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만 둘러봐도 수고비 지불'.. 권익위 "중개계약서 작성이 먼저, 수고비는 1만원 내외될 것"

곽희양 기자 입력 2021. 02. 15. 14:33 댓글 117

 

[경향신문]

서울 송파구 롯데타워 서울 스카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주택의 모습. 이준헌 기자


집만 둘러봐도 공인중개사에게 ‘수고비’를 내도록 하는 국민권익위원회의 방안에 대해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수고비를 내기 전에 ‘중개계약서’를 먼저 작성하는 게 원칙”이라며 “실제 수고비도 시간당 1만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익위는 지난 9일 국토교통부에 ‘주택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 방안’을 권고했다. 12억원이 넘는 주택의 매매 중개수수료(임대는 9억원 초과)를 낮추는 방안을 담은 것으로, 여기엔 실제 매매·전세 계약을 맺지 못한 경우라도 실비 보상 한도내에서 수고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단, 매매·전세 계약까지 이어졌다면 이 수고비는 내지 않게끔 했다.

이에 대한 온라인을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나왔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의 한 누리꾼은 “공인중개사들이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허위 매물을 더 올릴 우려가 있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매물만 보여주고, 그 만큼 수고비를 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하나”고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사전에 안내한 매물과 실제 보여준 매물이 다를 경우에도 수고비를 줘야하나”고 물었다.

권익위는 “수고비(중개물건 소개·알선료)를 지급하기 전에, 수고비를 얼마로 할지 등을 중개계약서로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해명했다. 현재 구두로 중개의뢰를 하는 것을, 중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중개계약서에는 집을 구해야 할 기간, 원하는 주택의 조건, 소개·알선 횟수에 따른 지불조건이 담기도록 할 방침이다. 만약 공인중개사가 의뢰인이 원하지 않는 조건의 주택을 보여줬을 경우 수고비를 담지 않는다는 조항도 여기에 포함된다.

권익위는 또 수고비에 대해 “최저임금(2021년 기준 시간당 8720원)을 기준으로 하는 실비보상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권익위는 “공인중개사가 집주인 또는 현 세입자와 연락을 하고, 방문시간을 조율하며 의뢰인과 함께 방문해 설명하는 행위에 대한 기회비용 성격”이라며 “시간당 1만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익위는 “현재 구두로 중개의뢰하는 관행이 중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개선되면, 중개업소 1곳에 의뢰해도 중개업소간 공동중개방식으로 매물과 의뢰인을 매칭해 찾아주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구두로 여러개의 중개업소에 맡기지 않아도 된다”며 “또 집을 보여주지 않고 계약을 종용하는 ‘묻지마 계약’이나 실제 집을 살 의향도 없으면서 고가주택을 관람하듯이 보러 다니는 행위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권익위가 지난 9일 국토교통부에 권고한‘주택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 방안’. 경향신문 자료사진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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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선생 영면..향년 89세(종합)

정성조 입력 2021. 02. 15. 08:04 수정 2021. 02. 15. 08:44


한국 진보운동 '큰 어른'..1987년 대선서 민중후보 출마
1992년 대선 이후 통일문제연구소 세워 통일운동에 헌신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 (서울=연합뉴스)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2021.2.15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입원 중 영면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왔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백 소장은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xing@yna.co.kr

[그래픽]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주요 연보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0eu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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