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사 나선 윤석열 장모 '수천억 납골당 편취' 의혹 뭐길래

이준희 입력 2021. 02. 24. 05:06 수정 2021. 02. 24. 07:36

 

사업가에게 명의신탁받은 주식 10%

장모 최씨가 불법 양도했다는 의혹

고발인 "지분 넘겨받은 최씨 측근이

서류조작 등으로 1890억 사업 편취"

앞서 불기소 의견 사건 송치한 경찰

검찰 보완수사 요청에 재수사 나서

최씨, 잔고증명서 위조 등 재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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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봉씨가 지난해 3월 경기 의정부지검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노씨는 검찰에 윤석열 검찰총장 장모의 잔고증명서 위조 의혹을 수사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최근 경찰이 재수사에 나선 윤 총장 장모 최아무개씨의 납골당 사업권 편취 의혹은, 사업가 노덕봉씨로부터 명의신탁 받은 주식 10%를 최씨가 불법 양도해 사업권을 빼앗았다는 고발과 관련된 사건이다. 노씨는 최씨가 ‘법조 브로커’ 김씨와 짜고 자신을 속인 뒤 납골당 사업권을 빼앗아갔다고 주장한다. 앞서 경찰은 해당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청해 경찰이 재수사에 나서게 됐다.

윤 총장 장모 최씨의 납골당 사업 편취 의혹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겨레> 취재와 고소·고발장 내용을 종합하면, 사업가 노덕봉씨는 2005년 납골당 사업을 위해 경기도 양주에 2만2000평대 토지와 사업권을 매입했다. 노씨는 2006년 2월 시공사와 공사도급계약을 맺고 2006년 6월 신한은행에서 45억원을 대출 받았다. 2008년에는 납골당 시행사 주식회사 엔파크를 차린 뒤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자금이 필요했던 노씨는 2009년 신안저축은행(현 바로저축은행)으로부터 120억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2011년에는 납골당 사업권 명의를 재단법인 ㅈ공원에 맡기고 채무 변제 완료 뒤 사업권을 돌려받는다는 약정을 시공사·신안저축은행 등과 체결했다. 상법상 납골당 사업은 재단법인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출을 위한 담보로 재단법인에 명의를 맡긴 것이다.

이후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2013년에는 양주시청에서 납골당 분양 승인도 받았다. 당시 납골당 사업의 평가액은 최대 1890억원에 달했다. 분양만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그간의 대출을 모두 상환하고 사업권을 되찾아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 시공사와 신안저축은행 쪽이 ‘시행사는 권한을 모두 상실했으니 물러나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시행사 사무실은 용역 인력들이 점거했고, 분양에 차질이 생겼다. 갈등은 2015년 6월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고, 노씨는 사실상 사업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이때 자신을 찾아온 것이 ‘법조 브로커’ 김씨라고 노씨는 주장한다. 김씨는 2015년 12월 노씨를 찾아와 ‘최 회장과 윤석열 검사에게 말해 사업을 되찾아줄테니, 나를 공동대표로 올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노씨는 2016년 1월 김씨를 공동대표로 임명했다.

노씨는 “사업을 되찾아준다던 김씨의 태도가 공동대표에 오르자 돌변했다”고 했다. 김씨는 윤 총장 장모인 최씨로부터 양도 받은 시행사 주식 10%와 대표이사직을 활용해 2016년 10월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노씨를 대표이사 및 이사직에서 해임했다. 노씨는 “김씨가 이 과정에서 주주명부를 조작해 내가 회장으로 있던 ㅎ추모공원 소유 시행사 주식 30.4%를 자기 측근 소유로 조작했다”며 “이를 위해 당시 캄보디아에 있던 이아무개 이사가 국내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한 것처럼 위조하는 등 의사록을 조작했다”고 했다. 노씨가 관련 자료들을 경찰에 제출한만큼,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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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10일 열린 엔파크 이사회 의사록. 이아무개 이사는 이날 회의에 참석해 날인까지 한 것으로 돼있지만, 출입국기록 조회 결과 2016년 9월22일부터 2017년 1월22일까지 캄보디아에 체류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덕봉 제공

노씨는 이 과정에서 윤 총장 장모 최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양도한 시행사 주식 10%를 바탕으로 김씨가 시행사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주식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노씨가 2009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최씨에게 명의신탁한 것으로, 노씨는 “최씨가 내 의사와 관계없이 주식을 양도했다”고 주장했다.

윤 총장 장모 최씨가 처음부터 납골당 사업을 노렸다는 증언도 나온다. 최씨의 최측근이자 납골당 사업 투자 피해자이기도 한 ㄱ씨는 <한겨레>와 만나 “최씨가 2008년부터 납골당 사업을 탐냈다. 시공사 대표와 사업을 경매로 나눠먹자며 30억원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대출 받는 것을 방해해 사업이 중단되면, 이를 헐값에 먹으려는 계획이었다”고 했다. 당시 납골당 사업은 공사를 계속하기 위해 추가 대출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투자 피해자들은 신안저축은행의 등장도 최씨의 계획이라고 보고 있다. 신안저축은행은 최씨와 특수 관계 의혹을 받는 곳으로, 2013년부터 3년 동안 최씨에게 126억원을 대출해줬다. 또 최씨가 신안저축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어떤 법적 책임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에도 윤 총장 부인 회사 코바나컨텐츠의 전시를 수차례 후원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기업들의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을 수사 중이다.

법조 브로커 김씨의 등장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일명 ‘송파 검찰총장’으로 불리며 고위 검사들에게 도자기를 선물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맥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씨와는 내밀한 관계로, 두 사람이 일종의 경제적 공동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 최씨와 김씨가 함께 이사로 참여한 법인이 확인된 것만 5곳으로 이중 하나는 두 사람의 이름을 한글자씩 따 법인 이름을 짓기도 했다.

<한겨레>는 해당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최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남겼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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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벌고 싶다면 1억부터 저축해야.. 별처럼 많은 주식 기다리면 또 기회

유대근 입력 2021. 02. 24. 05:06

 

[이 사람이 사는 법] 증권사 임원에서 120만 유튜버로 '삼프로TV' 김동환 의장

주식이 트로트와 함께 콘텐츠 시장의 대세가 될 날이 올 줄 누가 진지하게 예측해 봤을까. 하지만 현실이 됐다. TV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주식 방송이 넘쳐난다. 다큐도 되고, 예능도 된다. 상승장에 기대어 우후죽순 쏟아진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떤 콘텐츠는 상승장의 분위기를 일궈 나가는 데 일조했다. 120만 유튜버 ‘김프로’ 김동환(54). 전직 증권사 임원이자 사업가, 방송인이었던 그가 만든 ‘삼프로TV 경제의 신과 함께’는 주식 시장의 오래된 힘의 구도에 균열을 내는 데 역할했다. 유튜브나 책에서 정보를 얻은 스마트 개미들은 더이상 기관과 외국인에게 일방적으로 치이는 존재가 아니라 시장의 한 축이 됐다. 여러 직업에서 성취를 이뤄 온 김동환 이브로드캐스팅 이사회 의장의 삶과 주식관이 궁금했다. 보통 나이가 들면 과거 무용담을 말하며 자존감을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의 꿈을 얘기할 때 도파민(의욕·흥미를 담당하는 호르몬)이 분출되는 듯했다. 마치 소년처럼. 호기심과 적극성은 그를 추동해 온 가장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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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이브로드캐스팅 이사회 의장은 쉰이 넘은 나이지만, 꿈을 얘기할 때 여전히 들뜬다. 그는 2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최고의 비즈니스스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유튜브는 물론 ‘아침마당’(KBS)부터 웹예능인 ‘개미는 오늘도 뚠뚠’(카카오TV)까지 틀면 나옵니다. 방송이 체질인가요.

“사실 어렸을 적 꿈이 방송사 기자였어요. 세상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정치외교학을 학부 전공으로 택한 이유죠. 대학 졸업반 때 대기업에 덜컥 합격했는데, 군 복무를 해야 해 제대 뒤 입사하기로 했습니다. 군에 있을 때 ‘이대로 회사 생활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제대 후 기자 시험을 준비했죠. 그런데 가정 형편이 썩 좋지 않아 연봉 높은 곳도 찾아봤어요. 증권사가 보이더군요. 우연히 입사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기관투자자를 상대하는 부서에서 일했는데 거래 단위가 100억원이어서 깜짝 놀랐죠. 원래 밤에 기자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한 달 만에 접었습니다. 그때 기자를 했다면 일주일에 두어 번 방송에 나가고 있을까요. 지금은 매일 라이브를 하고 있으니 인생유전이죠.”

펀드 매니저로 좋은 성과를 내던 그는 1997년 영국 버밍엄대 경영전문대학원(MBA)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귀국해 증권사에서 일하며 마흔도 안 돼 임원이 됐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지쳐 갔다. 2005년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거기서 작은 사업을 하며 현장 경영을 배웠다.

-미국에서 패션 분야 장사를 꽤 성공적으로 하셨는데요.

“친척의 부탁으로 모자를 팔다가 나중에 운동화 장사를 했어요. 승합차 타고 미국 전역을 돌며 에어조던 시리즈 같은 귀한 신발을 구해 소수의 고객에게 팔았죠. 금융 시장처럼 신발 시장에도 정보 불균형이 있었어요. 제가 장사하는 곳에서는 웃돈 주고 사는 운동화인데 필라델피아 등 백인 동네에 가면 가비지(쓰레기)였어요. 거기서 시장성을 본 거예요. 힙합 가수나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갱 단원도 제 손님이었죠.”

-갱이 고객이라니 무섭지 않았나요.

“미국의 위험한 동네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계산대 아래에 단을 짜 놓고 올라가서 팔죠. 도난 위험도 많고, 총을 소지한 이들도 있으니까. 저는 인수한 가게에서 단을 치워 버렸어요. 고객을 내려다보면서 돈을 준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너 죽는다”, “미쳤냐”고 했죠. 근데 거리낌없이 눈을 맞추고, 하이파이브하고, 포옹하며 인사를 건네니까 무서워 보였던 손님들도 마음을 열더군요. 나중엔 매상 올린 돈을 몸에 지니고 한밤중 캄캄한 길을 지나 주차장으로 가는데 그 친구들이 보호해 주기도 했어요.”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7월 귀국해 다시 증권사에 복귀했다. 2008~2011년 채권 투자로 큰 수익을 올렸다. 계열 투자자문사 대표를 지내며 증권사 사장을 꿈꿨다. 그런데 2012년 가을 회사를 그만뒀다. 요즘 청년들의 로망인 ‘경제적 자유’(근로소득 등에 의존 않고도 살아갈 만큼 부를 일군 것)를 이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년간 한 우물을 팠으면 다른 경험을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후 경제 프로그램 진행 등을 하다가 2018년 1월 신뢰하던 두 후배(이진우 전 이데일리 기자, 정영진 위키프레스 편집장)와 ‘경제의 신과 함께’(삼프로TV의 전신)라는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왜 경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나요.

“방송을 진행해 보니 깊이에 한계를 느꼈어요. 전문가 인터뷰 때 주어진 시간이 10분이니까 그들도 딱 그만큼의 깊이로 준비를 해 와요. 금융권에 숨은 고수들이 많은데, 이들이 가진 정보를 대중과 나누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웠고요. 요즘 음악계 재야의 고수를 발굴하는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였잖아요. 경제 분야에서도 진짜 고수가 등장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보기로 했죠. 내실을 기해 놓으니 주식에 관심이 커진 지난해 이후 구독자가 크게 늘었어요. 지난해 1월 10만명이었는데 1년 만에 110만명이 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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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김동환 의장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라는 책을 냈는데 꾸준히 수익을 내는 투자자의 공통적 자세는 뭔가요.

“절대 성급하지 않습니다. 의사 결정 전에 굉장히 치열히 생각하고, 판단이 서면 과감하고 단호하게 움직이죠. 외부 소음에 흔들리지도 않아요. 반면 투자 성적이 안 좋은 사람들은 부산스럽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본질을 못 봐서죠. 성공한 투자자들은 ‘우리 경제가 망할 것이냐, 흥할 것이냐’, ‘코로나19 탓에 인류가 망할 것이냐, 흥할 것이냐’ 같은 틀 안에서 논쟁하지 않습니다. 핵심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죠. 이들은 ‘인류는 조금씩 진보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그렇다면 이 모멘텀(계기)에 어디에 투자할까’를 고민합니다.”

-포모(FOMO·소외공포)를 호소하며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초보 투자자가 많은데요.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나만 가난해질까봐 걱정하는 것이잖아요. 옛 기억을 떠올려 보면 유동성에 올라탔던 자신의 아버지나 형은 부자가 됐습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가난해졌어요. 다만 찬스를 놓칠까봐 마냥 서두른다면 투자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실 금융 시장은 투자자에게 항상 기회를 줘 왔어요. 세상에 별같이 많은 게 주식이에요. 이번에 놓치면 저 가격에 주식을 못 살 것 같지만 기회는 또 옵니다.”

-책에서 ‘때로는 투자를 멈추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했는데요.

“저는 인생에서 두 차례 투자를 멈춰 봤어요. 1997년 영국으로 유학 갈 때와 2006년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였죠. 유학 갈 때는 ‘과연 내가 주식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 투자를 중단했고, 미국에서 창업한 2006년에는 ‘한국 주식의 시세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했죠. 만약 지금 막 사업을 시작했거나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시장에 관계없이 투자를 멈추거나 최소화하세요. 물론 정신력이 대단해서 병행할 수 있다면 예외겠지만요.”

-청년층 투자자는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규모 있는 ‘시드머니’(투자 종잣돈)를 먼저 만드세요. 10년 동안 벌고 싶은 자산 수준을 정하고 이 규모의 10분의1을 시드머니로 모으는 겁니다. 10년간 10억원을 모으고 싶으면 1억원은 있어야 하는 거죠. 시드머니는 저축으로 모아야 합니다. 안 먹고, 안 입고, 안 마시고 모아야 빨리 모으죠. 누구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근로소득을 아껴 스스로 투자 자금을 모으길 권합니다. 돈을 불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낄 테니까요.”

-요즘 전업 투자자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그런 분들께는 먼저 생각해 보라고 하죠. 정말 투자로 돈 벌 자신이 있는 건지, 아니면 부장의 잔소리 등 환경이 싫어서 그런 건지를요. 저금리일수록 전업 투자는 불리합니다. 예컨대 내 연봉이 5000만원이라면 1%대 예적금으로 이 돈을 벌려면 시드머니가 50억원 필요하고, 10%대 투자 수익률을 거둔다고 해도 5억원이 필요합니다. 투자는 본업과 병행하며 장기간 하는 게 좋아요.”

-유튜브 진행자가 마지막 직업일까요.

“유튜브 운영은 제가 하려는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석박사 학위를 인정받는 정말 좋은 비즈니스스쿨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권에서도 정말 좋은 경영학 스쿨은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상장사 중에는 경영자 프리미엄이 있는 회사가 있어요. 예컨대 차석용 부회장이 이끄는 LG생활건강은 실적이 꾸준히 성장해요. 이런 경영자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죠. 외국에서 좋은 교육 받으면서 수련한 결과라고 봐요. 세계적 석학에게 온라인 강의를 듣고, 오프라인에 모여 뜨거운 토론을 하는 실용적인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아시아에서는 가장 좋은 학교를 개교해 보고 싶습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김동환 의장이 걸어온 길

196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영국 베어링스에셋매니지먼트사를 거쳐 하나증권 이사, 리딩투자증권 전무, 리딩투자자문 대표를 지냈다. 이후 금융 전문 컨설팅 회사인 대안금융경제연구소를 열었고, 2018년 1월 팟캐스트 ‘경제의 신과 함께’(삼프로TV의 전신)를 통해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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