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쪽방촌 개발' 반대하는 진짜 이유

이성영 입력 2021. 02. 18. 07:33 수정 2021. 02. 18. 10:18


단지 분양권 때문이 아니다, 진심으로 쪽방촌이 계속되기를 원한다

[이성영 기자]

 5일 서울 용산구 KDB생명타워 LH주택공사에서 바라본 국토부 주관 서울역 쪽방촌 정비방안 계획부지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지옥고. 열악한 주거환경을 뜻하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축약해서 부르는 단어이다. 하지만 지옥고 아래 더 열악한 주거시설이 쪽방이다. 30년 이상 오래된 건물을 1~2평으로 촘촘히 쪼개어 월 20만~30만 원의 월세를 받는 쪽방촌은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 있는 주거 형태이다. 최근 쪽방촌을 두고 정부와 쪽방촌 토지주들 사이에 일진일퇴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 5일 정부가 도심 내 주택공급 방안으로 공공임대 1250호, 분양 1160호 규모의 서울역 앞 동자동 쪽방촌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자, 해당 사업구역 토지주 모임인 후암특별계획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에서는 15일 입장문을 내 "정부의 추진 방식이 폭압적이고 사유 재산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사업추진에 대해 결사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강제지정 전면 취소를 요구하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정부도 법에 의거해 진행하는 사업이고 공공주도 도심지 주택공급의 상징적 사업이라 물러설 여지가 없다.

쪽방촌 토지주들은 적극적으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아주경제> 보도에 따르면 동자동 쪽방촌 소유주뿐 아니라 인근 후암·갈월동 쪽방촌 소유자들까지 나서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동자동 무너지면 용산구 다 죽는다. 다음은 후암, 갈월 등 용산구 내 모든 쪽방촌이다. 쪽방촌이 끝이 아니다. 쪽방촌 끝장나는 순간 용산 알짜배기 땅에 임대주택 다 들어선다고 생각하면 된다. 용산구 주민 전체가 정부(국토교통부), 서울시와 싸워야 한다."
 
"세입자들은 축제다. 토지 소유주들이 세입자들에게 밀리면 안 된다. 반대 의견서 제출하고 국토부, 서울시,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항의 전화 계속해라."

- <아주경제> "동자동 무너지면 다 죽는다" 용산 쪽방촌 소유자들 집단 반발(2021. 02. 16)
 
공공주택사업지구로 지정되면 사업구역 내에 실거주하지 않는 90%의 토지주들은 분양권을 얻지 못하고 현 토지용도, 거래사례 등을 기준으로 현금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향후 아파트 분양으로 발생할 막대한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사활을 걸고 공공주도의 쪽방촌 재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토지주들의 목소리가 커서 그런지 쪽방촌 관련 언론 기사 다수는 토지주들의 반발과 재산권 침해라는 관점을 적극적으로 담고 있다.
토지주의 관점, 쪽방촌 거주민의 관점
   
 쪽방 주거환경 개선 (출처 : 국토교통부 "전국 최대 서울역 쪽방촌, 명품 주거단지로 재탄생" 보도자료)
ⓒ 국토교통부
   
시좌(視座), 어디에 앉아서 보는지가 중요하다. 토지주들의 입장에 앉아서 보면 공공주도의 쪽방촌 재개발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도 한편으로 이해된다. 다만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공공주도의 쪽방촌 재개발을 어떻게 볼까?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쪽방촌 재개발에 대해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거기본법에서 정한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은 '14㎡(약 4.24평)의 면적, 부엌, 수세식 화장실 및 목욕 시설'이다. 하지만 현재 지옥고 아래 쪽방촌의 거주민들은 최저기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0년이 넘은 오래된 주택 내 촘촘히 쪼개진 1~2평 남짓한 방에 산다. 이마저도 수도가 얼고 전기도 자주 끊기는 열악한 시설이지만, 보증금이 없다는 이유로 20만~30만 원의 월세를 내고 있다.
     
만약 공공주도의 쪽방촌 재개발이 진행된다면 쪽방촌 거주민들은 공사기간 중 인근에 임시거주지를 제공받고 공사가 끝나면 공공임대주택을 제공받아 현재 쪽방촌보다 2~3배 넓고 쾌적한 공간을 현재의 15%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살 수 있다. 최저주거기준 이상의 주거공간을 지금보다 매우 저렴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쪽방촌 주민들 입장에서는 공공주도의 쪽방촌 개발을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빈곤 비즈니스
   
 14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공공주택지구사업 계획에 반발하는 후암특계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가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가 쓴 <착취도시, 서울>은 쪽방촌을 대상으로 누가, 어떻게 착취를 하는지 쪽방촌을 둘러싼 빈곤 비즈니스를 파헤친 심층탐사 취재기사를 묶은 책이다. 서울 전역의 쪽방촌 주소를 확보하여 등기부등본을 떼어 소유주가 누구이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분석해 부자들이 쪽방촌을 활용해 어떻게 돈을 벌고 탈세와 증여를 하는지 잘 파헤친 글이다.
쪽방촌 건물주들이 쪽방에 사는 경우는 없다. 쪽방 건물주 중에는 강남 타워팰리스 등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전직 유명 수능 인터넷 강사, 중소기업 대표, 고등학생까지 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부자동네에 가서 살고 관리인을 통해 월세만 받는다. 쪽방촌 인근의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이다.
 
"쪽방은 세를 놓는 거고 건물주들은 부자 동네 가서 살죠. 솔직히 원룸처럼 시설을 잘해놓은 것도 아닌데 월세를 그렇게 받는 건 폭리를 취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화장실도 없고, 주방도 없는 쪽방이 태반인데 이론적으로 따지면 월세 5만 원만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1평에 25만 원 수준이면 웬만한 아파트 평당 월세의 다섯 배는 될 걸요." - <착취도시, 서울> p.81
 
월세의 일부를 쪽방촌 관리인에게 나누어 주어도 매월 수백만 원의 현금이 들어오고 세금도 내지 않기에 대를 이어 증여와 상속이 일어나기도 한다. 심지어 이들은 쪽방촌이 재개발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도 한다. 재개발이 되면 매월 들어오는 수백만원의 현금수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후암특별계획1구역은 쪽방촌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일부도 포함되어 있기에 공공주도 재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은 쪽방촌 소유주들만은 아니다. 공공주도 쪽방촌 재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에는 아파트 분양수익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쪽방촌 자체를 유지시키고 싶어하는 악랄한 부자들의 목소리도 함께 있다.

시좌(視座), 앉은 자리가 중요하다. 앉아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많은 것이 달리 보인다. 토지주들의 입장이 아닌 쪽방촌 거주자들은 공공주도의 쪽방촌 재개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루는 기사들이 많아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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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톡톡]쿠팡은 한국 회사입니까? 미국 회사입니까?

강성규 기자 입력 2021. 02. 17. 07:03 댓글 232

 

미국에 본사, 김범석 의장·주요 임원 '미국인'
세금납부·투자·고용창출·매출은 '한국'에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2021.2.1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서울=뉴스1) 강성규 기자 = "미국 기업이 미국에 상장하는 것입니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6일 쿠팡 상장에 대해 한 말입니다. 이말을 들은 상당수 사람들은 '쿠팡이 미국 회사라고?'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쿠팡이 미국 회사라는 걸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절차에 본격 착수하면서 국적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예비심사를 위해 제출한 상장신고서를 통해 베일에 가려져있던 쿠팡의 지배구조와 지분현황 등이 여실히 공개됐기 때문인데요.

엄밀히 따지면 이번에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은 한국에서 이커머스 사업을 펼치고 있는 쿠팡이 아닌 미국에 본사를 둔 '쿠팡 LLC'입니다. 이 법인은 쿠팡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모기업'이죠. 쿠팡 'INC'(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꾼 뒤 상장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사실 쿠팡 모기업의 '국적'은 신고서 제출 이전부터 잘 알려져있던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논란을 더 커진 것은 쿠팡LLC의 주주와 이사진 현황이 드러나면서입니다.

쿠팡 LLC의 이사회는 12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미국 국적입니다. 재미교포 1.5세인 창업주 김범석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우버 시스템을 만든 투안 팸 최고기술책임자(CTO), 아마존 출신 고라브 아난드 최고재무책임자(CFO), 밀리콤 부사장 출신 해롤드 로저스 최고행정책임자(CAO) 등이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모회사의 본사도 미국에 있고, 김 의장을 비롯해 상당수 임원이 미국인 셈입니다. 특히 미국 증시에 상장까지 하는 마당이니 '쿠팡은 미국회사'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자본금 또한 사실상 전액 '외국'에서 유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과 일본의 투자 기업들이지요. 특히 잘 알려져 있듯 쿠팡의 대주주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기업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입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쿠팡에 총 30억 달러(약 3조3000억원)를 투자했으며, 그 결과 쿠팡LLC의 지분 37% 가량을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쿠팡이 미국 현지 법인을 통해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이 자본을 토대로 한국에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일각에선 '국부유출'에 대한 우려까지 나옵니다. 돈은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고 세금은 미국에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미국 증시 상장으로 우리 국민들의 투자는 차단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김범석 쿠팡 대표

하지만 쿠팡은 국내에 차린 쇼핑몰과 사업장,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직원들과 소비자들 또한 대다수가 '한국인'들입니다. 물론 국내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한 세금은 국내에 납부하고 있습니다.

쿠팡의 매출은 지난 2016년 1조9000억원에서 2020년 13조3000억원으로 5년 사이 6배 이상 급성장했습니다. 쿠팡의 이용자수도 1485만명에 달합니다.

쿠팡의 고용창출 효과는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쿠팡 한국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과 물류센터 직원, 쿠팡맨 등을 합치면 약 5만명에 달합니다. 게다가 오는 2025년까지 5만명을 새롭게 고용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상태입니다.

세금 대부분을 한국에 납부하고 고용창출 역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쿠팡이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곳은 바로 한국입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쿠팡은 한국회사라고 보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쿠팡이 이같이 급성장한 토대가 됐던 한국을 떠나 미국 등 해외로 옮겨 '가시밭길'을 자초할 일은 만무해 보입니다. 오히려 국내에서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해 이를 원동력 삼아 해외 점유율을 점차 넓히는 행보를 걸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더 나아가 기업의 법인 등록지와 지분구조, 경영진 현황 등을 기준으로 기업의 국적이 규정되는 '전통적인 판별 기준'이 무의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경영은 물론 소비와 투자까지 '국경'을 너무나 쉽게 넘나드는 글로벌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아마존 등 해외 이커머스의 사례처럼 미국 현지 쇼핑몰에 접속해 물품을 구입하는 '직구'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아마존 또한 국내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해외시장을 더욱 확장하고 있지요.

우리 국민들이 쿠팡에 투자할 길이 막힌다는 얘기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서학개미'라는 단어가 유행어가 됐듯 국내 기업부터 개미들까지 미국 등 해외 기업과 증시에 투자하는 것이 더이상 낯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쿠팡의 사업 성패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국내에 미칠 영향이 더욱 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국적을 둘러싼 논쟁보다 쿠팡이 국내에 미칠 '영향력'을 중심에 두고 청사진을 그리는 게 더욱 생산적일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쿠팡이 이커머스를 비롯한 국내 산업 생태계에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지, 일자리 창출과 복지 향상, 소비자 편의 증진, 중소상공인과의 상생 등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실현하는 지 등을 기준으로 쿠팡의 '정체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배달기사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소속 조합원들이 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이츠의 일방적인 배달 수수료 삭감 정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News1 구윤성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 추진을 계기로 벤처투자 활성화의 중요성을 다시 되새긴다. 벤처기업은 고용, 매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전통적인 대기업에 버금갈 정도로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주역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쿠팡이 미국 회사인지, 한국 회사인지 보다는 그들이 앞으로 그려나갈 새로운 그림에 주목해 보는게 어떨까요.

sgk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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