에 20대 여성이 아버지ㆍ변호인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대학을 다니다 우울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치료를 받으며 재택 알바를 해왔다. 일당 7만원의 총무 업무가 덫이었다.부친은 "만약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면 제가 그 일을 하도록 놔뒀겠습니까"라고 했다.

재판이 시작됐다. 검사는 징역 3년을 구형했다.B씨가 최후 진술을 했다.

"죽어야 이 죄를 감당할까 자책했지만, 속이 문드러지시는 부모님을 보며…" 눈물이 쏟아졌고 목소리는 떨렸다. 방청석에 앉아 울음을 참던 아버지의 어깨가 흔들리며 "흑흑"하는 소리가 새 나왔다. 짧은 취업의 기쁨 속에 100만원 남짓 벌었던 B씨는 합의금만 수천만 원을 물어야 했다.

지난해 발표된 ‘보이스피싱 전달책의 가담경로에 관한 연구’(홍동규ㆍ홍순민ㆍ김한결)에 따르면 A·B씨 같은 전달책은 절반 이상(50.6%)이 전과가 없고 10~20대가 무려 77%를 차지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전과자로 전락하는 셈이다.


검찰·법원 "보이스피싱 엄단 불가피"

보이스피싱 범죄는 연간 3만건에 이르고 지난해 피해 금액만 7000억원이다. 범죄인줄 알면서 가담한 사람들을 엄벌하자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대검찰청 관계자는 “현금수거책은 속은 피해자들을 직접 대면해 범행을 최종 완성시키는 역할로 엄단이 필요하다”며 “이들 중 조직원과 적극 공모하고도 ‘몰랐다’며 처벌을 피하려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 관계자는 “판사가 먼저 유ㆍ무죄를 가려서 유죄로 판단되면 양형을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양형위원회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은 조직적 사기에 해당하고 피해 금액이 크기 때문에 특별 양형 인자를 반영해 권고 형량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사회적으로 보이스피싱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분위기”라며 “만약 약하게 처벌하면 어떤 쪽으로 발전해갈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알바생을 속이기 위해 제공한 가짜 사업자등록증.


문제는 속았을 경우다. 검찰과 법원은 범죄인 줄 알았는지 철저히 따진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건을 많이 접한 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전민성 변호사는 “단순히 알바로 생각했거나 가담 사실을 모르고 시작한 일들인데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이를 참작하기보다는 ‘알았을 것이다’라고 단정하고 결국 중형이 선고된 사례가 많다”고 말한다.

경찰 출신인 임휘성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은 “최근에도 입대를 앞둔 대학생이 잠깐 알바를 하려다가 속아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며 “100만원 정도 보수를 받고서 피해자들에게 3000만원을 주고 합의해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이 고의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한 사건을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알바생을 통해 건넨 가짜 카드사 영수증.

대검과 은행연합회가 지난 5일 발표한 보이스피싱 대책엔 ‘고액 알바 등을 미끼로 구직자를 현혹해 현금수거책 등 점조직의 말단으로 가담시킨다’며 ‘절박한 구직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위험으로까지 확대되는 상황’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중국 공안에 잡힌 날, 인맥 통해 곧바로 석방

알바생까지 엄벌하는 한국과 대조적으로 중국에선 보이스피싱 주범들을 검거하고도 풀어줬다는 조직원들의 증언이 중앙일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지난달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형을 받은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원 C씨는 지난해 10월 부산경찰청 조사에서 2017년 칭다오에서 일당이 전부 중국 공안에 체포됐던 사실을 털어놨다. C씨에 따르면 범행 장소인 아파트에 한국인이 드나드는 걸 수상하게 여긴 경비원이 공안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출동한 공안은 조직원들이 DB를 보면서 범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무전기로 지원을 요청해 공안 20여명이 들이닥쳤다. 조직원들을 대형 승합차에 태워 파출소로 끌고 갔다. 그런데 공안에 인맥이 있는 조직 핵심인물 전모씨가 간부에게 연락해 그날로 석방됐다는 것이다.

같은 조직에서 일했던 D씨도 "공안에 2차례 잡혀갔지만, 전 씨가 힘을 써 풀려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김민수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로 20대 취업준비생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갔다. 중국 공안이 보이스피싱 일당을 처벌하거나 한국에 인도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중국서 가담한 한국인이 국내로 돌아와 검거된 사례도 중국 보이스피싱 주범들이 공안 당국에 손을 써 조직에서 이탈하려는 한국인을 불법체류자로 체포해 강제 추방했기 때문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경찰은 범죄 무대가 된 중국 칭다오ㆍ옌지ㆍ다롄ㆍ선양 등지의 아파트 주소와 특징 등을 파악하고 사진까지 확보했지만, 검거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법조계 "본범 못 잡고 책임 전가"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사회 취약계층의 변론을 맡은 한 국선변호인은 "본범을 잡는 게 국가의 역할인데 종범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일괄적으로 답을 정해놓고 기소를 하고 재판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범죄단체 수사를 많이 했던 서울지검 강력부장 출신의 김규헌 변호사는 “재범 이상인 경우엔 미필적 인식이 있다고 봐야 하지만 어쩌다 걸려든 사람의 경우 ‘강자에겐 엄하게 약자는 관대하게’라는 원칙으로 검사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이병찬 파트너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알바생들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범행 도구로 이용된 것”이라며 “그런데 정부는 이들을 피해자를 달래는 도구로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과실범에 불과한 이들에게 검찰과 법원은 미필적 고의가 있다는 미명하에 무조건 실형을 선고해 보이스피싱 방지의 도구로 삼고 있다”며 “이는 형사법상 대원칙인 책임주의에도 반하는 위헌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받은 A씨

대학생 A씨의 1심 선고일인 지난 10일 오전 9시 30분쯤 법원 앞에서 그를 만났다. 혼자였다. 그는 "진짜로 몰랐고, 두 번 알바비 20만원을 받고 이상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경찰서에 갔기 때문에 무죄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선고가 시작됐다.

-생년월일을 말씀하세요.

"1999년 O월O일입니다."

-유죄가 인정됩니다. 합의하지 않은 점은 불리한 정상입니다. 범행의 이익이 크지 않은 점은 유리한 정상입니다. 징역 1년을 선고합니다. 단 2년간 집행을 유예합니다.

돌아서는 A씨의 얼굴에 당황함이 역력했다. 그는 "수업 들으러 학교에 가야 한다"며 법원을 나섰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기자 joo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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