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그 후]'부부 공무원' 20만명 시대..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봉수 입력 2018.10.28. 10:29

노량진 컵밥 거리. 자료사진. 기사와 관련이 없음.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50대 맞벌이 A씨 부부는 둘 다 가난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혹독하게 보낸 흙수저 출신이지만,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대한민국 상위 10%'에 속한다. 실제 두 사람의 합산 소득은 연간 1억5000만원이 훨씬 넘어 통계청 기준 월 665만원(상위 10%)을 초과한다. 곧 은퇴할 나이지만 노후 걱정도 없다. 월 최소 500만원 이상의 연금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빈부 격차가 커지는 '흙수저', '헬조선' 사회에서 이런 행운을 누리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공무원'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위 사례는 실제로 수많은 부부 공무원들의 현실이다. 게다가 공무원들은 육아 휴직, 각종 직무 교육과 해외 연수, 체계적·합리적 인사 시스템, 복지 포인트 등 다양한 후생 복지 등 민간에선 상상하기 힘든 많은 혜택을 누린다.

그래서 오늘도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노량진에서 컵밥을 먹어 가며 자신들의 청춘을 공무원 시험에 쏟아 붓고 있다. 부모의 빽이나 연줄없이 오직 자신의 노력과 실력만으로 좋은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에겐 공무원 만한 자리가 없다.

올해 국정감사의 가장 큰 이슈가 서울교통공사의 직원 친인척 특혜 채용 의혹이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이 전체 1만7000여명 직원 중 약 11.2%가 친인척 관계인데다, 올해 3월 무기계약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된 1285명 중 112명도 기존 직원의 친인척 관계였다는 사실을 놓고 특혜ㆍ비리 의혹을 제기하자 젊은이들의 분노가 끓어 올랐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공무원은 아니더라도 큰 사고 치지 않는 이상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인데다 평균 연봉 6000만원이 넘는 등 후생복지도 좋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기존 직원들이 자신들의 가족들을 채용하는 '고용 세습'이 일어났다니, 오늘 점심 노량진에서 컵밥을 먹던 청년들의 입에서 밥풀이 튀어 나올 일이다.

그러나 과연 서울교통공사의 친인척 특혜 채용 의혹이 사실일까? 젊은이들의 분노는 이해가 가지만, 그것이 왜곡되거나 부풀려져 어떤 목적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혹 제기 이후 아직까지 강원랜드 등 박근혜 정부 시절 공기업 채용 비리처럼 점수 조작, 기준 변경, 정치인들의 압력·로비, 금품 수수 등 비리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없다. 단지 이명박 정부 시절 관변 성격이 짙었던 '제3노총'(국민노총)을 시도했던 일부 노조 세력들,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불만을 품은 일부 공채 출신들을 통해 간간히 흘러 나오는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간접 증언'만 보수 언론들을 통해 나돌고 있을 뿐이다.

이에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는 "블라인드 면접 등 채용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며 감사원 감사를 신청했다.시와 공사 측은 역대 이렇게 많은 '팩트 체크' 자료를 쏟아 낸 적이 없을 정도로 각종 의혹 정황 제기에 대해 하나 하나 따져가며 조목조목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의 정정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결국 핵심은 11.2%라는 친인척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국감장에서 자유한국당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조직에서 10% 이상이 친인척 관계라면 이상한 거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로 관심사였다.

그래서 알아 봤다. 민간부문에서 '부의 장벽'이 존재한다면, 공공부문에서의 '피의 장벽' 즉 혈연 관계가 얼마나 형성돼 있을까?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부부 공무원' 숫자가 20만명을 돌파해 급증하고 있었다. 행안부가 2013년 전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무원 총조사' 결과 '부부 공무원'의 숫자는 19만6003명으로 전체 공무원(응답자 기준ㆍ88만7191명)의 약 22.1%에 달한다. 전체 공무원의 5분의1이 부부 관계다.

특히 기혼 중 부부 비율은 더욱 높아 30%에 육박했다. 기혼이라고 응답한 공무원 71만4143명 중 19만6003명이 부부 관계였다. 결혼한 공무원들 10명 중 3명은 동료 공무원과 짝을 이뤘다는 얘기다.

직종 별로는 국가직이 14만5565명 중 2만6887명(18.47%), 경찰ㆍ소방 14만1798명 중 1만7438명(12.3%), 교육직 30만4356명 중 8만4765명(27.85%), 지방직 29만5472명 중 6만6913명(22.64%) 등이다. 근무 여건이 양호한 교사나 지역이라는 틀에 묶인 지방직 공무원들이 더 사내 결혼을 선호했다.

이같은 부부 공무원의 비율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08년 총 17만4323명(19.9%ㆍ전체 87만6163명)보다 5년새 12.2%나 늘어났다. 2013년 조사 후 5년이 흐른 올해에는 20만명을 훨씬 초과해 최소한 전체의 25~3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공부문의 또 다른 축인 공기업 직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노무현 정부 이후 대거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이전보다 커플 탄생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부부 외에 자식, 조카 등 친인척까지 포함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최소 30%에서 많으면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일단 공공부문 내부적으로는 "조직 몰입에 긍정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 원만한 가정 생활이 가능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 결혼은 개인의 자유라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공공 부문내 혈연 관계가 강해질 수록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공무원들간의 '동질혼', 즉 혼인을 통해 부모의 지위와 부가 자식들에게 세습되는 경향이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사회가 경직된다. '흙수저'가 '상위 10%'로 도약할 수 있는 그나마 남아 있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더욱 더 줄어든다는 얘기다.

오늘도 '연 수입 1억5000만원, 노후 연금 월 500만원'을 꿈꾸는 수많은 공시생들이 노량진에서 공부하면서 꿈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짝을 찾아 헤매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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