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文, 백운규 영장에 격노..그뒤 靑·尹 인사조율 무산"

하준호 입력 2021. 02. 17. 05:02 수정 2021. 02. 17. 06:38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달 초 검찰 대검검사(검사장)급 인사(지난 7일)를 앞두고 법무부에 “차라리 대검찰청에서 검사장을 모두 빼달라”는 뜻을 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박범계에 "이럴 거면 대검 부장 다 빼달라"
16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윤 총장은 지난 2, 5일 두 차례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사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만나 인사와 관련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검찰총장의 참모진인 대검 부장(검사장급) 인사에 총장의 견해가 반영되지 않을 거라면 모든 대검 부장 자리를 비워달라”며 배수진을 쳤다고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윤 총장은 지난 7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앞서 친정부 성향의 대검 부장(검사장급) 일부에 대한 교체를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강하게 요구했다. 연합뉴스


이에 앞서 윤 총장은 자신에 대한 징계에 앞장섰던 대검 부장들의 교체를 요구했다. 추미애 법무부 시절인 지난해 8월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지난해 11~12월 추미애 전 장관의 윤 총장 징계 시도 때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신성식 반부패강력부장, 이정현 공공형사수사부장, 이종근 형사부장 등 친여(親與) 성향 검사장들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박 장관은 검사장급 인사 단행 전 국회 답변과 언론 인터뷰 등에서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는 검찰청법 34조 1항에 대해 “협의보다 좁게 해석한다”며 본인의 제청권을 앞세웠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겠지만, 이를 실제 인사에 반영할지는 법무부 장관의 권한이라는 뜻이다. 대검 참모진과 관련한 윤 총장의 요구도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검 참모진 인사는 조종태 춘천지검장이 대검 기획조정부장에 보임한 게 전부였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 장관은 윤 총장과의 인사 관련 회동에 대해 "의견은 듣겠지만, 협의보다 좁게 해석한다"며 장관의 제청권을 강조해 왔다. 뉴스1


박 장관이 윤 총장과 회동 말미에 “인사 발표 전 미리 전하겠다”고 한 인사안도 윤 총장의 기대와 달랐다. 대검은 법무부와 최종 협의를 위한 초안을 기다렸다. 그러나 법무부는 인사 당일인 지난 7일 낮 12시 20분쯤 인사 단행 소식을 법무부 출입기자단에 먼저 알렸다. 소식을 접한 대검이 인사안을 요청하자 법무부는 최종안을 보내겠다고 했다. 결국 인사 발표 2분 전인 오후 1시 28분에야 대검에 통보했다. 당시 윤 총장은 최종안을 보고받곤 “허, 참”이라며 황당해했다고 한다.

박 장관이 지난 8일 “총장을 직접 만났을 때 다 구두로 (인사 내용을) 명확히 말씀드렸다”고 해명한 데 대해서도 윤 총장 측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박 장관이 구두로 설명한 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유임과 ▶심재철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 전보가 전부란 것이다. 인사의 규모(4명)는 물론 ▶심재철 당시 검찰국장과 이정수 당시 서울남부지검장이 서로 보직을 바꾸고 ▶조종태 검사장의 대검 기조부장 보임으로 공석이 되는 춘천지검장에 김지용 당시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전보된다는 구체적 내용은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尹·申' 檢인사 패싱 후폭풍…신현수 수석 "내 역할 없다" 사의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왼쪽)이 지난 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신 수석은 문재인 정부 들어선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으로, 지난 7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앞서 법무부와 대검 사이에서 물밑 조율을 시도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인사 협의가 초반부터 삐걱댔던 건 아니다. 여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으론 첫 검찰 출신인 신현수 수석이 법무부·검찰 사이에서 물밑 조율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윤 총장이 교체를 요구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유임 기조가 바뀐 적은 없지만 ▶대검 주요 참모진 교체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 좌천 인사의 일선 복귀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 이상현)가 지난 4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백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청구 소식에 진노하면서 신 수석과 윤 총장 사이 조율 내용도 없던 게 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 뒤 법무부는 일요일인 지난 7일 전격적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결국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의 뜻대로 된 것”이란 뒷말이 나왔다.

여권에선 취임한 지 40여일밖에 안 된 신현수 민정수석이 최근 사표까지 낸 건 취임 후 첫 검찰 인사에서 박범계 장관이 총장은 물론 중간에서 조율하던 자신마저 ‘패싱’하자 “내가 더는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라고 판단한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황운하·김용민·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일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와 함께 검찰청 조직 해체를 골자로 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운영법’ 제정안을 발의한 것까지 청와대 내부의 기류 변화를 반영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준호·정유진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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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軍] 주한미군 철수하면 한국과 미국, 누가 더 손해일까

정승임 입력 2021. 02. 15. 12:00 댓글 2956

 

<11> '미군 주둔 75년' 손익계산서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2019년 10월 경기 포천 미 8군 사격장에서 실시된 실사격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주한미군 제공

“글로벌 호구가 되지 않겠다”며 툭하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냈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일까요. 지난 4일 “전세계 미군 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바이든 신행정부의 한마디에 한국이 또 다시 술렁거렸습니다. 재검토 대상, 범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던 탓에 혹여나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인 거지요.

근거 없는 불안감은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2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 ‘주한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문구가 12년 만에 빠진 것부터가 불안한 징조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의 쇼’라는 해석에 무게가 더 실렸습니다. 하지만 동맹주의자 조 바이든이 당선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구석’은 주한미군 규모를 일방적으로 줄일 수 없도록 규정한 미국의 ‘국방수권법(NDAA)’과 “중국 견제가 최우선인 미국이 주한미군을 뺄 가능성은 낮다”라는 이른바 ‘대중국 견제 카드’ 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안전장치는 아닙니다. 미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축소가 국가 안보에 부합하고, 이를 동맹국(한국)과 협의했다’는 사실만 의회에 증명하면 국방수권법은 아무 제약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꼭 한반도에서만 해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주한미군 일부를 빼서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남중국해 인근에 배치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겁니다.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각에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주한미군 축소, 더 나아가 철수까지 고려해보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주한미군 축소를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그 목적이 무엇이 됐든, 주한미군 주둔의 손익을 계산해 볼 시점이 된 듯합니다. 주한미군은 과연 누굴 위해 있는 것인지, 철저히 따져보자는 겁니다.

1979년 6월 29일 방한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베트남전 패배로 줄어든 주한미군, 현재는 2만8500명

미군이 한반도에 처음 주둔한 것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입니다.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을 각각 분할 점령했던 때였지요. 당시 7만7,000여명에 달했던 주한미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500명만 남겨두고 사실상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소련과 중공군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6ㆍ25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32만여명을 주둔시켰고 그렇게 주한미군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1960년대 6만여명 수준이었던 미군은 이후 숱한 축소와 철수 논쟁으로 오늘날 2만8,500명에 이르게 됩니다. 1969년 7월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무력 개입하지 않겠다”는 ‘닉슨 독트린’을 바탕으로 베트남전 철군 계획을 밝히면서 1971년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6만6,000여명→4만여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베트남전 패배로 해외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을 의식해 ‘주한미군 철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임 기간 단 한 명도 줄이진 못했지만, 1992년 냉전 종식으로 또 다시 3만6,500명으로 감축됩니다. 이라크전에 돌입한 2004년에는 주한미군 제2사단 소속 보병여단 병력을 전쟁에 투입하고 복귀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줄여나갔고, 현재 수준(2만8,500명)이 됐습니다. 미국의 대외 전략이 달라지면서 주한미군 규모도 변해온 셈입니다. 물론 그 변화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요.

2017년 11월 7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미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장병 오찬에 앞서 인사말 하고있다. 고영권 기자


주한미군, 공짜로 베푸는 시혜 아니다

미국이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아무 이득 없이 한반도에 주둔할 리 없습니다. 실제 2차 세계대전으로 패권을 쥔 미국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독일,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에 군대를 배치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토를 늘려왔습니다. 라이벌이었던 소련과 인접한 우리나라에 주둔하며 ‘남한의 공산화’를 막은 것이 대표적이지요.

우리가 공짜로 혜택을 입은 것도 아닙니다. 반대급부로 과거에도 현재도, 미국산 무기를 엄청 사들입니다. 애초 지급할 의무가 없었던 주한미군 주둔을 지원하는 비용인 ‘방위비 분담금’도 1991년부터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은 토지, 건물만 제공하고 주둔비용은 일체 미국이 부담하도록 했지만, 우리의 경제력 상승에 미국이 변심한 겁니다. 1991년 연 1,000억원으로 시작한 분담금은 현재 1조원이 넘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때 이 금액의 5배를 올리려고 했습니다. 그는 “동맹국들이 우리를 벗겨먹고 있다”고 했지만 우리 관점에서는 ‘미국이 우리 등골을 빼먹는’ 격입니다.

물론 냉전이 종식되고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현행 주둔 방식의 효용성이 떨어진 건 사실입니다. 이에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특정 지역에 주둔하는 붙박이 미군을 전략적 상황에 따라 어디든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기동군으로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2006년엔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기로 합의했고요. 미군이 주한미군을 빼서 인도나 말레이시아 등 중국의 직접적 위협을 받는 국가에 보강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겁니다.

2014년 5월 14일 경기 평택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 제2보병사단 제2전투항공여단의 신형 헬기 '치누크(CH-47F)헬기'가 공개되고 있다. 평택=뉴시스

그렇다 해도 미군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게 대체적 견해입니다. 2004년 전국에 흩어진 미군 기지를 모아놓은 경기 평택의 험프리스 기지가 사실상 ‘중국 견제 맞춤형’으로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도발하면 곧바로 미사일로 베이징을 타격할 수 있습니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7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미 본토로 미사일을 발사하면 알래스카에서 탐지하는 데 15분이 걸리는데, 주한미군이 있기 때문에 8초 밖에 안 걸린다”며 “북한 공격에 대한 미 본토 방어에도 주한미군이 결정적”이라고 했습니다.

일부 감축은 불가피할지 몰라도 전면 철수는 미군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거지요. 주독미군에 이어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한 트럼프에게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이 있는 것”이라며 맞선 것이나 공화당 벤 새스 상원의원이 “우리는 한국인 복리후생이 아닌 미국인 보호를 위해 한국에 병력과 군수품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2002년 12월 6일 박찬욱(왼쪽)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앞에서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한 기자회견 및 삭발식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주한미군 철수하면, 북한 방어할 플랜B 없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이 전면 철수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우리 손해가 더 크다고 말합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무참하게 희생된 ‘효순ㆍ미선이 사건’과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 비용을 미루려는 미군의 오만방자함으로 보통 사람에겐 ‘피해만 주는 미군’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는 ‘미군 주둔 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 겁니다.

소총 한 자루 만들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세계 군사력 6위로 거듭났다고 해도, 북한 방어에 주한미군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자동개입 조항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북한의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미군은 한반도로 안 들어올 수 있다”며 “그러나 미군이 주둔하면 개입을 안 할 수 없다. 유사시에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방위비 분담금이 천문학적으로 비싼 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첨단 무기를 많이 가져도 핵을 보유한 북한을 상대하려면, 미국의 핵우산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아니더라도 중국을 견제할 다양한 수단이 있지만, 우리에겐 플랜B도 없습니다.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남한을 제외한 채 미군의 동북아 방위선을 그리면서 북한의 도발을 가능케 했다는 이른바 ‘애치슨 선언’을 곱씹어볼 필요도 있습니다. 지금은 평온해도 미군이 한반도를 뜨는 순간, 북한이 또 다시 남침을 시도할지 모릅니다. 1970년대 지미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예의주시하며 한반도 장악을 호시탐탐 노렸던 것도 김일성 북한 주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67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최대 빈곤국이었던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을 ‘미군 주둔 효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주한미군이 안보 리스크를 줄여준 덕분이라는 거지요. ‘서울 불바다’ 속에서 삼성, 현대차와 같은 글로벌기업이 탄생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1992년 반미감정 확산으로 미군을 철수시켰던 필리핀 사례를 주목할 필요도 있습니다. 미군이 떠나면서 중국과 필리핀의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는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에서 중국의 도발은 잦아졌고, 안보 리스크가 커진 필리핀에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군사적, 경제적 손실은 커졌습니다. 이후 양국은 1999년 미군이 합동군사훈련을 위해 일정기간 체류할 수 있도록 한 방문군 협정을 맺었지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일 국방부를 첫 공식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고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늘어가는 중국의 도전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며 전담반(TF) 구성을 발표했다. 워싱턴=AP/뉴시스


우린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미 의회는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 합의안에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5G 기술을 사용하면 미군 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한동안 미국은 이런 식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 못하는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체적으로 핵개발도 못하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1%라도 있는 한, 우리의 선택은 미군의 주둔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일각에선 역설적으로 자주국방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육군 중장 출신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1970년대 우리의 필사적인 자주국방 노력이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를 백지화시키고 한미연합사령부를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며 “우리가 자주 국방력을 강화해서 스스로 전략적 가치를 키우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동안의 주한미군 감축 혹은 재배치 논의가 대체로 미국의 일방적 통보로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쌍방이 윈윈(win-win)하는 방식이 되길 바랍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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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만 둘러봐도 수고비 지불'.. 권익위 "중개계약서 작성이 먼저, 수고비는 1만원 내외될 것"

곽희양 기자 입력 2021. 02. 15. 14:33 댓글 117

 

[경향신문]

서울 송파구 롯데타워 서울 스카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주택의 모습. 이준헌 기자


집만 둘러봐도 공인중개사에게 ‘수고비’를 내도록 하는 국민권익위원회의 방안에 대해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수고비를 내기 전에 ‘중개계약서’를 먼저 작성하는 게 원칙”이라며 “실제 수고비도 시간당 1만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익위는 지난 9일 국토교통부에 ‘주택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 방안’을 권고했다. 12억원이 넘는 주택의 매매 중개수수료(임대는 9억원 초과)를 낮추는 방안을 담은 것으로, 여기엔 실제 매매·전세 계약을 맺지 못한 경우라도 실비 보상 한도내에서 수고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단, 매매·전세 계약까지 이어졌다면 이 수고비는 내지 않게끔 했다.

이에 대한 온라인을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나왔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의 한 누리꾼은 “공인중개사들이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허위 매물을 더 올릴 우려가 있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매물만 보여주고, 그 만큼 수고비를 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하나”고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사전에 안내한 매물과 실제 보여준 매물이 다를 경우에도 수고비를 줘야하나”고 물었다.

권익위는 “수고비(중개물건 소개·알선료)를 지급하기 전에, 수고비를 얼마로 할지 등을 중개계약서로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해명했다. 현재 구두로 중개의뢰를 하는 것을, 중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중개계약서에는 집을 구해야 할 기간, 원하는 주택의 조건, 소개·알선 횟수에 따른 지불조건이 담기도록 할 방침이다. 만약 공인중개사가 의뢰인이 원하지 않는 조건의 주택을 보여줬을 경우 수고비를 담지 않는다는 조항도 여기에 포함된다.

권익위는 또 수고비에 대해 “최저임금(2021년 기준 시간당 8720원)을 기준으로 하는 실비보상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권익위는 “공인중개사가 집주인 또는 현 세입자와 연락을 하고, 방문시간을 조율하며 의뢰인과 함께 방문해 설명하는 행위에 대한 기회비용 성격”이라며 “시간당 1만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익위는 “현재 구두로 중개의뢰하는 관행이 중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개선되면, 중개업소 1곳에 의뢰해도 중개업소간 공동중개방식으로 매물과 의뢰인을 매칭해 찾아주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구두로 여러개의 중개업소에 맡기지 않아도 된다”며 “또 집을 보여주지 않고 계약을 종용하는 ‘묻지마 계약’이나 실제 집을 살 의향도 없으면서 고가주택을 관람하듯이 보러 다니는 행위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권익위가 지난 9일 국토교통부에 권고한‘주택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 방안’. 경향신문 자료사진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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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선생 영면..향년 89세(종합)

정성조 입력 2021. 02. 15. 08:04 수정 2021. 02. 15. 08:44


한국 진보운동 '큰 어른'..1987년 대선서 민중후보 출마
1992년 대선 이후 통일문제연구소 세워 통일운동에 헌신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 (서울=연합뉴스)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2021.2.15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입원 중 영면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왔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백 소장은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xing@yna.co.kr

[그래픽]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주요 연보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0eu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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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결혼?.."나 돌아갈래" 석·박사의 절규

고민서 입력 2021. 02. 14. 09:54 수정 2021. 02. 14. 10:15


[스물스물]
코로나시대 갈 수록 어두운 취업의 길 [이충우 기자]
'취업은?'

'결혼 계획은?'

'그럼, 여자친구는 있고?'

올해 이과계열 박사 졸업을 앞둔 박현석(가명·경기) 씨는 이번 설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서른을 넘어서고, 대학에 머무른 시간이 길어지자 주변 어른들의 3단 콤보 질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니 안 간다고 했죠. 근데 사실은 똑같은 질문을 또 하실 텐데 할 말이 없어요"

나름 집에서 가방끈이 가장 길어 부모님의 기대와 친척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그는 졸업 이후의 계획을 짜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중이다. "박사한다고 하면 다들 진로가 보장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계열마다도 많이 다르고 또 같은 계열 안에서도 어떤걸 세부 전공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요" 그는 최후의 보루로 학원 강사로 전향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고용 한파가 석·박사급 인재들도 흔드는 분위기다. 고학력 청년들도 취업난에 예외가 없으면서 장기 취업준비생으로 남아있거나, 결국 어쩔 수 없이 전공과 무관한 직업으로 갈아타는 경우 등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취업이 좀처럼 되지 않아 학사에서 석사, 석사에서 또다시 박사로 '도피성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한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는 "지원자 중에선 스펙이라도 더 쌓자는 마음에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이도 저도 아닌 커리어로 취업에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기업 입장에선 석·박사급을 뽑는다고 하면 적재적소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원하는 것인데, 학력만 높아진 경우라면 학사만 못한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선 고학력에 되려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전공 분야에 따라서도 갈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예술·인문학 분야다. 고학력에 부합하는 직종의 비중 자체가 낮은 데다가, 교수 인력 적체까지 심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로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그해 2월과 전년도 8월에 박사학위를 받은 9048명(외국인 제외)을 대상으로 졸업 이후 상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예술·인문학 박사학위 취득자의 41.7%가 '미취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38.8%가 취업, 박사후 과정 1.3%, 시간강사 18.3%였다.

이어 자연과학, 수학 및 통계학 박사 학위 취득자도 38.5%가 취업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석·박사급 채용시장은 업황에 따라서도 온도차를 보인다. 서울의 한 공과대학 관계자는 "같은 공학계열이더라도 수요가 한정된 원자력 공학보단 미래산업군으로 채용이 활발한 컴퓨터공학의 취업 상황이 낫다"고 설명했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석·박사급 취업난은 이들 고급 인력의 하향 취업으로 이어지고, 연쇄적으로 학사급, 고졸 등의 취업단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고민서 기자]

※스물스물은 '20년대를 살아가는 20대'라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사회 진출을 준비하거나 첫 발을 내딛고 스멀스멀 꿈을 펼치는 청년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매일경제 사회부가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 20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참신한 소식에서부터 굵직한 이슈, 정보까지 살펴보기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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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가방 60만원에 팝니다"..'동네인증' 믿고 샀는데 사기였다

김주현 기자 입력 2021. 02. 14. 06:40 댓글 228

 

/사진=뉴스1


#경기 성남에 사는 A씨(가명·28)는 지난해 4월 중고거래 어플 '당근마켓'에서 '디올 몽테인 가방 판매합니다'라는 글을 보고 작성자에게 채팅을 걸었다. 동네인증을 거쳐야만 이용할 수 있는 중고거래 앱이기 때문에 사기라는 의심은 없었다. A씨는 먼저 가방 대금 60만원을 계좌로 입금하면 택배로 가방을 보내주겠다는 말을 믿고 돈을 보냈지만 작성자는 가방을 보내주지 않고 그대로 잠적했다.

동네기반 중고 직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사기 사건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명품 가방을 판다고 글을 올려 대금만 받고 잠적하거나 반대로 명품 가방을 산다고 한 뒤 물건만 받고 대금을 치르지 않는 '명품가방 사기'가 잇따르고 있다.

"디올 가방 2개 80만원에 사세요"…돈만 꿀꺽

14일 법원에 따르면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지난해 12월 당근마켓에서 중고 명품가방을 판매하겠다고 글을 올리고 80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재판에 넘겨진 B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B씨는 지난해 4월21일 성남시 분당구 한 아파트에서 당근마켓 어플에 접속해 '디올가방 판매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등록했다.

B씨는 글을 보고 연락한 피해자 A씨에게 20만원에 디올 명품가방을 판매하겠다고 약속했고 곧바로 계좌로 20만원을 입금받았다. 그러나 피고인은 대금을 받더라도 가방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B씨는 다음날 A씨에게 또다른 '디올 몽테인' 가방을 60만원에 추가로 구매할 것을 제안했다. A씨는 곧바로 60만원을 입금했지만 가방은 받지 못했다.

재판부는 "이후 피해자에게 피해를 변제하고 합의한 점과 초범인 점을 고려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명품가방, 고급자전거 내가 사겠다"…상습 사기꾼 징역형

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반대로 명품 가방을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접근해 가방만 가로챈 사건도 있다. 울산에 사는 C씨는 2019년 8월 '당근마켓'에서 피해자 D씨가 작성한 '루이비통 티볼리GM 명품가방을 10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연락을 했다.

C씨는 가방을 구매해 선물할 예정인데 대금은 일주일 뒤 지불하겠다고 피해자를 속였다. 사실은 피해자로부터 건네받은 가방을 중고거래업자에게 처분하고 생활비로 쓸 작정이었다.

연락한 다음날 C씨는 피해자가 사는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 현관까지 찾아가 시가 100만원 상당의 루이비통 가방을 건네받았지만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다.

창원지법 밀양지원은 지난해 7월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동종 누범기간 중임에도 출소 후 단기간에 다수 사기 범죄를 저질러 사안이 매우 무겁다"며 "사기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다수 인정되는 범죄전력도 있고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이 대부분 되지 않았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김주현 기자 na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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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로 파국 맞은 '마약우정'..참혹한 가방 시신 사건 전말

심석용 입력 2021. 02. 14. 05:01 수정 2021. 02. 14. 06:48 댓글 275

 

친구를 살해한 뒤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유기한 혐의를 받는 A씨 등 2명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동갑내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비대면이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서로 통하는 걸 느꼈다. 2018년부터 A(당시 19세)와 B는 직접 만나 일탈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됐다. 그러다 마약에 손을 댔다. 병원에서 처방받거나 지인을 통해 구한 마약 ‘펜타닐’ 성분의 진통제를 가열해 흡입하는 날이 점점 늘었다. A의 친구였던 C도 동참하면서 셋의 ‘마약 우정’은 더 돈독해졌다.

지난해 7월 우정에 위기가 찾아왔다. 생활고를 겪던 A는 자신들이 즐기던 방식으로 진통제 패치를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패치 1장당 30만원에 팔아 생활비에 보탤 생각이었다. 그의 머릿속엔 진통제를 잘 처방해주는 병원들이 있었다.

그러나 B가 진통제 처방이 수월한 병원을 소개해달라고 계속 조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A의 단골병원 의사들이 펜타닐을 자주 요구하는 B를 수상하게 여긴 것이다. 용도 외 사용을 의심했고 이 진통제를 더는 처방하지 않았다. 마약 투약은 물론 생계에 위협을 느끼게 된 A는 B에게 앙심을 품게 됐다. 비슷한 상황이던 C도 같은 마음이었다.


마약 집착으로 파국 맞은 ‘마약 우정’
지난해 7월 29일 오전 11시 이들은 서울 마포구 C의 음악연습실에 모였다. 여느 때처럼 마약을 투약하고 이야기를 하던 중 쌓인 앙금이 터졌다. 흥분한 상태에서 B가 던진 가위가 A의 발가락에 맞았다.

화가 난 A의 발길질을 시작으로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이 전개됐다. B는 청테이프로 묶인 채로 A와 C에게 7시간에 걸쳐 온몸을 구타당했다. A 등은 이날 다른 친구들이 연습실을 찾자 “이거 다 연기”라며 안심시켜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B는 숨졌다. 사인은 머리부위 둔력 손상이었다.

A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때렸는데 심각한 상황인 것 같다. 이 시간에 캐리어를 살 곳이 있나, 한국 뜰 거다, 밀항할지 월북할지 모르겠다”며 횡설수설 같은 말을 했다. 그들이 택한 건 시신유기였다. 다음날 오전 훔친 여행용 가방에 시신을 넣은 뒤 인천 중구 잠진도의 컨테이너 뒤 공터에 유기했다.

도피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신을 발견한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이들은 자수했고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재범 가능성 있다고 본 檢
재판과정에서 A는 범행 당시 스테인리스 봉이 아닌 플라스틱 빗자루를 썼고 머리는 때린 적이 없다며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C도 “어깨와 가슴 등을 밀치듯 때린 적은 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또 “A가 때릴 때 나는 주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고도 했다.

검찰은 둘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구형하고 형 집행종료 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청구했다. 살인을 다시 저지를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A 등은 폭행한 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고 피해자를 가장해 유족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法,중형 선고…위치추적은 기각

인천지방법원 전경. 심석용기자

법원은 살인의 고의가 없다는 A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들의 범행을 ‘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인정했다. 인천지법 형사15부(표극창 부장판사)는 A와 C에게 각각 징역 18년과 10년을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존귀한 가치를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위치추적장치 부착 명령 청구는 기각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들이 다시 살인할 것이라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표 재판장은 ▶성인 재범위험성 평가 결과, A가 높은 수준이 아닌 점 ▶범행 경위를 고려해볼 때 계획 살인으로 보이지 않는 점 ▶상당 기간 징역형 선고로 재범을 막고 교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선고 후 B의 아버지는 “사람을 죽였는데 형량이 그렇냐. 내 아들은 60년 이상 더 살 수 있었다. 가족들의 고통은 모르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에 재판부는 “유족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법과 양심에 따라 적절한 형을 선고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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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어머니·누나·남동생·여동생까지 죽여놓고..배상않는 정부

박동해 기자 입력 2021. 02. 14. 08:04


거창양민학살 70주년..학살 인정됐는데도 정부는 보상 미뤄
21대 국회에도 법안 상정.."1세대 유족 죽기 전에 해결해야"
서종호 거창양민학살유족회 서울지회장이 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커피숍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2.4/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정월 초하루가 지나고 나흘째 되던 날 아침 당시 아홉살이었던 서종호씨의 초가집 인근에는 무릎 높이까지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첩첩산중에 눈까지 내려 고요했던 시골 마을의 아침을 깨운 것은 낯선 군인들의 외침이었다. 무장을 하고 횃불을 든 채 들이닥친 군인들은 가족들을 내쫓고 집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지 못해 당황해하는 가족들에게 군인들은 '3일 치 식량과 수저만 챙겨 마을 앞 논으로 이동하라'고 다그쳤다.

이제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게 된 서종호씨(79, 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 서울지회장)는 1951년 2월 그날의 순간을 70년이 지난 2021년에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서씨는 불이 나는 와중에 '집안에 소들을 챙겨서 큰할머니(외증조할머니) 집 앞 대밭에 가져다 놓으라'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혼자 가족들과 헤어져 소들을 챙겼다. 그 시간이 부모, 형제들과 마주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는 것을 그때 서씨는 알지 못했다.

지난 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다방에서 만난 서씨는 "대한민국, 아니 세계를 찾아봐도 순수한 양민을 이렇게 학살한 사건이 없었다"라며 70년 전 한 서린 기억을 털어냈다. '거창양민학살'이라 불리는 이 사건에서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남동생 둘, 여동생까지 여섯 식구를 한번에 잃었다. 막내는 직전 해 겨울에 태어나 돌을 넘기지도 못한 갓난아이였다. 집도 모두 타버려 가족을 기억할 만한 유품 하나 남지 않았다.

군인들은 이날 서씨가 살던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 마을 주민들을 인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면소재지가 있는 과정리로 몰아갔다. 주민들 1000여명을 과정리 신원국민학교 교실에 몰아넣은 군인들은 이튿날 동이 트자 주민들 중 군인, 경찰 가족을 둔 사람들을 제외한 517명을 인근 박산골로 데려가 살해했다. 군인들은 시신 위에 나뭇가지 등을 덮고 기름을 뿌린 뒤 불을 질러 태웠다. 이 때문에 후에 유족들은 희생된 가족들의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1951년 2월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거창군 일대에서 719명의 주민들이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 국군의 만행에 희생됐다.

지난 2017년 3월 경남 거창군 신원면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거창 양민학살 희생자 제66주기 합동위령제에서 한 유가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거창군 제공)2017.3.30/뉴스1 © News1 이철우 기자

서씨의 가족 중에는 대밭에 소를 묶어 놓으러 간 서씨 본인과 군인들을 따라가지 않고 불타버린 집을 뒤지며 건질 수 있는 가재도구를 챙겼던 서씨의 조모만이 살아남았다. 군인들이 가족들을 끌고 가 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서씨의 할머니는 손자에게 "군인들을 따라갔으면 피난을 가서 살았을 텐데 왜 안 갔냐"고 타박을 하기도 했다. 서씨는 그날을 기억하면서 "따라갔으면 죽었을 텐데 그렇게 살게 됐다"고 회상했다.

70여년의 세월 동안 서씨와 같은 거창사건의 유족들은 갖은 고통을 당했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었음에도 '용공분자'의 가족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연좌제의 대상이 됐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유족회가 아예 '반국가단체'로 몰리며 고난을 겪었다. 정부는 유족들이 만든 합동묘소를 파헤쳤고 위령비를 뽑아 내용을 정으로 지우고 땅에 파묻기까지 했다.

유족들은 끊임 없는 노력으로 지난 1996년 '거창 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졌지만 국가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시효가 지나 국가배상의 의무가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2004년 국회에서 배상을 위한 법률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지만 당시 탄핵 정국 속에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정 부담'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됐다. 이후에도 16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여러차례 관련법안이 안건으로 올라왔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서씨는 "배상은 금액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가가 저지른 일에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당연한데 배상 문제가 70여년 동안이나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원통하다고 말했다. 그는 "6.25 사변 이후 이와 비슷한 일이 많이 있었지만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재판까지 끝나 국가의 책임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거창 사건이 유일하다"라며 "그때 내가 아홉살이었는 데 (지금까지 해결이 안된 것이) 기가 막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유족들이 개별적으로 재판을 통해 국가배상을 받으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2008년 대법원이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 만료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지만 2014년에는 판결이 뒤집혀 유족들이 배상을 받았다. 하지만 모든 유족이 재판을 청구해 배상을 받기에는 돈이라는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1인당 수백만원의 소송 비용을 전체 유족들이 감당해 내기 어렵다는 것이 유족회의 설명이다.

거창사건 70주년 추모기간(2021.2.9.~2.11)을 하루 앞둔 8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 거창사건 추모공원에 거창사건을 형상화한 가해자인 군인들과 민간인 희생자의 조각상이 70년 전 그날의 슬픔을 말해 주고 있다. 사진은 다중촬영 기법으로 촬영됐다. (거창군 제공) 2021.2.8/뉴스1

이성열 거창사건유족회 회장은 "21대 국회에서도 배상과 관련된 법안이 제출돼 있지만 국회의원들이 꼼짝을 안 하고 있다"라며 "거창 유족들의 표 수가 적어서 광주(5.18민주화운동)나 제주(4.3사건)처럼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어 이 회장은 과거사 사건의 명예회복과 배·보상 문제를 국정과제로 포함시켰던 만큼 거창유족들의 목소리를 대통령이 직접 듣는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날이 풀리면 청와대 앞에서 집회라도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거창사건은 국군 제11사단 9연대에 의해 자행됐다. 11사단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남한 내 산악지역으로 숨어든 인민군, 빨치산 잔존 세력들을 소탕하기 위해 지원 보급처를 끊는다는 명목으로 산간마을의 주민들을 소개시키고 마을을 불태웠다. 작전명은 '건벽청야'였다. 이중 거창군 일대의 작전을 담당한 11사단9연대3대대는 작전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공비와 내통했다며 살해했다.

사건은 그해 3월 거 창출신의 신중목 국회의원이 민간인 학살 내용을 국회에서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국회 내무부, 법무부, 국방부의 합동 진상조사를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군은 사건 현장에 방치된 어린이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 암매장하거나 군인들을 무장공비로 위장시켜 조사를 나온 진상조사단에 사격을 가하는 등 진상규명 활동을 방해했다. 진상조사 방해에도 외신 등에서 지속해 문제가 제기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내무부와 법무부, 국방부까지 3부 장관을 해임했으나 사건을 '군이 용공분자 187명을 처형한 사건'이라고 호도하는 허위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허위 담화문으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여론이 들끓자 국회는 '양민학살 관련 책임자 처벌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해 책임자 처벌에 나섰다. 사건 발생 5개월여만인 7월에 대구고등군법회의에서 재판부가 구성돼 재판이 진행됐다. 학살관련 군관계자들은 모두 실형을 언도받았지만 이후 줄줄이 사면돼 군에 복직하거나 경찰 간부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거창사건의 유족들은 70년 전 하루아침에 가족들 잃었고 국가에 의한 조직적인 학살 범죄임이 밝혀졌지만, 가해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고 배·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70주년을 맞은 2021년 유족회와 거창군은 다양한 행사를 기획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의 여파로 개최가 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상황에 대해 서씨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생존했던 1세대 유족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 최근에도 유족회 이사회에 갔더니 (유족) 두 사람이 돌아가셨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치매가 걸렸다고 한다"라며 사건을 기억하는 유족들이 모두 사망하기 전에 국가 차원의 배상이 꼭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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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목줄 죄는 중국의 야심, 바다도 삼킨다

모종혁 중국 통신원 입력 2021. 02. 13. 10:02 댓글 108

 

중국 해군력, 전투함 수 세계 1위로 성장..4개 항모 전단 갖추기 위해 박차

(시사저널=모종혁 중국 통신원)

1월4일 중국 상하이 창싱다오(長興島)의 장난(江南)창싱조선소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중국선박공업공사(CSSC)가 제2의 창싱조선소 착공식을 개최한 것이다. 이번에 건설되는 새 조선소는 전체 면적이 4.32㎢에 달한다. 이 중 절반인 2.15㎢는 1단계로 오는 2023년 말까지 완공된다.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되면, 제2의 창싱조선소는 연간 6척의 전문 선박을 생산하게 된다. 그렇다면 전문 선박의 정체는 무엇일까? 1월6일 중국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익명을 요구한 중국 군사 전문가의 발언을 빌려 공개했다.

이 군사 전문가는 "중국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강습상륙함·수륙양용함 등 대량의 함정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그로 인해 새로운 조선소를 확충해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창싱조선소는 2척의 '002형'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있다. 그중 중국에서 3번 항공모함이 1월18일 군사전문매체인 '병공과기(兵工科技)'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3번 항모는 현재 블록 조립작업 중으로 전반적인 골격은 잡혀 마무리 건조 단계에 들어섰다. 따라서 빠르면 올해 말에 진수해 2024년 말에 전력화될 예정이다.

중국의 2번 항공모함 산둥함이 2019년 12월17일 하이난(海南)성 싼야(三亞) 해군기지에서 취역식을 하고 있다.ⓒXinhua연합

항공모함·강습상륙함으로 '대양 해군' 노려

002형 항모는 현재 중국이 운용 중인 '랴오닝(遼寧)함'이나 '산둥(山東)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랴오닝함과 산둥함은 구소련의 항공모함 제조기술을 적용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함재기를 증기식으로 사출해 스키점프를 하듯 이륙시킨다. 002형 항모는 중국이 자체 개발한 전자식 사출장치가 장착된다. 중국이 드디어 구소련의 항모 제조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다. 현재 마무리 건조 중인 3번 항모는 길이가 320m 안팎으로, 미국 CV-63 키티호크함과 비슷하다. 항모의 만재 배수량은 8만~8.5만 톤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것이 된다. 3번 항모는 향후 하이난다오(海南島) 싼야(三亞)를 모항으로 할 것이 유력하다. 중국은 이미 싼야에 3번 항모를 수용할 수 있는 도크를 건설 중이다. 이 도크 부근에는 별도의 잠수함 기지가 있다. 따라서 잠수함으로 항모 편대를 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건조 중인 또 다른 002형 항모까지 2030년에 전력화되면, 중국은 최소 4개 항모 전단을 갖추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대양 해군'이라는 오랜 꿈을 실현한다. 사실 중국은 금세기 초까지 '적극적인 근해 방어'를 해양전략으로 추구해 왔다. 이는 1980년대 해군사령관이었던 류화칭(劉華淸)이 내놓은 도련(島鏈)전략을 기초로 한다. 도련은 '섬들로 이어진 사슬'이라는 뜻이다. 본래는 1951년에 미국 국무장관 존 덜레스가 내놓았던 공산권에 대한 해양 봉쇄전략이었다. 류화칭은 이를 분쇄하기 위해 3단계 도련전략을 내놓았다.

제1 도련은 일본-류큐(琉球)제도-대만-필리핀-보르네오로 연결되는 수역의 통제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다음 제2 도련으로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로 통제권을 넓힌다. 마지막 제3 도련은 항모 전단을 이용해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미국 해군의 공세를 차단한다. 이런 도련전략은 오늘날까지 중국 해양전략의 기틀이었다. 비록 류화칭은 최초 항모의 진수를 보지 못하고 사망했지만, 중국은 급성장하는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원해작전 능력을 갖추게 됐다. 따라서 2010년 전후부터 '적극적인 근해 방어'에서 항모를 앞세운 '원해 작전'으로 해양전략을 변화시켰다.

게다가 중국은 상륙작전 능력을 가파르게 증강시키고 있다. 실제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강습상륙함을 2척이나 보유했다. '075형' 강습상륙함이라 불리는데, 만재 배수량이 4만 톤에 달한다. 이는 미국의 와스프 강습상륙함과 같은 규모다. 075형 강습상륙함은 각종 헬리콥터 20여 대를 탑재하고 수륙양용 전차와 장갑차, 수백 명의 병력 등을 태울 수 있다. 또한 강력한 자체 방어 시스템을 갖추어, 근거리 방공미사일인 훙치(紅旗)-10과 근거리 방공포를 1분에 1만 발 사격할 수 있다. 1번함은 CSSC가 건조해 2019년 9월 진수했고 지난해 8월부터 시운전 중이다.

2번함은 2020년 4월 진수해 12월 시운전에 들어갔다. 1번함보다 시운전 시기를 2개월이나 앞당긴 것이다. 075형 강습상륙함은 모두 상하이의 후둥(滬東)중화조선소에서 건조됐다. 또한 같은 조선소에서 만든 3번함은 1월29일에 진수했다. 최근 중국이 강습상륙함 운용에 집중하는 이유는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남중국해와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의 영유권 분쟁에 공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강습상륙함은 대규모 병력의 상륙작전에 반드시 필요한 전략무기다. 또한 적의 지상군과 함정을 헬리콥터를 이륙시켜 공격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처럼 수직 이착륙기를 보유하지 못해 전투력은 떨어진다. 하지만 강습상륙함은 낙후된 중국군의 상륙전 능력을 향상시키고, 때로는 항공모함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듯 괄목할 만한 중국의 해군력 증강은 통계 수치로도 잘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발간한 보고서 '중국 해군의 현대화'에 따르면 지난해 초 중국 해군은 360척의 각종 전투함을 보유했다. 그에 반해 미국 해군은 293척을 보유해 중국보다 적다. 비록 질적인 면에서는 미 해군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세계 1위로 올라선 중국의 양적 성장세를 우습게 볼 순 없다.

한반도를 겨냥한 병력 배치에 주목해야

늘어난 함정의 내용도 알차다. 2005년 중국 해군의 전투함은 216척에 불과했다. 그 사이 한 척도 없었던 항공모함은 2척을 보유했다. 한 척밖에 없었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핵추진 전략잠수함은 4척이 됐다. 중국산 이지스 레이더를 장착한 052D형 구축함은 25척이다. 이지스함은 3~4년 뒤 40척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CRS는 "중국이 10년 내 전함 65척을 추가로 건조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전투함을 급속히 늘리는 속도전에 우려했다. 게다가 중국은 해군뿐만 아니라 해경 경비함도 2017년 185척에서 지난해 255척으로 70척이나 증가시켰다.

이런 전투함 증강에 보조를 맞춰 중국 해군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도 전망되고 있다. 현재 중국 해군은 3개 함대를 두고 있다. 북해함대는 산둥성 칭다오(青島)에, 동해함대는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 남해함대는 광둥(廣東)성 잔장(湛江)에 사령부를 두고 이다. 이들 함대는 특정 해역을 담당하는 기동함대다. 적지 않은 중화권 군사 전문가들은 앞으로 싼야에 새 함대가 창설돼 4개 함대 체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이 유사시 한반도 분쟁에 대비해 칭다오에 강습상륙함을 배치하고 해병대 병력을 증가시킬 가능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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