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에 127만원, 하루 18번 바늘꽂는 20대.."여긴 자본주의 끝"

최연수 입력 2020.12.06. 10:00 수정 2020.12.06. 10:44 댓글 244

[밀실] < 제57화> 
꿈과 생계 위해 '피 뽑는' 20대

 

"아침이 되면 약을 먹고 온종일 피를 뽑아가요. 18번 정도 채혈을 한 뒤에 팔을 보면 주사 때문에 멍이 들어있거든요. 멍 자국 보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죠."

지난 6월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 중 채혈을 하고 있는 모습. 취업준비생 김모(28)씨 제공


8일에 127만원. 위성경(27)씨가 지난 10월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로 번 금액입니다. 생동성 시험은 이미 출시된 약의 특허 기간이 만료돼 같은 성분의 복제약을 내놓을 때 진행하는 임상시험입니다. 제약회사가 새 약을 출시하기 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죠.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에선 ‘고수익ㆍ편한 알바’라는 설명과 함께 임상시험 아르바이트 지원자를 받기도 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업난이 닥쳐오면서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치열해졌습니다. 청년들은 꿈을 위해, 눈앞에 놓인 생계를 위해 ‘고수익’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에 몰렸다는데요. 이들의 이야기를 밀실팀이 들어봤습니다.

#'임상시험 알바'의 진실, 영상을 통해 만나보세요


‘단기 알바’ 10번 탈락 후 임상시험 참가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9개월째 고시원에서 생활중인 위성경씨의 모습. 부모님의 도움없이 광주에서 올라와 홀로서기 중이다. 최연수기자

위성경씨는 서울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 9개월째입니다. 부모님 도움 없이 광주에서 올라와 고시원 생활 중인데요. 외국 항공사 승무원을 지망하던 위씨는 지난 2월 코로나19로 항공사 사정이 안 좋아지자 면접을 포기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급하게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아봤지만, 연락 오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는 "10곳 넘게 단기 알바를 지원했다"며 "생동성 알바를 하면 100만원가량 받는다. 그 정도면 한두 달 버틸 수 있으니까 생활비를 위해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죠.


코로나로 횟수 줄었어도 2030 지원 ↑ 

생동성 시험 과정중 혈압을 재는 모습. 독자 제공

생동성 시험이 진행되는 병원의 풍경은 이렇습니다. 위씨에 따르면 병동 양쪽에 일렬로 세워진 침상에서 60명가량의 지원자들이 본인의 채혈 순서를 기다리고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점심과 저녁 식사가 나옵니다. 시간대별 채혈이 끝나면 저녁 시간엔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채혈이 끝난 뒤 각자 개인시간을 갖는 모습. 취업 준비생. 독자 제공

임상시험 중인 병원엔 20ㆍ30대 성인 남자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임상시험센터 관계자는 “생동성 시험은 신체 건강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올해는 코로나로 시험 횟수가 줄었지만, 지원하는 20~30대는 많아졌다”고 설명했죠.

사전 신체검사에 합격해야 생동성 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신체검사를 통해 흡연·음주량이 기준치를 넘는지, 2주 안에 헌혈한 적 있는지 등을 확인합니다. 위씨는 위궤양 치료제 시험으로 8일 중 이틀을 병원에서 지내고 18번에 달하는 채혈을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밑바닥 근처가 바로 이곳" 

생동성 임상 시험에서 채혈이 있기 전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 이모(27)씨 제공

취준생만 임상시험에 나서는 건 아닙니다. 원래 다니던 직장이 코로나로 문을 닫아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포츠 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이모(27)씨는 코로나19로 센터 문이 닫혔다고 하는데요. 그는 "고용지원금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집 사기 위한 중도금이 급하게 필요해 몸을 갈아 넣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병동에서 별 대화 없이 채혈하는 모습. 이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자본주의의 밑바닥에 와있는 기분"이라며 “'처참한 마음에 노동하러 온 거다' '몸 팔러 왔으니까 당연한 거다' 식의 자기 세뇌로 시험을 버텼다”고 털어놨죠.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홈페이지 캡쳐

김모(28)씨도 코로나19 여파로 잘 다니던 언론 홍보계열 회사가 문을 닫았습니다. 김씨는 두 차례 생동성 시험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직업훈련을 받으면서 생활비까지 벌기엔 '고수익 단기 알바'인 생동성 시험이 적합하다는 판단에서였죠.

김씨는 "친구들에게 같이 하자고 하니 '위험한데 미쳤냐'는 얘길 듣기도 했다”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내 몸으로 시험했다 생각하면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이 된다면 또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죠. 이틀 입원해서 받은 돈은 60만원가량이었습니다. 김씨는 현재 주중엔 직업훈련, 주말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꿈이 있어 궂은일도 마다치 않는다 

지난 1일 중앙일보에서 위성경씨와 인터뷰하는 모습. 백경민

"'노가다'라도 해보겠다고 하고 택배 상·하차, 배달 일처럼 궂은일은 다 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불쌍하게 안 봐주셨으면 해요. 지금은 하고 싶은 게 많아요. 대학원 가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보고도 싶고, 지금 하는 유튜브도 잘 운영했으면 하고요." (위성경씨) 
밀실팀이 만난 청년들은 입을 모아 "모두가 힘든 상황이니 참고 이겨내자"고 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에게 건넨 위로죠. 자신의 몸을 돈벌이에 기꺼이 내놓는 등 현실이 녹록지 않아도 미래만큼은 녹슬지 않습니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위씨는 눈을 반짝이며 설명하기도 했죠.

‘취업난’ ‘고용불안’ ‘버림받은 청년세대’. 뉴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말입니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고용시장, 청년들은 그래도 꿈과 희망을 품고 버티고 있습니다.

최연수ㆍ박건ㆍ윤상언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영상=백경민, 이진영·이시은 인턴

「 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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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자 발견뒤 또 성폭행한 20대男..대법 "무죄선고 잘못"

이세현 기자 입력 2020.12.06. 09:01 댓글 1022

'성행위 동의 구했다' 주장..대법 "피고인 진술 모순"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다른 사람에게 성폭행당한 피해자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또 성폭행한 20대 남성이 대법원 판결로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된 육군 하사 김모씨(24)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김씨는 2014년 1월 새벽 최모씨 등 지인과 술을 마시다가 최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화장실에 앉아 있던 미성년 피해자 A양을 다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보통군사법원은 "A양이 성폭행 직전과 도중의 상황은 명확히 기억하면서도 '간음이 어떻게 시작됐는지의 상황'만 유독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고등군사법원도 "김씨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간음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1심 선고를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피해자는 술을 먹고 구토하는 등 상당히 취한 상태였고 최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직후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김씨의 간음행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상황을 일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피해자 진술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고 직전 성폭행으로 인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였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당시 집 구조와 상황으로 볼 때 김씨는 최씨가 피해자를 간음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김씨는 검찰에서 '용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들어갔다'고 진술했는데, 김씨가 화장실에 알몸으로 있는 피해자에게 괜찮은지 물어본 후 호감이 있다고 하면서 성행위를 해도 되는지 동의를 구했다는 것은 진술 내용 자체로도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합리적 근거 없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한 원심은 잘못"이라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s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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