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동굴실종 소년들, '기적적' 생존 확인(매사이<태국> AFP=연합뉴스)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 매사이 지구 탐루엉 동굴 안에서 실종됐다가 무사한 상태로 발견된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 모습. 태국 해군이 2일(현지시간) 공개한 영상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다. 이날 나롱싹 오소따나꼰 치앙라이 지사는 지난달 23일 훈련을 마치고 관광 목적으로 이 동굴에 들어간 뒤 연락이 끊긴 11∼16세 소년 12명과 20대 코치 등 13명이 모두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lkm@yna.co.kr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州)의 한 동굴에 들어갔다가 연락이 끊겼던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과 코치가 실종 열흘만인 2일(이하 현지시각) 무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들을 당장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올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나롱싹 오소따나꼰 치앙라이 지사에 따르면 수색팀이 실종자들을 발견한 장소는 '파타야 비치'로 불리는 동굴 내에서 가장 큰 공간으로부터 300∼400m 지난 지점이다.
'파타야 비치'는 총연장 10㎞에 달하는 동굴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까지 가려면 동굴 입구에서 직선으로 3㎞를 이동한 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2.5㎞가량을 더 들어가야 한다.
보통의 날씨라면 동굴 입구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몇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실종자 생존 확인된 동굴 구조[방콕포스트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우기(雨期)에 접어든 이 지역에 계속된 비로 동굴 내부가 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여서 걸어서 이동은 불가능하다.
실종자들을 찾아낸 태국 네이비실 해난구조 대원들도 산소통을 짊어지고 수 ㎞를 잠수해 꼬박 이틀 만에 이곳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살아 있대요!'(매사이<태국> AFP=연합뉴스) 태국 북부 치앙라이 주 매사이 지구 탐루엉 동굴 안에서 실종됐던 유소년 축구팀 선수 12명과 코치 등 13명이 2일(현지시간) 모두 무사한 상태로 발견된 가운데, 실종자 가족 중 한 명이 동굴 밖에서 실종 소년들 중 네 명이 함께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며 기뻐하고 있다. 이날 나롱싹 오소따나꼰 치앙라이 지사는 지난달 23일 훈련을 마치고 관광 목적으로 이 동굴에 들어간 뒤 연락이 끊긴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과 코치가 모두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lkm@yna.co.kr
그뿐만 아니라 동굴 중간에는 몸을 'ㄱ'자로 꺾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공간도 있어서, 생존이 확인된 소년들을 당장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자들의 건강상태다. 열흘간 어둠과 추위를 견딘 생존자들의 몸 상태가 당장 동굴 밖 이동에 적합한지는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당국은 잠수가 가능한 의사를 동굴 안으로 들여보내 일단 생존자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한 뒤, 즉각 구조 또는 현장 치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또 주말을 전후해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린다면 생존자 구조계획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구조에 동참한 미국 동굴구조 전문가 안마 미르자는 AP통신에 "당장 이들을 구해낼지 아니면 음식 등을 공급하면서 기다릴지 결정해야 한다"며 "전문 잠수사가 아닌 생존자들이 잠수를 잘한다 해도 동굴을 통해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과정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잠수사가 동굴 안으로 물자를 들여가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이들에게 음식 등을 제공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라고 덧붙였다.
부산을 출발해 광주로 향하던 고속버스 안에서 20대 여성이 40대 남성을 흉기로 마구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전남 광양경찰서에 따르면 1일 낮 12시께 남해고속도로 하동 부근을 지나던 고속버스 안에서 A(22)씨가 B(44)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렀다. A씨는 버스 맨 뒷자리에 타고 있었고, B씨는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A씨는 갑자기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B씨의 얼굴부위와 목을 수차례 찔렀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평소 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불안감에 흉기를 소지하고 다니다가 아무 이유없이 앞좌석 승객 B씨를 공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흉기에 찔린 B씨는 사건 직후 출동한 119구급대의 응급처치를 받으며 순천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광주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화환 앞 한복입은 이)가 30일 서울 성북구 삼청각에서 열린 큰딸 결혼식에서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표님, 한겨레 서영지 기자입니다. 오늘은 취재하러 온 게 아니라 축하하러 왔다고 합니다.”
30일 오전 11시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의 큰 딸인 서아무개씨의 결혼식이 열리는 서울 성북구 삼청각에 도착했습니다.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가니 저를 알아본 당 관계자가 추 대표에게 저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솔직히 ‘움찔’했습니다. 축하하는 마음도 있지만, 취재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권여당 대표의 자녀 결혼식이니, 평소 취재하기 어려운 당·정·청 인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현안을 취재할 수 있을거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또 지난해 대선과 올해 지방선거 승리의 중심에 있는 ‘서슬퍼런’ 여당 대표의 자녀 결혼식 풍경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축하해야 할 자리에 취재를 왔다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자녀 결혼식을 기사로 보긴 했지만, 취재는 처음이었습니다. 집권 여당 대표로서 당 최고위원회에서 엄중하게 발언하는 모습만 보다가 이날 ‘대표’가 아닌 ‘어머니 추미애’로 환하게 웃으며 직접 하객들을 맞는 모습을 보니 색달라 보이긴 했습니다.
■ 카카오톡에서 퍼졌던 청첩장 ‘해프닝’
추 대표 장녀의 결혼식이 알려진 건 10여일 전쯤 기자들 사이에 카카오톡을 통해 모바일 청첩장이 돌면서부터입니다. 여기에는 ‘추미애 인사드립니다. 저의 큰딸이 결혼식을 올립니다. 앞날을 축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추 대표가 기자들에게 문자를 돌린 것이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추 대표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가 기자들에게까지 전달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청첩장을 본 기자들 사이에서는 ‘왜 축의금은 사양하지 않느냐’는 뼈있는 농담이 오고 갔습니다.
결혼식장은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결혼식 한 시간 전인 11시께 이미 100여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전체 하객은 어림잡아 400명은 넘어보였습니다. 당 대표실에서는 “경북여고 동기들과 한양대 동문들, 그리고 측근 의원들과 고문 등 아주 소수에게만 연락을 돌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 결혼식을 모르고 있던 의원들도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직자들 역시 “우리에게도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다. 사실 우리에겐 ‘고용주’ 입장인데, 아무래도 부담 가질까봐 알리지 않은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당직자나 일부 의원은 오히려 문자를 받은 기자들이 결혼소식을 전해줘서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화환.
■ 화환은 ‘대통령’이 유일… 당·정·청 총출동
이날 결혼식에서 하객이 아닌 ‘기자’로서 유심히 본 것은 일반인들의 결혼식과 여당 대표 결혼식이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였습니다. 통상 결혼식장 옆에 줄지어 서있는 화환은 이번 결혼식에선 눈에띄지 않았습니다. 추 대표 쪽이 ‘화환을 사양하겠다’고 미리 알린데다, 그럼에도 결혼식장으로 도착하는 화환들은 모두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다만 하객들을 맞는 추 대표 뒤로 유일한 화환이 놓여있었습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었습니다. 추 대표에게도 대통령의 화환은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취재하기 어려운 정부·청와대 고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이채로웠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과 한병도 정무수석, 이용선 시민사회수석 등이 참석했고, 정부에선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상곤 사회부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민주당 대표 출마설이 돌고 있는 김부겸 장관의 경우 결혼식 30분 전쯤 도착해 하객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김 장관에게 명함을 건네면서 인사를 하자 김 장관은 “얼른 돌아가야 자주 볼 수 있을 텐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김 장관을 보고 인사를 건네는 이들이 많아 질문을 많이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축의금 접수를 받는 테이블이 북적인 건 다른 결혼식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축의금 내려는 이들이 몰리다보니 많다보니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기다리다가 ‘빈틈’이 생기면 축의금을 내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는 모습이었습니다.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여러 개의 축의금 봉투를 내는 것 역시 일반 결혼식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 추 대표가 ‘공천’했던 6·13 지방선거 당선자들도 참석… 야당은 없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민주당에선 차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문희상 의원 등 4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당 지도부 인사들은 거의 참석해 이 결혼식에서 당·정·청 회의가 열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춘석 사무총장, 김민기 제1사무부총장, 김영호 제2사무부총장, 임종성 제3사무부총장, 백혜련·김현 대변인, 김정우 비서실장 등 주요 당직자들과 홍영표 원내대표와 김태년 정책위의장, 홍익표 정책위 수석부의장 등 원내지도부가 참석했습니다. 특히 추 대표가 공천장을 수여했던 6·13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당선자 11명이 모두 결혼식에 참석한 게 눈에 띄었습니다. ‘공천=당선’으로 통했던 지난 선거에서 자신을 공천한 추 대표에 대한 감사의 뜻을 나타내려 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미애 대표가 선거기간 목포를 찾아 “목포의 훌륭한 후보”라고 치켜세웠던 김종식 목포시장 당선인도 이날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야당과의 불편한 관계를 반영한듯 이날 야당 의원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민주평화당의 권노갑 고문은 오랜 인연 덕인지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농담처럼 ‘추 대표가 ’야당과의 연정에 대해 선을 긋지만 않았더라도 1~2명은 더 왔을 것’이라는 얘기도 오고갔습니다.
30일 낮 갑자기 쏟아진 비로 하객들이 자리를 피하고 있다.
이날 궂은 날씨에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오전 11시45분께부터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은 갈수록 굵어졌고, 야외에서 진행되던 결혼식은 5분 만에 중단됐습니다. 이후 실내에 마련된 연회장으로 옮겨 주례사와 축가 등이 마저 진행됐습니다. 주례는 신랑 쪽에서 모셔와 당 관계자들도 주례는 누군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친구와 친척 결혼식이 아닌, 유력 정치인 자녀의 결혼식 참석은 처음인 저는 새롭고 낯선 광경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큰딸이 삼청각에 도착해 연회장 쪽 계단으로 올라가자 의원들이 양쪽으로 길을 터주며 박수를 치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정치부 2개월 차인 제가 의원들의 저런 모습도 처음이라고 하자 한 당직자는 “이게 권력”이라며 지나가듯 내뱉었습니다.
30일 낮 내린 비로 야외결혼식이 취소되고, 실내 연회장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
공인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아닌 사인으로서의 ‘어머니 추미애’의 모습은 다정하고 정겨웠습니다. 그는 지난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큰 딸과 전화통화를 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딸이 새로운 인생의 첫발을 떼는 순간에 가까운 이들의 축하를 받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민주당 출입기자인 저는 추 대표에게 진심으로 축하인사를 건넸고, 한편으론 주요 인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궁금했던 현안을 물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마음 한편으로 이런 상상을 잠시 해봤습니다. 실세 중 실세인 집권여당의 대표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녀 혼사를 치렀다면 어땠을까, 뒤늦은 ‘미담’이 알려지면서 추 대표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軍 사이버 댓글TF..'예비역 사이버 전사' 운용 등 찾아내 "국방부검찰단에 내용 이첩, 위법사항 여부 확인 예정"
【서울=뉴시스】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TF는 2일 '국군 기무사령부의 사이버 댓글활동 등 여론조작 행위를 조사하던 중, 기무사가 온라인상의 여론조작을 넘어 세월호 사건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에 나온 문건은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대표 인물의 성명, 관계, 경력 등을 정리하고 성향을 강경·중도 등으로 분류한 것이다. 2018.07.02. (사진=국방부 제공)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국군 기무사령부가 세월호 참사에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이 발견됐다. 기무사가 사고 당시 팽목항 구조현장뿐만 아니라 단원고에서도 기무활동을 벌인 정황이 확인됐다.
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TF는 2일 "국군 기무사령부의 사이버 댓글활동 등 여론조작 행위를 조사하던 중, 기무사가 온라인상의 여론조작을 넘어 세월호 사건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문건은 '예비역 사이버 전사(戰士)' 운용 계획, 시위정보 제공 등 안보 단체를 동원한 여론조작 정황을 발견하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TF는 설명했다.
댓글사건 조사TF에 따르면 기무사는 사고발생 13일째였던 지난 2014년 4월28일 세월호 관련 현장상황 파악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같은 해 5월13일 참모장을 TF장으로 하는 '세월호 관련 TF'로 확대 운영해 10월12일까지 약 6개월간 운영했다.
기무사 '세월호 관련 TF'는 당시 참모장(육군 소장)을 TF장으로 사령부와 현장 기무부대원 등 60명으로 구성됐으며, 유가족 지원, 탐색구조·인양, 불순세력관리 등으로 업무를 나눴다.
【서울=뉴시스】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TF는 2일 '국군 기무사령부의 사이버 댓글활동 등 여론조작 행위를 조사하던 중, 기무사가 온라인상의 여론조작을 넘어 세월호 사건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에 나온 문건(왼쪽)은 실종자 가족 대상으로 탐색구조 종결을 설득할 논리 및 방안을 서술한 것이다. 오른쪽은 단원고에서 기무 활동관이 일일보고한 정황. 2018.07.02. (사진=국방부 제공) photo@newsis.com
또 발견된 자료에는 세월호 탐색구조와 선체인양 등 군(軍) 구조작전 관련 동정 보고 문건뿐만 아니라,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동향',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유가족 요구사항 무분별 수용 분위기 근절', '국회 동정' 등 보고 문건이 포함돼 있었다고 조사TF는 전했다.
문건별로 살펴보면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동향' 문건은 실종자 가족과 가족대책위 대표 인물의 성명, 관계, 경력 등을 정리하고 성향을 강경·중도 등으로 분류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문건은 실종자 가족 대상으로 탐색구조 종결을 설득할 논리 및 방안이 서술돼 있었다.
'유가족 요구사항 무분별 수용 분위기 근절' 문건은 유가족들이 무분별한 요구를 한다는 전제로 유가족들에게 국민적 비난 여론을 전달해 이를 근절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서울=뉴시스】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TF는 2일 '국군 기무사령부의 사이버 댓글활동 등 여론조작 행위를 조사하던 중, 기무사가 온라인상의 여론조작을 넘어 세월호 사건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에 나온 문건(왼쪽)은 유가족들이 무분별한 요구를 한다는 전제로 유가족들에게 국민적 비난 여론을 전달하여 이를 근절하겠다는 취지의 보고서. 오른쪽은 국회·국회의원 등의 동정을 포함해 보고한 내용. 2018.07.02. (사진=국방부 제공) photo@newsis.com
또 구조 현장인 팽목항 뿐 아니라 안산 단원고에도 기무 활동관이 배치돼 일일 보고를 한 정황도 발견됐다.
이와 함께 기무사가 보수단체들이 좌파집회에 대항하는 맞불집회를 열 수 있도록 소위 '좌파집회'(시민단체 집회 등) 정보를 달라는 요청에 응해 세월호 사건 관련 시국 집회 정보를 제공한 문서도 확인됐다.
국방부는 "조사TF는 이번에 확인된 의혹에 대해서 국방부검찰단으로 이첩, 위법사항 여부에 대해 확인 예정"이라며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해 특별법에 의해 활동 예정인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관련 자료 제공 등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을 묶은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하 '한국의 산사') 7곳이 모두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한국의 산사를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한국의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로 구성된다.
앞서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를 사전 심사하는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한국이 신청한 7곳 중 통도사와 부석사, 법주사와 대흥사 네 곳만 '등재 권고'하면서 나머지 세 군데는 '보류'할 것을 제안했다.
이코모스는 역사적 중요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 곳을 등재 권고 대상에서 제외했으나, 세계유산위원회는 21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이들 7곳을 모두 합쳐야 유산의 가치가 제대로 드러난다"면서 한국이 신청한 7곳 모두를 한데 합쳐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우리 정부는 이코모스 심사 결과가 알려진 뒤 7개 사찰을 한꺼번에 등재하기 위해 세계유산위원국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교섭을 벌였으며, 중국을 비롯한 위원국이 모두 이에 동의하면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해남 대흥사.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제공]
한국의 산사는 7∼9세기 창건된 이후 신앙·수도·생활의 기능을 유지한 종합승원이라는 점에서 세계유산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인정받았다. 또 개별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관리 계획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다만 세계유산위원회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건물 관리 방안, 종합 정비 계획, 앞으로 늘어날 관광 수요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사찰 내 건축물을 지을 때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협의할 것을 권고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중앙 정부와 대한불교조계종, 지자체가 합심해 세계유산 등재라는 성과를 이뤄냈다"고 평가한 뒤 "산사가 지닌 세계유산 가치가 잘 보존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양산 통도사.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제공]
한국은 2016년과 작년에 각각 한국의 서원과 서울 한양도성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 했으나 이코모스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 자진 철회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의 산사를 등재하면서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년), 창덕궁, 수원 화성(이상 1997년),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를 포함해 세계유산 13건을 보유하게 됐다.
북한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2004년), 개성역사유적지구(2013년), 그리고 중국 동북지방 일대 고구려 유적(2004년)을 합치면 한민족 관련 세계유산은 16건에 이르게 됐다.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정우성, '난민 발언' 후 첫 인터뷰 "세계는 한국이 예멘 난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볼 것"
박주연 기자입력 2018.06.30. 06:00수정 2018.06.30. 10:16
[경향신문] ㆍ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배우 정우성씨
배우 정우성씨가 지난 27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정씨는 제주 예멘 난민 문제에 대해 “우리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난민의 인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제주 예멘 난민 관련) 이야기를 해야겠답니다.”
지난 24일 오후 10시 무렵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씨(45) 측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정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앞서 20일이었다. 정씨는 당시 악플에 시달리고 있었다. 20일 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사진과 함께 난민에 대한 이해와 연대를 호소하는 글을 올린 게 공격의 빌미가 됐다. 제주도에 도착한 549명의 예멘 난민 문제가 사회적 논쟁으로 급부상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제주도 난민 신청 허가를 반대하는 청원참여자가 50만명을 넘어섰고, 30일 저녁 서울 세종로에서는 난민 반대 집회가 예고돼 있다. 정부는 29일 “한국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난민보호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면서도 “난민제도를 악용하는 일이 없도록 난민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정씨를 만났다. 그는 전날 제주도에서 개막된 제주포럼에 참석한 후 막 서울로 올라온 길이었다. 맨얼굴에 수수한 차림으로 나온 정씨는 나직한 목소리로 허심탄회하게 제주 예멘 난민 문제 등에 대해 생각을 밝혔다. 그는 2014년 네팔을 시작으로 남수단(2015), 레바논(2016), 이라크(2017)에 이어 지난해 12월엔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다. 매년 5000만원의 후원금도 난민기구에 내고 있다.
내전 속 성인 남성 강제 징집 잦아 거부 땐 위협…결국 고국 땅 탈출
- 지난 20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과 사진 때문에 비난 댓글이 쏟아졌죠. 제주도 난민 신청 허가를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30일로 예고된 집회를 감안하면, 대중의 인기로 살아가는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이 인터뷰가 부담되지 않나요.
“제가 먹고사는 일에 악영향이 없게 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대해 생각이 있어도 침묵하는 것은 방관자가 되겠다는 거잖아요. 대중의 사랑으로 얻은 명성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측면에서도 옳지 않아요. 우리 사회와 시민들의 의식을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소신을 밝혀야죠. 더구나 난민 문제인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일해온 제가 함구할 순 없어요.”
- 웹툰작가 윤서인씨의 글을 비롯해 반응 댓글들이 매우 험악하던데요.
“제주도 난민 신청 허가를 반대하는 의견도 존중받아야 해요. 하지만 의사표현 방식도 중요한 것 같아요. ‘네가 뭔데 함부로 지껄이냐’는 식의 격앙된 감정적 공격으로는 발전적 논의로 이어질 수 없어요.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상대방에게 전달하려면 좀 더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일부는 너무 감정적으로 이 사안을 따지고 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일부 누리꾼은 정우성씨의 경우 친선대사로 잠깐씩 해외의 난민촌을 방문할 뿐이고, 현실에서는 부유하기 때문에 난민과 직접 부대낄 일이 없어 이상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가진 불안감은 이해해요. 하지만 난민이나 난민협약, 난민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지금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정우성씨가 2015년 5월 남수단 북부 유니티 주에 위치한 아중톡 난민촌에서 어린이들과 장난을 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제공
- 어제 포럼 참석차 제주도에 내려간 김에 예멘 난민들도 직접 만나봤습니까.
“만나뵙고 싶어 유엔난민기구에 요청했어요. 만찬 시작 직후 조용히 빠져나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한 그들 동포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는 여섯 분의 예멘 난민을 만났어요.”
- 만나보니 어떻던가요.
“제가 그동안 보아온 난민들과 똑같죠. 온라인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보면 많은 분들이 난민에 대한 획일화된 이미지를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러나 정치적 상황으로 갑자기 난민이 됐다고 해서 모두가 헐벗고 교육수준이나 개인이 지닌 인생의 역사성이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여섯 분은 예멘에서 모두 전문직 종사자였어요. 기자였거나, 프로그래머였거나, 일렉트로닉 엔지니어였고, 예멘 전 국가대표 사이클선수도 있었어요.”
- 그러고보면 제주 예멘 난민들이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의 옷과 신발을 착용했다거나, 고가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는 이유로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꽤 있더군요.
“중동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차림이에요. 스마트폰은 그분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도구이고요. 고국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자신의 안녕을 가족에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니까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각종 정보도 얻을 수 있고요. 그래서 식사는 포기해도 스마트폰을 포기하는 난민은 없어요.”
- 제주도 예멘 난민이 젊은 남성이 다수라고 하는데 만난 분들은 왜 고향을 떠났다고 하던가요.
“정부군과 반군 간 내전이 계속되면서 성인 남성들은 정부군이나 반군에 우선적 징집 대상이에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전쟁임에도, 징집되면 살인을 해야 하고 자신의 생명도 위협받죠. 그런데 징집을 거부하면 가족을 볼모로 위협을 가한다고 해요. 살인과 죽음에 대한 공포, 가족의 안전,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예멘을 탈출했다고 해요.”
유엔 난민기구 친선대사 정우성씨가 2016년 3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시리아 난민 비공식 거주지를 방문했다. 난민촌 어린이가 정우성씨에게 귀엣말을 속삭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제공
- 정우성씨는 정부가 지난 1일부터 제주도에 비자 없이 들어올 수 없는 국가에 예멘을 추가한 것이나, 제주 예멘 난민의 출도 제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인 건가요.
“비자로 난민 입국을 통제하겠다는 것은 난민협약 정신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난민이 어느 나라에 가서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위험을 내포하니까요. 하지만 이번 결정은 놀란 지역 민심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니 한쪽의 관점으로만 말할 수 없기는 해요. 우리 모두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는 거죠. 출도 제한의 경우도 이미 정해진 현실인 만큼, 최대한 신속하게 난민 심사를 진행해야겠죠.”
난민에 대한 불안감 이해하지만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해선 안돼
- 예멘 난민에 대해 한국인들이 경계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인 것으로 보여요. 무슬림 난민을 받아들인 유럽 사례를 들며 테러·성범죄 등 각종 범죄가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고, 온라인에서는 관련 가짜뉴스도 돌고 있어요.
“극히 일부 극단주의 성향의 무슬림들 이야기를 전해듣고 공포를 느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요.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들의 걱정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극히 소수의 사례로 난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며 경계하는 것은 난민을 우리와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또 다른 차별군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제주 예멘 난민의 상당수가 취업을 위해 들어온 가짜 난민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 보수언론은 ‘난민 브로커’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예멘 난민들의 제주 도착 전 SNS로 한국 내 취업을 조언했다는 보도도 했어요.
“브로커는 난민이 발생하는 지역이면 어디에나 있어요. 왜냐하면 난민들이 정착하려는 나라의 정보에 캄캄하니까 이들을 통해 해당 국가의 법규나 난민 신청 절차 등 다양한 정보를 얻죠. 선의의 브로커이면 괜찮은데 난민을 속여 인신매매하는 나쁜 브로커도 있어요.”
정씨는 2014년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로, 이듬해 세계에서 10번째로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친선대사는 현재 그를 포함해 21명.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는 특사 자격으로 활약 중이다. 정씨는 명예사절 제안을 받은 후 오래 고민하지 않고 수락했다.
- 2014년 명예사절 제안을 너무 빨리 수락해 기구도 놀랐나 보던데요.
“제안이 반가웠거든요. 지구촌 사람들은 물론, 제게 많은 것을 부여해준 우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미션을 수행하면 할수록 내가 엄청난 일을 맡았구나 느꼈고 책임감이 커졌어요. 언제나 난민촌으로 떠나기 전 떨리고 무섭죠. 스스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됐니? 준비됐어?’ 하고 자문해요.”
- 무섭다니요. 뭐가요.
“누군가의 입장과 상황을 대변하는 일이니까요. 거기에는 저의 감정이 개입돼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난민 관련 인터뷰를 할 때는 자기검열을 수시로 하죠. 난민촌에 가면 많은 생각이 교차해요. 인류는 사랑이 아니라 파괴를 위해 태어난 것인가, 왜 많은 이들이 끊임없는 전쟁으로 피해를 입어야 하나, 종교는 뭘까 같은…. 때론 무력감도 들어요. 결국 분쟁을 당장 없앨 수 없다면 세계적으로 공감과 이해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죠.”
정우성씨가 2017년 6월 이라크 북부 함다니야의 국내 실향민 캠프 하산샴U3에서 만난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제공
- 2014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네팔·남수단·레바논·이라크·방글라데시의 난민촌을 다녀왔죠. 가면 얼마나 머물고, 어떤 활동을 하나요.
“직항이 없는 곳이 많아 비행만 24시간 한 적도 있는데, 현지 체류는 2박3일 정도예요. 한 번 가면 그곳 난민캠프 서너 곳을 방문해요. 보통 한 캠프에 수만명의 난민이 있는데, 제 역할은 이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하지만 난민들은 스스로 왜 이곳에 있는지 혼란스러운 데다 신분 노출을 두려워해 만남을 쉽게 허락하지 않아요. 저는 되도록 많은 분들을 만나려 노력해요.”
- 난민촌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일한다고 들었어요. 유엔난민기구 직원들이 동료로 착각할 정도라고 하던데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착각 안 했으면 좋겠어요. 진짜로 저를 직원 취급해요(웃음).”
- 난민촌이라면 잠자리와 음식, 샤워시설 등 모든 게 열악할 텐데 많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제게 문제가 안돼요. 그런 걸 따지면 애초에 일을 맡지 말아야죠. 난민촌에 가면 실제로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쫄쫄쫄 나오는 일이 태반이지만, 저 씻는 거 귀찮아해요(웃음).”
다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 이들은 ‘그 날’ 희망 품고 살아가요
- 난민들이 살아가는 힘은 뭐라고 생각해요.
“희망이오. 다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그날이 올 것을 확신하면서 그 희망으로 살아요. 또 자신들의 자녀들은 지금보다 나은 미래에 살 것이라는 희망도 품죠.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한지 새삼 깨닫게 돼요.”
- 특히 인상적이었던 풍경이 있나요.
“남수단에 갔을 때 내전 당시 사용한 비행기 격납고 같은 곳에 만든 식량 배급소가 있었는데 그 앞에 구름처럼 장사진을 친 난민들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어요. (휴…,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진짜…, 삶을 잇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 하는가 하는 삶의 무게를 느꼈어요. 또 캠프마다 신생아 분만소가 있는데, 찜통 같은 날씨와 혼란 속에서도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나는 아기들의 모습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요.”
그는 “해외 난민촌을 다녀온 후에는 약 한 달간 현지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전하고 난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세계는 한국과 한국인이 제주 예멘 난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세계 각국이 난민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힘을 갖고 목소리를 얻으려면 이러한 난민 문제를 분담할 수 있는 국가임을 보여줘야 해요. 시민의식이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어요. ‘자국민의 인권보다 난민의 인권이 중요하냐’는 이분법적 비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난민의 인권도 중요하니 보호하자는 거예요.”
정우성씨가 2017년 12월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탈출한 로힝야족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8 월25 일 폭력 사태 이후 62 만 명이 넘는 난민이 유입되면서 이곳 난민캠프는 자원 부족과 난민 보호에 대한 다양한 요구에 직면해 있다. 유엔난민기구 제공
어릴 적 ‘좋은 아버지 되기’가 소원 연애하고 있느냐는 질문엔… “노코멘트”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어렸을 때 가족이 서울 사당동 달동네 철거촌을 이리저리 옮겨다녔을 만큼 몹시 가난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런 불우한 성장배경이 난민과 같은 소외된 이들을 향한 그의 관심과 공감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됐다.
-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아버지는 리어카에 모터 달린 가위를 가는 기계를 싣고 다니며 가위를 갈아주는 일을 하셨어요. 하루 100~150개 정도의 가위를 갈면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었어요. 제 위로 형과 누나가 한 명씩 있는데, 어머니가 자주 막내인 제 손을 잡고 의류공장을 찾아다니며 외상 수금을 하셨어요.”
- 어린 정우성은 어떤 아이였나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되게 조용하고 상상을 많이 하는 아이였어요. 어린 시절 기억이 많지는 않은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하교 후 집에 아무도 없으면 부엌문 쪽창을 넘어서 방으로 들어갔어요. 남의 집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살았는데 어머니가 분식집에 일하러 가시면 제가 쪽창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걸 아시니까 현관문이나 마찬가지인 부엌문을 자물쇠로 잠그셨거든요. 저는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바깥의 아이들이 뛰어놀며 내는 소리를 들었어요. 지금도 그 소리와 이미지가 선명하게 박혀 있어요.”
- 왜 아이들과 같이 놀지 않고요.
“아이들과 노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대부분을 혼자 지냈어요.”
- 서울 종로에 있는 경기상업고등학교를 1년 만에 중퇴했던데, 상고를 간 이유가 가난한 집안형편 때문이었나요.
“공부도 재미없었고, 상고를 나오면 은행 말단직원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갔어요.”
- 중퇴한 이유는 뭐였나요.
“저의 권유로 같이 경기상고에 입학한 친구가 선배들과 엮인 어떤 사건으로 인해 먼저 자퇴했어요.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혼자 뭔가 쓸쓸한 느낌도 있고 학교생활도 막막하고 아이들도 보기 싫어 그만뒀어요.”
- 부모님이 쉽게 허락하셨나요.
“어머니께 다른 얘기 없이 ‘나, 학교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지금도 생각나는 게 교무실 풍경이에요. 담임 앞에서 저도 고개를 숙이고 있고, 어머니도 죄인처럼 앉아 계셨어요. 학교에서 나온 어머니와 저는 효자동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탔고, 제가 먼저 방배동 카페골목에서 내렸어요. 당시 아르바이트하던 옷가게가 그곳에 있었거든요. 멀어지는 버스를 보며 어머니께 많이 미안했어요.”
-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계속했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겠어요.
“중3 겨울방학 때 서문여중고 앞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를 했어요. 중학생이라고 하면 일을 안 줄까봐 말을 안 했어요. 당시 이미 제 키가 183㎝였거든요. 고1 여름방학 때까지 그곳에서 일했는데 여고생들이 저를 재수생 오빠로 알고 찾아오면서 매상이 엄청 올랐어요(웃음).”
- 청소년기에 가난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크게 불편하거나 억울하지는 않았어요. 학교에서 부모님 지위나 사는 동네에 따라 교사들이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한 것은 탐탁지 않았지만요.”
- 한국 사회는 학벌사회라 하고 학연에 대한 집착도 크잖아요. 유명 연예인인 만큼 마음만 먹었다면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 졸업장쯤은 쉽게 딸 수 있었을 텐데요.
“검정고시 통과를 도와줄 테니 자기 대학에 오라는 제안을 받기는 했어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밖에서 배우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제도권 안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소통하는 기회를 상실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주관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의 결과들이 제도권에 속해 있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강윤중 기자
- 청소년기부터 배우를 꿈꿨던 거죠.
“음…, 절박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학교를 자퇴한 후 모델센터를 다니며 모델 일을 시작했어요. 지상파 방송3사의 탤런트 공채 시험에도 응시했지만 고교 중퇴 학력 때문에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낙방했어요. 단막극 알바도 하고 모델 일도 하다가 아는 형이 영화음악 제작자라며 매니저를 소개해줬는데 그분이 정훈탁씨(현 IHQ 대표)였어요.”
- <구미호>(1994)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고, SBS 창사특집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1995)로 주목을 받았어요. 스타덤에 오르게 한 작품은 영화 <비트>(1997)였고요. 지금까지 3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뭐예요.
“모든 작품에 애착을 느끼죠. 특히 <비트>는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멋진 수식어를 선물해준 소중한 작품이에요.”
- 2016년 11월 영화 <아수라> 팬 단체관람 현장에서 영화 대사를 바꿔 “박근혜 앞으로 나와”라고 외치고, 지난해엔 세월호 다큐 내레이션을 맡았죠. 또 KBS 파업 중에 KBS1 <뉴스집중> 생방송에 출연해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일침을 날렸고요. 연예인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고, 정권이 바뀌면 피해를 입기도 하는데 부담을 안 느낍니까.
“정권이 바뀐다고 피해를 입는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또 후퇴하는 거예요. 그러지 않는 세상이 돼야죠. 한국은 독재정권을 거치며 정치에 대한 발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암묵적 압력이 이뤄졌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정치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죠. 저는 국민이 부조리에 대해 발언해야 한 나라의 정치도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박근혜 정부 때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이 올랐었죠. 이유를 아나요.
“왜 올랐는지는 모르는데 누군가 저의 이야기를 엿듣기라도 해서 정보를 올렸나 싶어 섬뜩함을 느꼈어요.”
- 정치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데 주로 어떤 창구를 통해 시사 정보를 얻나요.
“주로 유튜브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어요. 제가 궁금한 사안에 대해 정보를 찾아 들어가는 식이죠. 유튜브를 통해 관심 사안에 대한 강의도 듣고요. 그리고 온라인으로 신문·방송 보도도 꾸준히 보죠.”
아침에는 라디오 시사 프로 청취 시간 날 땐 혼자 걷거나 멍 때리기
-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뭔가요.
“물 마시고, 라디오를 틀어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들으면서 식사해요. 그다음에는 배우의 일을 하죠. 관련 스케줄이 있으면 나가고 시나리오 작업할 것 있으면 같이 하고요. 요즘도 작가들과 같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작품이 있어요. 제가 연출이나 제작을 맡을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아직 공개하기는 일러요.”
- 책 읽는 것도 좋아합니까.
“좋아하는데, 요즘엔 진짜 못 읽었어요. 무조건 많이 읽어야지 해요. 책을 오랫동안 안 읽었더니 불안해져서요(웃음). 제게 지인이나 팬들이 책 선물을 많이 보내주세요. 장르는 소설, 에세이, 시집, 철학서 등 다양해요. 저는 철학서가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 배우로 데뷔한 지 25년이고 나이로는 벌써 40대 중반이에요. 40대 중반의 나이는 정우성씨에게 어떻게 다가오나요.
“나이를 의식하고 살지는 않아요. 그러나 중요한 시기인 것은 확실하죠. 잘 나이를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꼰대는 되기 싫고, 도전의식을 버릴 수는 없고, 안정된 저만의 삶만 추구하고 싶지도 않아요. 옆에서 보면 불안한 40대가 아닐까요?”
배우 정우성씨가 지난 27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 2008년 46억2600만원의 거액을 지인에게 사기당했죠. 당시 사기당한 돈을 조금이라도 회수했나요.
“아니요.”
- 보통 사람 같으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극복하기 힘든 일이었을 텐데,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자고 생각했고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도돌이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다만 앞으로 더 잃지 않으려면 안일하거나 미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당시 제 생활과 품위 유지를 위해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요.”
그는 솔직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전혀 꾸밈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때론 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기다가 한 템포씩 쉬었다가 말했다.
- 스스로 인간 정우성과, 배우 정우성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도, 배우로서도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배우는 타인의 인생을 표현하는 직업이에요. 배우 자신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완성돼 있느냐에 따라 연기의 질도 달라진다고 믿어요. 그러니 제가 더 바르게 잘 살아야겠죠.”
- 일상에서 시간이 날 때는 주로 뭘 하나요. 지인들과 술자리를 갖나요.
“술 마시고 놀기 위한 만남을 가진 지는 오래됐어요. 여유시간이 있으면 혼자 걷거나 혼자 멍 때리기를 해요. 어릴 적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밤어둠이 내려도 불도 안 켠 채 가만히 앉아서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들어요. 그러고 있으면 1시간쯤은 금방 흘러요.”
- 절친이 배우 이정재씨죠. 삼성동의 같은 빌라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아요. 자주 만나나요.
“서로 약속을 해야 보지 자주는 못 봐요. 술도 밖에서 같이 식사할 일이 있을 때 반주 정도로 곁들이고요. 물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귀가 후 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그 집이나 제 집에서 보기도 해요.”
- 정우성씨는 최근 수년간 연애 스캔들이 없던데, 연애는 하고 있습니까.
“음…, 노코멘트할게요(웃음).”
-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나요.
“사실 어려서부터 제가 진짜 되고 싶은 것은 좋은 아버지였어요. 일찍 결혼하고 싶었죠. 20대 후반에는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안됐고 어느덧 마흔 중반이 됐어요. 지금 조바심은 느껴요. 그런데 배우라는 제 직업이 좋은 아빠를 떠나서 좋은 남편이 될 수 있는가, 워낙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는데 지금 상태의 스케줄이라면 가능한 일일까, 요즘 생각이 약간 복잡해요.”
- 앞으로 어떤 삶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당장 내년 스케줄은 있지만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는 거시적 계획은 없어요. 그보다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인간관계에서 제가 온당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상대를 존중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봐요. 그런 자세가 제 삶을 만들어줄 것 같아요.”
인터뷰는 2시간30분 동안 이어졌다. 헤어진 후에도 그는 카톡으로 인터뷰 과정에서 표현이 미흡했다고 여긴 부분들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보내왔다. 난민 문제에 대해 그가 느끼는 묵직한 책임감의 무게가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