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도 맞으며 축구했다고?" 차라리 한국 떠나는 꿈나무

김형준 입력 2021. 02. 20. 04:30 수정 2021. 02. 20. 08:31 댓글 1424

 

유럽으로 떠난 축구선수 승준이 부모
지도자는 운동장서 서슴 없이 때리고
부모는 줄 세우기·김장 모임 촌지 강요
폭력 무뎌져 맞고도 시합 이기면 웃어 
고질적 병폐 못 버티고 유럽행 선택
"비용 만만찮지만 운동에만 집중 가능"

게티이미지뱅크

유럽 프로축구 클럽 19세 이하(U-19) 팀에서 뛰는 축구선수 승준(가명ㆍ19)의 부친 김모씨는 6년 전 국내 초등학교 축구부에서 뛰던 아들의 성장 무대를 유럽으로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김씨는 언젠간 유럽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그 시기는 승준이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로 생각했다. 선수생활을 마친 뒤 지도자 생활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그러나 죄의식 없이 폭력과 부조리를 일삼는 학교 스포츠계의 그릇된 행태 속에서 아들을 계속 방치할 순 없었다. 잿빛 미래가 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유럽행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19일 김씨가 밝힌 국내 학원축구부 운영 실태는 20세기 악습을 답습하고 있다. 제왕적 권한을 누리며 폭력을 일삼는 지도자들, 그를 둘러싼 ‘입김 센’ 학부모들의 자발적 굴종과 파벌 형성이 대표적이다. 이런 환경에선 아이들이 페어플레이 정신을 배우고 스포츠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알기는커녕 인성만 망가지고 말 것이란 우려가 컸다. 특히 축구만으로 명문대에 보낼 수 있는 체육특기자 선발제도와 이로 인해 만들어진 '스포츠 캐슬'의 신기루는 아들에게 자발적 희생양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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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에 무뎌져 맞고도 "더 열심히 하겠다"

전지 훈련장과 대회장에서 지켜봤던, 고교와 대학 지도자들의 폭언과 폭력은 김씨가 아들의 유럽행 결심을 굳히게 만든 결정적 이유였다. 수긍할 수 없는 폭행을 당한 뒤에도, 다음 경기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모두가 웃으며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감독은 선수들 '군기' 잡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고, ‘그래야 좋은 성적이 난다’며 그를 지지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괴물이 되지 않고선 학교 스포츠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공식처럼 받아들여졌다. 김씨는 “승준이만큼은 저렇게 키우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우려했던 대한민국 학교 스포츠의 비극적 단면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11월 조사·발표한 인권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신체폭력을 당한 초등학교 선수(2,320명) 가운데 무려 38.7%(898명)가 ‘폭행당한 이후 감정’을 묻는 질문에 “(운동을)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에서 초ㆍ중ㆍ고 학생선수 6만3,211명(응답자 5만7,557명) 가운데 9,035명이 언어폭력을 경험했고, 신체폭력(8,440명)과 성폭력(2,212명)을 경험한 학생도 적지 않았다. 김씨 부자가 한국을 떠나는 게 최선인지를 되묻는 게 무색해지는 현실이다.


아이가 선배면 부모도 선배? 줄 세우기와 파벌 다툼

김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벌어지는 학부모들 간의 파벌 다툼을 한국 엘리트 스포츠계의 고질적 병폐로 꼽았다. 부모들 입김에 특정 선수들의 출전 여부까지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숱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경우 승준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부터 ‘부모 줄 세우기’를 경험했다. 6학년·5학년 선수 부모회의 회장과 총무가 이를 주도했다. 같은 학년 선수들 가운데 가장 실력 좋은 아이를 둔 부모가 회장을 맡는 관행에 따라 고학년 부모들은 김씨에게 4학년 부모회 회장을 맡을 것을 권유했지만, 김씨는 거절했다. 그는 “언젠간 유학을 보낼 생각이었고, 아이를 주장 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대회나 전지훈련 때마다 지도자에게 술 접대하는 관행도 따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부모 회장직을 거절하자, 피해가 아들에게 돌아왔다. 잘 뛰던 승준군은 별다른 이유 없이 경기에서 제외되는 날이 잦아졌다. 학부모들도 김씨를 멀리했다고 한다. 김씨는 “어떤 보직이라도 맡으라는 부모들 요구에 감사 자리를 맡게 됐는데, 회장과 총무가 사적으로 마신 술값을 회비로 계산한 것을 여러 번 지적했더니 부모들이 나를 멀리했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촌지 전달식 된 김장, 그리고 1억 모으기

김씨는 이대로는 안 될 거 같아 전학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듬해 옮겨간 새 학교에선 뜻밖의 ‘김장 문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수들이 기숙사에서 소비하는 김치를 부모들이 담근다는 취지였는데, 알고 보니 김장을 빙자한 ‘학부모 줄 세우기’와 ‘촌지 전달식’이었다. 그는 이 학교에서 “초등학생 부모가 아이 입시 로비를 위해 ‘1억 모으기’를 시작했다고 얘기하는 모습에서 한국 학원스포츠가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김씨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유럽의 유소년 클럽에 입단해 학교와 분리된 축구클럽에서 공을 찼다. 연령대 팀에서도 1~3부로 나뉜 클럽 시스템 속에서 꾸준한 출전 기회를 얻어가며 성장했다. 그간 유럽에서 지출한 축구클럽 비용은 한 달에 1,300유로(약 174만원). 물론 만만치 않은 금액이지만, 매달 100만원 이상(중·고교 축구부 기준)의 기본 회비에 대회 출전비, 전지훈련비, 김장비, 그리고 졸업 전후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쏟는 노력과 비용까지 감안하면 국내보단 훨씬 나은 조건이라는 게 김씨 설명이다.

축구선수 학부모연합회 커뮤니티 캡처


되풀이되는 논쟁, 해외 향하는 또 다른 승준이들

김씨가 겪은 악습들은 지금도 곳곳에서 되풀이되며 축구선수로 성장하는 아이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부모들을 괴롭히고 있다. 수도권 중학교 축구클럽 폭행사건(본보 19일자 1면)이 보도된 이날도 오전부터 3만 6,000여명 회원을 둔 온라인 커뮤니티 ‘축구선수 학부모연합회’ 게시판엔 선수 부모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특히 자신을 현직 지도자라고 밝힌 A씨가 "폭력이 정당화되진 않지만 10년 전만 해도 군대에서 구타도 있었고, 학교에서 체벌이 가능했다"며 "박지성(40)도 맞으며 축구했다"고 했다. 폭력을 '하나의 추억이자, 그 때의 문화'로 치부한 그의 주장은 부모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한 부모는 "10년 전에는 지도자가 체벌해도 되는 법이 있었느냐"고 되물었고, 또 다른 부모는 "체벌과 학교폭력이 나쁘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게 어른들이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제대로 된 자성조차 없는 국내 학원스포츠 현실에 신물이 난 학생과 부모들은 해외 클럽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독일 내 하부리그 유소년 클럽 코치를 맡고 있는 B씨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재작년까지 유럽으로 넘어오는 선수들이 증가하는 추세였다"며 "2010년 전후까지는 우수 선수가 선진 축구를 배우러 유럽행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성장 초기부터 한국 엘리트 시스템 대신 유럽 클럽 시스템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라고 전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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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면허 취소법 통과 반발..의협 회장 "의사총파업 등 검토할 것"

이형진 기자 입력 2021. 02. 20. 07:50 수정 2021. 02. 20. 07:56 댓글 1667

 

모든 범죄 금고형 선고 시 5년간 면허 취소
최대집 "피를 뿌려서라도 끝까지 투쟁..면허 반납·총파업 등 논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 2021.2.17/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이형진 기자 =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는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강력히 반발했다. 전국의사총파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협조 중단'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지난 19일 국회 복지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의료인에 대해서도 변호사·공인회계사 등 다른 전문 직종처럼 면허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의결했다.

기존 의료법에는 의료법 위반으로 금고형 이상을 받을 때만 의사 면허가 취소됐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의료법 뿐 아니라 다른 범죄를 통해서도 면허가 취소되도록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집행 기간이 끝난 의사는 이후 5년 동안 면허가 취소된다. 또 금고 이상의 형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의사는 유예기간이 끝난 시점부터 2년 동안,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유예 받은 의사는 유예기간동안 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

해당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다만 개정안을 두고 의료계에서는 반발이 크다.

대한의사협회는 19일 성명서를 통해 유감을 표시했다. 의협은 "헌법상 평등원칙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특정 직업군을 타 직종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등 형평성에 반하는 과잉규제"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예컨대 의료인이 자동차 운전 중 과실로 인해 사망사고를 일으켜 금고형 등의 처분을 받으면 수년간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며 "한 순간의 교통사고 만으로도 의료인이 평생 바쳐 이룬 길을 포기하게 만다는 것이 의료인에게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면허를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개정안 취지에 부합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의료인의 면허 결격사유를 범죄의 종류나 유형을 정하지 않고 관리하면 오히려 의료인이 자율적으로 윤리의식을 제고하는 역량을 갖출 기회를 박탈한다는 주장이다.

최대집 의협 회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020년 8월 투쟁에 대한 보복입법으로 시작된 의사죽이기 악법"이라며 "코로나19 치료, 예방접종, 아무 조건없이 오직 국민을 위해 정부에 협력, 지원한 댓가가 정부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의사 죽이기 보복악법으로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 최대집은 국회 앞에 제 피를 뿌려서라도 끝까지 저항 투쟁하겠다. 민주당은 무슨 결과를 가져오든 책임은 온전히 민주당이 져야 할 것"이라며 "법안의 진행 추이를 보면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 13만 의사 면허반납 투쟁, 전국의사총파업, 코로나19 백신접종 대정부 협력 전면 잠정 중단 등 투쟁 방식을 두고 신속하게 논의를 전개하겠다"고 덧붙였다.

hj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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