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서 고교생이 여중생 성폭행..경찰 수사

박홍식 입력 2019.02.09. 17:21

               

【구미=뉴시스】박홍식 기자 = 9일 오전 1시 48분께 경북 구미시 한 모텔에서 미성년자인 고등학생이 여중생을 성폭행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구미경찰서는 9일 채팅을 통해 만난 미성년자 여중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고등학교 2학년 A(18)군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군은 이날 새벽 1시 48분께 구미시 진평동의 한 모텔에서 B(16)양을 강제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양은 성폭행을 당한 후 경찰에 신고했다.

A군은 한달 전 채팅방에서 B양을 만나 알게 된 후 연락을 이어오다 이날 만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phs643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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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교일 "스트립바 아냐..상반신만 노출 허용되는 캬바레"

홍수민 입력 2019.02.09. 00:23 수정 2019.02.09. 07:11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 [중앙포토]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미국 출장 중 스트립바에 갔다는 의혹에 대해 8일 재차 반박했다.

최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6년 미국 출장 중에 우리가 간 주점은 파라다이스 클럽이 아닌 릭스캬바레이다. 이곳에서는 노출을 하더라도 상반신까지만 노출이 허용된다"고 적었다.

최 의원은 "사건 당일 주점에 간 사람은 영주시장, 시의회 의장, 한국계 뉴욕주 판사, 미국 변호사, 저와 국회 보좌관, 영주시청 직원 등 10여명이었다"며 "만약 내가 미국 밤 문화를 즐기려 했다면 몇 사람만 데리고 가자고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의원은 "저녁 식사 후 10여명이 전부 가서 술 한잔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고 식당에서 2분 거리에 있는 릭스캬바레로 갔다"며 "10여명이 30분 정도 가볍게 술 한잔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스트립바인 파라다이스 클럽은 오래전에 폐쇄됐고 나스닥 상장업체인 릭스그룹에서 인수하여 새로운 형태로 개업했다"고 부연했다.

이어 "저는 2006년 뉴욕에서 연수를 받았고 당시 한국계 뉴욕주 판사 및 변호사와 알게 되어 지금까지 친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최교일 의원 페이스북]
지난 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최 의원이 스트립바에 간 것이 맞다"고 주장한 가이드 대니얼 조에 대해선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대니얼 조가 민주당 조직 특보 임명장을 받은 사실이 있다"며 "향후 법적 대응을 통해 정확한 내용을 밝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니얼 조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스트립바에 간 것이 맞다. 무희들이 최 의원 일행 테이블에서 춤도 췄다. 제일 높은 국회의원이 문화 체험하러 가자고 해서 나도 같이 따라 들어간 것"이라고 폭로했다.

홍수민 기자 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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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차 북미정상회담 하노이 개최..北 경제강국 될 것"(3보)

입력 2019.02.09. 10:18 수정 2019.02.09. 10:20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2차 북미정상회담이 오는 27일과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우리측 대표가 생산적인 만남을 마치고 북한을 막 떠났다"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나는 평화의 진전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길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북미 정상회담 장소는 베트남 하노이" (서울=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 장소는 이달 27일~28일 베트남 하노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캡처] photo@yna.co.kr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진 트위터에서 "북한은 김정은의 지도력 아래 경제강국(great Economic Powerhouse)이 될 것"이라며 "그는 몇몇을 놀라게 할 수도 있지만, 나를 놀라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는 김 위원장을 알게 됐고, 그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며 "북한은 '경제'라는 다른 종류의 로켓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 연방의회에서 국정연설을 하면서 "2월27일과 28일 베트남에서 김 위원장과 만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구체적인 개최 도시를 공개하지 않아 하노이와 다낭 중 어느 곳에서 회담이 열릴지 관심이 쏠렸다.

그동안 미국은 다낭을 선호하고, 북한은 수도 하노이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6일 평양을 방문해 2박 3일간 실무협상을 마치고 이날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방북단에 의전 담당자들이 포함돼 있어 회담 개최 도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비건 대표는 2차 정상회담 전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또 만나기로 합의했다고 미 국무부가 발표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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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합격보다 어렵다" 국제 뉴스거리 된 한국 공시 과열

김재희 기자 입력 2019.02.09. 03:00

                          
      
외신들 '이상 열풍' 집중조명
8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월비스 고시학원에서 공무원시험 강의를 듣는 공시생들이 교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8일 정오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고시촌. 전남 목포 출신인 경찰공무원(순경)시험 준비생 문모 씨(30)는 점심도 거른 채 ‘열공’ 중이었다. 그는 설 연휴에도 목포에 가지 않고 노량진 고시원과 학원을 오가며 공부했다. 문 씨는 “공시생은 설 연휴가 싫다. 상당수 식당이 문을 닫아 내내 편의점 도시락만 먹었다”고 털어놨다.

2년째 ‘공무원시험(공시)’을 준비하고 있는 신민정 씨(29·여)도 고향인 경북 경주에 가지 않았다. 4월 6일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앞둔 그 역시 연휴 내내 오후 11시까지 공부했다. 신 씨는 “대기업 입사는 바늘구멍인 데다 설사 합격해도 오래 다니기 어렵다”며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붙을 때까지 공무원시험을 보겠다”고 했다.

이날 노량진 컵밥거리에는 가게마다 줄을 서서 컵밥을 먹는 공시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4월엔 9급 공무원 외에 경찰공무원시험(27일)도 있다. 두 달이 남은 지금 공시생들은 1분 1초가 아깝다. 노량진 지언독서실 직원 김모 씨는 “집이 수도권인 학생들도 설에 집에 가지 않고 하루 이용권을 끊어 독서실에 오더라”며 “설 당일인 5일 이용 인원이 평소보다 2배 이상 많았다”고 알려줬다.

지난해 3월 공개된 한 박사논문에 따르면 한국 공시생 수는 약 44만 명. 이 많은 젊은이들은 왜 공시에 목을 맬까.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이유는 ‘직업 안정성’이다. 신 씨는 “마흔 넘은 대기업 직원은 하루만 쉬어도 책상이 없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공무원은 박봉이지만 대기업보다 훨씬 안정적이지 않으냐”고 했다. 2년째 순경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김모 씨(24·여)도 “공무원 채용을 늘리겠다는 정부 정책을 실감 못 하겠다. 학벌과 스펙이 좋은 경쟁자가 너무 많아 채용을 늘릴수록 경쟁률만 높아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유력 해외 언론도 이 현상을 주목한다. 특히 한국처럼 전국 단위의 공무원시험이 없는 서구 선진국에서는 더욱 생소하게 여긴다. 미국은 공공업무 종사자의 공석이 발생할 때 수시로 채용 공고를 내며, 지원자의 직무 관련 경험이나 과거 직장에서의 평판조회 등을 중시한다. 공무원뿐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공채’ 문화가 보편화된 한국과 다르다.

미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6일(현지 시간) 3면 머리기사로 “미 최고 명문 하버드대 입학보다 한국의 공시 경쟁이 더 치열하다”며 “한국의 경제성장이 느려지고 수출 주도 산업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젊은이들이 경기침체 여파를 받지 않는 공공직에 몰린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4953명을 최종 선발한 한 공무원시험에는 20만 명이 지원해 합격률 2.4%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버드대 지원자 합격률(4.59%)의 절반 수준이다. 이 신문은 삼성, LG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일자리 격차도 주목했다. 높은 학점, 외국어 능력 등 대기업에 인상을 남길 만한 이력서가 없는 젊은이들이 공시로 눈을 돌린다는 뜻. 이어 “문재인 정부가 1년 전부터 취업난 해소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놨지만 청년 대다수는 민간 분야 일자리 전망이 금방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아 공시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한국은 과잉교육 사회(over-educated society)”라며 죽을 때까지 ‘공부의 연속’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시작에 불과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화이트칼라 직업을 얻기 위해 입사시험을 치러야 하고 입사 후에도 각종 승진 및 자격증 시험이 기다린다.

2017년 5월 미 공영라디오방송 PRI도 “20, 30대 한국 청년 중 3분의 2가 대학 졸업장을 소지했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삼성 같은 ‘꿈의 직장’에 입사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를 대체할 안정적 직장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공시 열풍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또 “경제가 좋지 않아도 정부의 공무원 채용은 계속되며 한번 공무원이 되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김재희 jetti@donga.com·위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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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무시해"..생일 맞은 여친 살해 20대, 징역 20년

남빛나라 입력 2019.02.08. 15:35

               
여자친구 생일에 20분 동안 목 졸라
선물 사러 가자는 요구 거절이 이유
"평소 날 무시하고 벌레 취급" 진술
1심 재판부 "죄질 극히 나쁘다" 질타
조현병 심신미약 주장 안 받아들여져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 자신을 무시한다며 여자친구를 살해한 20대 남성에게 1심 법원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심형섭)는 8일 안모(21)씨의 살인 혐의 선고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안씨는 재판 과정에서 조현병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여자친구에게 불만을 품은 안씨가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범행으로 나아간 것에 불과하다"며 "주변의 진술과 안씨의 생활기록부 등을 종합하면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안씨는 여자친구를 살해한 동기와 관련해 '평소 날 무시해왔고, 범행 당일에도 벌레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며 "이를 볼 때 살해 이유는 정신병의 발현이라기보단 열등감과 피해의식 때문"이라고 봤다.

이어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교제를 계속하면서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해주던 여자친구에게 오히려 불만을 갖고 살해했다"며 "여자친구가 발버둥을 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충분히 알았음에도 범행을 멈추지 않고 약 20분 동안 목을 졸라 죽음에 이르게 해 죄질이 극히 나쁘다"고 질타했다.

다만 재판부는 "심신미약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안씨의 정신적인 문제도 이 사건 범행에 다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밝혔다.

안씨는 지난해 10월12일 오후 5시께 서울 금천구에 있는 여자친구 A씨(20)의 집에서 A씨 목을 20분간 졸라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안씨는 생일을 맞은 A씨가 선물을 사러 가자는 자신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안씨는 적응장애 등의 진단을 받고 입대 약 3개월 만에 의가사제대를 한 상황이었으며, 평소 A씨가 자신을 무시하고 다른 남자와 만난다고 의심을 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sout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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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경호원 제치고 뛰어와 편지 준 소녀에 "용감하다"

입력 2019.02.07. 17:49 수정 2019.02.07. 21:04

경호 뚫고 달려온 소녀에게 축복 기도하는 교황…"용감했다" (아부다비 로이터=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5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자이드 스포츠시티 경기장에서 미사를 시작하기 전 오픈카를 타고 장내를 돌다 한 소녀가 철통같은 경호를 뚫고 달려와 편지를 건네자 이를 받아들고 소녀에게 축복 기도를 하고 있다. 교황은 6일 UAE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 편지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소녀는 용감했다"며 "그런 일을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ymarshal@yna.co.kr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도중 철통같은 경호를 뚫고 자신에게 달려와 편지를 줘 SNS에서 화제를 모은 소녀를 "용감하다"고 칭찬했다.

6일(현지시간) CNN 등 외신들은 교황이 UAE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전날 아부다비 미사에서 한 소녀가 달려와 편지를 건넨 일이 "좋았다"며 "소녀는 용감했다, 그런 일을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은 소녀에게 받은 편지의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교황이 언급한 소녀는 전날 오전 수도 아부다비 자이드 스포츠시티 경기장 미사 직전 오픈카를 타고 장내를 돌고 있던 교황에게 달려와 편지를 건넸다.

흰색 티셔츠에 분홍색 바지를 입은 이 소녀는 삼엄한 경비를 펼치던 경호원들을 제치고 재빠르게 교황에게 접근했으며 여러 각도에서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이 SNS 등에서 퍼져 화제가 됐다.

5일(현지시간) UAE 아부다비 자이드 스포츠시티 경기장에서 경호원을 제치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뛰어가는 가브리엘라(6·붉은 원안) [트위터 캡처]

교황은 당시 운전사에게 멈추라고 손짓했고, 한 경호원이 차 옆으로 다가온 소녀를 들어 올려 교황이 축복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소녀는 교황의 손이 머리에 닿자 감동한 듯 눈물을 머금었다.

6살인 이 소녀는 가브리엘라로, 콜롬비아 국적이며 지난해 어머니와 함께 두바이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 수장인 교황이 이슬람 발상지인 아라비아반도에서 미사를 집전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이에 대한 사랑과 평화를 강조한 이 미사에는 100여개 국적의 신자 17만여명이 모였으며 무슬림도 약 4천명 참석했다.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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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 종착지는 섬.."모두 한통속, 죽어야 나온다"

최은경 입력 2019.02.04. 12:00 수정 2019.02.04. 12:39

               
[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 ⑨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1962년 생겨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가 재개발된다. ‘1월 말까지 모두 비우라’는 최후통첩을 받았지만 10여 개 업소의 성매매 여성 40여 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설연휴가 끝나면 강제 철거가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벼랑에 몰린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집창촌에서 30여 년을 보낸 성매매 여성 B씨(53)의 증언을 ’옐로하우스 비가(悲歌)’ 시리즈에서 소개한다.
대구 도원동 집창촌 '자갈마당' 모습. [연합뉴스]
B씨가 발을 들일 무렵 집창촌 여성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어쩌다 감시를 피해 도망가도 금방 잡혀 오기 일쑤였다. 잡혀 온 여성은 며칠 동안 골목에 보이지 않았다. 업주가 도망간 벌로 이들을 감금해 때리고 굶겼기 때문이다. B씨는 “무자비하게 폭행을 하면서도 손님을 받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굴은 손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게 일을 봐주는 폭력배 ‘삼촌’들은 “또 도망가면 식구들에게 알린다”고 협박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집창촌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유린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여기에 일조했다.

“같이 일하던 언니가 손님을 가장한 인신매매범에게 속아 전라도 외진 마을로 잡혀갔어요. 울면서 내보내 달라니까 속옷만 입혀 다락에 가둬놓더래요. 나중에 보니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한가득이에요. 겨우 속옷만 입은 채 도망 나와 택시를 탔는데, ‘아무 경찰서나 가자’라니까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업소에 내려주더라는 거예요.”

이 여성은 어쩔 수 없이 몇 개월 동안 업주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겨우 외지에서 온 손님에게 신고를 부탁해 탈출했지만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업주·단골·경찰 모두 한통속”

“특히 섬 있잖아요. ○○도 같은 곳은 우리끼리 얘기로 죽어야 나올 수 있다고 했어요. 도망치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업주·선장이 모두 한통속이거든요. 경찰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도 했어요. 단골손님도 못 믿어요.”

○○도는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마지막 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육지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폐쇄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섬에서는 범죄를 당해도 도망가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강하다. 2016년에는 한 섬에서 주민들이 새로 부임한 초등학교 여교사를 성폭력 한 사건이 일어났다. 2014년에는 전남의 한 섬에서 장애인들을 감금해놓고 몇 년 동안 노동력을 착취한 사건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섬은 호젓한 낭만이 있지만 때론 약자들에게 감금의 공포를 유발한다. 공개적으로 도움을 청하기 힘든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선 섬에 대한 두려움이 종종 화제에 오른다.
1990년 9월 24일 경찰에 붙잡힌 인신매매범들. 서울시경은 인신매매범 일제 단속에서 84명을 적발해 58명을 구속하고 26명을 입건했다. [중앙포토]
때론 성매매 여성들이 집창촌에 사실상 감금된 미성년자를 탈출시키기도 한다. B씨는 다달이 집에 돈을 보내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집창촌에 머물렀다. 그러나 성매매를 강요받는 16세 소녀의 탈출을 도운 기억이 뿌듯하게 남아있다.

“딱 봐도 어린앤데 스무 살이래요. 맨날 아프다면서 우는 거예요. ‘도망가면 다시는 이런 데 안 올 거냐’고 물으니 절대 안 온대요. 친한 언니들과 짜고 목욕탕에서 이모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게 하고 그 틈을 타 도망가게 했어요. 차비를 주고 무조건 기차역으로 가라 했지요.”

업주들은 여성들이 딴생각을 못 하도록 늘 혹사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물론 돈 욕심도 컸다. 한 달 가운데 쉬는 날은 이틀. 소개소를 끼고 온 여성은 소개비를 갚아야 해 한 달 내내 일했다.

“생리할 때 솜을 틀어막고 일해 몸이 망가진 여성들이 많았어요. 중절 수술한 다음 날도 바로 일해야 했어요. 그때는 피임을 제대로 못 해서 몇 번이나 임신하는 여성도 많았습니다. 아프면 일 못 한다고 때리고, 도망가다 잡혀 오면 때리고. 말 안 들으면 감금하고요. 요즘도 휴대전화 뺏고 도망 못 가게 지키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성매매 여성들의 감금·폭행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은 2000년 9월 전북 군산시 대명동의 윤락가 속칭 ‘쉬파리 골목’ 화재 사건 때였다. 한 유흥업소에서 불이 나 빠져나오지 못한 20대 여성 5명이 질식사했다. 이후 조사에서 이들이 인신매매로 잡혀 와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업소 창문에는 쇠창살이 있었으며 두꺼운 철제문으로 된 출입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불나자 감금된 채 질식사한 여성들

1년여 뒤 쉬파리 골목과 가까운 군산시 개복동의 한 윤락업소에서 또 불이 나 여성 14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이들 역시 감금된 채 성 착취를 당한 것이 밝혀졌다. 두 사건은 2004년 성매매 특별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2년 군산시 개복동 유흥업소 화재 현장을 화재 감식반이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후에도 집창촌 내 인권 유린은 계속됐다. 2008년 대전 유천동 성매매 업소에서 탈출한 종사 여성들이 여성단체와 언론 등에 업주의 감금과 갈취 등을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이어 2009년에는 성매매 여성이 달아나자 업주가 붙잡아와 감금한 채 마구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강현준 전국한터연합회(성매매 종사 여성 인권 단체) 회장은 “요즘도 전국 집창촌에서 여성의 휴대전화 명의를 업주나 삼촌으로 해 친구 맺기, 위치 추적 등으로 감금 아닌 감금을 한다”며 “신체 구속이 아니더라도 선불금 지급 등을 법에 어긋나지 않게 교묘하게 바꾸는 등 여성이 벗어나지 못하게 올가미를 친다”고 말했다.

아직도 이런 범죄가 가능한 이유는 성매매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불법 행위자의 낙인이 찍힌 이 여성들은 도움을 청하려는 생각도 못 하고, 숨죽인 채 갖은 협박과 폭력에 시달릴 뿐이다.

B씨는 자갈마당에서 업주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도에 넘겨 버리겠다는 말이 제일 무서웠다”고 기억했다. 국가도, 수사기관도 집창촌에 사는 여성들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10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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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너] 되찾은 음력설, 어쩌다 우리는 설날에서 멀어졌나?

조원일 입력 2019.02.03. 10:07 수정 2019.02.03. 12:09

                          
      

야광귀ㆍ토끼날ㆍ투석전…우리가 몰랐던 설날 이야기

※‘오리지너’는 현상부터 근원까지 이야깃거리를 몽땅 끄집어 내고 싶은 한국일보의 멀티 플랫폼 스토리텔링 콘텐츠입니다. 텍스트, 비디오, 데이터 등등. 가능한 모든 도구로 사람과 사회, 역사와 현상을 연결지어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2주에 한 번, 일요일 오전에 찾아 뵐게요.

◇야광귀

“야광이라는 귀신이 있다. 밤에 인가에 들어와 신을 훔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신 주인은 불길하다.” (유득공 ‘경도잡지’)

“해질 무렵에 모아둔 머리카락을 태우고 밤에 신발을 감춘다. 신발을 잃으면 ‘재악(灾惡)’이 있다.” (조수삼 ‘세시기’)

“이날 밤에 신발을 문 밖에 두면 야귀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 크기가 맞으면 그 신을 신고 간다.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는 운수가 좋지 않다고 하여 분주히 방 안에 신발을 감춘다.” (조운종 ‘세시기속’)

250여년 전 조선 실학자들이 작성한 문헌에는 한 해 마지막 날인 음력 섣달 그믐의 ‘밤손님’이 등장합니다. 조선 후기 최고 지성들이 남긴 일종의 ‘민간 트렌드’ 보고서였습니다. 일본에도 있다고 알려진 야광귀 신앙에서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에서 신발은 전통적으로 한 개인을 상징했습니다. 운수가 불길하다는 것은 아프거나, 다치거나, 혹은 죽는다는 것을 의미했죠.

하지만 요괴의 정체는 묘연합니다. 야유광, 야광신, 야귀할멈, 앙광이 등 이름도 다양했던 그것을 두고 누군가는 불타 죽어 꺼멓게 탄 살과 뼈만 남은 고통스러운 사람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또는 음식을 먹지 못해 바짝 여윈 구귀(아귀)의 모습, 또는 얼굴이 흉측한 불교의 약왕보살이라고도 하죠.

굶주리는 귀신 아귀(가운데)를 그린 불화. 직지성보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수백년이 흐른 지금, 근원 모를 이야기를 규명하기엔 막연하다면, 질문을 비틀어 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야광귀의 정체는 무엇인가’에서 ‘야광귀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무엇을 했나’라고 물을 때 실체에 좀 더 다가갈지도 모릅니다.

“어린아이를 일찍 재우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라던 유득공이나, “부녀자들이 크고 작은 신들을 모두 깊숙한 곳에 감춘다”고 했던 최영년(해동죽지)의 기록에서 힌트를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야광귀의 공포가 클수록 본격 농사철을 앞둔 정초엔 야간 외출이 금기였습니다.

오늘 ‘오리지너’는 새해 밤을 장악했던 야광귀의 의미를 묻는 것처럼, 조금은 낯선 이야기들로 설날을 조명해 보려 합니다.

◇새해의 시작은 온통 ‘금기’였다

설이 언제부터 명절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우리 설날 관련 최초 기록은 7세기 중국 역사서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흔히 음력이라 부르는 태음태양력의 첫 날이 한 해 농사 준비의 시작점을 의미하는 걸 볼 때 농업혁명이 진행되고 역법이 도입된 후부터 설이 명절이 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역법에 따라 해마다 반복되는 풍습을 세시풍속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농경의례였습니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때 확립된 한국 세시풍속은 음력 1월인 정월에 몰려 있습니다. 대부분 ‘해서는 안될 일’을 말하는 것이 눈에 띕니다. 이를테면 전라도 지역에서는 정월에 홍역 같은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죽더라도 시신을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지신이 놀라 동티가 나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또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창호지 등 문틀에 종이를 바르면 복이나 재물이 들어오지 않아 엄동설한에도 구멍이 뚫린 채 놔둬야 한다고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설날을 시작으로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동안의 정초 십이지일(十二支日)은 농경사회에서 공포와 경계의 대상이 무엇인지, 공동체의 성격이 어떤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십이지신

새해 처음으로 맞는 쥐날인 ‘상자일’에는 옷을 지어 입으면 쥐가 쏜다고 해서 아낙네들이 길쌈이나 바느질을 꺼렸습니다. 첫 소날인 ‘상축일’에는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좋은 여물을 많이 줘야 합니다. 첫 뱀날인 ‘상사일’은 불길한 날로 인식돼 장을 담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지는 금기는 여성들에 대한 행동 규제였습니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여성들이 집밖으로 나가는 것은 매우 불경한 일로 인식됐죠. ‘서로 왕래를 삼가며 특히 여자는 외출을 삼간다(첫 호랑이날)’, ‘남자가 먼저 일어나서 대문을 열어야 한다(첫 토끼날)’ 등의 금기가 그것입니다. 양반가의 여인들은 남의 집에 인사를 갈 수 없어 몸종을 대신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배를 보낼 때 여자아이들을 먼저 보내면 그 집에서 키우는 닭이 성하지 않는다’, ‘농사가 망한다’ 식의 억측에 기인해 대보름이 지나고 2월이 오도록 여성들의 바깥 출입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다수였습니다.

반면 남성은 ‘상가에 다녀오거나 개고기를 먹은 남자는 부정이 들어 남의 집에 출입하지 못하게 한다’와 같이 구체적인 행위에 한정해 금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한국세시풍속사전은 정월에 행해지는 수많은 금기가 한 해의 시작을 순조롭게 하는 데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농한기를 보내는 동안 가족과 사회의 불길하고 위험한 일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죠.

그러나 과거 어떤 문헌에도 전염병으로 인명이 상하는 지경에 시신 매장조차 거부하며 걱정하는 정초의 불길함이 무엇인지, 여성이 먼저 세배한 집의 닭이 정말 병들거나 죽었는지에 대한 근거는 없습니다. 흉작에 따른 굶주림과 역병으로 인한 환란은 언제나 공포였습니다. 농경사회를 늘 지배하던 그 공포의 규명은 야광귀만큼이나 아득했던 나머지, 근거도 불확실한 온갖 금기를 만들어 피해보려 했던 것이겠죠.

석전을 진행중인 과거 서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영국의 한 판화작가가제작한 작품.

◇전쟁 같은 ‘마을 놀이’

설날 차례와 세배라는 가족의례로 시작됐던 과거 새해 풍속은 정월대보름이 가까울수록 공동체 의식의 성격이 강한 놀이로 변환됩니다. 섣달 그믐부터 시작하는 연날리기와 윷놀이 같은 소규모 놀이가 대보름의 줄다리기,달집 태우기 같은 마을 단위 규모로 확대됩니다. 가족과 집단의 안녕을 기원하며 새 봄을 준비하는 따뜻한 모습이 그려지실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이도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싸움이 한창 심해지면 고함소리가 땅을 흔들 정도가 되며 머리를 싸매고 서로 공격하는데 이마가 터지고 팔이 부러져 피를 보고도 그치지 않는다. 그러다가 죽거나 상처가 나도 후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명을 보상하는 법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돌이 무서워 피하고, 관에서 특별히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지만 고질적인 악습이 되어 고쳐지지 않는다.”

조선후기 ‘동국세시기’에 적힌 석전(石戰), 즉 돌팔매질 놀이에 관한 기록입니다. 한양의 남대문과 서대문 등지의 주민들이 떼를 지어 편을 가른 다음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돌을 던졌던 석전을 묘사한 것으로, 상대를 몰아내는 마을에는 그 해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명종실록에는 1555년 5월 왜구가 침략해오자 김해의 석전꾼 100명을 뽑아 보내 방어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2011년 2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천에서 열린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한 해 소원을 빌고 있다. 홍인기기자

‘횃불싸움’도 있습니다. 해충을 없애 풍년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논두렁을 태우는 쥐불놀이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쥐불이 크게 일수록 풍년이 오며 곡식에 해를 입히는 쥐를 몰아 낸다고 믿었던 탓에 마을마다 불길을 키우다 맞닥뜨릴 때, 놀이는 싸움이 됐습니다.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청년들의 횃불싸움은 휘두르는 홰에 맞아 화상을 입는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했습니다. 주먹질과 발길질도 함께 오갔던 횃불싸움이 석전으로 번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민속학자들에 따르면 대보름을 전후해 진행됐던 집단적 놀이, 대동놀이는 마을의 일체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인간의 근력이 영농의 기본이었던 시절, 모내기를 비롯한 집단 노동이 불가피했던 환경에서 공동체 놀이가 마을 주민 단합에 적잖은 힘이 됐기 때문입니다. 석전이나 횃불놀이 같은 격렬한 ‘놀이’에서는 자신들의 경작지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간의 강한 배타적 성격도 엿보입니다.

나아가 새해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각종 금기는 농한기 동안 벌어지는 온갖 놀이가 농사라는 지상의 목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기능을 동시에 담당했던 것이기도 하죠.

하지만 국가와 사회의 근간이 언제까지나 과거의 농경 문화에 머무를 수는 없었습니다.

◇‘금기의 명절’ 설날을 금한다

미신에 가까웠던 금기에 지배당하고 경작지를 중심으로 주거가 묶여 있는 사람들. 농경사회 문화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는 정월 풍속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습니다. 대대로 행위에서 행위로 이어진 전통의 음력 설날을 고수하려는 사람들과, 생산 시스템의 변혁을 바라며 위정자들이 안착시키려 했던 양력 설날의 100년 넘는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1895년 “역법을 개정하여 태양력을 사용하고, (조선) 개국 504년 11월 17일을 개국 505년 1월 1일로 삼으라”는 고종 황제의 조칙이 처음이었죠.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을 시작해야 할 시기, 우리가 남기고 바꿔야 할 풍습은 무엇인지를 모색할 첫 기회였지만 무산됩니다. 뜻하지 않게 음력 설 문화는 외세와 권력자들의 부당한 간섭에 대응하는 민족 저항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되죠.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선은 일제 식민지 때문이었습니다. “총독부는 (양력과 음력 설을 두 번 쇠는) 이중과세를 피하려 (중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실행시키기로 되었다. 첫째 음력 정월 초하루에는 각 가정의 다례를 고려해 조선인 관서에는 조퇴를 묵인해 주고 학교 아동생도들에게 아침 상학(수업)을 늦게 시작하고 오후에는 폐과하는 예가 있었으나 금년은 이것을 절대로 폐지, 금지할 것. 둘째 음력 정월 초하루에는 각 지방에 따라 적당한 부역과 청결 등을 일반에 실행시켜…” (1938년 1월 29일자 동아일보)

‘내선일체’를 주장했던 일제의 시각에서 우리의 음력설은 구정으로, 그들이 말하는 신정보다 낙후된 전근대적 전통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몸에 밴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일제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음력 설만 되면 상점은 2~3일씩 문을 닫았고 관공서 직원들도 출근을 하지 않자 떡방앗간 조업까지 강제로 금지시켰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광복 후에도 설날에 대한 ‘천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3ㆍ1절, 제헌절, 광복절, 심지어 크리스마스도 법령상 공휴일로 지정하지만 음력 설은 제외합니다. 반면 양력 설은 1월 1일부터 3일간 연휴가 됐습니다. 6ㆍ25 전쟁 당시 국내에 머물렀던 한 미국인 인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음력 설을 지적하며 ‘민족의 수치’라고 표현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합니다.

1954년 당시 국무총리실이 총무처에 음력 설날을 강력하게 단속할 것을 지시하는 문서. 음력 설날을 폐습적인 이중과세로 규정하고 시간소비와 물자낭비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박정희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승만 정부 때도 있었던 음력 설 임시열차 증편 운행을 중지해 도시 노동자들의 귀성이 더 어려워지기도 했고 ‘구정프로’ 등 음력 설을 강조하는 극장 홍보물 제작도 금지됐습니다. 음력 설을 지내는 흐름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전두환 신군부는 ‘민속의 날’이라는 궁여지책으로 하루짜리 공휴일을 지정합니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을 거친 89년, 음력 설은 105년 만에 공식적인 명절의 지위를 되찾게 됩니다. 앞서 1988년 국민 84%가 음력 설을, 11%가 양력 설을 지낸다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는 한 세기가 넘게 이어진 ‘설날 분쟁’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확연히 보여줍니다.

◇2019년, 서른살 설날

1989년 이후의 설날 풍경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기차표를 끊으려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속도로 귀성길 정체, 세뱃돈으로 줄 신권 마련을 위해 은행을 찾는 사람들, 차례상 위의 떡국, 조상들의 묘지 위를 촬영하는 방송국 헬기의 카메라를 보고 손 흔드는 성묘객, 설빔을 차려 입고 고궁을 찾아 윷놀이를 하는 가족.

1987년 음력 설을 맞아 서울역 광장에 구름떼 같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고향으로 출발하기 위한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가득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사람들이 양력보다 음력 설을 선호했던 것과는 별개로 전통의 설 문화에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설 문화의 본질이 농경사회의 풍습이었던 걸 떠올린다면, 너무 오랜 동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던 셈이죠.

“건축설계사무소에 다니는 회사원 이모씨는 설날 연휴를 맞아 지난 4일 오후 친구 3명과 함께 용평리조트에 갔다가 두 번 놀랐다. 우선 생각 밖의 엄청난 인파 때문이다. 다음은 인파 대부분이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인 점이었다. (중략) 이제 설날도 고향을 찾는 명절이기보다는 놀고 즐기는 황금연휴가 되고 있음을 절감했다.” (1989년 2월 11일자 동아일보)

5일간의 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인 2월 1일 인천국제공항에 출국 인파가 몰리고 있다. 이한호 기자

전근대사회의 ‘을’이었던 여성의 목소리도 누르기만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추석을 이틀 앞두고 김영주씨는 며느리 사표를 썼다. ‘뺨 맞고 욕먹을 각오로 했어요. 아버님 어머님이 네가 한 게 뭐가 있냐고 노발대발 하시면 저는 이혼할 각오였으니까요.’”(2018년 2월 26일자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잔소리도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수백년간 가장 완벽하게 계승되고 있는 ‘올해는 아들을 낳게’, ‘과거에 급제하게’, ‘시집을 가게’ 같은 덕담이 그 표적입니다.

“설 당일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충신동의 한 주택. 20, 30대 젊은이 8명이 저녁을 먹기 위해 다섯평 남짓한 작은 방으로 모여 들었다. (중략) 요즘 유행하는 소셜다이닝(socialdining)이다. (모임을 주최한) 김씨는 ‘명절만 되면 사촌, 지인과 비교하는 말에, 결혼은 언제 하느냐 등 쏟아지는 걱정에 신물이 난 또래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2016년 2월 11일자 한국일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말하는 과거 세시풍속의 의의는 ‘생기를 북돋우고, 활력을 주는 생활의 마디’입니다. 축제 같은 풍속들은 지난 한 해 고된 노동으로 쌓인 긴장을 풀고 여유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생존에 필요한 지식이 채 정렬되지 않아 경험 많은 연장자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시대, 근육의 양을 미덕 삼아 남성 농부가 우위를 점하던 시대, 닥쳐올 재난을 극복하기보다 금기로 구속하고 귀신을 두려워해야 했던, 그런 시대들에 적합한 산물이었겠죠.

어쩌면 세상의 축이 농경에서 산업으로 바뀌는 동안, 민족과 국민의 정서적 구심점이 절실했던 순간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마땅히 했어야 할 설 명절에 관한 질문들을 미뤘는지도 모릅니다. ‘설날 아침 차례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생활의 마디가 되고 있는지, 세배 후 모여 앉은 가족의 면면은 각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는지, 내가 먹은 떡국은 몰아주기 노동의 결과물은 아닌지.’

되찾은 설날이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2019년 2월 5일에는, 이런 질문의 답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이상 ‘오리지너’였습니다.

조원일 기자 ㆍ김창선 PD ㆍ자료조사 박서영 ㆍ이현경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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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 성폭행 무죄' 안희정 2심서 징역 3년6개월..법정구속(속보)

입력 2019.02.01. 15:49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 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2.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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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먹고 힘내요. 문 대통령 취약계층에 직접 도시락 배달.김상선 입력 2019.02.01. 14:41 수정 2019.02.01. 14:47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도시락을 들고 서울 관악구 소재의 한 취약계층 가정으로 가고 있다. [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설 명절을 닷새 앞둔 1일 오전 서울지역 취약계층 가정에 도시락을 직접 배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관악구 '행복도시락 사회적협동조합' 관악센터에서 최영남 나눔공동체 대표 등 관계자들과 함께 도시락 포장을 직접 포장한 다음 가가호호를 돌며 도시락을 전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소재의 한 취약계층 가정을 방문해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도시락에는 밥과 반찬 그리고 과일을 넣었고 황금색의 청와대를 상징하는 무궁화와 봉황이 새겨진 휘장 스티커를 붙였다. 특히 도시락에 들어간 '매콤 닭강정'은 청와대 조리장이 직접 만들어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밥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누구나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나누는 일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밥을 나누는 일은 마음과 희망을 나누는 입니다. 여러분의 희망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여러분이 나누는 밥을 먹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정성을 다한 도시락입니다. 마음까지 든든해지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보다 소중하고 귀합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설날 보내길 기원합니다" 는 문구의 글도 함께 넣었다. 김상선 기자
문 대통령이 1일 오전 도시락을 들고 서울 관악구 소재의 한 취약계층 가정으로 가고 있다. [사진 청와대]

도시락에는 청와대 조리장이 만든 '매콤 닭강정' 도 넣었다. [사진 청와대 ]
도시락에는 문 대통령이 쓴 편지도 넣었다. [사진 청와대]
청와대 조리장이 지난 31일 밤 청와대 경내 조리실에서 설 명절 맞이 행복도시락에 들어갈 ‘매콤 닭강정’을 만들고 있다. [사진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관악구 행복도시락 사회적협동조합 관악센터에서 최영남 나눔공동체 대표와 함께 도시락 포장을 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설 명절을 맞아 행복도시락 사회적협동조합 관악센터 ‘나눔공동체’와 함께 취약계층 청소년 가정에 도시락을 배달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관악구 행복도시락 사회적협동조합 관악센터에서 최영남 나눔공동체 대표와 함께 도시락 포장을 하고 있다.[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관악구 행복도시락 사회적협동조합 관악센터에서 최영남 나눔공동체 대표와 함께 도시락 포장을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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