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넘은 법관 겁박.. '김경수 법정구속' 판사 신변보호 조치김예지 기자 입력 2019.03.04. 03:00 수정 2019.03.04. 11:08

               
사법불신 커져 판사들 보호요청 급증
동아일보 DB
김경수 경남도지사(52·수감 중)를 1심 선고 당시 법정 구속한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47·사법연수원 25기)가 법원으로부터 신변보호 조치를 받았던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올해 법관에 대한 신변보호가 실시된 처음이자 유일한 사례다.

성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근무 당시인 올 1월 30일 ‘댓글 여론조작’ 공모 혐의로 김 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원 측은 1심 선고 직후 성 부장판사의 출퇴근길에 법원 방호원을 동행시켜 신변보호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사가 법정 구속된 후 성 부장판사 앞으로 서울중앙지법에 조화(弔花)가 배달되는 등 판사 개인에 대한 위협이 이어졌다. 김 지사가 소속된 더불어민주당은 성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수감 중) 재직 중 대법원장 비서실 소속 판사로 근무한 이력을 언급하며 ‘사법농단 적폐세력의 조직적 반격’이라고 비판했다. 성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 탄핵까지 거론하는 등 당 차원의 재판 불복 운동이 거셌다.

앞서 선고 당시 법정은 재판부를 비난하는 김 지사 지지자들의 고성으로 가득 찼고, 법원 방호원은 방청객이 법대 쪽으로 오지 못하게 제지했다. 공소 유지를 담당했던 허익범 특별검사팀 소속 관계자들도 당시 지지자들을 피해 법관 이동 통로를 이용해야 했다.

대법원은 2007년 1월 이른바 ‘석궁 테러 사건’ 이후 법관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법질서 문란 행위를 막기 위해 2008년 1월 ‘법관 신변보호 관련 내규’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내규에 따르면 각급 법원의 신변보호 총괄책임자와 신변보호협의회는 직권 또는 판사의 요청으로 법관 신변보호 조치를 취한다.

각급 법원은 신변보호가 급박한지 등을 따져 단계별로 △개인 경호 △가족 및 자택 경호 △경찰관 파견 요청을 결정한다. 성 부장판사 소속이었던 서울중앙지법은 경찰 측에 인력 파견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성 부장판사가 신변보호를 법원 측에 직접 했는지, 서울중앙지법이 직권으로 신변보호 조치를 했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 부장판사는 인사발령으로 지난달 25일부터 서울동부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법관 신변보호는 단 1건도 없었고, 2017년에는 1명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5건으로 늘어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67·수감 중)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장이었던 김세윤 수원지법 부장판사(52·25기)와 배석판사 2명 등은 지난해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김 부장판사는 당시 “재판에 불만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의 돌발 행동으로부터 신변보호가 필요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정치적인 사건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찾아온 피고인이 “A 판사를 만나면 칼로 찌르겠다”는 말을 하자 A 판사는 법원 측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피고인이 판사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해 법원이 신변보호를 결정한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내규가 생긴 지 10년이 넘었지만 법관이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면서 “최근 신변보호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법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법원은 법관들에 대한 신변보호를 강화하되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예지 yeji@donga.com·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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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죽이지 않았다" 19년의 절규 그날의 진실은

최종필 입력 2019.03.04. 08:01

                          
      
오는 6일 재심 첫 재판 앞둔 친부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

[서울신문]

2000년 3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재심을 청구해 2015년 11월 조사를 마친 뒤 광주지법 해남지원 구치감으로 돌아가는 무기수 김신혜씨. 대한변호사협회는 그해 2월 사건발생 직후 재판 기록과 증거 등을 바탕으로 한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를 공개했다. 서울신문 DB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무기수 김신혜(42·여)씨에 대한 재심 첫 재판이 오는 6일 오후 4시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호 법정에서 비공개로 진행된다. 대법원은 재심을 지난해 9월 확정했다. 수사 과정에서 몇 가지 위법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장기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확정은 처음이다. 재판부의 정당한 판결이었는지, 억울한 옥살이인지 친아버지 살해범으로 복역해 온 김씨에 대해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당초 지난해 10월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김씨 측의 관할법원 이송 신청 등으로 연기됐다. 김씨는 현재 전남 장흥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2000년 용의자로 수사를 받을 때부터 줄곧 자신은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교도소 수감 후 지금까지 모든 노역을 거부하고 있다. 노역을 하면 죄를 인정하는 셈이어서 무죄라는 것을 끝까지 밝히기 위해서다. 다시 법정에서 가려질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건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월 7일 오전 5시 50분쯤 전남 완도군 정도리 외딴 버스정류장 앞 눈발이 내리는 도로에서 김재운(당시 53·완도읍 항동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더구나 3급 지체장애인이라 다리를 심하게 절 정도로 혼자 움직이기 어려운데도 자신의 집과 7㎞ 떨어진 지점이라 일부에선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사고 현장에는 부서진 승용차 라이트 조각이 흩어져 있었고 시신이 도로 위에서 발견돼 처음엔 뺑소니 교통사고로 여겨졌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치고는 외상의 흔적이나 출혈이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시신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303%와 함께 수면유도제 성분인 독실아민이 13.02㎍/ml 검출됐다. 경찰은 누군가 수면유도제와 술을 이용해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틀 뒤인 3월 9일 오전 12시 10분쯤 용의자로 당시 23세였던 큰딸 김신혜를 전격 체포했다.

경찰은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를 성추행이라고 봤다. 사건이 발생하기 2개월 전인 2000년 1월 김신혜의 이복 여동생이 아버지 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들은 김신혜가 자신도 중학생 시절 아버지에게서 성추행을 당한 것을 떠올리고 범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사망 보험금도 큰 이유였다. 김신혜가 아버지 명의로 8개의 상해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신혜는 아버지 보험금을 노리고 이날 새벽 1시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수면유도제 30알이 든 술을 ‘간에 좋은 약’이라며 마시게 한 후 함께 드라이브를 했다. 운전 중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버스 정류장 앞 도로에 숨진 아버지를 내려놓은 뒤 교통사고처럼 꾸며 현장을 떠났다. 김신혜 고모부가 경찰에 진술했던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는 김신혜의 자백을 들었다”고 밝힌 내용도 주요 증거로 삼았다.

김신혜가 오래전부터 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보험금을 얻을 목적으로 저지른 존속 살인으로 결론을 내렸다. 2001년 대법원은 아버지를 살해한 후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1심과 2심 선고 형량인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친부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는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아버지가 성추행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경찰 조사 당시 김신혜는 친척 어른인 고모부가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해야 정상참작으로 풀려날 수 있다고 강요를 받았다고 했다. 연극 생활을 하면서 서울에 살던 김신혜는 사건 발생 전날인 3월 6일 오후 6시쯤 렌터카를 타고 고향 완도로 내려갔다. 잠시 머물던 남동생(당시 19세)을 데리고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금세 용의자로 지목돼 폭행, 폭언 등 자백을 강요하는 강압수사를 받았고, 고모부에게 살인을 자백한 적도 없다고 했다. 3월 8일 밤 11시 20분쯤 고모부가 자신을 불러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은데 네가 자백하지 않으면 남동생이 감옥 간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허위로 자백했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보험도 3개는 이미 해지된 상태였다. 범행 도구인 수면유도제와 양주 등의 물증도 일절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수면제를 갈 때 사용했다고 진술한 행주와 밥그릇에서도 수면제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김신혜에 따르면 경찰이 종이 한 장을 내놓더니 자신의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억지로 잡아 지장을 찍고, 서명을 하라고 닦달할 때도 머리와 뺨 등을 때렸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직접 탄원서를 받으며 구명운동을 했던 김신혜 할아버지 김정길(당시 86)씨는 사건 이후 친척들 도움을 멀리한 채 손수 시장을 봐 음식을 차려 먹으며 ‘억울해서 어떻게 눈을 감냐’ 며 통곡을 하다 2017년 가을 결국 눈을 감았다.

마을 사람들은 김신혜를 예쁘고 아주 착한 아이로 기억했다. 어렸을 때 부모가 선술집을 했는데 손님이 많았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가 의처증이 있으면서 폭력을 행사하곤 해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다. 아버지는 다시 결혼해 1남 1녀를 낳았다. 김신혜는 동생들 공부를 시키고 정성스럽게 챙기는 등 가장 노릇을 다했다고 얘기한다.

최병정(70·완도읍 정도리) 전 이장은 “숨진 김씨와는 중학교 동창으로 아이들을 잘 안다”고 되뇌었다. 이어 “예쁘기도 하지만 아주 상냥하던 신혜가 범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재판을 다시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잘됐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 이규병(70)씨는 “마을에선 이구동성으로 공부도 잘하는 순하기만 한 아이로 안다”고 설명했다. 또 “신혜가 배우 황신혜처럼 예뻐 연예계 활동도 많이 했는데 이복동생 둘을 모두 살뜰히 챙긴 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울던 김신혜를 떠올렸다. “사람이라면 통하는 게 있잖아요. 진짜인가 가짜인가. 거짓말로 나를 속이고 가짜로 우는가. 그런데 날 삼촌이라고 부르며 진심으로 하소연한 게 딱 직감이 오더라. 그럴 애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지.”

김신혜는 재심 결정 이후 변호인을 바꿨다. 원래 참여했던 박준영 변호사 등 기존 변호인을 모두 해임했다. 지난 1월 새로 선임된 대한변호사협회 김학자(52) 인권이사는 “석방 상태에서 재심을 받을 수 있도록 법원에 형집행정지를 신청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달 초 불구속 재판을 권고 사항으로 내렸다. 적절한 방어권를 위해서라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새 재판부에 기대한다”며 입을 앙다물었다.

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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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북미, 열매 맺을 가능성 커져..北 담대한 도전 필요"

입력 2019.03.02. 08:44

               
"'키맨'은 김정은..핵 리스트 제출한다고 발가벗는 것 아니다"
'알릴레오'서 2차 북미정상회담 평가..문대통령 중재역 강조
이종석 "韓, 북미 접점 찾도록 애써야", 김종대 "파혼 아닌 결혼 날짜 미룬 것"
김종대 의원-이종석 전 장관, '유시민의 알릴레오' 출연' [노무현재단 유튜브 캡쳐]

(서울=연합뉴스) 차지연 기자 =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핵 담판은 결렬됐지만 앞으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평가했다.

유 이사장은 2일 0시 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유시민의 알릴레오' 9화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이번 회담 결과와 관련해 의견을 나눴다.

유 이사장은 이 전 장관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미래에 더 큰 합의를 만들 자양분을 만든 결렬"이라고 하자,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은 더 커진 것"이라고 공감했다.

유 이사장과 이 전 장관은 ▲ 북미가 회담 결렬 이후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 점 ▲ 과거보다 실무협상이 진화한 점 ▲ 북미 정상이 자주 만나 불신을 넘을 계기를 마련한 점 등을 이런 평가의 이유로 꼽았다.

유 이사장은 "여전히 열쇠를 쥐고 있는 '키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며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70년간 있었겠지만, 김 위원장이 떨치고 나왔으면 한다. 담대한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미사일) 리스트를 다 제출한다고 해서 발가벗는 것이 아니고 무기를 다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는 게 제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북한이 혼자 힘으로 미국을 상대하지 못하니 국제여론과 우호적 주변국을 믿고 손잡고 가보자'고 하며 북한이 조금씩 내줘서 거래하는 시도보다 대담하게 다 던져버리는 식의 선택을 하도록 중재하면 (어떨까 한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과 김 의원 역시 앞으로 북미 간 합의 가능성에 무게를 실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결혼식에 비유하면 파혼은 아니다. 혼수품 등 조건을 따지다가 맞지 않아 결혼식 날짜를 다시 잡아보기로 한 거지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인 건 계속 확인되는 것"이라고 비유했고, 이 전 장관도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공식적 언술 차원에서는 맞는 얘기"라고 맞장구쳤다.

김 의원은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은 준비됐다고 본다.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라며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민생분야 제재 완화를 교환할 수 있는지 등 등가 교환 가격을 쳐주는 논리다. 지금은 부르는 가격이 안 맞아서 깨진 것으로, 가격이 맞아떨어지기만 하면 가속화 여지는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이 상당한 정도로 미국과 재협상을 위한 전략적 판단이 끝났다면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할 수도 있고, 고민되는 것이 많다면 '원포인트'로 특정 주제를 갖고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답방은 다음에 할 수도 있다"며 "북미가 접점을 다시 찾게 하는 데 우리가 한두 달은 애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편, 유 이사장은 "하노이 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가 나오고 나서 전 세계에서 제일 좋아한 사람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 아니었나. 그 각료들도 희색만면해 잘됐다고 한다"며 "3·1절에 그 장면을 보니 화가 나더라"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 북한 인민 중 이 회담 결렬을 기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베 총리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그런 분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아프다"며 "아무리 민족주의가 문명의 대세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 일을 기뻐하는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는 "30대 초중반의 젊은 권력자인 김 위원장이 가난한 상황에 있는 나라를 이끌고, 집권한 지도 오래되지 않은 조건에서 미국과 한국의 국내정치, 여론지형을 다 감안해야 하니 참 힘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charg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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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일부 제재 해제 원했다"..이용호, 트럼프 회견 심야 반격

정용수 입력 2019.03.01. 06:39 수정 2019.03.01. 08:40

               

 

 

이용호 북 외무상 회담 결렬 12시간만에 심야 긴급 회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기자회견 조목조목 반박
향후 회담 위한 포석? 회담 재개 제스처?
북한의 반격이 시작됐다. 2차 북ㆍ미 정상회담 수행원으로 베트남 하노이를 찾은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1일 오전 12시 30분쯤 호텔 로비에 등장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통역을 대동하고서다. 그는 로비에 마련된 책상 앞에 앉아 양복 상의 왼쪽 속주머니에서 A4용지를 꺼내 적혀 있는 내용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현지에서 정상회담을 취재중이던 서방 언론을 향한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영어 통역을 포함해 7분 동안 진행한 회견에서 그는 “2차 북ㆍ미 회담과 관련한 우리(북한)의 입장을 말하겠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우리는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라고도 했다. 이날 회견은 회담 결렬 이후 12시간만에 진행됐는데, 충분한 검토 끝에 밝히는 공식입장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반박하는 내용에 집중했다. 북한이 제안한 비핵화와 제재 해제의 요구 범위, 핵과 장거리 로켓 실험을 영구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서면 확약 등이다. 그는 회견에서 “신뢰조성과 단계적 원칙에 따라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다”며 북한이 정상회담에서 제안한 영변의 비핵화 대상과 사찰 방법, 미국에 요구한 상응조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북한의 핵개발 심장으로 꼽히는 영변 지역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 물질 생산 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미국이 북한의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에 대한 대북제재를 풀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는 부분도 담았다. 이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라며 “구체적으로는 유엔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 지장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 하라는 것이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북한이 영변의 핵시설에 국한해 비핵화를 할 용의가 있으니 완전한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목이자 반박인 셈이다. 이날 회견이 ‘심야의 반격’으로 불리는 이유다.

북한이 각종 회담을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먹히지 않거나 열세에 놓일 경우 번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표명한 적은 있지만 자신들과 상대의 제안 내용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건 이례적이다. 그런만큼 이날 회견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사실로 굳어지는 걸 막기 위한 차단막 차원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상반된 설명중 어느쪽의 주장인지는 사실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전현준 한반도 평화포럼 부이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이 각종 언론에 소개되면서 그의 설명이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라며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오해를 막고, 자신들의 정당성과 억울함을 알리는 게 향후 회담 지형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 외무상은 “비핵화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안보담보”라며 “하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기한 것”이라고 했다. 어떤 식으로든 비핵화를 추진해 신뢰를 쌓기 위한 ‘통큰 결단’이었지만 미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여기에 북한에서 신(神) 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김 위원장이 ‘등판’한 회담이 깨지자 파탄의 원인을 미국에 두려는 일종의 공세적 장치일 수도 있다. 북한에선 최고지도자는 오류가 없다는 ‘무오류성’을 주민들에게 학습하고 있다. 그래서 김 위원장과 관련된 홍보는 여러차례 시험을 거쳐 성공한 것에 집중하는게 관례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김 위원장의 평양 출발때부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과없이 빈손으로 귀국할 경우 김 위원장의 위상에 흠집이 생길 우려에 대한 안전장치가 필요했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회담을 이어가자는 독촉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고존엄의 흠집’에도 불구하고 회담 결렬 선언이나 미국에 대한 날선 비난 대신 ‘사실은 이러이러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현 상황에서 더이상 어떻게 하겠냐’는 식의 주장이라는 점에서다. 이 외무상이나 최 부상이 “우리의 방안에는 결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회담 중단 선언 대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미국측에 차려 지겠는지(확보할 수 있을지) 여기 대해선 장담 힘들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 않겠다”는 단정형 표현이 아니라 ‘우리는 할 생각이 있으니 너희가 택일을 하라’는 독촉이자 압박이라는 것이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은 “북한은 더이상 대화가 필요없다고 판단할 경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며 “즉각 대응에 나선 건 뭔가 만들어 보려는 의지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노이=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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